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75화
무료소설 신룡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75화
신룡전설 3권 - 25화
유가보에 모인 50명의 혈림 무인들 중에서 절정고수는 고작 10명뿐이었다. 10명도 많다면 많은 수였지만, 유가보 입장에서는 조금도 만족스런 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애초부터 절정고수들만을 모집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유가보엔 그만한 여유자금이 없었으며, 절정고수들만을 뽑는 경비 임무라면 위험수위가 특(特)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임무를 실행하다가 죽으면 돈 나갈 이유가 없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지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살아남으면 살아남은 이들에게 죽은 이들의 몫까지 넘겨줘야 한다.
즉! 어찌되었던 애초에 걸었던 보상금은 모두 지불해야 한다는 소리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점이 혈림을 그토록 단결되게 만드는 힘이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지만, 그건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추측도 크게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열흘 동안은 싫으나 좋으나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하니 통성명이나 합시다.”
사내의 말에 왕무적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까칠한 얼굴에 검은 머리카락을 특이하게도 짧게 자른 30대 초반의 사내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과는 다르게 웃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은 사내였다.
“왕무적이라고 합니다.”
“왕무적? 왠지 이름이 많이 낯이 익는다 했더니 요즘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신도황 왕무적과 이름이 같군. 난 이소요라고 하오. 나이는 서른둘이오. 나이가 몇이오? 사내끼리니 굳이 그런 물음이 실례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나도 미리 말을 했고.”
미소를 조금 더 진하게 그리는 이소요를 향해 왕무적도 빙긋 웃었다.
“스물넷입니다.”
“스물넷? 어린 나이에 벌써 절정고수 소리를 듣다니… 대단하군! 아! 나쁜 뜻은 없으니 곡해(曲解)하지는 말게. 그리고 내가 본래부터 입이 좀 짧은 편이니 그것도 이해를 좀 해주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왕무적의 대답에 이소요가 기분 좋게 대꾸했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이소요의 모습에 왕무적도 기분이 좋았다. 우선,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고, 그의 성격이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광서성 빙상 양문현 출신입니다.”
너무나도 자세한 답변이라서 그런지 이소요는 순간 두 눈을 멀뚱히 뜨고 왕무적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나는 강서성 횡봉(橫峰) 소양현(少陽縣) 출신이네. 강서성 혈림에서 생활을 한 지 벌써 삼 년째가 되어가네만…….”
“아…….”
3년이라면 꽤 긴 시간에 속한다.
더군다나 혈림에서의 3년이면 그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만큼 생존력이 강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자신의 실력보다 떨어지는 일을 맡으며 살았다면 3년이 아니라 30년도 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소요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왕무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요는 마땅히 자신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왕무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왕무적의 눈빛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웃으십니까?”
왕무적의 물음에 이소요가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자네는 강서성 혈림에서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됐나?”
“이번이 두 번째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역시 그렇군.”
“……?”
이소요가 웃으며 말했다.
“뭐,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이래 봬도 눈썰미가 좀 있는 편이거든. 그래서 웬만하면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은 잘 잊지 않는 편이지. 한데, 삼 년간 강서성 혈림에서 생활하면서 자네와는 마주친 적이 없어서, 자네가 강서성 혈림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아… 그렇군요.”
“뭐,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지. 하하하!”
이소요는 왕무적과 마찬가지로 유가보에 들어선 50명의 혈림 무인들 중에서 선별된 10명의 절정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열흘 동안 함께 유가보 제5내문(內門)을 지킬 동료이기도 했다.
유가보는 외원과 내원(內院)으로 이뤄져 있다. 외원에는 본래부터 유가보의 무인들인 외원 무인들의 거처와 일반 유가보 하인들의 거처, 연무장, 객실 등이 있었다. 외원에는 총 3개의 문이 있는데, 그것들을 각각 제1외문(外門), 제2외문, 제3외문이라 불렀다.
제3외문을 지나면 바로 내원이다. 내원엔 내원 무인들과 내원 하인들의 거처, 유가보의 주축인 유씨 성을 쓰는 직계 혈통들의 거처와 유가보에서 특별히 초청한 손님들의 거처인 심보각(心保閣), 유가보의 보주와 그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건물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물론 내원 역시도 외원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문을 지나야만 원하는 건물로 갈 수 있었다. 내원은 외원보다도 많은 총 5개의 문이 있었고, 그중 왕무적과 이소요가 가장 첫 번째 위치한 제5내문을 지키게 된 것이다.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번 일은 영 꺼림칙하군.”
달을 바라보던 이소요가 뜬금없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왕무적의 물음에 이소요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니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고, 결코 쉬운 일만 해온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소요의 말은 가볍게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혈림에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경험과 직감 등을 통한 통찰력도 뛰어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잘 모르는 왕무적은 그저 이소요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예.”
이소요는 왕무적의 행동에 또다시 피식 웃었다.
‘알 수가 없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소요에게 있어서 왕무적과 같은 인물은 처음이었다.
절정고수이면서 뭔가 모르게 강렬한 기세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번 일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누구라도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왕무적에게서는 어떠한 긴장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건가?’
이소요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그에겐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무적으로 인해서 그 자신이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왕무적의 물음에 이소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루하게 멍하니 서 있는 것보다도 서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곤란한 질문이 아니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돈에 목숨을 파는 것입니까?”
“에?”
왕무적의 물음에 이소요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어째서 자신의 목숨을 돈에 파는지 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돈에 목숨을 파는 것입니까?”
“…….”
이소요는 가만히 왕무적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혈림에서 생활을 해오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물음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왕무적의 모습에 이소요는 미안하다는 듯 가볍게 웃음을 지어주곤 입을 열었다.
“돈에 목숨을 판다? 으음… 확실히 그렇기는 하군!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무엇이 말입니까?”
“자네가 보기엔 돈에 목숨을 파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돈이 아니라 자유에 목숨을 팔았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지.”
“자유?”
이소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혈림의 모든 무인들은 자유를 갈망하네. 아! 물론 목적을 위해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도 있으니 그들은 제외하도록 하지. 어차피 그들은 진정한 혈림의 무인들이 아니니. 어쨌든! 진정한 혈림의 무인들은 자네가 생각하는 돈이 아니라 자유! 바로 그 자유에 목숨을 내던진 것이네.”
이소요의 말에 왕무적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돈이 아니라 자유라고…….”
“자네에게 있어서 자유는 무엇인가? 아니, 자네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저는 당연히……!”
대답을 하려던 왕무적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왕무적은 한 번도 자유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어딘가에 크게 구속당해 살았던 것은 아니다. 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소요는 왕무적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떠한 인간이든 자유로운 인간이란 있을 수가 없지. 인간이라면, 아니 생명체라면 반드시 무언가에 구속당해 있지. 단지 그것이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다는 것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
용을 잡아야 하는 운명.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을 찾아야 하는 운명.
확실히 이소요의 말대로 왕무적은 무언가에 구속당해 살아오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것이 자유를 속박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
“혈림에 모인 이들은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 한두 가지쯤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무언가를 벗어버리고 싶어서 모여들었다고 보면 옳을 거야.”
“이소… 형…….”
“편하게 ‘이 형’이라고 불러.”
“예. 그럼 이 형은 지금 자유롭습니까?”
“적어도 예전보다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렇다면……!”
말을 하던 왕무적이 어딘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러나?”
이소요의 물음에 왕무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방금 적들이 장원의 담벼락을 넘어섰습니다.”
“방금?”
“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방금 적들이 장원을 쳐들어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왕무적의 대답에 이소요가 피식 웃었다. 왕무적의 말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지키는 문이 제5내문이라고는 하지만 장원의 담벼락과의 거리는 엄청났다.
“뭐,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여기서 장원의 담벼락까지는 그 거리가……!”
땡땡땡땡땡땡-!!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
“서, 설마!!”
적이 침입했을 때 울리는 경종(警鐘)!
이소요는 도저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왕무적을 바라봤다.
“자, 자네…….”
“많습니다. 그것도 아주! 그리고… 강합니다. 결코 외원을 경비하고 있는 무인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
왕무적의 말에 이소요는 두 눈을 부릅떴다.
‘도,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제아무리 감각이 뛰어난 절정고수라고 하더라도 그 먼 거리의 적들을 알아낼 수 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단호하게 말해서 불가능이다!
‘절정고수 이상의 실력자란 말인가? 하지만…….’
이소요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절정고수라고만 생각했던 왕무적이 자신으로서는 그 낌새도 느끼지 못한 것을 너무나도 쉽게 알아차렸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미 그와 자신은 전혀 다른 무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자네는……!”
“왔습니다!”
“……!”
왕무적의 외침에 이소요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단지 너무나도 빨라서, 예상보다 너무나도 빨라서 당황스럽고 놀라울 뿐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8명의 흑의 복면인들의 모습에 이소요는 급히 검을 뽑아들었다.
치릉!
달려드는 흑의 복면인들을 보며 이소요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이번 일은… 위험도가 특(特)이잖아!!”
쇄애애액-!!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든 흑의 복면인 하나가 빠르게 검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