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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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92화
신룡전설 4권 - 17화
문득 왕무적은 어째서 진평남이 자신에게만 이렇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백 소저야말로 진 소협의 상처를 치료한 사람 아닙니까? 그렇다면 백 소저 역시도 은공이 아닌가요?”
왕무적의 물음에 백서린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아무리 상처를 치료했다고 하더라도 왕 소협의 천령신단이 아니었다면 진 소협은 애초부터 치료를 할 수도 없었을 테죠. 그래서…….”
“그래서?”
말을 기다리는 왕무적의 모습을 보며 백서린이 배시시 웃었다.
“왕 소협의 은혜를 먼저 갚은 이후에 제게 보답을 하라고 했어요. 헤헤!”
“…….”
백서린의 말에 왕무적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진평남과 그녀 사이에 어떤 모종의 음모가 있었음을!
“백 소저… 치사합니다.”
“헤헤!”
웃음으로 넘기는 백서린의 모습에 왕무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 혈림을 잠시 떠났었던 왕정이 언제 돌아왔는지 곁으로 다가왔다.
“오 일 후에 혈림을 떠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그리고… 떠나는 건 당신 혼자요.”
이미 어떠한 결심을 굳혔는지 왕정의 음성은 조금의 여지도 없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게 무슨…….”
“나는 은공을 따라갈 것이오.”
백서린이 왕정에게 반박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보다도 진평남이 한발 빨랐다.
왕정은 자신의 앞으로 나선 진평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왕무적에게로 돌리며 다시 말했다.
“혈림을 떠나는 것은 당신뿐이오. 명심하도록 하시오. 그럼 오 일 후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소.”
턱!
왕정이 몸을 돌리자 그의 어깨를 진평남이 붙잡았다.
“나 역시 은공을 따라 혈림을 떠날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시오.”
진평남의 말에 왕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피식!
왕정의 입가가 묘하게 비틀렸다.
“죽고 싶은가?”
“……!”
진평남은 왕정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거대한 기세에 눌렸다기보다는 그의 말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진평남이 자신의 기세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자 왕정은 제법이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 얼굴 표정 역시도 비웃음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당장 손부터 거둬라.”
“…….”
왕정의 말에 진평남은 말없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이 오기라는 것쯤은 이곳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미련한…….”
쿵!
먼지가 치솟으며 진평남의 상체가 왕정의 발 아래에 처박혔다.
“진, 진 소협!!”
백서린이 놀란 음성으로 진평남을 불렀다.
순식간에 일어날 일이었다. 말을 하던 왕정이 손을 들어 진평남의 손목을 잡은 후, 그의 팔과 몸 전체를 비틀어 바닥에 처박은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은 사람은 왕무적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은공! 이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진평남이 몸을 일으켰다.
“제법이군.”
큰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몸을 일으켜 자신을 노려보는 진평남의 모습을 왕정은 새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묘한 비웃음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 알아서 하겠다? 어떻게 할 거지?”
조롱을 하듯 묻는 왕정의 모습에 진평남은 말없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하하하! 용기는 가상하군!”
왕정은 그렇게 웃고는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는 말했다.
“재주껏 덤벼라.”
“…….”
이 정도면 누구라도 자존심이 상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이미 왕정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몸소 겪은 진평남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며 침착하게 왕정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빨리 덤벼라!”
그 모습에도 불구하도 왕정은 비릿한 웃음만 짓다 눈까지 감아버렸다.
“왕 소협! 이대로 보고만 있을 생각인가요?”
백서린은 노골적으로 진평남을 조롱하는 왕정의 모습에 분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 역시도 왕정이 진평남을 한순간에 바닥으로 처박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기에 은근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녀에게는 독이라는 아주 무서운 수단이 있었지만, 왕정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더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왕무적은 여기에서 자신이 나서면 진평남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힐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만 하더라도 저런 상황에선 그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러다 진 소협이 위험해지기라도 한다면 어쩔 생각이에요?”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제야 백서린은 최후의 상황에선 왕무적이 나서서 일을 해결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왕 소협을 겪었음에도 안절부절못한 모습이라니… 에구.’
백서린은 그제야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진평남과 왕정의 모습을 바라봤다.
“도대체 언제쯤 덤빌 생각이냐?”
눈까지 감은 채 기다리기 지겹다는 듯 말하는 왕정의 모습에 진평남은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에 작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기합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하아앗!”
늦었지만 이제야 진평남은 그다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후아앙!
강맹한 주먹은 단숨에 왕정의 얼굴을 짓이겨버릴 것만 같았다. 주먹을 날리는 속도나 그 위력이 천령신단을 복용하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류고수는 일류고수일 뿐!
왕정은 눈을 감은 채 슬쩍 고개를 틀었다.
후우욱-!
아슬아슬하게 진평남의 주먹이 왕정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왕정은 여전히 눈을 뜨지도 않고 말을 하며 벌렸던 오른팔을 휘둘렀다.
“이 정도냐?”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진평남의 얼굴이 우측으로 홱!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입 안에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여전히 왕정은 진평남을 조롱하고 있었다.
“으아아압!!”
조금 전보다 더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진평남은 주먹을 휘둘렀다. 보다 빠르고 위력적이었지만, 왕정에게는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지 여전히 지루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가볍게 틀기만 했다.
짝!
“하아아압-!!”
짝!
“이야아압!!”
짝! 짝!
양쪽 볼과 입술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코에서도 피가 흘러나와 진평남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고, 그럴 적마다 왕정의 손은 정확하게도 그의 볼을 후려쳤다.
짜악-!
“큭!”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와 함께 단 한 번도 신음을 흘리지 않던 진평남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쫘아악!
“으윽!”
털썩!
다시 한 번 이어진 왕정의 손짓에 비틀거리던 진평남의 신형은 기어코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천천히 눈을 뜬 왕정은 몸을 일으키는 진평남의 모습에 피식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겨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컥!”
진평남이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익힌 유일한 무공인 철왕호신강기 때문이었지만, 격이 다른 왕정에게는 그마저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퍼억!
“크윽!”
가슴을 얻어맞은 진평남의 신형이 뒤로 굴러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생각 같아서는 달려가서 그의 몸을 자근자근 밟아버리고 싶은 왕정이었지만 왕무적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쯤에서 멈춰야만 했다.
“오 일 후에 다시 오겠소.”
왕정은 왕무적에게 다시 말을 하고는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채 세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나는 은공을 따라간다.”
어느새 몸을 일으키고 서 있는 진평남의 모습에 왕정은 질렸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왕무적으로 인해 심하게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짜증날 뿐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있어.”
진평남은 소매로 입과 코에서 흘러나온 핏물을 스윽 닦고는 왕정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은공을 따라간다.”
“하하하하! 그렇게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지!”
왕정의 눈에서 살기가 솟구치자 잠자코 있던 왕무적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만 하시오.”
왕무적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왕정은 살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함부로 그를 도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짙은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은공!”
진평남의 외침에도 왕무적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가겠다는 이들을 굳이 막아야 할 이유라도 있소?”
왕무적의 물음에 왕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어딘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왕정의 물음에 왕무적은 슬쩍 고개를 돌려 백서린과 진평남을 바라봤다. 어느 한 사람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왕무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왕정을 향해 말했다.
“알면서도 가겠다는 이들을 어쩌겠소.”
왕무적도 백서린은 몰라도 진평남은 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지만, 그의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백서린과 같은 경우는 이미 혈천신교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이야 자신으로 인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자신이 이대로 훌쩍 떠나버리면 과연 그들이 백서린은 가만히 둘 것인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백 소저만이라도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
왕정은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왕무적에게 내밀었다.
“……?”
“당신이나 저들이나 이들 중 한 사람은 대신할 수 있어야 할 것이오. 당신이야 어차피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도 이것이 최선이니 어떻게든 잘 해보시오. 하지만! 그렇지 못할 시에는 나도 어쩔 수 없소.”
말을 마치고 등을 돌리는 왕정을 향해 왕무적이 물었다.
“못할 시에는 못 가는 것이오?”
“그렇소.”
“강제로 가겠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왕무적의 물음에 왕정이 고개를 돌리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모두 죽을 것이오.”
“…….”
“자만하지 마시오. 당신의 능력을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힘이 강하다는 것이니까. 결정은 어차피 당신이 하는 것이니 잘 생각하길 바라오. 닷해 후에 보도록 합시다.”
왕정은 신법을 펼쳐 빠르게 사라졌고, 왕무적은 손에 들린 종이뭉치를 바라보았다.
만박귀자를 통해 혈림으로 올 때처럼 종이뭉치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그 그림 밑에 신상내역과 제법 자세하게 그 사람의 특징과 버릇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