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24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24화
#24화
며칠 후….
소담골과 더불어, 장안 전체가 새로운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그 새로운 소식이란,
- 청방이 무너졌다.
- 장안에 새로운 문파가 창설되었다.
이 두 가지 쟁점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소문의 중심엔 나, 소윤 애비와 소담골 꼴통 3인방 동동이 형제가 있었다.
음….
전생한 후, 죽을 고비 넘기고 이시진 선생의 산장에서 정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직 한 해도 안 지났건만 많은 일이 있었다.
난생처음 시장 바닥에 좌판 깔고 영약 팔았던 일, 흑사회 암살자들로부터 석연우를 구해준 일, 생애 첫 내 집을 마련한 일, 동동이 형제를 동생으로 거둔 일, 그들과 함께 산적, 마적, 강도 털어먹고 얼떨결에 지부대인까지 만나 독대했던 일, 오늘날 청방을 괴멸시키고 소천문을 만들게 된 일까지.
그러고 보니 나도 대단한 인간이다.
평생 사람 모가지 따는 일 외엔 다른 건 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일 년도 안 되는 시간에 이 많은 일을 해냈을까?
하나 나는 금세 의문을 해소했다.
“아빠야!”
그래.
내겐 소윤이가 있었다.
이제 내게 소윤이는 ‘사명감’이고 나는 전생부터 ‘살수’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사명감’ 하나로 모든 임무를 수행한 책임감의 소유자, 신뢰할 수 있는 사내, 언제든 제 역할을 해내는 진짜배기 남자기 때문이다.
“응, 소윤아.”
“예린 언니가 밥 먹으래. 언능 드루와.”
“응. 소윤아.”
마당에서 멍하니 하늘 보며 이런저런 단상을 떠올리던 나는 소윤의 부름 앞에 부리나케 집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글 선생한테 할 말이 있소. 예린이한테도.”
식사가 끝날 즈음 나는 소윤이, 글 선생, 예린을 아울러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글 선생이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소윤 아버님.”
“선생. 강권하는 건 아니고…. 앞으로 소윤이 외에 다른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았으면 하는데. 말인즉슨, 우리 집에서 소윤이만 봐줬으면 한다는 거요. 그렇다고 종일 공부만 시키란 건 아니고. 그저 공부시키다가 쉬다가,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괜찮으면 서재 하나 만들어 줄 테니 여기서 묵어도 좋고.”
“아, 아버님….”
“물론 알고 있소. 선생도 학문깨나 익힌 분인데 소윤이 하나 가르치는 건 타산이 안 맞지. 그래서 선생이 소윤이만 전담해 책임진다면 지금 받는 월봉의 5배 약속하겠소.”
“다, 다섯 배 말입니까?”
“그렇소. 듣자 하니, 형제들은 잘나가는 상단 관리자고, 친척 중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 오른 사람도 있다던데. 선생은 소천문의 소공녀를 전담하는 학문 선생이 되는 거요.”
“아…. 갑작스러운 권유시라.”
“사실 이런 말 하는 게 부끄럽긴 한데. 소천문이 막 걸음마 뗀 문파긴 하나, 전도는 유망하오. 제안을 수락하면 1년 후, 선생은 집안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 될 거요.”
솔직히 내가 말하고도 민망했다.
고작 넷이서 왈패 조직 하나 박살 내고 만든 문파가 소천문이니.
뭐 요즘 장안에서 화제긴 하지만 근본으로 따지면 소형 방파나 동네 무관보다 급 떨어지는 게 소천문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글 선생을 소윤이 전담으로 잡아두려는 덴 이유가 있다.
일단 글 선생은 소윤이와 쿵짝이 잘 맞고 인성도 훌륭한 양반이다.
좋은 선생의 덕목은 지식 전달 외에도, 제자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란 게 내 지론이니까.
또한 무엇보다 소윤이가 글 선생을 잘 따랐다.
가끔, 질투 날 정도로 글 선생에게 의지를 했는데 나는 글 선생이 단순한 ‘스승’이 아닌 소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아버님.”
“정말이오?”
“네. 생각해보니, 밑지는 장사가 아닌 듯합니다. 소담골을 넘어 장안 전체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동네에 영웅이 나왔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 영웅은 아버님이고 사람들이 아버님께 거는 기대가 큽니다. 저는 아버님의 미래에 제 미래를 걸어보겠습니다.”
“미래까지 걸진 마시고. 부담스러우니까.”
“네?”
“아니오. 아무튼 그럼 그리 알겠소.”
“네, 문주님.”
“문…주?”
“네, 문주님. 이제 제가 소윤이 전담 학문 교사가 되면 응당, 아버님이란 호칭보다 문주님이라 부르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아… 알겠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한 방 먹었다.
그럼 이제 글 선생도 소천문 일원인가?
“예린아. 너한테도 할 말이 있다.”
이번에는 예린이를 불렀다.
“네, 문주님.”
예린이도 날 문주라고 부르네.
뭐, 나리라고 부르는 것보단 듣기 편해서 그러려니 하고 본론을 말했다.
“너 혼자, 이 큰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소윤이랑 놀아주기까지 한다고 고생 많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대충 일꾼들 좀 뽑아라. 주방 찬모도 두어 명 뽑고, 청소하고 나무하고 장작 팰 일꾼도 뽑고. 가세가 좋아졌으니 대충 대갓집 흉내 내면서 살자는 말이다.”
“아. 문주님. 진짜 그래도 돼요?”
“그래도 된다.”
“그럼 일꾼은 몇 명이나 뽑고, 월봉은 어떻게…?”
“그것도 알아서 해라. 앞으로 집안 살림의 전권을 너한테 맡길 생각이다. 고민 있으면 나나 글 선생한테 지혜를 구하고.”
“아… 알겠습니다, 문주님.”
“글 선생이나 예린이나 갑작스러운 제안에 머리 아플 거다. 하나, 어쩌겠냐. 사는 게 원래 그런걸. 그나마 두 사람한테 임금이라도 넉넉히 줄 생각이니 그걸로 위안 삼고. 앞으로 나는 수련하고, 일하고 소윤이랑 놀아주는 데만 시간 쏟을 생각이니 그리 알도록.”
“알겠습니다, 문주님.”
“네, 문주님.”
생각보다 협상이 순조로워서 한시름 덜어낸 느낌이었다.
“아빠! 그럼 이제 우리 부자야?”
그때, 예상치 못한 소윤의 물음이 나왔다.
“응?”
“글 선생님이랑 예린 언니한테 월봉도 마니 주고… 일꾼도 마니 뽑는다면서? 그럼 이제 부자 아니야?”
역시….
소윤이는 천재 맞네.
4살짜리 꼬마가 대화 몇 마디 들은 걸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한다고?
천하에 그런 애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장안에서 우리보다 잘사는 사람이 천 명도 넘을 테니 아직 부자는 아니고…. 부자 되는 과정쯤 해두자.”
나는 소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밥그릇에 담긴 숭늉을 후루룩 마셨다.
* * *
다시 칠주야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나와 동동이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문파를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전(前) 청방의 왈패 중 갱생 의지가 확고한 이들 십여 명을 소천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두목 멧돼지와 그 휘하 오리, 토끼, 집돼지, 개새끼 닮은 놈들도 부복하며 받아달라 애원했는데 놈들 눈알에 서린 악독함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놈들의 싸대기를 사정없이 걷어 올리고, 팔 근육을 비튼 다음 관청에 넘겼는데 병X이 됐으니 앞으로 왈패 짓은 못 할 터였다.
하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잣거리 상인 중, 청방에게 업장을 강탈당하고, 금전과 노동력을 착취당한 이들에게 보상 작업을 시행했는데, 개중 피해를 부풀려 더 뜯어가려는 양아치들도 있어 난관에 봉착했었다.
하지만 나는 웬만하면 민간인들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려 힘썼다.
그러다 보니, 그 많던 청방 재산 중 8할이 날아갔고 나와 동동이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처음, 이 선생의 산장에서 하산할 때만 해도 소윤이 먹이고 입히고 재울 생각에 깜깜했는데 지금은 널찍한 집도 있고, 업장도 몇 개 소유한 채며, 가정부와 글 선생에 무식하지만 말 잘 듣는 동생들도 생겼으니 이만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소천문의 문주가 됐다.
솔직히 말해, 아직 얼떨떨하다.
본래 내 성정 자체가 감투에 관심 없고, 사람들을 통솔하여 끌고 가는 것보다 혼자 활동하는 게 편한 편이라 매번 매 순간, 막힘의 연속이다.
하나 본래 인생은 막힘의 연속이고 그를 뚫어내기 위해 무던히 칼을 갈고 닦는 과정이니 나는 내 나름의 칼을 갈고 닦을 생각이다.
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마교 놈들 면상에 오줌 갈겨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하하! 진 대협. 타향서 흘러들어 온 지 1년도 안 됐다던데. 청방을 와해시키고 문파를 개파한 것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축하하는 바요.”
“진 대협. 감축하오.”
“감축드리오.”
오늘은 바로 소천문의 개파식이 거행되는 날이다.
행사는 전(前) 연화각이자 현(現) 소천문의 본문에서 치러졌는데 근 보름간 개파 소식이 일사천리로 퍼져, 장안 곳곳의 소형 방파 존주들과 무관 관주들, 자그마한 표국의 국주들이 축하를 위해 방문했다.
“고맙소.”
사실 개파식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었다.
전통 있는 문파라면 그저, 선대 문주들께 구배나 올리면 그뿐이고 종교를 바탕에 둔 문파면 신께 제(祭)나 올리면 될 일인데, 소천문이야 이도 저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려 했던 것이다.
하나 어디서 듣고 왔는지 삼동이가 ‘개파 행사를 안 하면 재수가 없다!’는 별 등X 같은 소릴 하며 행사를 강행했고 나는 하는 수없이 그 말에 따라 주었다.
“흐흐. 형님! 어떻수? 소천문 1대 문주가 되어 무림인들에게 축하받는 기분이?”
손님들께 형식적으로나마 포권으로 예를 취하며 썩은 미소를 짓던 중, 일동이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건넸다.
대충 둘러보니 이동과 삼동은 행사장을 정비하면서 동네 관주들과 중소방파 존주들 모시기 바빴고 새로 거둔 전(前) 청방 출신 왈패들은 주방에서 음식과 술을 나르기 바빴는데 일동이만 빈둥거리며 서성이는 중이었다.
“일동아.”
“네.”
“나는 웬만해선 심경 변화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림인들이 축하를 하든 말든 내 도리만 할 뿐이야.”
“하긴. 형님은 소윤이랑 있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한결같으니까 그럴 만도 하겠수.”
“그나저나 너는 여기서 뭐하고 서 있냐? 동생들 고생하는 데 너도 거들어야지.”
“아이고, 형님. 제 신분을 잊으셨습니까?”
“뭐?”
“저 소천문의 부문주입니다, 부 문주. 세상에 어느 문파 부문주가 허드렛일을 한답디까?”
“졌다, 졌어.”
그때였다.
“하하하! 형님. 여전하시군요. 감축드립니다!!”
낯익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
손님은 바로 석연우였다.
“형님. 이게 뭔 일입니까? 무림인 아니라고 그렇게 부정하고, 무림과는 관련 없다며 선을 긋던 양반이. 개파가 웬 말이에요? 하하. 아무튼 감축드립니다. 이제 어엿한 무림인이요, 문파의 존주가 되셨군요.”
이게 몇 달만인가?
어쨌든 연우를 다시 보니 예전 생각도 나고 반가웠다.
아마 연우가 영약을 사주지 않았다면 나는 도둑질을 해서 소윤이 밥을 챙겨야 했을 것이다.
하니, 따지고 보면 연우도 내겐 큰 은인이다.
“어쩐 일이냐? 동천에서 여기까지?”
“형님 보고 싶어서 장안에 출타 왔는데 개파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형님 같은 고수는 언젠가 반드시 무림인이 될 거라 예상하던 터지만, 이렇게 문파를 만드실 줄은 몰랐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아무튼 잘 왔다. 반갑고.”
갑작스러운 옛 지인을 우연히 만나는 기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않았는데….
“여기가 진소천이 개파한 ‘소천문’이 맞소?”
본관을 들어서는 또 다른 인물의 출현 앞에 내 머리는 이전까지의 모든 상념을 깡그리 지워버렸다.
“어르신….”
“잘 있었는가?”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큰절을 올렸다.
“허허. 이거 왜 이러나? 이제 자네는 일파의 존주일세. 일어나게.”
어르신은 바로 나와 소윤을 구해주었던 종남산의 은거 의원.
이시진 선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