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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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68화
신룡전설 3권 - 18화
“도대체 무슨 소란들…….”
서걱!
곰의 가죽을 제법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거한의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오다가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날아든 한 자루의 검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헉!”
“모, 목천왕(木天王)이……!!”
“목천왕이 죽었다!!”
목천왕을 죽인 검은 잠시간 그의 시체 위에서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가 이내 살아 있는 생물인 양 왕무적의 앞으로 돌아와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왕정이 우두머리들만 처치하면 굳이 큰 싸움 없이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
그제야 백서린은 어째서 왕무적이 태평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그녀 자신도 굳이 처음부터 크게 걱정할 필요 없었다. 백운산채의 우두머리들은 쉽게 죽일 수 없을지 몰라도 일반 산적들은 독을 풀어버리면 큰 싸움 없이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풍천왕! 목천왕!!”
머리에 사슴의 뿔로 추측되는 걸 붙인 작은 체구의 남자가 풍천왕과 목천왕의 시체를 보고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왕 소협!”
백서린의 말에 왕무적은 가볍게 손을 뻗었고, 곧바로 그의 앞에 둥실둥실 떠 있던 검이 한 줄기의 섬광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슈아아아앙-!
푸욱-!
“크악!”
단숨에 가슴을 뚫고 등 뒤로 나온 왕무적의 검.
“으아아악!”
“수천왕(水天王)까지 죽었다!”
“어, 엄청난 고수다!!”
“도, 도망가…….”
퍼억!!
도망을 가자고 했던 산적의 머리가 처참하게 터졌다.
“도망가는 놈들은 내 손에 죽는다!!”
비대한 몸집의 남자가 핏물이 잔뜩 묻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남자의 양쪽 팔뚝과 허리, 양쪽 종아리에는 이름 모를 짐승의 가죽이 칭칭 동여매져 있었다.
“화, 화천왕(火天王)님!”
“놈이 갑자기 모두를…….”
“조, 조심!!”
“또 검이 난다!”
슈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왕무적의 검이 화천왕을 노리고 날아갔다.
“어딜!!”
“으아악!”
화천왕은 소리를 내지르며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 있던 산적을 내던졌다.
화천왕은 이미 멀리서 목천왕과 수천왕이 죽는 장면을 똑똑히 봤다.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 모르는 공격을 대비해 왕무적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푸욱!
“크아아아아-!!”
왕무적의 검은 산적의 몸을 꿰뚫고 여전히 화천왕을 향해서 날아갔다. 그러나 그는 이미 몸을 뒤로 내빼며 또 한 명의 산적을 내던진 후였다.
푹!
“으아아……!!”
이번에도 왕무적의 검은 산적의 몸을 뚫었고, 또다시 화천왕은 산적을 내던졌다. 그렇게 두 차례 더 반복되자 산적들은 기겁을 하며 화천왕의 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
화천왕은 더 이상 집어 던질 산적이 없자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렸다.
“흥! 겨우 이따위 비검술(飛劒術)에 내가 당할 것 같으냐!!”
소리를 내지르며 화천왕은 양손 가득 내공을 응집시켜 검을 후려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푸- 욱!
“크헉!”
왕무적의 검은 화천왕의 내공이 잔뜩 응집된 양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그의 목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아… 으… 어……!”
입에서 피를 부글부글 뿜어내던 화천왕의 비대한 신형이 ‘쿵!’ 소리와 함께 앞으로 꼬꾸라졌다.
어느새 왕무적의 검은 그의 앞에 둥실둥실 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사, 사천왕(四天王)이 모두 죽었다!”
“으으으…….”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로 인해 산적들은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하늘과도 같았던 존재인 사천왕들이, 하나도 아니고 넷 모두가 이렇다 할 활약도 해보지 못하고 하나같이 시체가 되어버린 상황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진중한 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호랑이 가죽을 고스란히 몸에 걸치고 한 손에 자신의 머리통만 한 도끼를 든 50대 중반의 남자와 금빛 장포에 붉은 검을 지닌 남자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채주님과 호법님이다!”
“채주님과 호법님이 함께 오셨다!”
“와아아아-!!”
산적들은 하나같이 채주와 호법의 등장에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채주라면! 백운산채의 채주 광부 동방척과 호법인 금마혈검 철목진이라면! 왕무적을 어떻게든 상대를 해주리라고 산적들은 굳게 믿었다.
제아무리 사천왕들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채주 동방척 앞에서는 쥐새끼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호법 금마혈검 철목진은 채주의 절친한 지기로서, 무당파 제자 다섯을 무참하게 살인할 정도로 대단한 무공을 지닌 무인이었다.
무당파가 어딘가!
오검파의 기둥으로 무림에 있어서는 감히 그 어느 곳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막강한 문파이다. 그런 무당파 제자를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나 무참하게 살해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금마혈검 철목진이다.
백운산채의 일부 산적들은 동방척보다도 철목진을 더욱 경외시하고 있기도 했다.
“왕 소협!”
백서린은 이번에도 왕무적이 곧바로 신기에 가까운 비검술로 동방척과 철목진을 어렵지 않게 죽이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에? 왕 소협?”
“…….”
왕무적은 동방척과 철목진을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느새 물길처럼 좌우로 갈라진 산적들 사이를 걸어 일정한 거지를 유지하고 선 동방척과 철목진.
“네놈은 누구냐?”
아까와 같은 음성.
동방척의 물음에 왕무적은 언제나처럼 간단하게 대답했다.
“왕무적.”
“왕무적?”
왕무적의 대답에 동방척보다도 철목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나?”
동방척의 물음에 철목진이 왕무적에게서 시선을 떼어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자네도 들어봤을 걸세. 신도황 왕무적이란 이름.”
“아! 신도황 왕무적. 그럼 이자가 신도황 왕무적이란 말인가?”
철목진이 고개를 저었다.
“신도황 왕무적은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도법을 익힌 무인이네. 더군다나 그가 지닌 도는 천하이십육병 중의 하나인 묵룡도지. 한데, 저자는 검을 지니고 있으며, 도황 구양무휘의 오도무적도가 아닌 비검술을 펼쳤으니 아마도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듯싶군.”
“왕무적이란 이름이 또 있을 줄이야.”
동방척은 재미있다는 듯 슬쩍 웃음을 흘렸다.
‘히~ 완벽하구나!’
단순한 겉모습이 아닌 펼친 무공만으로 왕무적이 신도황 왕무적과 아니라고 판단을 내리는 철목진의 모습에 백서린은 남몰래 웃었다.
동방척은 왕무적을 향해서 다시 물었다.
“본채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런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사천왕이 모두 죽었는데 그것을 단순히 소란으로 일축시키는 동방척. 그의 모습에서 백운산채에 있어서 사천왕은 그리 대단한 인물들이 아니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원한은 없어. 백운산채에 잡혀 있는 임남제라는 소년을 데려가기 위해서 왔다가 그들이 날 막았기 때문에 죽였을 뿐이지.”
왕무적의 대답에 동방척이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고작 그런 일로 사천왕을 죽였단 말이냐?”
“그래!”
동방척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왕무적을 바라보다가 특별히 누굴 지칭하지도 않은 채 외쳤다.
“가서 임남제라는 아이를 데려와라!”
“예!”
누군가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산채에 왔으면 마땅히 그 규칙을 따라야 하는 법! 임남제를 데려가길 원한다면 마땅히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은자…….”
“은자 한 냥도 줄 수 없어.”
“…….”
왕무적의 말에 동방척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제법 그럴듯한 살기도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담한 놈이로군. 네놈의 눈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거냐?”
동방척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산적들을 가리키며 물었지만, 왕무적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에게 덤비지만 않으면 난 싸우지 않아.”
왕무적의 말에 산적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들었어?”
“들었지! 덤비지만 않으면 싸우지 않겠다는데?”
“그게 정말일까?”
“아무렴 어때! 어차피 인원이 너무 많아서 덤벼드는 놈들만 상대하기에도 벅찰 테니, 굳이 먼저 달려들지 않으면 죽을 일은 거의 없을 거야.”
“그렇겠지?”
“그럼!”
산적들의 음성에 동방척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고, 철목진은 제법이라는 듯 감탄한 얼굴로 왕무적을 바라봤다.
“이후로 떠드는 놈들은 대갈통을 부숴놓겠다!”
동방척의 외침에 웅성거리던 산적들이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입을 꾹! 다물었다.
“채주님! 데려왔습니다!”
산적들 사이를 헤치며 한 사내가 13살의 임남제라는 소년을 데리고 나타났다.
“왕 소협, 그림이랑 똑같아요.”
“그렇군요.”
산적이 데리고 온 임남제라는 소년은 앞서서 임무를 맡기 전에 보았던 그림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동방척은 백서린과 왕무적의 얼굴 표정에 가볍게 코웃음을 한차례 치고는 임남제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아아악!”
그렇지 않아도 공포감에 온몸을 벌벌 떨던 임남제는 동방척의 억센 손이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쥐자 비명을 내지르며, 곧바로 오줌을 지려버리고 말았다.
“뭐 하는 짓이죠! 당장 놓아요!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목이 떨어질…….”
“내 목이 먼저 떨어질지, 이놈의 목이 먼저 부러질지 궁금하군.”
동방척은 백서린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꾸했다. 오히려 해볼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보라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동방척이 이처럼 대범하게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무공을 믿고, 자신의 손에 인질이 잡혀 있는 것도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진정으로 그가 믿고 있는 것은 곁에 서 있는 철목진 때문이었다.
동방척에게 있어서 철목진은 언제든 자신의 등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는 존재이다.
[백 소저, 독을 사용하세요.]
왕무적의 전음에 백서린은 곤란하다는 듯 답했다.
[그렇게 되면 소년까지도 중독될 위험이 있어요.]
[해약이 없습니까?]
[해약은 있지만, 저 두 사람을 한꺼번에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의 독을 사용하게 된다면, 소년에게 해약을 사용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두 사람의 전음에 동방척이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전음까지 나누는 걸 보니 꽤 여유로운 모양이군.”
“아아아아……!”
비명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임남제의 모습에, 백서린은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백 소저, 절대 당황하지 마십시오.]
[에? 그게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질…….”
동방척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을 하는 도중, 왕무적의 앞에 둥실둥실 떠 있던 검이 제자리에서 빠르게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