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65화
무료소설 신룡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65화
신룡전설 3권 - 15화
1층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수십 명의 무인들은 2층으로 오르는 왕무적 일행을 한차례 힐끔 바라보고는 더 이상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들이었기에 남에게 신경을 쓸 여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2층은 1층과는 다르게 제법 한산했다.
왕정은 한 창구로 다가갔다.
“어서 오시오.”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하품을 하며 왕정과 왕무적, 백서린을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허가증이 필요해서 온 거요?”
“그렇소.”
왕정이 대답하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두툼한 장부를 펼쳤다.
“출생지와 이름, 나이를 말하시오.”
“출생지는 광서성(廣西省) 빙상(憑祥) 양문현(陽雯縣). 이름은 왕정. 나이는 스물여덟이오.”
“광서성 빙상이라… 꽤나 멀군.”
사내는 휘갈기듯 장부에 기록했고, 곧바로 왕무적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광서성 빙상 양문현. 이름은 왕무적. 나이는 스물넷이오.”
“두 사람이 형제요?”
사내가 제법 날카로운 눈초리로 왕정과 왕무적을 번갈아봤다.
“사촌이오.”
왕정의 대답에 사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라고 하기엔 두 사람의 생김새가 달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굳이 그런 것을 자신이 신경 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쪽 소저도 말을 하시오.”
사내의 말에 백서린이 대답했다.
“호남성 천자산(天子山) 출생이고, 이름은 백서린. 나이는 열여덟이에요.”
“호남성 천자산?”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죠?”
“호남성 천자산이라… 거기 무슨 문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사내의 말에 백서린은 살짝 놀란 얼굴을 내비쳤지만, 굳이 자신이 선약문 출신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백서린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사내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이내 탁자 서랍에서 세 개의 패(牌)를 내밀었다.
“닷새 후에 다시 오도록 하시오. 그 기간 동안은 이 패를 꼭 지니고 있도록 하시오. 패는 항상 보이는 곳에 지니도록 하시오. 없으면 언제 뒤통수에 칼 맞아 죽을지 모르니 알아서들 각별히 조심하시오.”
“……?”
사내의 말에 왕무적과 백서린은 의문스런 얼굴로 왕정을 바라봤다. 그의 말과 사내의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시선에 왕정은 말없이 사내가 내민 3개의 패를 모두 받아 들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등을 돌려 2층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북적거리는 1층.
왕무적과 백서린은 묵묵히 왕정의 뒤를 따라 혈청을 나왔다.
“궁금한 점은 조금 후에 풀어드리겠소. 우선은 머물 곳을 찾도록 합시다.”
왕정은 그렇게 먼저 말을 하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용혈객잔(龍血客棧)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객잔은 제법 북적거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리춤에 혈청의 사내가 나누어 주었던 패를 걸고 있었다.
“만두와 소면 세 그릇, 그리고 죽엽청 한 병에 구운 오리 한 마리.”
“예!”
왕정은 간단하게 주문하곤 왕무적과 백서린을 바라봤다.
“혈림에선 오로지 허가증을 지닌 이들에 대한 안전과 그들의 분쟁만을 관여하고 있소. 다시 말하면, 허가증이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 혈림은 그야말로 무법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죽임을 당해도 하소연을 할 곳도, 대신 복수를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오.”
“그럼?”
백서린이 패를 가리키자 왕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이 패를 지니고 있으면 안전하오. 임시 기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패를 지니고 있는 순간만큼에 있어서는 허가증을 지닌 무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소.”
왕무적이 물었다.
“그럼 닷새라는 시간은 무엇이오?”
“그건 혈청에서 우리의 신분을 확인하는 시간이오.”
“세상에! 그렇게나 빨리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요?”
“물론이오.”
왕정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고, 왕무적과 백서린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만약 신분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어떻게 되는 거죠?”
“허가증을 받지 못할 뿐이오.”
“그것뿐이오?”
“그것뿐이오. 혈림에서는 혈청에서 내어주는 허가증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소. 그러니 죽기 싫거든 두말하지 말고 떠나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는 것이오.”
“그렇군요.”
백서린은 그제야 혈림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또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혈림엔 주인이 없다고 했는데, 혈청은 누가 관리를 하는 거죠?”
“혈청의 관리는 혈청에서 허가증을 내어준 현 혈림의 구성원들이 하고 있소.”
“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백서린의 표정에 왕정이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사내도, 우리의 신분을 조사하는 이들도, 우리에게 허가증을 발부하는 이들도. 모두 혈청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것뿐이오. 따지고 보면 혈청의 주인은 혈림의 모든 무인들이기도 하고, 주인이 없기도 하단 소리요. 각 지방의 혈림들은 모두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우두머리가 될 수 없소.”
“지휘체계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소.”
“그럴 수가… 그런데 어떻게 혈청이 운영되고 있죠?”
“혈림이기 때문이오.”
“예?”
왕정의 말에 백서린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왕정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상점이라고 하더라도 지휘체계가 잡혀 있지 않으면 운영을 할 수가 없다. 하물며 혈림 전체를 통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혈청에 지휘체계가 없다니?
“말 그대로 혈림이기 때문이오. 애초부터 혈림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생겨났소. 그리고 혈림을 구성하는 이들은 서로의 의견을 모아 하나하나 그 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소. 혈청 역시도 마찬가지요.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가 혈점에서 일을 구하는 이들처럼 혈청의 일을 맡은 것뿐이오.”
“그렇다면 혈청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죠?”
“혈청에 허가증을 얻은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혈청에 은자 한 냥을 세금으로 내놓아야 하오. 물론 맡은 일에 따라서 오랜 기간이 걸릴 수도 있기에 최대 여섯 달까지는 세금을 미룰 수 있소. 하지만 여섯 달이 지날 동안 세금을 내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허가증은 압수되며, 그는 그 순간부로 더 이상 혈림에선 어떠한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오.”
왕정의 설명에 백서린과 왕무적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남아 있었지만, 점소이가 음식을 내오는 바람에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혈림은 중원 무림에 있어서 가장 신비로운 곳이며, 아주 오래전부터 어떠한 지휘체계도 없이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있는 곳이라는 것만 알아두시오.”
왕정은 그 말을 끝으로 젓가락을 들어 소면을 먹기 시작했다.
왕무적과 백서린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젓가락을 들었다.
누구나 같다. 처음 혈림에 들어서면 누구나 혈림에 대해 의문을 잔뜩 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런 의문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그게 바로 혈림이라는 곳이다.
第十章.혈림에서의 첫 일(事) (1)
“으아아아아아--!!”
포양호를 바라보며 한 사내가 미친 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다소 지저분한 백의 무복에 허리에 걸려 있는 한 자루의 송문고검. 그리고 무복 등 쪽에 새겨져 있는 특유의 태극 문양!
전신에서 강렬한 살기를 발산하는 사내는 복건성 하문에서부터 왕무적의 자취를 쫓은 고군학이었다.
왕무적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동생은 폐인이 되어버렸다. 복수를 하기 위해 왕무적을 쫓았지만 번번이 늦고 말았다. 그리고 이곳 포양호에서 그의 자취가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어디로 간 것이냐! 도대체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어디에서도 왕무적의 자취는 찾을 수가 없었다.
고군학은 막막함보다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어찌 다스릴 수가 없었다. 번번이 늦어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한 가닥 기대마저도 사라진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포양호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뿐이었다.
“사형!”
고군학과 다르지 않은 차림의 사내 3명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사부님께서 찾아요. 무당으로…….”
사제, 이심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군학은 차갑게 대답했다.
“돌아가지 않는다.”
“사, 사형…….”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
살기마저 뿜어내는 모습에, 이심방과 무당 제자들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웃는 얼굴에 여유로움을 품고 있던 고군학이었다. 아무리 힘든 수련이 있더라도 웃었으며, 자신의 사제들을 돌보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사, 사형…….”
“미안하다.”
고군학은 놀란 이심방의 얼굴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아무리 힘들어도 사제들에게는 보여지 말아야 할 모습이었다.
‘놈… 그놈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놈 때문이야!’
고군학은 모든 탓을 왕무적에게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