신룡전설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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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40화
신룡전설 2권 - 15화
진중악으로 인해서 만박귀자에게 대꾸하던 상자량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만박귀자 허자명 어르신이 맞습니까?”
진중악의 물음에 만박귀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눈과 귀가 알고 있거늘, 또 묻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만박귀자는 이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막내야! 저 노인네가 정말로 알긴 알 것 같냐?”
상자량의 말에 사흑련 무인들과의 싸움으로 인해서 오른팔에 약간의 검상을 입은 주자운이 아직까지도 가라앉지 않은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헉헉! 저, 저는 단지 사람들 말이 그렇다고 했을 뿐인데요…….”
주자운의 말에 상자량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어쨌든 왔으니 물어보기나 하도록 하지.”
엄등은 자신의 도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주군, 우선은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진중악의 말에 왕무적은 알겠다는 듯 짐을 짊어지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곤 문 앞에서 입을 열어 말을 꺼내놓았다.
“저는 왕…….”
“천 년의 시간을 깨고 등장한 도황의 전인께서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먼 걸음을 하셨을 테니 들어오려면 들어오시오.”
“아…….”
만박귀자의 말에 왕무적은 물론이고, 신왕대 무인들 모두가 놀란 얼굴로 그가 들어간 집을 바라봤다.
“하긴 주군이 보통 특별한 존재가 아니니…….”
상자량의 중얼거림에 나머지 신왕대 무인들도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파란 머리카락, 파란 눈동자,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 조금만 무림의 소식에 정통한 사람들이라면 대번에 그가 신도황 왕무적임을 알아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왕무적은 그렇게 외치곤, 만박귀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들어가지.”
진중악의 말에 신왕대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박귀자의 집은 초라하다면 초라했고, 수수하다면 수수했다.
“대접을 할 만한 것이라고는 이런 것뿐이니 손님들이 이해를 해주시길 바라네.”
만박귀자가 내민 것은 그가 직접 잡은 듯한 물고기를 희멀겋게 끓인 탕이 전부였다.
‘저, 저건 좀 먹기가…….’
주자운은 만박귀자가 내민 탕을 바라보곤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후루룩.”
엄등은 탕의 국물을 나무 숟가락으로 떠먹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군요!”
“…에?”
솔직히 말하면, 한눈에 보기에도 맛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탕이다. 그런데 음식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그 맛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엄등이 맛있다고 하자 신왕대 무인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상자량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살짝 찌푸리곤 천천히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다.
“맛있네…….”
상자량까지도 맛있다는 말을 하자 신왕대 무인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하나 둘 탕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곧바로 누구 하나도 어김없이 맛있다는 말을 내뱉었다.
“캬~! 일품이군!”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거지?”
만박귀자는 흐뭇한 얼굴로 신왕대 무인들을 바라보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왕무적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무슨 일로 나 같은 늙은이를 찾아온 것이오?”
만박귀자의 물음에 왕무적은 그의 성격대로 곧바로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 무엇입니까?”
“……?”
의아스런 눈빛으로 왕무적을 바라보는 만박귀자.
“저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을 찾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면 제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왕무적의 말에 만박귀자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황의 전인께서는 꽤나 어려운 질문을 하시는구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라… 진실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 있는 것이오?”
“……?”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 있다고 한들, 그걸 누가 증명할 수 있단 말이오?”
만박귀자는 이어서 나무 숟가락을 들었다.
“내가 만약 이 나무 숟가락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 된단 말이오?”
“이보시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오?”
형조문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왕무적은 만박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 세상을 나온 것입니다.”
“도황의 전인께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을 찾고자 나온 것은 나 역시 알겠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란 없소.”
단호한 만박귀자의 말에 왕무적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도황의 전인께서는 잘 들으시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란 없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할 수 있는 물건이란 수없이 존재할 수 있소.”
“……?”
만박귀자의 말에 왕무적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왕대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란 없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할 수 있는 물건이란 수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소리는 즉,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란 소리가 아니던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주자운은 눈을 가볍게 찌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만박귀자는 왕무적을 향해서 다시 말했다.
“내 말인즉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은 존재할 수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물건이란 수없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이오. 즉, 내가 나무 숟가락을 두고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다!’라고 한다면 이 나무 숟가락 역시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할 수 있는 물건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소리요.”
그제야 만박귀자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깨달은 왕무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르신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단단한 물건은 무엇입니까? 아니, 세상 사람들이 가장 인정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은 무엇입니까?”
왕무적의 물음에 만박귀자는 ‘호오~’ 하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리곤 희미하게 웃었다.
“이 늙은이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하다 할 수 있겠소? 다만 내가 듣기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주장할 수 있는 물건은 천하에 딱! 두 가지뿐이오.”
2가지라는 말에 왕무적은 물론이고, 신왕대 무인 모두가 만박귀자에게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만박귀자는 왕무적과 신왕대 무인들의 시선을 가만히 느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하나는 무쌍마황갑이며, 다른 하나는 백령구(白靈球)라고 할 수 있소.”
“무쌍마황갑!!”
진중악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대주는 알고 있었소?”
“에이… 대주! 알고 있었다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지 않았소. 진즉에 말을 해줄 것이지.”
도담우와 상자량의 말에 진중악은 변명을 했다.
“무쌍마황갑에 대해서 듣기는 했지만 나도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인지는 몰랐어. 그리고 무쌍마황갑은… 혈천신교의 보물이라서…….”
“혀, 혈천신교!”
“혈천신교!!”
“그 광신도(狂信徒) 집단을 말하는 것이오?”
장량의 말에 진중악보다도 만박귀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혈천신교는 생각하는 것처럼 광신도 집단이 아니라네.”
갑작스런 만박귀자의 반박에 장량이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혈천신교가 미치광이들의 집단이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오. 팔백 년 이전에도 그랬으며, 삼백 년 이전에도 그랬소. 그 피에 물든 광신도들이 세상에 나올 적마다 무림엔 혈풍(血風)이 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무림실록에 똑똑히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오.”
장량의 말에 만박귀자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 마치 반박을 해야만 하는데 장량의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었기에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왕무적이 입을 열었다.
“무쌍마황갑이 혈천신교의 보물이라면 백령구는 무엇이며,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만박귀자를 바라보자, 그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려진 대로 무쌍마황갑은 혈천신교의 보물이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한 백령구요.”
“그럼?”
왕무적의 물음에 만박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주장할 수 있는 물건은 두 가지 모두 혈천신교에 있소.”
만박귀자의 말에 왕무적이 파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혈천신교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무공을 배웠다고 들은 기억은 없는데…….”
오른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40대 후반의 남자는 자신을 등지고 서서 창밖의 하늘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사내를 향해서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 그게 훼방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의 말에 사내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총사.”
“예, 예!”
“총사라는 자리가 그리 호락호락하다 생각했나?”
“그, 그게 아니옵고…….”
“총사라는 자리는 모든 일에 대한 의외의 변수까지도 계산에 넣고 일을 진행시켜 성공시킬 수 있어야 하는 법이지.”
사내의 말에 총사라 불린 남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시키도록 하겠……!”
“기회를 준다고 한들 없는 계산력이 생길까…….”
사내는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려, 련주님.”
주르륵.
총사는 어느새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쿵! 쿵! 쿵!
머리를 땅에 찧으며 기회를 요청하는 총사.
“기, 기회를 다시 한 번만 주시면 반드시……!”
사내는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시끄럽군.”
퍽!
“……!”
천장에서 검은 그림자가 떨어져 내려 허겁지겁 말을 하던 총사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러자 총사의 눈, 코, 입,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이어 그의 신형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털썩!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검은색 무복에 검은색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체격 좋은 사내였다. 그는 즉사해버린 총사의 시체 옆에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며 각기 2명의 시비(侍婢)와 무인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인들은 시체가 되어버린 총사의 몸을 들고 방밖으로 나갔으며, 시비들은 총사의 얼굴에서 흘러내린 피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깨끗하게 닦아내곤 방문을 나섰다.
똑똑.
“련주님, 양도강입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곰처럼 커다란 체구에 여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산적처럼 지저분하게 수염을 기른 40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래,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
사내는 여전히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양도강의 대답에 사내가 말했다.
“듣자 하니 의외의 인물이 섞여 있다고 하던데?”
“예! 아마도 신도황이라는 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신도황… 새로운 도황이라…….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나타난 도황의 전인이라… 후후후. 그거 참 재밌는 일이야. 안 그래?”
사내의 물음에 양도강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는 무림이 썩긴 썩은 모양입니다.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알 수도 없는 새파란 애송이를 신도황이니 어쩌니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양도강의 말에 사내는 유쾌한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도 귀마도 홍륜을 단 일도(一刀)에 패배시켰다고 하니 그만큼의 실력을 지니고 있겠지.”
양도강이 얼굴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귀마도 홍륜 따위는 열 명이 덤벼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야지. 천하의 흑월대(黑月隊) 대주인 살귀마검(殺鬼魔劒) 양도강인데.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사내는 잠시 낮은 웃음을 흘리다 거부할 수 없는 음성으로 양도강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서 만박귀자를 데려오게.”
“알겠습니다!”
몸을 일으켜 막 문을 나가려는 양도강을 향해서 사내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광혈투귀(狂血鬪鬼) 양문이 자넬 도울 걸세.”
흠칫!
사내의 말에 문을 나가려던 양도강이 한 차례 몸을 떨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애써 바로잡은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괘, 괜찮겠습니까?”
“…….”
양도강의 물음에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양도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문을 나섰다.
양도강이 나가고 나서 또다시 한참이 지나서야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화상(火傷).
사내의 얼굴 반이 화상으로 인해서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상처였으니 그런 화상을 입은 당사자인 사내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내는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은빛 가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얼굴에 덮어 씌웠다.
은빛 가면 속에서 사내의 두 눈이 웃었다.
“…아마도. 후후후.”
검은 복면의 사내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