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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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70화
신룡전설 3권 - 20화
백서린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두 눈을 깜박이자 왕무적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백 소저, 사실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요?”
“예.”
“그렇군요.”
백서린은 고개를 끄덕이곤 닭고기를 한 점 집어 들며 말했다.
“어쨌든 전 어머니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물론 제가 항상 차분하고, 얌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가 천방지축으로 날뛴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항상 저보고 여자답지 못하다며 그렇게 행동했다가는 어떤 남자도 절 좋아하지 않을 거라면서 매일 잔소리만 했죠. 치!”
닭고기를 입 안으로 넣은 백서린은 오물거리며 씹었다.
“아… 그러셨군요.”
음식을 삼킨 후에 백서린이 방긋 웃었다.
“그래서 절 좋아하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선약문을 나온 거예요.”
“어머님께서 걱정하실 겁니다.”
왕무적의 말에 백서린 역시도 그런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좋은 사람을 데리고 가면 어머니는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헤헤!”
다시 음식을 집어 먹는 백서린의 모습에 왕무적은 그녀가 생각보다 귀엽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육소빈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왕무적의 머릿속에 육소빈과의 추억이 떠오르려고 할 때였다.
“내일은 아주 볼 만한 경기가 될 거야!”
“물론이지! 나는 매번 그의 경기를 볼 때마다 묘한 흥분을 느끼곤 한다니까! 하하하!”
“하긴! 그처럼 긴장감 있는 경기를 펼치는 이도 없지!”
“당연하지!”
곁에 있던 2명의 무인들이 흥분감에 휩싸인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왕무적은 물론 쉬지 않고 음식을 집어 먹던 백서린까지도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봤다.
2명의 무인은 술을 한 잔 들이켠 후에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다.
“내일은 상대가 혈투귀(血鬪鬼) 오무중이라지?”
“그렇지!”
“캬! 혈투귀 오무중과의 경기라… 이거 벌써부터 흥분되는 군!”
“아마도 내일은 경기장이 온통 피로 번들거릴 것이 분명해!”
“그렇겠지! 하하하! 이거 기다리려고 하니까 영 미치겠군!”
“내일은 아주 대단할 거야!”
“그래야지! 반드시 그래야지!”
무인들은 이내 술잔을 들고 서로 건배를 외쳤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백서린이 궁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들이 말하는 경기라는 게 무엇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혈림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들어 온 왕무적이다. 그리고 이후로도 항상 함께 움직였으니 백서린이 모르면 그 또한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아… 궁금하네.”
백서린은 얼굴을 가볍게 찡그리며 중얼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왕 소협! 제가 알아보고 올게요!”
“백 소저, 제가…….”
왕무적 또한 궁금하긴 마찬가지였기에 백서린이 한마디만 했다면, 아니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어도 알아서 그가 무인들에게 물어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백서린은 무인들에게로 다가간 상태였다.
무인들은 자신들의 대화에 난데없는 사람이 끼어들자 처음에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백서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주절주절 그녀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마친 후에야 백서린은 왕무적에게 돌아왔고, 무인들은 아쉽다는 눈길로 그녀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백서린은 자리에 앉으며 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저들이 말한 경기라는 건 생사박(生死搏)이란 경기예요.”
“생사박?”
왕무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백서린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생사박이라는 건 일종의 생사비무예요.”
“생사비무라고 하셨습니까?”
“예. 왕 소협도 아실 거예요, 생사비무가 무엇인지는.”
“예.”
당연하다는 듯 왕무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서린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 무인의 생사를 걸고 이뤄지는 비무라는 건 다르지 않지만.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생사박은 단순히 두 무인만의 생사비무가 아니라 그 비무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기를, 하는 일종의 내기도박이죠. 각 지방의 모든 혈림엔 한 군데씩 반드시 생사박의 경기가 치러지는 경기장이 존재하고요.”
백서린의 설명에 왕무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도대체 생사박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단순히 자신의 무공을 높이거나 경험을 쌓고 싶다면 그냥 비무를 하면 되는 거지, 어째서…….”
왕무적의 그런 생각에 백서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그녀 역시도 무인들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기 때문에 대답해줄 수 있었다.
“왕 소협, 이곳이 혈림이라는 건 잊지 않으셨죠?”
“물론입니다!”
곧바로 대답하는 왕무적을 보며 백서린이 웃었다.
“생사박이 처음 생겨난 이유는 생사박을 치르는 무인들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혈림의 무인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혈청에 은자 한 냥을 주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렇다 할 일거리는 없고, 굳이 일을 하기 위해 먼 곳까지 가기는 싫고. 그런 무인들이 결국 자신의 무공을 파는 비무를 펼침으로써 얼마간의 수입을 얻게 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하네요.”
백서린의 설명에도 왕무적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비무를 펼칠 이유는 없는 것 아닙니까? 굳이 목숨까지 걸고 생사박이라는 경기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 백서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왕 소협과 같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여긴 혈림이에요. 어차피 어떤 일을 하든지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야 하죠. 만약 생사박이 단순한 비무로만 끝난다면, 지금처럼 오랫동안 생사박이 이어져 오진 않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왕무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기를 하는 이들이나 돈을 내고 구경을 하는 이들이 원하는 건 정말로 목숨을 걸고 긴장감 있게 싸우는 것이지, 대충대충 싸우다 마는 그저 그런 비무가 아니에요.”
“아…….”
그제야 왕무적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하하! 나는 말일세! 이번에 그에게 은자 다섯 냥을 걸었네!”
“다섯 냥? 자네는 너무 배포가 없어! 나는 말일세, 이번에 그에게 은자 스물다섯 냥을 걸었다네!”
“헉! 자네, 그렇게나 많이 걸었나?”
“이 정도는 걸어야지! 하하하!”
무인들의 모습을 보는 왕무적의 얼굴은 결코 좋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저들은 내일 있을 사람들의 목숨보다도 자신이 건 돈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
백서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한낱 돈에 팔 수 있단 말입니까?”
“…….”
백서린은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왕무적의 중얼거림은 계속 이어졌다.
“자신의 목숨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런 귀한 것을 고작 은자에… 고작 돈에 팔아넘긴다니,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왕 소협…….”
백서린을 바라보며 왕무적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야말로 돈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백서린이 왕무적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왕 소협! 빨리 와요!”
“백 소저, 저는 가고 싶지가…….”
왕무적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얼굴로 말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백서린이 그의 팔을 잡아끌고 있었다.
“왕 소협!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왕 소협이 외면한다고 해서 생사박 경기가 사라지진 않잖아요? 우리는 돈을 걸지 않고 그냥 어떤 식으로 생사박이 이뤄지는지 구경만 하면 돼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경기에 열광을 하는지 직접 확인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왕 소협,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할 순 없잖아요? 때로는 보기 싫어도 봐야 하고, 먹기 싫어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백서린은 끈질기게 왕무적을 설득했다.
‘내가 싫어한다고 바뀌는 건 없지. 차라리 얼마나 대단하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좋아하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왕무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헤헤! 가죠!”
백서린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녀의 손엔 아직까지도 왕무적의 팔이 잡혀 있었다.
“백 소저, 손 좀…….”
“와아~ 정말로 사람들이 많네요!”
“백 소저…….”
생사박이 펼쳐지는 곳은 혈곽 북쪽의 가장 외곽의 커다란 장원이었다. 이 장원은 왕무적과 백서린도 한 번 지나쳤던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저 돈 많은 어느 부자의 장원이구나 생각만 했었지, 설마하니 생사박과 같은 경기가 펼쳐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장원의 내부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장원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장원 중앙에 자리를 잡은 사각형 모양의 널따란 비무대다.
비무대는 맨바닥보다 3척(3尺=약 1m)정도 높았고, 바닥은 대리석이며 비무대의 동쪽과 서쪽엔 각종 병기가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중앙 비무대와는 6척 정도 거리를 두고 보통 성인의 허리 정도까지 오는 길이로 사방으로 벽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구경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벽이었다.
그리고 비무대에서 북쪽 방향으론 단층으로 이뤄진 작은 전각이 양쪽으로 세워져 있었고, 중앙엔 일반 구경꾼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위치에서 생사박을 구경할 수 있는 높다란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군요!”
백서린은 구경꾼들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을 빽빽하게 메운 사람들의 모습에 대단하다는 듯 감탄을 터트렸다. 설마 이 넓은 장원이 사람들로 가득 차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구경꾼들의 모습에 왕무적은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생사박이 아니라 그저 가벼운 비무였다면, 백서린과 다를 바 없이 감탄을 터트리고 사람 구경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구경을 하기 위해서 은자를 반 냥이나 내야 했으니… 에에? 여기 모인 사람들을 모두 계산하면 도대체 은자가 몇 냥이나 되는 거람!”
적게 잡아도 장원에 들어선 무인들의 수는 1백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즉, 아무리 적게 잡아도 경기 관람료로만 벌써 은자 50냥의 이익을 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