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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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91화
신룡전설 4권 - 16화
第十章. 혈천신교로……. (1)
“팔로용비검과 뇌정칠절창이라…….”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웅얼거리듯 허공에 맴돌았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속하(屬下)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결과, 그의 무공은… 측정이 불가라 여겨집니다.”
이번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게 퍼져 나왔다.
“측정이 불가라…….”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50대 후반의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건 그가 항상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할 적마다 일삼는 하나의 버릇이었다.
‘오도무적도와 천마혈풍장으로도 모자라서 팔료용비검과 뇌정칠절창까지…….’
한참이 지나서야 남자가 조용히 눈을 떴다.
“분명히 마검 야율제의 팔로용비검과 절대신창 파도옥의 뇌정칠절창이 확실하더냐?”
이미 세 번이나 확인을 했음에도 남자는 또다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이는 그만큼 그로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세 번이나 확실하다 말을 했음에도 대답하는 사람은 조금의 짜증이나 귀찮은 기색 없이 성심성의껏 답했다.
“뇌적심 장로가 팔로용비검임을 확신했고, 그가 스스로 뇌정칠절창이라고 분명히 말을 했습니다.”
“으음… 뇌 장로가 함부로 허언을 할 사람은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린 남자.
탁탁탁.
팔걸이 부분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데리고 오너라.”
“하나, 그의 무공은…….”
남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왕정은 차마 ‘장로님을 뛰어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켜야 했다.
그러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는 듯 남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네 말대로라면 내가 아니라 대장로라고 하더라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가 반드시 필요하다.”
“…….”
“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하나, 본교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놈이 제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당해낼 수 없는 법. 그리고… 본교엔 그를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고수가 존재하고 있으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다.”
남자, 혈천신교의 2장로이자 왕무적을 지금까지 시험해온 석당진은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의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왕무적의 경이적인 무공에 다소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혈천신교를 위해서 그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고, 그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얼마든지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고수가 혈천신교 내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당진의 어조에 왕정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면, 곧바로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왕정의 대답에 석당진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강경파 쪽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으니 섣부르게 움직일 수는 없지. 역용공을 펼칠 줄 안다지?”
“예. 속하조차도 그가 역용술을 펼치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왕정의 대답에 석당진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잡술(雜術)까지도 능하다니. 어쨌든 좋군. 보름 후, 풍 장로가 무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외당(天外堂)의 무인들 중 직접 선별한 이들을 혈외원(血外院) 내에 배치한다고 하니, 그들 중의 하나로 위장을 시키는 것이 좋겠군.”
왕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씀은 왕무적을 강경파 쪽으로……?”
석당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고로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 더군다나 지금 강경파는 뇌 장로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혼란스러워진 상황.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정은 그렇게 말을 하곤 몸을 일으켰다.
막 방을 빠져나가려던 왕정이 돌연 몸을 돌리며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왕정이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의 곁에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고집이 워낙 강해서 쉽게 떨어트리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만.”
석당진이 처음으로 눈을 찌푸렸다.
“성가신 놈이로군. 아무리 강경파 쪽 분위기가 혼란스럽다고 하더라도 풍 장로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니, 그들이 천외당에서 선별한 무인들과 똑같지 않다면 절대로 들여서는 안 된다.”
왕정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고개를 깊숙이 숙인 왕정은 방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석당진이 웃음을 머금었다.
“현인정 장로, 아마도 지금쯤 당신 꽤나 머리가 복잡할 것이오. 나 역시도 그저 혈천창명대에 약간의 타격만 주리라 예상했는데, 설마 뇌 장로를 죽일 줄이야…….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오. 아마도 당신은 죽기 직전까지 앞으로 내가 준비한 것보다 놀란 경험은 맛보지 못할 것이오. 기대하고 있길 바라오. 후후후…….”
왕무적이 혈림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5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왕무적이 없음에도 유가보는 묘가장의 공격을 훌륭하게 막아낸 것도 모자라서 대승리를 이끌어내면서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켜 묘가장을 압박하는 상황으로까지 변화시켜 놓았다.
그 모든 원동력은 왕무적이었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애초부터 묘가장과 유가보의 전력 차이는 백중지세(伯仲之勢)였다. 그럼에도 묘가장이 유가보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뒤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혈천신교의 강경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왕무적에게 뇌적심과 혈천창명대가 완벽하게 몰살을 당하면서 혈천신교의 강경파는 단번에 발을 빼버렸고, 묘가장은 그들 나름대로 큰 심적 타격은 물론, 지금까지 혈천신교만 믿고 쏟아 부었던 자금력까지 크게 흔들리면서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묘가장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기반을 유가보에 내주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런 승기를 잡은 입장에서 유가보가 그간 고용했던 혈림의 무인들을 순순히 놓아줄 리 없었다.
유가보에서는 약속했던 금액보다도 많은 보수를 제시하여 혈림의 무인들을 더욱 오래 고용하기로 했고, 혈림의 무인들은 유가보에서의 대우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돈도 더 받고 일도 한결 쉬워진 마당에 마다할 이유가 하나 없었다.
그로 인해서 아쉬워진 사람은 왕무적뿐이었다. 이소요가 돌아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그의 계획이 완전히 엇나가버렸기 때문이다.
혈림으로 돌아오고 나서 왕무적이 한 일이라고는 백서린의 손에 이끌려 혈림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언제까지 제 뒤만 따라다닐 생각이십니까?”
왕무적은 자신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거한의 사내로 인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
거한의 사내는 별 말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왕무적의 뒤를 따라다닐 뿐이었다. 그렇다고 귀찮게 구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없이 뒤를 따르며 왕무적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움직일 뿐이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많은 거리에선 앞장서서 길을 텄고, 누군가가 왕무적과 백서린에게 시비를 걸면 대신 나서서 싸움을 하려는 것과 혈림의 저잣거리에서 무언가 물건을 사면 그 짐은 모조리 그가 짊어질 뿐이었다.
“대답을 하십시오.”
“…….”
왕무적의 대답을 구하는 말에도 거한의 사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백서린이 곁에서 입을 열었다.
“왕 소협, 잊으셨어요?”
“예?”
왕무적이 무슨 말이냐는 듯 백서린을 바라보자 그녀가 방긋 웃고는 대답했다.
“왕 소협이 진 소협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한은 절대로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겠다고 미리 말을 했었잖아요.”
“…….”
그제야 왕무적도 생각이 난다는 듯 자신의 뒤에 태산과도 같이 버티고 선 거한의 사내, 진평남을 바라봤다. 자신처럼 뜻을 절대로 쉽게 굽히지 않을 것만 같은 사내의 고집이 그의 얼굴에서도 보였다.
아니, 어쩌면 진평남의 고집은 왕무적의 고집을 더욱 뛰어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왕무적은 물끄러미 진평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날 따라다닐 거요?”
하대에 가까운 말투이기에 그런 것인지, 경어가 아니기에 그러한 것인지, 시종일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진평남이 자신의 다짐을 밝힌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은공의 은혜를 갚는 길은 제 목숨을 바치는 것뿐입니다.”
굵직한 진평남의 음성.
왕무적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은혜라고 할 것도 없으니 이제 그만 하시오.”
“…….”
진평남은 그럴 수 없다는 듯 말 대신 왕무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알고 있겠소.”
왕무적이 그렇게 말을 하곤 몸을 돌리자 진평남이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은공.”
“도대체 내가 무슨 은혜를 주었다고 이러는 거요?”
“은공은 제게 두 번째 삶을 주셨습니다.”
“그건 누구라도 했을 일이오!”
진평남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누구도 은공과 같은 은혜를 베풀지는 않습니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소!”
“할 수 있다는 것과 이미 했다는 것이 바로 그들과 은공의 차이입니다.”
“…….”
한마디도 지지 않는 진평남의 모습에 왕무적은 졌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말을 해봐야 그는 고집을 꺾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진 소협의 뜻을 받아들이죠.”
백서린의 말에 왕무적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토록 거절을 하는 이유가 결코 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백 소저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이라는 듯 백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 소협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 평생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야…….”
“그간 제가 지켜본 진 소협은 왕 소협이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바쳐서 왕 소협을 찾아 헤맬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
백서린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 진평남의 고집이라면 그녀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왕무적은 어떻게든 그의 생각을 돌리려고 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