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절대무적 140화
무료소설 처음부터 절대무적: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처음부터 절대무적 140화
140화. 다다익선도 지금은 아니지
잠이 안와 산에 올랐다가 갑자기 삶의 방향과 정체성을 찾는 일로 사고가 확장되었다.
‘좋지 않아!’
바둑 격언 중에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나온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저마다 성격이 다르고 방식이 다른 법이다. 내겐 깊은 사색과 치밀한 계획적인 삶보다는 즉흥적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 맞았다.
‘신경에 거슬리니까 부수는 거야? 무슨 다른 이유가 필요해!’
갑자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이 가슴이 후련해졌다.
‘소설에서 보면 이럴 때 주인공은 항상 각성을 하던데 난 그런 것도 없나?’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편해지고 내 삶이 방식이 틀리지 않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그만 내려가자. 총대장이란 놈이 행군하며 꾸벅꾸벅 졸수는 없으니까.’
관제묘로 가기 위해 산을 내려가려는 데 멀리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다.
사박사박.
조심스러운 발소리였지만 구태여 감출 생각은 없어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더구나 걸음의 폭이나 깊이로 보아 여자의 발소리였다.
‘내 쪽으로 오는데? 이 밤중에 누구지?’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은 백리산산이었다.
‘약속을 지키라고 찾아온 건가?’
맹랑하고 당돌한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터였다. 좀 더 기다려볼 생각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거기 누구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모양 빠지는 일이니까.
사박사박.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지척까지 다가와 멈췄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자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잠 못 들고 있나 해서 와봤더니 총대장님이셨군요.”
‘응?’
고개를 돌려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기대했던 백리산산이 아닌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하얀 무복 차림의 황보진진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황보 대주가 아니시오? 대주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구려.”
“예. 저도 바람이나 쐬려 나왔다가.......”
‘바람은 무슨. 딱 봐도 내 뒤를 뒤쫓아 온 것이 분명하구먼.’
액면대로 믿을 바보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야심한 시간에 여자가 남자를 찾아온 이유를 묻는 한심한 놈도 아니었다.
“그렇구려.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것이오?”
“아닙니다. 오랜만에 노숙을 하려니 설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총대장님이야 말로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중요한 임무를 맡아 대군을 이끄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되어 잠이 오지 않았을 뿐이오. 걱정하실 필요는 없소이다.”
“물론 혈왕유전도 회수해야 하고 제갈세가 문제도 그렇고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총대장님이시라면 훌륭히 처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으십니다.”
대체 날 어떻게 봤기에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진심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황보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그렇게 믿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여자의 마음을 얻는데 가장 중요하고 빠른 방법은 존경심이니까. 존경심이 깊어질수록 맹목적인 복종과 사랑으로 변해갈 확률이 높다.
두 눈에 형형한 정광正光을 빛내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황보 대주가 그렇게 말해주니 든든하구려. 고맙소이다.”
“별 말씀을. 있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나이에 걸맞게 맘에 드는 말만 하는 황보진진에게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람이 차구려. 괜찮다면 잠시 곁에 앉는 것이 어떻겠소?”
“그럼 잠시 실례하겠어요.”
황보진진은 어린애들처럼 내숭을 떨지 않고 바로 곁에 앉았다. 더구나 어미가 ‘-습니다.’에서 ‘-요.’로 바뀌었다. 지금부터는 부하가 아닌 여자로서 대해달라는 듯이 말이다.
그녀가 옆에 앉자 향긋하고 달콤한 체향이 바람을 타고 콧속으로 밀려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지그시 응시하며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따로 얘기를 나누기는 처음인 것 같소이다.”
“그러네요. 총대장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여자들이라고 하고 싶었겠지만 너무 들이댄다고 생각했는지 완곡한 표현으로 바꾸었다. 서운한 마음을 부지 간에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소림이나 남궁의 화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른 화제를 돌렸다.
“황보 어르신이 하신 말씀 때문에 날 피하는 것이 아니었소이까? 내심 서운하던 참이었소.”
“........”
볼을 붉힌 채 대답하지 못하는 황보진진을 보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 정말 그런 것이었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황보진진은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부족한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총대장님이 피하셨으면 피하셨지 전 아니에요.”
여장부인 그녀도 돌싱이란 점에는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대가 다른 만큼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 그 점도 내게는 복이고 기회였지만.
“부족하긴 누가 부족하단 말이오? 황보 대주의 책임도 아닌 일이 아니오. 어디 가서 절대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 난 단 한 번도 황보 대주를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소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황보진진의 눈에 존경심이 새록새록 차오르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오늘따라 혀가 매끄럽게 움직였다. 이대로라면 오늘 진도를 와장창 뽑을 수 있을 듯했다.
덥석.
이때다 싶어 손은 건너뛰고 어깨를 꽉 잡아 나를 향해 돌렸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쏘아내며 말했다.
“황보 소저. 내 눈을 보시오. 이 눈이 거짓을 말하는 눈이오?”
누가 봐도 욕망에 물든 눈이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달리 보일 것이다. 그게 바로 콩깍지의 위력이고 오랜 동안 남녀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근원이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여자가 이성을 차렸다면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따위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 그런.......”
실제로 황보진진도 감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마치 내 뒤로 후광이라도 있어 눈이 부시다는 듯이 오히려 눈을 감았다.
‘얘도 끝났네!’
한밤중 야산에서 외간남자와 지척에 앉아 마주보고 눈을 감았다면 이미 끝난 얘기였다. 이제 떨어진 감을 주워 먹기만 하면 되었다.
황보진진은 사자에게 잡힌 가련한 영양처럼 온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꼭 감은 눈꺼풀은 물론이고 새빨간 입술도 곧 다가올 순간을 기대하며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흐흐! 원래 아는 맛이 더 견디기 힘든 법이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얼굴위로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자 황보진진의 입술이 열리며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익은 밤은 스스로 껍질이 벌려지는 법이다. 향긋한 숨결이 얼굴을 간질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술을 덮고 강렬한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쪼옥. 추릅. 추르릅.
격하게 환영해오는 황보진진의 설육舌肉을 물고 빨았다. 황보진진은 일일이 가르쳐야 했던 다른 애들과는 달랐다. 돌싱 다운 화려한 기교와 풍부한 경험으로 원초적인 쾌락을 쫓아 적극적으로 반응해 왔다.
‘그래 이 맛이지!’
이성을 날려버릴 듯한 짜릿한 쾌감이 뇌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야산이며 멀지 않은 곳에 오백 쌍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뇌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양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부스럭부스럭.
‘제길! 오늘따라 왜 이래?’
적극적인 상대를 만나 흥분이 과했는지 평소 기술이 나오지 않아 버벅 거렸다. 삼초면 전신탈피가 가능했던 기술이 하찮은 매듭 하나에 절절매고 있었다.
녹슨 손 기술에 마음만 더 조급해졌다.
‘옷고름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다니........’
이젠 황보진진의 눈치까지 보였다.
척.
결국 보다 못한 황보진진이 섬섬옥수를 움직였다. 옷고름과 씨름하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가........”
‘이런 제길!’
얼마나 답답했으면 스스로 나섰을까? 기어코 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며 정신이 아늑해졌다. 나름 20세기 화류계를 주름잡으며 풍류남아로 자처했던 손모가지를 자르고 싶었다.
한껏 달아오른 흥분도 일시에 식어들었다. 그랬더니 주변의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지척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헉! 이건 또 뭐야? 아무리 내가 흥분했다고 해도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등골이 서늘해지면 뇌리를 지배하던 욕망은 불씨마저 꺼져 버렸다.
‘적은 아닌 가 본데?’
적이라면 더욱 은밀히 은신해 기회를 노릴 것이다. 아무리 절대고수라도 피하지 못할 순간이 있을 테니.
‘아암! 조금 더 진행되는 걸 지켜보다 머리가 하얗게 비는 절정의 순간을 기다릴 테지.’
한데 상대는 일부러 인기척을 낸 듯했다. 마치 더 이상의 진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렇다면?’
더구나 상대는 하나다. 겨우 한 명이 오백의 군세와 수많은 절정고수의 눈을 피해 암살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백호경보가 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목숨이 걸린 일은 백번 조심해도 절대 과하지 않다. 슬쩍 황보진진을 살폈다.
그녀는 아직 욕정에 지배당한 상태인 듯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있었다. 적이 아니라도 내 여자의 알몸을 남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일.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의 섬섬옥수를 가볍게 잡아 끌어안으며 귀에 속삭였다.
“쉿! 누군가 있소?”
멈칫!
품속의 황보진진의 몸이 일순 경직되었다. 그녀 역시 이성이 돌아온 것이다. 이제 부끄러움이 밀려올 테고 품안을 벗어나려 할 것이다. 더욱 꼭 안아주며 속삭였다.
“잠시 가만히 있으시오.”
“하지만........”
생각해보니 적이 아니면 황보진진에게는 더 문제였다. 정숙한 미망인이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발정 나 있는 광경을 목격 당했으니 말이다.
다급한 마음에 품안에서 꼼지락 거리며 복장을 정리하는 황보진진에게 속삭였다.
“걱정 마시오. 진매의 청백은 내가 책임지겠소.”
내가 나쁜 놈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절대 쓰레기는 아니었다. 최소한 책임질 생각도 없이 몸과 마음을 희롱하진 않는다. 그래서 난 쓰레기는 아니다.
물론 현대라면 턱도 없는 개소리로 바로 고소 각이지만 이곳에선 통했다. 바로 황보진진의 감격에 겨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그 증거다.
“아!.......가가.”
품속에서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절세미인. 가만히 있을 남자는 고자나 부처 정도일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쪽! 추릅.
다시 열정적으로 입맞춤을 하고 있지만 처음처럼 흥분할 수는 없었다. 빤히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단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않은 채 입술이 떨어지자 다시 기척이 들려왔다.
바스락바스락.
사박사박.
이번엔 아예 들으라고 발소리까지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안고 있던 황보진진을 풀어주며 일부러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어머! 총대장님 아니세요? 인의단주님도 계시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리산산이었다. 마치 지금에야 우릴 발견했다는 듯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