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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마교대장 3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3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3화

#3화

 

 

 

 

 

‘젠장….’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왜 하필이면 곤궁한 사냥꾼의 몸에 빙의된 걸까.

 

지금 내 수중엔 한 푼의 돈도 없었다.

 

더욱이 사냥꾼 진소천은 죽은 아내의 약값과 진료비를 마련키 위해 전 재산이던 초옥과 작은 전답마저 팔아치운 터라, 돈 없는 떠돌이 신세였다.

 

“어르신….”

 

“참고로 외상 사절일세.”

 

“그게… 염치없지만,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하나, 딸아이만 치료해주신다면… 후일, 어떻게든 돈을 갚겠습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네?”

 

“내 진료비가 얼마인 줄 아나? 내게 하루 진료를 받으려면 족히 금원보 하나는 내놓아야 한단 말이네. 한데, 사냥꾼 생활을 하면서 대체 언제 갚겠다는 건가? 어이가 없군.”

 

나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금원보 하나는 도시에 마당 딸린 기와집 한 채를 장만하고 남을 돈이었다.

 

한데, 하루 진료비로 금원보 하나라니!

 

“그건 좀….”

 

“물론, 자네더러 금원보를 내놓으란 말은 아닐세. 다만, 자네와 아이에게 들어간 약값이 만만찮으니 그 값을 내란 걸세.”

 

“말미를 주시면 품을 팔아서라도 값을 치르지요.”

 

“돈은 됐네.”

 

“네?”

 

“한 푼도 없는 거지 신세라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

 

“한데 무슨 수로 구지신엽초 값을 내겠단 건가?”

 

“…….”

 

“당분간 내 산장에서 머슴살이하게. 세경은 세끼 밥 주고 자네 부상을 마저 치료해주는 것으로 치름세.”

 

 

 

 

 

* * *

 

 

 

 

 

‘참 이상한 놈이야. 한낱 늑대에게 당할 정도면 무공을 익힌 건 아닌데…. 어찌 그런 중상을 입고도 하루 만에 저리 멀쩡히 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

 

노인은 진소천의 가공할 만한 회복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의 의술이 당대에 손꼽히는 수준임을 10년 전부터 확신하던 터.

 

한데, 특별할 것 없는 일개 사냥꾼 진소천이 하루 만에 심각한 교상에서 회복해나가는 걸 보니, 반백 년간 쌓아 올린 의학적 신념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노인이 본 진소천의 끈기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되는 몸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적당히 장작을 패오라고 지시를 했더니.

 

쾅… 쾅!

 

와지끈-!

 

진소천은 예상을 뒤집어버리고 말았다.

 

쾅… 쾅!

 

와지끈-!

 

천근 같은 몸을 이끌고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잘도 장작을 패 나갔던 것이다.

 

쾅… 쾅!

 

와지끈-!

 

‘저 녀석은 보통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놈이야. 아무래도 지켜보면서 저 괴이한 신체를 탐구해야겠군.’

 

무심한 눈으로 연신, 도끼질해 나가는 진소천을 보며 노인은 혀를 내둘렀다.

 

살면서 많은 인간의 몸을 다뤄왔다.

 

평범한 사람, 무공을 익힌 자, 방문좌도의 술법으로 몸을 강시처럼 만든 자까지.

 

숱한 임상을 거쳐 오늘날 신의(神醫)가 된 노인이지만 여태껏 진소천 같은 체질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저 녀석은 필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을 터. 한데 신음 한 번 내지르지 않고, 도끼질을 하다니… 신체도 신체지만, 저 정신력은 실로 경악스럽군.’

 

노인은 진소천의 강인한 집념에 경동했다.

 

‘나도 웬만큼 세상사 진리에 통달했다고 자부했건만….’

 

“후훗.”

 

진소천을 보고 있자니 어째, 쓴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어르신, 장작은 다 팼습니다. 이제 뭘 하면 되나요?”

 

“그거 아는가?”

 

“네?”

 

“자네 지금… 옆구리에서 피 나고 있네.”

 

“아… 어째 축축하더니… 땀인 줄 알았습니다.”

 

“클클.”

 

“……?”

 

“환부를 소독하고 다시 봉합해야 하니 안으로 들어가세.”

 

 

 

 

 

* * *

 

 

 

 

 

이튿날.

 

나는 눈 뜨기 무섭게 소윤의 상태를 확인하러 나섰다.

 

소윤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귓가로 들려오는 소윤의 호흡이 어제보다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에, 나는 한시름 덜고 노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홀로 한적한 죽림(竹林)을 찾았다.

 

휘이이이잉-!

 

종남산(終南山)의 눈보라는 참으로 매서웠다.

 

몸이 회복되지 않은 터라, 더 그리 느낀 거겠지만 문득, 이 강추위에 딸을 업고 사냥에 나서야 했던 진소천의 삶이 전생(前生)에 살수였던 내 삶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비참하단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나 나나… 팔자 기구한 건 진배없네.’

 

하나 이내 그런 상념은 깨끗이 비웠다.

 

적어도 지금은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음에.

 

철썩-.

 

나는 서릿발 몰아치는 소리만이 고적하게 퍼지는 죽림 한복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호옵….”

 

그러고는 자연결의 묘리에 따라 호흡을 토납하자 일순, 중단전으로부터 불특정 속성의 힘이 서서히 파생되었다.

 

“흐읍….”

 

그 미약한 힘의 꼬리를 끈질기게 붙잡고, 따르고, 물고 늘어지려 했다.

 

본래 인간은 누구나 대자연의 다섯 가지 속성 중 한 가지 성질을 타고 난다.

 

자연결은 그러한 인간 본성을 다듬고 가공하여 ‘내력’으로 치환하는 일종의 ‘내공 대체법’인데 이 몸은 풍(風)-뢰(雷)-수(水)-화(火)-역(力) 중, 역(力)의 속성을 타고난 신체였다.

 

‘역이라….’

 

다소 의외였다.

 

대개 역(力) 속성은 장사형 신체를 가진 자에게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몸은 전혀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잘된 일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그랬다.

 

역(力) 속성은 다른 속성에 비해 체득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그 때문에 이 몸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않은 재목이라도, 수련법에 따라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의 나는.

 

무엇보다 빠른 힘의 축적이 필요했다.

 

솔직히 향후, 마교에 복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아니.

 

한 줌 내력도 없는 몸으로 십만 교도가 몸담는 마교에 복수한다는 건, 허무맹랑한 망상이겠지.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다.

 

물론, 내가 단기간에 전생(前生)의 힘을 되찾고 천운이 따라 갖은 기연을 흡수한다면.

 

더불어 수많은 조력자를 필두로, 거대 세력을 구축할 수 있다면.

 

복수는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 그런 일은 결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룰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끝이 보이는 싸움에 몸을 던질 것이다.

 

언젠간 반드시 마교란 지옥으로 돌아가… 주군이었던 사내의 숨통을 내 손으로 끊어 주리라.

 

“호오오오옵…!”

 

역(力) 속성의 원기가 중단전에서 점점 하단전으로.

 

다시 하단전에서 상단전을 관통하며 끝내는 전신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느껴지던 지독한 근육통과 골절의 격통이 서서히 완화돼 갔다.

 

‘역시 역 속성은 회복에 탁월하네. 이대로 집중 호흡 태세를 유지하면… 금세, 부상을 털겠어.’

 

휘이이잉-!

 

다시 한번 찬 바람이 머릿결을 스쳐 간다.

 

하나 역(力) 속성의 기운이 신체 세맥을 훑어가자, 살을 에는 추위조차 봄날의 훈풍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

 

새삼, 내가 전생자가 된 것에 대하여.

 

많은 단상이 의식의 허공을 휘휘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나 잡념에 골을 싸매거나 번민하진 않았다.

 

어차피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마교에 납치되어 3000:1의 경쟁을 뚫고 특급 살수가 되었으며 종국엔 고금제일살수란 칭호를 획책한 사내다.

 

존재 자체가 기적이며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발자취가 곧 신화인바.

 

구태여, 내겐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 * *

 

 

 

 

 

“……!”

 

“아침 댓바람부터 바람 쐬고 오겠다던 작자가 해 질 녘에 돌아왔군. 정신이 있는 겐가?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이제 머슴이라고. 한데…”

 

“쉿.”

 

나는 대뜸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며 노인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 이유는,

 

“헤에… 아빠!”

 

아침까지만 해도 눈을 뜨지 못했던 소윤이 의식을 찾고 방긋방긋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

 

놀랍게도 이 순간.

 

괴로움에 휩싸였다.

 

본능은 당장 아이를 번쩍 안아주라고 연신 명령하고 있는데, 정신은 그를 강력하게 거부했던 까닭이다.

 

‘하….’

 

그건 정말이지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쉽게 말해, 본능과 이성이 찰나 동안 수천 번 충돌하는 기분이랄까?

 

그래.

 

나도 아이가 귀여웠다.

 

나도 저 조그마한 진소윤이라는 아이가 앙증맞게 느껴졌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진소윤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하나 그것은 보편적 감상의 영역일 뿐.

 

예쁘고 귀여운 것을 본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예컨대, 화사한 꽃을 본다고 누구나 꽃을 꺾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미치겠네, 진짜.’

 

살수가 된 후, 이토록 난감했던 적은 손에 꼽을 것이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잠시간 쭈뼛거리며 멍하니 진소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헤에? 아빠!”

 

진소윤이 아장아장 발걸음을 내디디며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하나 그도 잠시뿐.

 

찰팍-.

 

진소윤이 내 다리를 감싸 안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지춤을 꼬옥 움켜잡자,

 

‘…….’

 

몸의 본능이 태풍 같은 감정의 파문을 마음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안나! 안나! 아빠, 안나!”

 

“소윤… 아.”

 

“안나! 빤니, 빤니. 아빠, 안나!”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몸이 진소윤의 뭉개지는 발음을 기억하고 있다.

 

진소윤은 지금 빨리 안아달란 소릴 하는 것이다.

 

“자네 뭐하나?”

 

그때, 노인장이 다시금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가만 보니, 자네 모자란 사람 같군. 대체 저 귀여운 것이 안아달라 보채는데 뭘 멍청하게 서 있는 게야?”

 

“아….”

 

“아아! 그놈의 아! 소리 좀 안 할 수 없나?”

 

“…네.”

 

“당장 안아주게. 예상보다 이틀이나 일찍 의식을 찾아 준 고마운 아일세.”

 

나는 하는 수없이 진소윤을 응시하다가 번쩍 안아 들었다.

 

“히히히! 아빠, 갠차나?”

 

“응?”

 

“아빠! 갠차나?”

 

“아… 괜찮아.”

 

몸의 기억에 따르면 진소윤은 갓 세 돌이 지났다.

 

보통 세 살배기는 이처럼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

 

아무래도 이 아이는 상당히 영특한… 천재인 모양이다.

 

“아빠 갠차나! 유니도 갠차나!”

 

진소윤이 배시시 웃으며 품을 파고들었다.

 

일순, 나는 생전 느끼지 못한 이질적인 감정에 매몰되고 말았다.

 

“…….”

 

그래.

 

나도 이만할 때가 있었다.

 

부모를 여의기 전 나도 엄마 아빠의 품을 파고들며 애교를 떨었었지.

 

그제야 나는 낯선 감정의 정체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이 아이에게서 나를 본 거구나….’

 

그렇다.

 

순간 진소윤에게 전생의 진소천을 투영했었나보다.

 

“아빠아?”

 

“응?”

 

“아빠아? 헤헤.”

 

진소윤은 연신 내 얼굴을 보며 웃기만 했다.

 

아직 세상 모르는 어린 나이지만, 죽어가던 내 모습과 죽어가던 자신의 상황을 기억하는 듯했고, 아빠와 자신이 다시 살아났음을, 혹독한 추위와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먼발치 떨어지게 되었음을 아는 게 분명하다.

 

“소윤아….”

 

어찌 되었든 간에.

 

“이젠….”

 

나는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두 번 다신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게.”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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