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36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36화
#36화
‘세상에…….’
‘형님이 또 한 건 해내셨네.’
‘하…….’
동이 틀 무렵.
흥평 분타에 당도한 석연우와 이동, 삼동은 기함한 눈으로 장내를 주시했다.
꿈뻑- 꿈뻑 졸고 있는 일동을 뒤로한 채, 포승줄에 묶여 있는 잔당들.
무리와 삼장 가량 떨어진 곳에는 이미 주검으로 변한 지 한참 된 듯한, 시체 10여 구가 차곡차곡 쌓인 상태였다.
“형님! 일어나쇼!!”
이동이 냅다 고함을 질러 졸고 있는 일동을 깨웠다.
일동이 헐레벌떡 일어나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아후! 왜 이제들 온 거야? 내가 이것들 데리고 얼마나 오래 대기한 줄……”
“이게 다 뭡니까. 저 시체들은 또 뭐고요. 시체가 있으면 어떻게든 처리를 했어야지, 죽은 송장 앞에서 잠이 옵니까? 예?”
“아니, 이게 갑자기 왜 성질이야?”
그러자, 삼동이 중간에 끼어들어 두 형님을 만류했다.
“아이고. 됐습니다, 형님들. 여기 우리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체통 좀 지킵시다.”
그에, 일동과 이동이 마치 짠 것처럼 동시에 외쳤다.
“넌 빠져, 이 새끼야.”
“넌 빠져, 이 새끼야.”
…….
만나자마자, 옥신각신하는 세 사람을 보고 있노라니…….
‘하…… 문주에 간부들까지. 과연 소천문이 제대로 클 수 있으려나. 소천 형님. 대체 어떤 문파를 만드신 겁니까?’
석연우는 황당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가 비록 명망 높은 명문정파 제자는 아니라도…….
어릴 적부터 인의 도덕과 예의범절, 강호인의 도리를 귀에 못 박힐 만큼 듣고, 또 몸소 체득해 온 그로서는 작금의 상황이 깜깜하게 다가왔다.
“후……. 자자! 소협들. 진정들 하시고. 상황 수습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한 차례 질끈 눈을 감은 석연우가 한숨을 내쉬고 일동, 이동, 삼동 형제를 진정시켰다.
‘첩첩산중이다, 첩첩산중.’
겉은 썩은 미소로 포장했지만.
속은 진짜 썩고 있는 석연우였다.
* * *
“문주님! 의약당주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이른 아침…….
본문으로 들어서니, 이름 모를 아무개들이 나와 동벽 선생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씩씩하긴 한데…….
“니들…… 누구였더라?”
고백하건대, 나는 10여 명에 지나지 않은 소천문의 문도들을…… 잘 모른다.
물론, 얼굴을 못 알아봐서 그런 건 아니고.
다만, 개인적으로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터라,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아…… 저는 삼복인뎁쇼?”
“저는 승복입니다만.”
“저는 길복이여라.”
에라.
거, 이름도 예술인 새끼들이 억양도 어떤 놈은 청해 사투리를, 또 어떤 놈은 해남 사투리를 쓰는 거 보니 혼란스럽네.
“그래. 그나저나 너희는 왜 이동, 삼동이랑 같이 안 갔냐?”
“아…… 저희는 유사시를 대비해서 대기하라는 명을 받은지라.”
“음……. 근데 니들…… 청방 놈들이었지?”
“맞습니다, 문주님.”
“맞습니다요!”
“맞습니다.”
내 물음에 삼복, 승복, 길복이 동시에 대답했다.
아무튼 녀석들 씩씩한 거는 알아줘야겠고.
“복복이들아. 사실 나는 청방 출신을 거두는 데 반대했었다. 뭐, 동동이들이 어련히 알아서 걸러 받았겠냐만. 그래도 사람 쉽게 변하는 거 아니니 앞으로 유심히 지켜보겠다. 만약, 예전처럼 양아치 근성 튀어나오는 날엔 살가죽 벗겨 대막에 집어던질 테니 그리 알아.”
“네, 문주님.”
“넵!”
“명심하겠습니다, 문주님.”
“또 하나.”
나는 복복이들의 어깨를 한 차례 다독이며 다시 말했다.
“앞으로 인사할 때, 그렇게 씩씩하게 하지 마라. 씩씩한 게 나쁜 건 아니다만, 중도 지향의 문파에서 할 만한 인사법은 아니다. 물론, 니들이 오랜 시간 뒷골목 파락호로 살며 몸에 밴 습관을 단번에 버리긴 쉽지 않다. 하나, 이제 너흰 소천문의 일원이야. 행동, 습관, 말투 하나하나 신경 써야 돼. 천박하지 않으면서 기품 있게. 그렇다고 너무 고상한 척할 필요 없고.”
“알겠습니다.”
“네, 문주님.”
“명심하겠습니다.”
됐다…….
눈이 초롱초롱한 게 총기 있어 보이고 행동도 빠릿빠릿한 것이 충직해 보이니 잘 키우면 쓸 만해지겠다.
“그리고. 복복이들아. 조만간 문도 전원 단체 수련 실시할 예정이다. 제대로 된, 무공은 한 번도 배운 적 없겠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해 죽지 않을 만큼 굴려주마. 아마, 수련 도중 체력이 약한 놈은 염라대왕 낯짝을 볼지도 몰라. 그러니, 틈나는 대로 체력단련 해라. 이건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흘려듣지 않도록.”
단체수련이란 말에 복복이들의 인상이 활짝 폈다가 또, 굳는 게…….
아무래도 무공을 배울 수 있단 기대감과 동시에, 내 수련 방식의 ‘악명’을 동동이들에게 어느 정도 들은 게 아닐까?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 소천문의 의약당주께서 명의 중, 명의시다. 송장 빼고 다 살리는 분이니 너희가 수련 중, 사망할 일은 없을 거다. 안심해라.”
그러자, 어쩐지 동벽 선생은 날 얄궂은 눈으로 보며 입을 열었다.
“소천문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구먼……”
“…….”
“문주. 약당으로 따라오게.”
“네.”
* * *
“정말 신기하군. 자네 몸에 독이 완전히 사라졌네. 진작 알았지만 알면서도 어이가 없어. 어찌 이리도 회복력이 대단한지…… 허!”
혼절해 있던 칠주야 사이, 소천문이 많이 변했다.
언제 마련했는지 5층에는 널찍한 약당(藥堂)이 펼쳐졌는데, 병상도 아홉 개 설치되었고 수십여 종의 생약과 외과술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가 주렴처럼 외벽에 걸린 채였다.
“제 공력이 독특한 까닭입니다. 일반적인 내력(內力)과 궤가 다른데, 쉽게 말해 의식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공력이 전신 세맥을 유유히 흘러 다닌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노부도 무공깨나 익혔지만…… 그런 종류의 공력은 듣도 보도 못했네. 자넨 참 희한한 사람일세.”
동벽 선생은 호기심 서린 눈으로 내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진맥하다 또 고갤 갸웃거리다…….
한 마디로, 날 실험체처럼 탐구했는데 아무리 그가 뛰어난 의원이라도 ‘자연결’의 호흡으로 인한 공력과 신체 특성을 단번에 이해하긴 힘들 터였다.
“어르신. 그냥 제 무공의 갈래가 특이해 그런 거니, 골머리 싸매지 마십쇼. 이미 산장에서 반년 동안 살피셨잖습니까.”
“끙……. 알겠네. 뭐, 봐도 알 수가 없으니 그러려니 해야지. 그나저나 자네.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뭘 말입니까?”
“자네가 혼절해 있던 7일간 나름 강호 사정을 공부했네. 현재 강호는 폭풍전야의 형국일세. 그 와중, 자네가 청방을 시작으로 섬서의 수많은 방파가 주목하는 ‘흑사회’마저 토벌했으니 앞으로 처신에 따라 자네와 소천문. 크게는 소윤이 인생도 바뀔 것이네. 노부는 웬만하면 자네가 정도(正道)를 걷길 바라네.”
“물론입니다. 저도 정도(正道)를 고집할 생각이지요.”
“잘 됐군. 하면, 백도(白道)를 지향하는 정파와 인맥도 쌓고, 나름 강호의 정치에도 능통해야 할 터. 나는 자네가 그런 것들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
“어르신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제가 말하는 정도(正道)는 말 그대로의 ‘바른길’을 의미함이지, 무림맹을 주축으로 둔 백도를 지향하겠단 뜻이 아닙니다. 명문정파라 해서 바른길을 걷는 게 아니고, 사마외도라 해서 나쁜 길을 걷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의외군. 젊은 사람이 그런 진리를 알고 있다니.”
“실제로 제가 살면서 본 가장 역겨운 인간은 도가에서 도 닦는 호랑말코 도사였지요. 그런 놈들이 지껄이는 백도니, 정의니 하는 것은 몰가치 합니다. 저는 그냥 양심이 시키는 정도(正道)를 걷겠습니다.”
“클클. 그래도 행여나, 화산, 무당, 종남파 인물을 만나게 되면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속 좁은 도사들이 드잡이하려 달려들지 모르니까.”
순간, 나와 동벽 선생은 마주 보고 한참 낄낄거렸다.
나도 그렇고, 동벽 선생도 그렇고…….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또 개의치도 않는다.
하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했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며 그로 인한 모종의 동질감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이유로 동벽 선생을 의지하는 게 아닐까.
“그건 그렇고. 문주.”
“네.”
“나도 처세나 정치 같은 협잡에는 재주가 없으니, 자네는 소천문이 자리 잡을 때까지 석 공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걸세. 그는 자네를 의형처럼 여기며 배경 또한 괜찮으니 도움이 될 게야.”
“그러잖아도 연우와 석가장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석가장에?”
“네. 석가장 가주가 연우의 부친인데, 듣기로 화산파 청문도장이란 영감에게 무공을 사사했다더군요. 소천문도 무림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진 셈이니 광범위한 의미에서 아군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좋군. 내 자네를 천하제일의 독불장군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융통성도 있는 것 같으니…… 문주의 자질도 조금 보이네.”
문주의 자질이라…….
과연 그게 뭘까.
문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처세와 대세를 읽는 식견? 통찰력?
아니면, 강한 자들과 붙어먹는 일종의 눈치? 정치력?
아무튼, 정확히 모르지만 사실 나는 그런 쪽으로 재주도 없고 아는 바도 없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문주의 자질은 첫째도 싸움이고 둘째도 싸움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어르신 말대로 자질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런 쪽도 자질로 쳐준다면…….
나는 문주 되기에, ‘천무지체’가 아닐까?
* * *
이튿날…….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이다.
어슴푸레한 산속 정기를 마시며 산행을 나섰는데 이 순간만큼은 일체의 경신술도 쓰지 않은 채 육체의 힘으로만 광양산 정상을 올랐다.
“후웁…….”
새벽이슬과 대기의 찬 공기가 입과 코를 거쳐 폐부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호옵…….”
나는 자연결의 무리(武里)를 일으켜, 호흡을 조종한 뒤 단전에 똬리를 튼, ‘역’ 속성 덩어리와 ‘뢰’ 속성 덩어리를 유심히 관조하고, 느끼고, 또 자극하길 반복했다.
고오오……!
그러자, 두 가지 속성에서 은은한 ‘힘’이 군불처럼 깊이 피어오른다.
나는 그 힘을 내력으로 치환해 손끝으로 흘려보냈다가 다시 발끝으로, 다시 정수리로 보내 육체와 ‘자연결’의 감응력을 심유히 점검했다.
‘대충 한 갑자는 넘겼군. 괄목할 만한 성장이긴 하다.’
그제야 나는 살마존 백귀호 영감과 싸울 때, 겪었던 심마(心魔)가 엄청난 호재로 작용했음을 절감했다.
한 갑자의 공력.
절대 고수와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당초 예상보단 빠른 속도의 성장이다.
철썩-.
나는 이내 가부좌를 틀고 ‘역 속성의 호흡’과 ‘뢰 속성의 호흡’을 번갈아 토납하며 명상에 빠져들었다.
‘…….’
전생부터 습관처럼 하던 거지만…….
내 수련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명상 수련’이다.
내 명상은 싸움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난다.
내가 만든 환상 세계에서 주먹을 지르고 각법을 펼치고, 일장을 휘갈기고…….
종내에는 검으로 상대의 모가지를 따는 순간, 나는 환희와 희열을 느끼다 다시 차분해지는데, 환생 후의 명상에서 나의 적은 항상 교주였다.
‘위 교주. 지금쯤 당신은 더 강해졌겠지?’
교주.
지금의 그는 과연 얼마나 강할까?
내가 본 교주는 정말 무서운 인간이었다.
단순히 강해서 무섭다기보다, 그의 빈틈없는 정신과 마음, 또한 완벽하게 자신을 객관화하는 그 냉철함이 두려웠다.
무신(武神)!
아마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한다면…….
교주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무신일 것이다.
‘교주…….’
그러나.
나는 그를 뛰어넘는다.
무공의 재능도, 무인의 본능도, 무공을 탐독하는 식견마저도…….
나는 그를 능가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그를 뛰어넘어야 한다.
‘…….’
오늘도 내 명상의 환상세계(幻想世界)에서 나는 교주의 검에 찔리고 베이고 갈리다 또 주검이 된다.
“킥킥.”
그래도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내가 또라이라서?
아니면 언젠간 교주를 이길 것 같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떤 쪽이든 사실 별 상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