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31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31화
#31화
“……!”
안면, 흉부, 양 옆구리, 어깨, 복부와 더불어 대퇴부와 종아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신이 익고 터져 피범벅이 된 노인의 모습을 보며 흑사회 잔당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끄으…….”
신음을 뱉는 노인의 모습은 그만큼 처절해 보였다.
그의 상처는 마치, 쇠도리깨로 신체를 살벌하게 내려친 듯 여기저기 뼈와 살갗이 뭉개진 채였는데, 이는 ‘뢰’ 속성에서 파생된 ‘번개’와 질풍권의 조화가 예리함보다 묵직한 쇳덩이에 가까운 힘을 자아내기 때문일 터였다.
“그……그만하면 안 되겠나?”
노인의 입에서 예상 밖의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내가 본 노인은 자긍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해서, 죽음이 목전에 드리운다 해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생사(生死) 앞에 초연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일류를 넘어선 노인도 육신의 고통 앞에 철저히 무너지니까.
그러나 나는 고갤 저었다.
“영감. 나도 살인을 하고 싶진 않다. 하나 자비를 베풀 것 같았으면 애당초 흑사회에 찾아오지도 않았어. 사람은 잘 안 변하지. 지금 내가 영감을 살려주면 훗날 영감은 반드시 복수하려 들 거다.”
“…….”
“그러니까 그냥 죽어.”
그렇다.
나는 영감을 살려주고 싶지만 살려줄 수 없다.
만약 노인이 조무래기였다면 또 모르지만…….
노인은 누가 뭐래도 고수고 저런 자는 단번에 사람 목숨 수십쯤 파리 목숨처럼 끊을 수 있기에 위험성이 크다.
또한 당초, 내 목적 자체가 흑사회의 조직 와해기에 그냥 노인을 죽이기로 했다.
“알겠네. 자네가 그렇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겠군. 하나, 갈 때 가더라도 한 가지 물음세.”
“뭐야?”
“자네 진짜 정체가 뭔가?”
내 진짜 정체라…….
일순, 나는 당혹스러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래.
지금쯤 나는 다시 한번 내 정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생 후, 지금까지의 내가 소윤 애비이자 전직 사냥꾼이며 ‘역’ 속성을 사용하는 진소천이었다면 앞으로의 나는 ‘소천문’을 이끄는 일문의 문주이며, ‘역’ 속성에 ‘뢰’ 속성까지 개방한 두 가지 ‘자연결’ 속성을 다루는 자연결의 권위자, 강호의 절세고수, 혜성처럼 장안에 나타나 일약, 섬서 전체로 세력을 불려 나가는 잘나가는 무림인이 될 것이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또 달라진 셈이다.
“진소천.”
하지만…….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는 여전히 진소천이고 또 소윤 애비다.
훗날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인생을 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가 돼도 나는 여전히 소윤이 아빠 진소천일 뿐이니 내 본질은 언제 어디서든 변하지 않는다.
“허……. 결국 자네는 정체조차 알려주지 않는군.”
“영감. 정체라는 것도 결국은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무당파의 일대제자면 어떻고, 마교의 간부면 또 어때. 나는 진소천일 뿐이고 영감은 그냥 영감인 거지.”
“……멋진 한 마디군. 자네는 무공뿐만 아닌, 심계에서도 승리한 셈이야.”
노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천길 가기 전, 자신의 갈 길을 미리 훑어보는 걸까?
아무튼 대체로 내 눈에 노인은 그렇게 비쳤고 나는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저벅저벅 다가섰다.
“노부의 이름은 백귀호. 즐거운 비무였네.”
그때, 노인이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름을 발설했는데 놀랍게도 나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살마존(殺魔存), 백귀호.
내가 아는 백귀호는 소싯적 사도맹 출신으로 중년에 들어 맹을 탈퇴하고 정처 없이 떠돌다 흑도에서 활약하던 악인이다.
싸움 좀 한다 싶었더니, 역시 근본 있는 양반이었네.
츠츠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노인을 때려죽이기 위해 하단전에서 용암처럼 끓는 ‘뢰’속성의 진기를 주먹으로 끌어올렸다.
이제 막 개문(開門)한 힘이라 그런지, 그 힘은 날뛰고 싶어 미치겠다는 듯, 화르르 몸을 데웠는데 아쉽게도 내 육신은 지친 상태라 이 일격을 끝으로 나는 최소 칠주야(일주일) 간 정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덜덜덜-.
내 주먹에서 번갯불이 타닥! 튀어 오르자, 노인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필시 죽음의 공포를 맞닥뜨린 거겠지만, 그 공포를 그래도 태연히 받아들이려는 모습에서 나는 새삼, ‘무인의 혼’을 느꼈다.
‘죽는 순간에도 이름값 하는 영감이네.’
쐐애액-.
내 ‘질풍권’이 번갯불을 머금고 쇠망치처럼 묵직하게 노인의 머리통으로 날아갔다.
* * *
“이, 이게 대체 무슨?”
“세상에나…….”
“미X!”
“이게 다 뭔 일이래?”
흑사회의 ‘서안’ 분타 격인 ‘장수상단’에 당도한 일동, 이동, 삼동 형제와 석연우, 더불어 소천문의 문도가 된 십여 명의 인물과 장안에 머물던 석가장의 인물 전원은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 누구?”
그들을 맞이한 건, 다름 아닌 흑사회의 잔당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무릎을 꿇고 손을 번쩍 든 채, ‘벌’을 서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옆에는 하늘을 보고 대(大) 자로 뻗어 코까지 드르렁거리는 진소천이 존재했다.
챙챙챙-!
그러거나 말거나 소천문과 석가장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병장기를 꺼내든 후 조속히 흑사회로 진입해 벌(?)을 서는 잔당들을 포위하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형님은…… 어쩌다가 저렇게…… 주무시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물어가는 석연우가 본인 스스로도 황당한지 얼굴을 붉혔다.
그도 그럴 게, 이건 누가 봐도 진소천이 흑사회에 포위된 게 아닌, 흑사회가 진소천에게 ‘벌’을 받는 모양새니…….
“저…… 그게.”
피떡이 된 채, 꿇고 있던 잔당 중 하나가 석연우의 물음에 답했다.
새벽부터 대뜸 찾아와 거래를 트겠답시고 문지기를 개 패듯, 패버린 진소천.
서안 분타에서 활동하는 흑사회 150인을 무기 하나 없이 제압한 진소천.
흑사회 전체를 총괄하는 수석장로 혈도마인, 곽성호를 패 죽여버린 진소천.
흑사회의 회주 살마존, 백귀호를 패 죽여버린 진소천.
대충 이렇게 사람을 패거나 죽여버린 진소천의 일화와 이후, 잔당들을 무릎 꿇리고 손까지 번쩍 들게 한 채, 코 고는 중인 진소천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지자, 석연우 일행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렷다?”
“사실입니다.”
“한데 형님이 자는 와중에도 무릎 꿇고 손까지 들고 있는 이유가 뭐야?”
“진 대협께서 이르시길, 우리가 벌 받는 자세를 조금이라도 흩트린다면 당장 일어나셔서 머리통을 부수겠다 선언하신지라…….”
“형님이 잠드신 지는 얼마나 됐냐?”
“한 시진이 넘었습니다.”
“후…….”
석연우는 당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막막했다.
‘형님이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혈도마인 곽성호와 살마존 백귀호를 하루아침에 패 죽여버릴 줄이야.
‘이건 강호 전체가 놀랄 만한 사건이다. 아버지나 태사부님께 이 사실을 알리면…… 당장 형님 정체를 캐려 할 텐데.’
그렇다.
진소천이 범인과 차원이 다른 ‘진짜’라는 건 애초에 파악한 석연우다.
해서, 진소천이 단신으로 ‘흑사회’를 박살 내버린 사실 자체가 그를 경동시킨 건 아니다.
다만, 석연우는 사고를 쳐도 너무 크게 친 진소천이 향후 무림의 내홍에 깊이 연관될 것이 걱정되었고, 또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잡음과 진소천의 ‘들이박고 보는’ 성정이 충돌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를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불문에 부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 모르겠다.’
반면,
“크크크. 역시 우리 큰형님이라니까!”
“와! 흑사회를 혼자 박살 낼 줄은 몰랐네? 이 양반 진짜 물건 맞잖아?”
“낄낄. 형님들. 우리가 큰형님을 보긴 제대로 본 모양이우. 아니, 뭔 소천문 개파하자마자, 큰 건수를 물어버리시네. 일동, 이동 형님. 우리 이러다 나중에 구파일방에 이름 올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수?”
일동, 이동, 삼동 형제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진소천을 보며 박장대소했는데 석연우는 그런 강 씨 형제와 진소천이 어떤 면에선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좋겠네요, 좋겠어. 하여튼 대단하신 분들이라니까. 어휴!”
석연우가 볼멘소리를 털자,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강 씨 형제는 서로 바라보며 고개만 갸웃거렸다.
‘저 새끼, 왜 저래?’
‘별 희한한 놈일세.’
‘확, 그냥 형님 아니면 쌍욕 박아 버릴까 보다.’
* * *
꿈을 꿨다.
아주 긴 꿈을…….
다행히 나는 ‘꿈’을 꾸는 와중에도 살인을 연습하는 ‘자각몽’ 훈련을 3년 이상 받았고 나중에는 이 분야에 나만 한 전문가가 없어 직접 살수회 애새끼들을 가르쳤기에 꿈속에서도 꿈을 꾸고 있음을 명확히 인지했다.
그런데도 나는 꿈을 인위적으로 설계하고 운용하며 창조하는 행위를 지양한 채, 그저 내 의식과 무의식의 편린이 꿈이란 수단으로 온전히 펼쳐지는 것을 방관했다.
‘재밌네.’
그랬다.
내 꿈은 정말이지 재밌고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온산이 형형색색 만개한 꽃으로 가득 찬 무릉도원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과실 열매도 따 먹고 100살은 넘게 산 것 같은 거북이와 폭포에서 헤엄도 치고 그러다 지치면 계곡에 군불 피워 고기도 구워 먹고…….
때마침, 소윤이가 ‘아빠야!’ 하면서 뛰어오면 소윤이를 번쩍 들어 허공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듣고.
밤이 깊으면 산세가 훤히 보이는 팔각정에서 동벽 선생, 동동이들, 연우와 함께 술잔도 기울이고…….
그렇게 세상 달관한 신선처럼 꿈을 즐기고 있자니, 굳이 꿈의 전개에 끼어들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하나 ‘행복’으로 점철된 내 꿈은 끝까지 갈 수 없었다.
‘…….’
느닷없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세상에 어둠이 드리울 때쯤, 내 앞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7호. 행복한가?」
그 사람은 교주였다.
「행복하오.」
나는 교주에게 그렇게 답했다.
교주의 꼬락서니를 보니 심기가 뒤틀리고 당장 꿈에 개입해 모든 걸 부수고 싶었지만, 왠지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 자연스레 답했다.
「보고싶군.」
「이렇게 보고 있잖소, 교주.」
「자네를 이렇게 만나고 싶진 않네. 이곳은 자네 의식이 만들어 낸 환상세계幻想世系 아닌가.」
「물론 이곳은 꿈속 세상이오. 하나, 이 꿈은 내 소망을 표현한 공간이고, 나는 종내에 이런 삶을 살 거요.」
「아니야. 자네 같은 사람은 결코, 이런 곳에서 허송세월할 사람이 아니야. 나는 자네를 자네보다 잘 알고 있어. 7호 그대는 날 다시 만날 걸세. 그리고 그대가 가진 ‘힘’. 다시 만천하에 드러낼 거야.」
「틀렸소, 교주.」
「…….」
「물론, 나는 힘을 되찾고 세상에 나아갈 거요. 또한, 언젠가 당신을 만나겠지. 하나, 이런 삶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요. 적어도 내겐 천하를 쟁취하겠단 당신의 얄궂은 야욕보다 훨씬 더 값진 가치랄까.」
「후후후…. 안 본 사이에 현인이 되었군.」
「나는 원래 현인에 가까운 사람이었소. 당신도, 마교의 누구도. 나 스스로도 그걸 몰랐을 뿐이지.」
「7호. 그만하고 이제 내게 오게.」
「아직 준비가 안 되었소.」
「우린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벗이었어. 한데, 무슨 준비가 필요하단 말인가?」
「당신을 죽일 준비지.」
「날 죽일 수 있겠나?」
「교주.」
「…….」
「기억하시오.」
「무엇을?」
「나는 당신보다 무공이 약하고 당신은 당대 무림의 가장 뛰어난 무인이지. 하나, 나는 한 번도 죽여야 할 대상을 못 죽인 적이 없소. 나는 고금제일살수고 그건 당신이 만들어 준 거요.」
「7호…….」
「당신은 언젠가 당신이 만든 ‘고금제일살수’의 손에 죽게 될 팔자요.」
시원했다.
비록 환영일 뿐이지만 그런데도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니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고 숨이 탁 트인달까?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는군. 다행이야.”
그때.
나는 자연스레 꿈을 깨고, 눈을 떠, 날 지그시 바라보는 동벽 선생의 얼굴과 침상을 향해 달려오는 소윤이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