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9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9화
#9화
모름지기 값싼 물건은 비지떡이다.
땅이라고 다를까.
아담한 뒷동산에, 집 앞으론 예쁜 호수까지 끼고 있는 이 집의 가격이 저렴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 단순히 왈패 놈들 몇 명 산다고 집값이 싼 거라면….
사실 내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놈들쯤, 얼씬도 못 하게끔 훈육해주면 될 일이니까.
“노인장. 그런 이유라면 괜찮으니 이 집 사겠소.”
“괜찮겠소? 나야 팔아치우면 그만이다만…. 홀아비 몸으로 딸내미 키우는 댁 사정 생각해서 그러는 게지.”
음….
이 영감은 일전에 약방 주인과 다르게 양심이 있어 보인다.
딱 봐도 호구 같은 외지인을 통수 치기보다 외려 걱정을 해주네?
역시 세상엔 나쁜 놈도 있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400냥으로는 어디서도 이런 집 못 구한다면서요.”
“그렇수. 최근 섬서 전체의 치안이 악화되어 비교적 안전한 동네는 값이 천정부지로 솟았수. 관청 근처나 대형 무관이 들어선 곳은 최소 700에서 800냥은 줘야 한다오.”
“그럼 그냥 이곳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수.”
“한데, 그 왈패 놈들… 몇 명입니까?”
“세 놈이요. 큰형 강일동과 둘째 강이동, 셋째 강삼동까지. 뭐, 저들끼리는 사내대장부라고 아녀자와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데, 허구한 날 술 퍼먹고 고래고래 고함 지르는 건 일상다반사요. 걸핏하면 사내들에게 시비를 걸어 두들겨 팬다우. 아무튼 유명한 망나니 놈들이니 조심하슈.”
풉.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강일동, 강이동, 강삼동이라.
아비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거, 이름 한번 더럽게 성의 없게 지었네.
어찌 됐든 나는 반나절 고생하고 나름 마음에 드는 집을 마련했다.
복덕방 영감이 땅문서에 지장을 찍게 했는데 집을 산다는 건, 생경하면서도 뭔가 소유물이 생긴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소윤아. 이제 여기 우리 집이다.”
“히히! 아빠야. 소유니 기부니가 너무 조타!”
소윤이도 집을 가지는 건 처음이어서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게, 사냥꾼 아빠와 천지를 돌아다니며 산장에 객잔에 노숙한 적도 있으니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나.
다다다다다다!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는 집 안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눈을 말똥거렸다.
“형님. 소윤이가 많이 좋아하네요. 아무튼 집 사신 거 축하드려요, 하하.”
석연우가 소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축하를 건넸다.
자기는 이 집보다 100배 넓고 좋은 집에 살 거면서 축하는….
솔직히 기만 같았지만, 괜히 비꼬는 거 같아 그냥 끄덕거리며 물었다.
“연우야. 근데 너 이제 가봐야 하지 않냐?”
“그래야죠. 근데 새집 샀는데 밥 한 끼 안 해주고 그냥 보내게요?”
“너랑 나랑 그만큼 살가운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알았어요. 갑니다, 가요. 거 되게 섭섭하네.”
“밥 한 끼 해주는 게 어렵진 않지만, 어제 흑사회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너희 집 쳐들어갔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나 같으면 걱정돼서라도 진작 가봤겠다.”
“형님.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본가에 엄청난 손님이 와계시니까. 흑사회? 풉…. 흑사회 할아비가 와도 본가 문턱조차 넘지 못할 겁니다.”
“엄청난 손님이 누군데?”
“청문 도장.”
아.
그래서 연우가 태연했던 거구나.
청문 도장은 나도 아는 사람이다.
물론 일면식도 없지만, 살수란 게 잘나가고 이름 있는 인간들의 호구조사는 필수라 나도 청문 도장의 이모저모를 탐독한 적이 있다.
“그랬냐. 아무튼 그래. 잘 가라.”
“허! 형님. 화산파 청문 도장의 이름을 듣고도 전혀 안 놀라네요? 아니면 현직 무림인이 아니라 모르는 건가?”
“현직이건 나발이건 난 무림인 아니라 했고, 청문인지 대문인지 알 게 뭐야.”
“참…. 형님은 보면 볼수록 대단한 양반입니다.”
순간, 연우가 심유한 눈으로 내 이곳저곳을 훑었다.
아무래도 내 정체가 미칠 듯이 궁금한 눈치지만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뭐. 언젠간 형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겠죠? 아무튼 보중하세요. 조만간 들를게요.”
“잘 가라. 가는 길에 또 흑사회 놈들한테 걸려서 처맞지 말고.”
“형님!”
이것으로 나는 내 집 마련의 초석을 닦아 준, 고마운 손님 연우와의 작별을 마쳤다.
연우는 내게 돈을 주었고 나는 연우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계산은 확실히 끝난 셈이라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 * *
“아빠! 여기 꼬또 이써. 예쁘지?”
연우를 보내고 집 안을 둘러보던 중, 마당 한쪽에 핀 노란 꽃이 소윤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비어 있던 집이라 보수할 곳이 많았고, 장원 곳곳에 잡초가 우거져있었다. 게다가 한바탕 물난리를 겪었는지 울퉁불퉁하게 쌓인 흙더미까지, 정리할 게 천지였는데 그 와중에도, 꽃이 핀 모양이다.
나는 노란 꽃을 꺾어다 소윤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소유니 머리에 꽃 다라따아!!”
소윤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다시금 집 안을 뛰어다녔는데 애들이 원래 저런 건지 아니면 소윤이가 유독 활동량이 많은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몸에 힘이 넘치는 듯하면서 사뿐사뿐한 발걸음과 생동 있는 근육의 움직임을 보니 소윤인 무공을 배워도 곧 잘할 거 같다.
물론 나한테 배우면 고상한 정파 무공에 비해, 사람 후려 패는 싸움 기술만 배우겠지만 살다 보면 이쪽을 써먹어야 할 때가 더 많다.
고로 나는 소윤이를 무관에 등록시키는 것보다 그냥 직접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다.
“아빠야! 우리 집 엄청 크다! 하라부지 집만큼 크다. 하라부지도 불러서 같이 살면 안 대에?”
그때, 총총 뛰어다니던 소윤이가 대뜸 이시진 선생을 떠올렸는지 입을 열었다.
아직 하산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모양.
“소윤아. 할아버지가 그랬지? 공부할 게 많으시다고. 공부 다 끝나시면 부를 테니까 우선 아빠랑 둘이 살자.”
“마따! 하라부지가 소유니도 공부하라고 했눈데… 어또카지?”
“어떡하긴. 소윤이는 학당 다니면서 글공부부터 해야지.”
“학당?”
“그래. 학당에 가서 훈장님한테 글을 배우는 거야.”
“소유니 빨리 글 배우고 시프다, 아빠야.”
“알았다. 한번 알아볼게.”
소윤에게 큰소리쳤지만 사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보통 네 살짜리는 학당에 다니지 않으니까.
저렇게 말을 잘하는 것도 신기할 따름인데.
여유가 있다면 과거 시험 낙방하는 서생 한 놈 잡아다가 최저 임금 주고 글 선생으로 부려 먹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돈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우가 돈 좀 꿔준다고 할 때 받을 걸 그랬나….’
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형편이 이리되니 나도 참 별 거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한번 깨닫는데, 아빠 되는 건, 고금제일살수 되는 것보다 힘들고 아비 혼자 자식 키우는 건 그보다 난이도가 더 높아서 거의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과 비등한 수준이다.
‘소윤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차후엔 입주 식모 몇 명 쓴다고 하더라도.
당장엔 소윤일 업고 다니며 일을 해야 할 텐데 참 걱정이다.
하나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이고, 나는 당장 소윤이 저녁 먹일 밥을 해야 하고 소윤이가 안락하게 잘 수 있도록 집을 깨끗이 청소할 요량이었다.
파파팟-!
나는 빗자루를 옆에 차고 자연결의 역(力) 속성을 끌어 올려 ‘대청소’에 만전을 기했다.
쾌경보를 사용해 움직이며 빗자루를 휘둘렀는데 섬전검(閃電劍) 형태로 펼친 터라, 번쩍번쩍 섬광이 튀었다.
전생에 화산파 장문인을 암살할 때보다 더 열심히 휘둘렀다.
그러자 그간 켜켜이 묵은 먼지가 허공에 비산했다.
“우와! 아빠 몸에서 막 빛이 난드아!”
소윤이는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한지 눈을 빛냈고, 나는 소윤이 얼굴과 먼지를 번갈아 보다 킥킥거렸다.
전생에 교주가 그랬다.
자신은 온전한 고독으로 점철된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중생이라고.
그땐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나 이번 생은 다르다.
그래.
다를 것 같다.
“소윤아. 먼지 날리니까 저만치 떨어져 있어라.”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깔깔거리는 소윤이를 보니 왠지 머릿속에 노랫가락이 떠올랐다.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근데 하필이면 그 순간,
“꺼~억.”
트림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어젯밤 마신 죽엽청 향이 느껴진 거야~」
하….
뭔가 명곡이 나올 느낌이었는데 의식의 흐름이 거지 같은 가락을 만들어 냈다.
그래도 머리로만 떠올리고 입으로 지껄이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저딴 가락을 흥얼거렸으면 소윤이도 정색을 하지 않았을까.
* * *
찌르르….
귀뚜라미며 매미며 울어 재끼는 게 이제 여름이 성큼 다가온 모양이다.
“오늘도 고생했다, 진소천.”
나는 집 앞의 출렁이는 호숫물과 물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자화자찬을 일삼았다.
“진짜 고생했으니까.”
또한, 어제와 마찬가지로 죽엽청도 한 병 깠다.
할 일 해놓고 한 병 까는 죽엽청 맛은 달콤하면서 쌉싸름했는데 전생에선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다.
쏴아아….
밤바람이 스치자 호수에 비치는 별빛이 부서진다.
찬란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무슨 수를 내긴 해야겠는데….”
벌컥벌컥-.
죽엽청을 들이켜며 소윤이 봐줄 식모와 글 선생 구할 생각과 어디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할지 등을 고심해봤다.
애를 데리고 일을 하려면 많은 제약에 봉착할 터.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나.
청소하다가 소윤이 달랬다가, 업고 시장 가서 반찬 사 왔다가 다시 달랬다가 밥을 짓다가, 또 어르고 달래서 밥 먹이고 반 시진 가량 옛날이야기 들려준 뒤, 자는데 더울까 봐, 부채질도 한 시진 해주다 이제야 잠시 집 앞에 나와 혼자 술 퍼마시는 중이다.
그냥 돌보는 것만도 이렇게 지치는데, 소윤이를 업고 생업에 종사하려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구나.
“어이. 서생 양반. 뭔데 달밤에 내 구역에서 분위기 떡 하니 잡고 있냐? 어?”
“못 보던 놈이네요, 형님.”
“꼭 기생오라비 같이 생겼네.”
그때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불량스러운 세 장한이 고개를 쳐들고 저벅저벅 다가왔는데.
‘니들이냐?’
나는 목소리와 외형만으로도 놈들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너희냐? 일동, 이동, 삼동이.”
느닷없는 내 물음에 셋 중 가장 형으로 보이는 녀석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마치 제 귀를 의심하는 듯했는데, 잠시 후 귀뿐만 아니라 눈도 의심하고 피부 거죽도 의심하고 뼈도 의심할 것이니 대수로울 건 없었다.
“너 돌았냐?”
“맞나 보네. 동동이 형제.”
“……???”
“동동이 형제. 잘 들어라. 너희가 이 동네 치안을 어지럽히는 모양인데 사실 나는 상관없다. 하지만 앞으로 이 동네에서 소윤이가 살아야 하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 집값도 떨어지는 데다, 안 좋은 동네 산다고 소문나면 소윤이가 학당에서 놀림 받지 않겠냐?”
“너… 무슨 개소리냐?”
“개소리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이제 이 동네 치안은 내가 책임진다.”
“…….”
이게 그렇게 놀랄 말인가?
동동이 형제는 아예 어깨를 부르르 떨었는데 두 눈엔 거의 경악이 서려 있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녀석들에게 내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여 상황을 인지시켜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꼬우면 덤비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