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58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58화
#57화
“주 영감님. 같이 가시겠습니까?”
“소형제. 그간 자네랑 한바탕 신나게 놀았으니 이젠 다른 곳에 들를 생각이야.”
“어디 가시게요? 다시 무당산으로 돌아갈 생각이십니까?”
“무당산이 질려서 하산했는데 벌써 가면 재미없지. 그냥 발길 닫는 대로 돌아다녀 보지, 뭐.”
그간…….
주 영감과 옥신각신하면서도 정이 든 모양인지, 막상 헤어질 때가 되자 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주 영감에게 여러모로 고맙다.
만약 주 영감과의 기연이 닿지 않았다면 나는 노가살수문을 이처럼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주 영감과의 대련을 통해 나름 소기의 ‘성찰’도 얻었다.
사실, 투덜거리고 가끔 타박하기도 했지만, 이번 여정에서 만난 ‘괴도사 주영천’과의 인연은 내게 큰 행운이었던 셈이다.
“어르신. 언제든 기별 주십쇼. 다시 말씀드리지만, 장안의 소천문입니다. 제가 거기 문주니 소천문에 연통을 주시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흐흐흐. 알겠어, 소형제. 그리고 말이야.”
“말씀하세요.”
“고맙네.”
“네?”
“내 나이쯤 되면 인생이 허무하다는 걸 느끼게 되지. 한데, 또 늙으면 이리저리 계산해야 할 것도 많고, 자중해야 할 일도 많아서 삶이 더 따분해지거든?”
“아…….”
“한데, 소형제 덕분에 재밌는 일을 경험했으니 어떻게 안 고맙겠어? 게다가 소형제는 정말 대단한 무재야. 아마 머지않아 본파의 ‘진후’ 녀석이랑 후대의 제일을 놓고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
“진후라면…… 백도구봉 중 한 사람인?”
“응. 진후를 포함, 백도의 젊은 놈 중 가장 잘난 놈들을 ‘백도구봉’으로 부른다던데. 아무튼 진후 그 아이가 현 무당의 대표 후기지수니 장차 장문인이 될 거야.”
백도구봉…….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특히 연우 같은 백도의 젊은이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는 백도의 아홉, 후기지수들.
그중에서도 진후는 소림의 각원대사와 함께 제일을 다투는 무재라 했으니, 무공이 대단할 터였다.
그러나,
“뭐…… 칭찬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나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엥? 소형제. 왜 그러나? 진후는 동년배 중 최강이고 소형제보다 나이도 몇 살 많을 텐데. 그와 비교하는 게 성에 차지 않는 거야? 진후 녀석은 꽤 강하다고.”
“알지요. 현 무당파의 미래를 짊어진 제자인데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한데?”
“음…….”
난감하네.
뭐라고 해야 할까?
‘애당초 백도구봉 같은 새끼들은 맞수로 생각도 안 합니다! 라고 말하면 주 영감도 기분이 좋진 않을 텐데….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도 내 성미가 아니거니와 주 영감에겐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나는 그냥…… .
“하나 저한텐 어림도 없죠.”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말을 무작정 씨불여댔다.
“헤헤- 소형제. 물론 자네도 강하지. 앞으론 더 강해질 거고. 그래도 진후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소형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해. 걔들은 정말 밥 먹고 수련만 하거든. 아마 지금도 훗날의 일황삼존오왕이 되기 위해 서로 견제하며 죽도록 무공만 파고 있을 거야. 만만하게 보면 안 돼.”
“만만하게 안 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제가 그들을 이긴다는 것도 아니고.”
“…….”
“다만…….”
“응?”
“아닙니다.”
“왜 말을 하다 마는 거야, 소형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고 저나 그 사람들이나 같은 무림인이니 언젠간 만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때 두고 보면 될 일입니다.”
후…….
내가 말을 하고도 나는 내 패기에 순간 지릴 뻔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잘난 척하는 인간은 아닌데…….
희한하게 주 영감 앞에선 꿀리기 싫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주 영감이 당대에 손꼽히는 절대 고수 중 한 명인데다, 무공에 대한 내 목표가 아득히 높다 보니, 백도구봉과 비교당하는 순간, 평가절하당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전생 기준이면 나도 백도구봉이 아니라 일황삼존오왕 급과 비교돼야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황삼존오왕에서 오왕 중 한 사람인 화산파 장문인 청진도장을 내 손으로 죽이기도 했고.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는…… 하…….
“하하하! 소형제. 정말 멋있군. 난 소형제의 그런 점이 너무 좋더라.”
다행히 주 영감은 내 패기에도 박장대소할 뿐이었다.
“저도 어르신의 그런 화통함이 좋습니다.”
“헤헤- 소형제. 나 부탁이 있는데.”
“뭔지요?”
“나는 지금부터 강호 천하를 주유할 생각이야. 그때마다 소형제와 겪었던 일들을 퍼뜨리고 싶은데 말이지.”
“그런데요?”
“친한 척 좀 해도 되지? 뭐랄까? 미래의 절세 고수를 점찍어 놓고 그 성장을 바라보는 늙은이의 소소한 재미랄까? 아무튼 그러고 싶어서 말이야. 흐흐흐.”
“아. 우리 이미 친한 사이 아니었습니까?”
“하하하! 맞지, 맞지. 우린 이미 친한 사이지. 우린 형제야!!”
“물론입니다. 저도 어디 가서 어르신 이름 좀 팔겠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군요.”
“가재 잡고 도랑 치는 격이기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일타쌍피!”
“일절만 하시죠.”
“헤헤-”
“아무튼…….”
나는 주 영감을 향해 공손히 포권지례 올리며 슬쩍 고개도 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를 표출한 것이었다.
그러자,
“잘 가! 소형제!!”
주 영감이 아이처럼 해맑은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보중하십쇼, 어르신. 꼭 다시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주영천 영감의 기연은 잠시간 작별을 맞이했다.
* * *
“소윤아!”
“아빠야!”
장안에 당도하기 무섭게 집으로 향해 소윤이 얼굴부터 봤다.
다행히 소윤이는 안 본 사이에도 변함없이 밝은 모습을 유지한 채였다.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응. 바빠서 그랬지. 미안하다.”
“괜찮아! 미안할 게 뭐 있어? 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일인데.”
“뭐? 그런 말은 누가 가르쳐 줬냐?”
“일동 삼촌이 그러던데? 아빠가 집을 비우고 타지로 출장 간 건, 다 우리 가족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그런 거라고.”
후…….
강일동.
일단 한 대 예약이다.
“소윤이 너는 어리니까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에이! 나 안 어리거든?”
“네 살은 어린 거야, 소윤아.”
“이제 며칠 있으면 나 다섯 살이야, 아빠.”
소윤이 말을 듣고서야.
나는 문득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새삼 깨달았다.
종남산에서 장안으로 처음 들어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저물다니…….
역시 세월이란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
“소윤아. 다섯 살도 어리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너는 그냥 재밌게 놀고 맛있는 거 먹고, 편하게 자고. 말인즉슨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면 된다는 뜻이다. 그게 다섯 살 아이의 역할이야.”
“히히- 그럼 소윤이는 내 역할을 충분히 하는 거네? 게다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할아버지가 주는 영단도 열심히 먹으니까!”
“영단?”
“응. 소윤단 말이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의문스러움에 나는 고갤 갸웃하다 이내 소윤이의 손목을 진맥해봤다.
소윤단이라.
일단 뭐가 됐든 보약의 일종인 거 같은데…….
‘뭐지?’
일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약동하는 소윤의 맥박에서 강대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동시에 세맥 구석구석에 한 점 티 없이 맑고 순수 정양한 ‘기운’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윤아. 할아버지가 준 영단 이름이 소윤단인 거야?”
“웅. 할아버지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드셨대, 아빠.”
각고의 노력이란 말도 할 줄 알고…….
이게 4살짜리 어휘력이 맞나?
어이가 없지만, 천재 키우는 애비 입장에선 일상다반사니 차치하고.
우선, 동벽 선생이 먹였다는 ‘소윤단’이란 영단은 이름만 들어도 소윤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부작용은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데, 주목할 점은 바로 영단에서 기인한 ‘기운’에 있었다.
영단이란 ‘의술’과 ‘연단술’을 조합하여 특정한 ‘힘’을 파생시키는 인위적인 ‘약’의 일종.
해서, 복용자가 얻게 되는 공력 또한 영단의 성질에 따라 특정한 색채를 띠기 마련인데…….
소윤이가 복용한 영단의 힘에선 그런 색채가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예컨대 천하제일 영단이라 불리는 소림의 ‘대환단’ 같은 경우, 불가(佛家) 무공 특유의 색(色)이 공력에 깃들고, 화산파의 자소단이나 무당파의 태청단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소윤단의 힘은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순수한 ‘기운’을 소윤에게 약동시키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윤아. 일단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응?”
“소윤단이란 거. 열심히 먹어라.”
이건 진짜 개꿀 중의 개꿀이니까.
“헤헤. 알겠어, 아빠. 근데 아빠야!”
“응?”
“약속 잊지 않았지?”
“무슨 약속?”
“다섯 살이 되면 소윤이한테 무공을 가르쳐 주기로 했잖아.”
“아…… 그랬지.”
“그럼 이제 나도 곧, 무공을 배우겠네?”
“그래. 가르쳐 줄게.”
“신난다! 나도 고수 될 거야!!”
“근데 소윤아. 너 정말 무공을 배울 수 있겠어?”
“응?”
“무공을 배운다는 건 힘든 일이거든.”
“걱정 마, 아빠야.”
“…….”
“소윤이는 뭐든 잘할 수 있어요.”
우리 소윤이가 이렇다.
매사 자신감이 넘치고 실제로 뭐든지 하면 잘하는 아이.
중원 최고의 기재…… 아니, 고금제일기재가 바로 우리 소윤이란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배시시 웃는 소윤이 얼굴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 독하게 먹자.’
딸내미라고 수련을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원래 무공이란 고통 없이 얻을 수 없고 나는 이 진리를 금과옥조로 여기는바.
애비된 입장에서 진심을 다해…… 소윤이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수라 나찰 수련법’은 지양하는 게 맞지 않을까?
* * *
동동이들과 문도들, 연우의 얼굴을 다시 본 것은 장안으로 돌아온 지 보름이 지난 후였다.
그 보름간 나는 소윤이와 놀다가 명상도 했다가 남은 문도들을 쥐잡듯이 잡아 ‘수라 나찰 수련’도 감행했다가…….
나름 재밌는 나날을 보냈는데, 반면 내 서찰에 산양으로 떠났다가 방금 돌아온 동동이 형제, 연우와 나머지 문도들은 안 본 사이 볼이 핼쑥해질 만큼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왔냐.”
“…….”
“…….”
“…….”
“…….”
“하늘 같은 문주님이 묻는데 왜 대답이 없냐?”
그러자…….
한동안 의미심장한 눈으로 날 주시하던 연우가 대뜸 말했다.
“형님.”
“뭐?”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뭐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노가살수문의 그 많은 재산을 착복하셨고, 또 어쩌다가 해괴한 소문이 산양 방방곡곡에 퍼진 거냔 말입니다.”
“뭔 소린지.”
나는 대충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엔 일동이 입을 열었다.
“문주님! 어찌 됐든 덕분에 평생 할 고생 다 했소. 노가장을 처분하고 정리하는 중에도 하루에 기십 명씩, 산양의 무인들이 찾아와 질문을 퍼붓습디다. 대체 당신네 문주의 정체가 뭐냐고.”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요. 하도 어이가 없고 할 말도 없어 나오는 대로 지껄였지.”
“그러니까 뭐라고 했는데?”
“우리 문주의 정체는…….”
“…….”
“소윤이 아빠라고 했소.”
일동의 말에 나는 그만 킥킥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날 지켜보는 일동도 우스웠는지 피식 조소했고, 이내 우리 두 사람의 웃음이 장내 모든 이들에게 퍼져나갔다.
한 마디로 이 황당한 순간에…….
소천문은 웃음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물론 단 한 사람.
연우만 빼고 말이다.
“후……. 형님도 형님이지만. 정말 여기 사람들은 미쳤습니다, 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