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38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38화
#38화
“사부님……. 아무래도 진소천이라는 자.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화산 7대 검객 청문도장을 찾은 제자, 석대방.
그의 얼굴이 자못 진지하자, 청문도장이 수염을 쓸며 말했다.
“대방아. 소식은 들었다. 그자가 흑사회를 괴멸시켰다지?”
“그렇습니다.”
“하나 그렇다고 그리 놀랄 게 있느냐? 그가 대단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틀림없지만, 강호사에는 이런 일이 흔한 법이다. 또한, 흑사회는 최근 섬서의 방비가 약해진 틈을 타 준동한 세력으로, 그 힘이 방대하다 할 수 없다. 주목할 만한 인물이라고 해봤자 살마존 백귀호가 전부지 않았느냐?”
“사부님. 그러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사도맹의 지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결코, 무시할 만한 인원도 아니었고 회주인 살마존 백귀호의 무공은 꽤 강하지 않습니까?”
“대방아. 강호란 곳이 본래 그런 곳이다. 하루아침에 고수가 탄생하고 또 고수가 죽어 나가는 도산검림(刀山劍林)이 강호지. 하니, 너무 경동할 필요 없다.”
“만약 그가 흑사회 전원을 단신으로 상대했다면 어떻습니까?”
“무어라?”
“사부님. 진 문주는 혈혈단신으로 흑사회 전원을 괴멸시켰습니다. 물론, 외인들은 소천문과 석가장이 힘을 합쳐 흑사회를 토벌했을 거라 여기겠지만 실상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석가장은 고작, 진소천 문주가 벌인 활약의 뒤처리를 담당했을 뿐입니다.”
“하면 소천문의 문도들은?”
“소천문은 문도라 해봤자 고작 20명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동네 문파입니다. 그마저도 대부분 청방에서 거둔, 왈패들이니 제대로 된 무인은 없는 셈이지요.”
“허! 그렇다면 정말 진소천 혼자, 흑사회 전원을 제압했단 말인가?”
“네.”
청문도장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음…… 혼자서 흑사회 전원을 제압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구나…….’
청문도장은 평생 무림의 일선에서 활약한 구파의 최고수였다.
그만큼 경험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그런 청문도장에게도 진소천의 행보는 경악으로 다가왔다.
‘분명…… 드러나지 않은 내력을 가진 이가 틀림없군.’
청문도장이 그런 단상을 떠올릴 때.
석대방이 입을 열었다.
“사부님. 연우가 진 문주를 본가로 초빙했다 하니 한 번 만나보시지요.”
“그러자꾸나. 나 역시 그가 자못 궁금해지는구나.”
* * *
“진 대협! 하하. 이제는 진 문주라고 부르는 게 맞겠소?”
“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라니요. 나는 진 문주를 친우로 여겼는데, 문주는 아닌가 보오? 문파를 만든 것도 모자라, 아예 섬서 전체를 휘젓고 다니시던데. 응당 축하해야 하지 않겠소?”
“어쨌든 드시죠.”
모처럼 반가운 인물이 소천문을 찾았다.
나는 그를 향해 정중히 포권하고 다른 방문객들과 동석하길 권했는데, 착석해 있던 관주들이 저마다 눈빛으로 무언(無言)의 물음을 던져왔다.
“아…… 다들 인사하시지요. 이분은 섬서성의 지부대인(知府大人)이십니다.”
그러자,
“???”
“???”
“???”
관주들의 낯빛에 놀라움이 번뜩였는데 왠지 그 심정을 알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장안 무림의 고인들을 뵙게 되어 반갑소. 나는 몇 달 전, 섬서의 지부(知府)로 부임한 조 모라 하외다.”
그때, 지부대인이 먼저 관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새삼, 느끼지만 저 양반은 고위 관료 특유의 특권 의식이 없고 외려 소탈해서 좋았다.
“지부대인이라니! 반갑습니다. 상천문의 문주, 장일도입니다!”
“……반갑습니다. 근처에서 작은 무관을 운영 중인 이소하라 합니다.”
“영광입니다, 지부대인. 정무관의 관주입니다!”
지부대인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관주들 또한 대뜸 기립해 공손히 포권지례했다.
사실…….
관과 무림은 불가침하고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니 누구 하나 굽실거릴 필요는 없다.
하나, 지부대인 정도면 고관(高官)인데다, 소천문에 모인 관주-문주들이 일개 동네 문파의 존주인지라 다소 움츠러드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그런 감정마저 깡그리 지우고선,
‘대체 지부대인이랑은 무슨 인연이 있는 거요?’
라며 내게 또다시 무언의 눈빛을 보내왔고,
“아. 지부대인이 찾아오셔서 당혹스러우실 텐데…… 제가 도움받은 게 좀 있습니다.”
나는 나와 지부대인의 인연을 간략히 설명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소천문을 만들기 전, 강 씨 형제와 현상금 사냥꾼 생활을 했는데, 그때 지부대인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러자, 상천 문주가 호기심 서린 눈을 빛내며 물었다.
“허! 현상금 사냥꾼과 지부대인의 만남이라… 문주.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겠소?”
“자세히 말할 것도 없는 게…….”
“…….”
“그냥 돈 달라고 했습니다만.”
“???”
“그러니까 돈을 주시더군요.”
“그게 무슨…….”
“그게 끝입니다.”
내 설명이 부족했던 걸까…….
문주, 관주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서리고.
“하…… 하하…… 진 문주. 여전하시군요.”
어쩐 일인지 지부대인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왜들 저럴까?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 * *
“형님……. 격세지감입니다. 이제 장안의 모든 무인이 소천문을 찾고 지부대인마저 방문하시다니. 출세 가도를 달리는 기분이 어때요?”
해시(亥時) 무렵-.
손님들이 돌아가고, 나와 동벽 선생, 연우는 집으로 왔는데 늦은 시간이라 소윤이는 자고 있었고, 동벽 선생도 고단하다며 일찍 별채로 들어갔다.
바쁜 하루였다.
개파식 때보다 더 많은 손님이 몰려왔고 지부대인까지 방문한 터라, 그들을 응대하는데 심력을 쏟았다.
물론, 동벽 선생과 연우, 동동이들이 함께해 부담을 덜어줬지만 시답잖은 ‘강호의 정세’라든가, ‘섬서의 세력 구도’ 따위에 관한 토론은 여간 고초가 아닐 수 없었다.
“별거 있겠냐. 다만, 의약당주 어르신의 명성이 드높은 데다, 너도 좋은 가문의 자제로 내게 힘이 되고 동동이들도 듬직해지니…… 문파의 성장으로 인한 걱정은 없는 셈이다.”
“하하. 형님은 그런 거 떠나서, 애초에 걱정 같은 거 아예 없는 사람 아닙니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걸어 다니는 걱정덩어리, 사서 걱정하는 심력 소비의 달인, 떨어지는 빗방울만 봐도 홍수를 걱정하고 내리쬐는 뙤약볕만 보고 가뭄에 시달릴 민초를 걱정하는 ‘걱정 대종사’다. 특히 소윤이 일이라면 걱정을 넘어, 병적으로 집착하고, 발작하는 데 이건 세상 모든 애비의 공통점이니 차치하자.”
“어휴…… 말을 맙시다. 제가 봤을 때 형님은 무공보다 입이 더 강해요.”
“그래?”
“네. 아마, 입으로는 당해낼 사람이 강호에 없을걸요?”
“칭찬 고맙다.”
“그것도 칭찬입니까?”
“주둥이로 도발하는 건 때때로 신공절학보다 더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종종 써먹을 생각이다.”
나는 내 말이 스스로도 웃겨, 잠시 킥킥거렸다.
그러자, 연우도 황당한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형님. 그나저나 앞으로는 오늘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날 겁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형님 소식은 며칠 안에 섬서 전체로 퍼져나가겠죠. 하면, 흑-백-정-사를 막론하고 무림의 많은 세력이 연락을 취해 오거나, 조력을 요청하거나. 또는 줄을 대려 할 거예요.”
“그렇겠지.”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무슨 걱정?”
“잔소리 같지만, 천하의 모든 무림인은 강호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치란 곧, 처세이자 방향성이며 문파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니까요.”
“말인즉슨, 내가 협잡이 난무하는 강호 바닥에서 처세를 잘못할 거 같다…… 이런 말이냐?”
“네. 형님 성격이 하도 괄괄한 데다, 매사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두(爆頭) 같아서…….”
“예컨대?”
“예를 들어, 소천문이 승승장구하다가 구파일방의 인물과 인연이 닿았다 치자고요. 한데, 또 그런 대형 문파 사람들은 오만한 경향이 있거든요. 그러면 형님 성격에 가만히 있겠습니까? 당장 그놈들 머리통 부순다고 길길이 날뛸 게 뻔한데.”
듣고 보니 연우 말에 일리가 있다.
잘나신 명문정파의 놈들이 얼마나 건방진지는 나도 잘 알지.
“연우야. 네 말 알겠다. 또 대충 타당한 소리고. 하지만 말이다…….”
“…….”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형님.”
“나는 사람을 평가할 때, 배경 같은 건 안 본다. 다만, 그 사람의 과거는 행실과 사고의 바탕이 되니 참고하는 편이고. 그러니 내가 대형 문파의 인물이라고 해서 알랑방귀 뀌는 일은 없을 거다. 또한, 나는 그런 비굴함을 처세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형님…….”
“연우야. 나는 나만의 처세법이 있고 소천문의 소천문의 방식이 있다. 이게 틀렸다면 나와 소천문은 자연스레 소멸할 거고, 반대의 경우 우리는 더 커질 거다.”
“…….”
“세상사가 그렇다. 그냥 될 놈은 어떻게든 되고…… 안 될 놈은 죽어도 안 돼. 그러니 나는 그냥 내 방식 고수하며 강호에서 칼 밥 먹을 생각이다.”
“말씀하시는 형님의 방식이란 거…… 대체 뭡니까?”
“무공(武功).”
“아…….”
“우리는 무림인(武林人)이다. 무림인은 첫째도 둘째도 무공으로 말하고, 그게 전부다.”
내 말에 연우는 찰나, 침묵한 채 미간을 좁혔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는데, 사실 녀석도 한 사람의 무림인이니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터였다.
“형님다운 대답이네요.”
“그렇지. 나다운 대답이지.”
“역시. 제가 사람을 잘 본 거 같습니다.”
“날 어떻게 봤는데?”
“무림인(武林人).”
순간.
뭔가 분위기 쫙- 깔면서 말하는 연우의 본새가…….
왠지 모르게 느끼해서 나는 녀석의 정수리에 당랑 꿀밤을 쥐어박았다.
꽝-.
“아아악! 형님! 또 이럽니까! 제가 두 번 다신 꿀밤 때리지 말라고 했어요, 안 했어……”
“내일 아침 떠나려면 빨리 자라, 이놈아.”
“네?”
“석가장으로 네 부친을 만나러 가겠다.”
“지, 진짭니까, 형님?”
“약속했으니까.”
“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형님. 아버지도 형님을 보면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과연…….
고고한 백도 가문의 가주가 날 보면…… 진짜 기뻐할까?
* * *
이튿날-.
“예린아. 동천 석가장으로 출타할 일이 생겨, 넉넉히 이틀은 못 들어올 거다. 소윤이 밥 잘 챙기고 잘 때 옛날이야기 좀 들려줘라. 저녁엔 일동이가 소윤이 데리고 산책 나갈 테니 그리 알고.”
“네, 문주님.”
“어르신. 석가장에 같이 가시겠습니까?”
“나는 됐네. 자네 혼자 다녀오게. 노부는 본관에서 강 씨 형제와 일 처리하고 있겠네.”
“네.”
나는 예린, 동벽 선생과 짤막하게 인사를 나눈 뒤, 소윤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윤아. 들은 것처럼 아빠는 멀리 일하러 갈 테니 두 밤은 못 들어올 거다. 혼자 있을 수 있지?”
“응? 소윤이 혼자 아닌데?”
“응?”
“아빠가 일하러 가도 소윤이한테는 할부지랑 예린 언니랑 글 선생님이랑…… 삼촌들도 있는데?”
아…….
그래.
이제 소윤이는 내가 없어도 혼자가 아니구나.
나는 슬쩍 미소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 소윤이는 언제 어느 때고… 이제 혼자가 아니지.”
“헤헤-.
소윤이가 웃는다.
나도 웃음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