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인 무림 93화
무료소설 던전 인 무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던전 인 무림 93화
93. 빨리 까라고
턱. 터덕. 휘리릭!
선배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고 발판을 이용해 크레바스를 올라왔다.
“가가!”
삼박사일을 기다리진 않았겠으나 설빙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풍경화 속의 인물처럼 멈춰있던 그녀는 크레바스에서 올라오는 나를 향해 영화처럼 날아와 안겼다.
나도 청춘 영화를 찍었다. 마주 안아 빙글빙글 돌면서 말을 건넸다.
“추운데 왜 나와 있어? 궁에서 기다리지 않고.”
“가가, 어떻게 됐어요? 성공하신 거죠?”
설빙에게 중한 건 무엇보다 성패 여부였다. 내 안부야 멀쩡하게 나왔으니 이상 없다는 것이니까.
“응? 결계에 변화가 없었어?”
“결계요? 전 여기 계속 있어서…….”
헐! 진짜 삼박사일을 기다렸다고? 부담스럽게. 쩝!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런 사소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믿었다. 설빙의 손을 잡고 빙궁을 향해 몸을 날리며 말을 건넸다.
휘리릭!
“장모님께 가보면 알겠지. 지하에 만년빙정과 만년화정이 있더라고. 궁에 가서 자세히 말해줄게.”
“만년빙정, 화정이요? 아! 그럼 역시……. 그런데 관문은요?”
역시 설빙의 관심사는 부군이 됐느냐에 있었다. 남자를 알고 나니까 빙궁의 지보라는 만년빙정도 눈에 뵈지 않나 보다. 아직 남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벌써 이러면 나중엔 기둥뿌리 뽑아 오겠다.
아! 이미 통째로 바쳤지. 흐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화룡이란 놈이 관문이라고 생각해 처리했는데 결계에 변화가 없다면 다시 내려가 봐야겠지.”
“아! 그렇군요.”
설빙은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으나 난 변화가 있을 것으로 확신해 걱정 없었다. 그래서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근데 빙매.”
“예? 가가.”
“만일 다시 내려가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어.”
“화룡은 처치하셨다면서요?”
“그러니까 더 문제지. 놈이 아니라면 다른 변수가 있다는 뜻이잖아. 근데 단서가 될 만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벼, 변화가 틀림없이 있었을 거예요. 소녀는 그렇게 생각해요.”
괜한 애를 쓰는 모습이 심쿵할만큼 귀여웠으나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여줬다. 아무래도 난 장수할 것 같다.
빙궁에 도착하자 그새 대전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궁도들이 날 보는 시선에서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존경, 흠모 등등, 마치 우상을 대하는 듯했으니까.
두둥!
난데없이 북소리가 들리고 성장盛粧을 한 장모가 대전으로 들어섰다. 힐끗 설빙을 보니 감격과 환희에 찬 얼굴이다. 얘는 정말 삼박사일 기다렸던 모양이다.
“...가가.”
“응, 장모님을 뵈니 다시 안 가도 될 모양이네.”
“흑!”
가만히 안아주고 기다리고 있는 궁주에게 다가갔다. 물론 개망신당하지 않으려면 확인사살은 당연한 절차다.
전음으로 물었다.
-장모님, 결계 문제는 해결됐나 보군요?
-고맙네. 빙결되었던 장소가 서서히 복구되고 있네. 수고했네.
궁주가 수고했다는 전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으로 말했다.
빨리 까라고.
궁주가 궁도를 앞에서 판을 깔아주는 거다. 시선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내가 아니다. 화룡이 든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돌아섰다.
슬쩍 대전의 크기를 확인했다. 화룡이 죽으면 본 상태로 돌아가 길이 9m에 높이가 3m나 된다. 물론 죽어서 높이는 관계없었지만.
대전은 천정이 높아 산 채로 풀어놓아도 좋을 정도였다. 지금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때였다. 아공간 주머니를 허공에 휘두르며 화룡의 사체를 꺼냈다.
쿵! 쿠궁!
육중한 소리와 함께 화룡의 사체가 대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죽는 바람에 몸에 감긴 불길이 사라져 임팩트는 확실히 덜했다. 그래도 덩치 하나로 충분히 장내를 압도할 만해서 다행이었다.
-오오! 궁주 만세! 부군 만세!
-빙궁 만세! 부군 만세!
둥! 두둥둥! 둥둥둥둥!
궁주를 제외한 전 궁도가 나를 향해 부복해 찬양했다. 사이비 교주가 이 맛에 교주짓을 하나 보다.
궁주는 사뿐사뿐 걸어와 설빙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설빙을 내 곁에 세운 궁주가 손짓하자 커다란 북소리가 시선을 모았다.
쿵!
궁주가 부복한 궁도들을 향해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궁은 오늘 초대 부군을 맞이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소궁주 설빙을 12대 궁주로 임명하여 초대 부군의 곁에 서도록 할 것이다. 본궁의 제자들은 들어라! 앞으로 열흘 뒤 초대 부군의 제위식과 12대 궁주의 계승식을 거행하겠노라. 그동안 제자들은 제위식의 준비에 만전을 다 하여라!”
-충! 천년 영세 빙백설궁!
-충! 초대 부군! 만만세!
금세 대전은 초대 부군과 신임 궁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로 변했다. TV에서 보던 대로 장모와 설빙의 손을 잡고 번쩍 치켜들자 궁도들의 환성이 대전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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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설빙과 궁주와 술 한 잔 마시는 자리였다. 그동안 크레바스 속에서 내가 겪은 것들을 말했다. 한마디 할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모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빙백마제의 절기를 수습했다는 말이 끝나자 모녀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오! 그럼 자네가 빙백마제 조사님의 유물을 얻었다는 말인가?”
“역시 빙궁의 분이셨군요. 그럼 열화마제라는 분도 아십니까?”
“알다마다. 두 분 모두 강호에는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고인들이셨네. 두 분은 사백 년 전의 인물들로…….”
두 사람의 사부는 빙염氷炎 노인으로 은거 고인이다. 예상대로 사형제였으나 빙염 노인과는 달리 극성의 무공을 한 사람이 익힐 수 없다는 흔한 클리세였다.
어쨌든 빙백마제는 대설산에 빙궁을 열화마제는 대막에 열화궁을 세웠다. 다행히 사매는 없어 치정문제는 아닌 듯했고 각자 잘 살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나로 인해 대설산 크레바스 안에서 흔적이 발견된 것이고.
언뜻 보면 열화마제가 적백 구체를 노리고 빙백마제는 저지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만년빙정이나 화정 둘 중 하나만 없어져도 빙궁은 멸망하니까.
과연 그럴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을까?
양패구상했다면 뭔가 다른 흔적이 더 있어야 했다. 한 사람이 월등하지 않은 이상 전투 양상도 훨씬 더 다채로워야 했고.
그런데 벽면에 새겨진 무공의 흔적은 딱 무공의 전수 목적 이외에는 아니었다. 치열할 격투의 흔적없이 깔끔했으니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시신이나 유품이 하나도 없었다. 빙백마제는 적수공권이라고 해도 열화마제는 도를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다면 평범한 도가 아닐 텐데 겨우 2백 년 만에 부식해서 사라졌을 리는 없었다.
흠! 확실히 공동에 시신이나 유품은 없었어…….
물론 다른 생명체가 있어 시신을 훼손했을 수도 있었다. 도까지 가져갔다는 것은 억지가 있었지만.
벽면에 새겨진 심득이 단서라면 단서일 텐데…….
일반적으로 사람이 무언가를 세상에 남기겠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죽음을 앞뒀을 때다. 그래서 나도 제일 먼저 양패구상을 떠올린 것이고.
반드시 죽음만인 것은 아니지. 미지에 대한 모험을 떠났을 수도 있으니까.
마력장이나 반투명 막 등의 주변 정황상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 역시 만년빙정과 화정에 대해서는 알았을 테고 반 투명막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솔직히 마력장이 그 시기에 있었는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마력장을 통과했다고 가정하면 마력 보유자라는 뜻이었다.
공동에서 미궁처럼 다른 통로나 던전을 발견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데 두 사람은 왜 돌아오지 않았던 걸까?
설마 크레바스를 빠져나올 능력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올라와 전력을 보충해 도전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쯧!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온 건가?
차라리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올 수 없었다는 것이 설득력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두 사람이 싸워 상잔했거나 공동의 강력한 적에게 당했다는 편이 자연스러웠고.
근데 화룡은 아니잖아?
두 사람이 사라진 시기는 화룡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화룡과 싸운 것은 아니라는 뜻.
아니지! 자꾸 까먹는데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어.
던전이거나 미궁의 통로 같은 곳으로 어찌해볼 틈도 없이 빨려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럼 또 심득이 말이 안 되잖아, 심득이. 아니지!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거야. 심득은 만에 하나를 위해 남겨놓았을 거고.
일단 던전이나 통로를 발견했다고 가정하고 두 사람의 행동 양식을 유추해봤다. 자신감에 쩌는 두 사람은 나중을 기약하기보다는 모험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하나도 아니고 둘이 있었다. 경쟁심도 작용했을 것이고 서로 의지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무림 밥 얼마 먹지 않은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자존심, 자신감으로 먹고사는 우리니까.
두 사람의 실종이 마력장의 비밀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미궁에 다녀오려면 왕복 6개월이 날아가니까.
그래서 궁주와 설빙에게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럼 결계 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궁주의 근심스러운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결계 문제는 해결됐으나 추가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유물이나 보물이 있는 공동은 던전이 아닌데도 던전에서나 볼 수 있는 마력장과 반투명 막이 있습니다. 그 말은 곧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빙백마제 조사님과 열화마제 사숙조님의 시신이나 유품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말입니다.”
결계가 안전하다는 말에 궁주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동은 조사의 유물이 남아있는 곳인데 당연히 조사하고 보전할 생각이네. 한데 꼭 자네가 조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맞아요. 이제 부군이 되셔서 할 일도 많은 데 굳이 가가께서 그런 일까지 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청상과부는 되기 싫은 설빙이었다. 궁주도 초대 부군을 위험한 곳에 보내기 싫은 듯했고.
“하하! 빙매, 장모님. 저도 사조들처럼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되십니까?”
“휴우! 자네가 기필코 하겠다면 본궁에서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네. 부군은 그런 존재니까. 하지만 200년 만에 부군을 맞이한 본궁의 입장도 생각해 주게. 하더라도 나중에,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래요, 가가. 궁주님 말씀대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볼 테니 제위식이 끝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위식이 끝나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가가는…….”
“하하, 알았어. 알았다고.”
[연재]던전 in 무림 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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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출간일 | 2021.10.8
지은이 | 야우사
펴낸이 |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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