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188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188화
#188화
쏴아아아……!
명상에 돌입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은 채 폭포 앞 공동에서 눈을 감고 있던 나는 문득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완전 무아지경 상태였던 모양이군.’
그랬다.
명상에 빠진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세계가 아닌 의식의 세계에서 오롯이 숨 쉬고 사유하기를 반복했다.
‘…….’
그곳에서 나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후우…….”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절로 ‘자연결’의 힘이 몸속으로 빨려들었다.
“기연 한 번 일어나면 좋으련만…….”
무심코 그런 생각도 떠올려봤다.
아직 내가 개문하지 못한 화(火) 속성의 힘…….
그 힘만 열 수 있다면 나는 풍-뢰-수-화-역의 다섯 가지 자연결 속성을 모두 체득하게 되는데…….
애석하게도 수련 마지막 날인 오늘도 그런 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뭐…… 언젠가는 되겠지?”
사위를 둘러본다.
내리쬐는 햇살…….
듬성듬성 피어나는 초록과 우거지기 시작한 수림 머릿결 흩날리는 산들바람까지…….
어느덧 겨우내 마지막 추위도 가시고 따사로운 봄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시원하고 깔끔하게…… 사천왕 놈들 대가리 깨줘야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저벅저벅 발걸음을 내디뎌 하산을 시작했다.
초집중 입산 수련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 * *
소천문으로 돌아온 나는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였다.
무림맹주, 사도맹주부터 구파일방, 팔대세가의 수뇌급 인물들이 소천문에 와있었는데, 그들로부터 사천왕과의 대결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았고 또 격려도 받았다.
“진 문주……. 그대의 두 손에 중원무림의 명운이 걸려 있소.”
“부디 흑마왕과 백마왕을 꺾어주시길 바라겠소.”
“진심으로 귀하의 승리를 기원하는 바요.”
나란 인간은 본래 남의 눈치 안 보고 말도 안 듣는 독불장군이지만…….
멀리서 달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그들을 보자 힘이 나는 기분이다.
하나 나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회를 미룬 뒤 곧장 글 선생부터 만났다.
지금 내겐 정리해야 할 일들이 남은 까닭이었다.
“글 선생. 별고 없었소? 소윤이는 공부 잘하고 있고?”
“아! 이제 돌아오셨군요. 네! 소윤이의 학문 수준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최근엔 부쩍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요.”
“딸내미 맡겨 둔 아비로서 항상 고맙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나저나 어째 학당에 소윤이가 안 보이는구려?”
“아……. 잠시 예린이와 저잣거리에 간식 사러 갔습니다.”
“그렇군. 아무튼 선생 양반.”
“네 문주님.”
“오늘 하루는 소윤이 공부 좀 쉽시다. 봄이 왔으니 딸내미 손 잡고 꽃놀이나 다녀와야겠소.”
“네 문주님. 그리하시지요.”
“고맙소.”
“문주님……!”
“무슨 일이오?”
“저…… 곧 마교의 엄청난 고수들과 대결을 펼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글 선생의 얼굴에서 나는 복잡한 심경을 읽었다.
‘저 양반도 오만 생각이 다 들겠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글 선생은 무림인이 아닌 민간인.
어쩌다 고용되어 지금은 소천문의 글 선생이 됐지만, 본래는 부잣집 자제들 학문 가르치던 샌님 아닌가.
한데 딸내미 맡겨 놓은 부모는 허구한 날 이곳저곳 누비며 산적 마적 때려잡다가, 이젠 대뜸 마교 놈들과 싸우겠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일 거다.
“맞소. 나는 곧 마교의 사천왕과 싸울 거요. 그 싸움에서 이기면 이후 날을 잡아 마교주와도 싸울 거고.”
“마, 마교주라고요? 하면 천마와도 싸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겼을 때의 경우고. 만약 지면 천마는 소천문의 문도까지 죽이겠다 선언했소. 말인즉슨 이번 싸움에 소천문의 명운이 달려 있단 거요.”
하나 나는 불안해 보이는 글 선생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물론…….
내가 그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선생. 무섭소?”
“……솔직히 안 무서우면 거짓말이지요. 저는 강호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칼을 휘두르면 반항 한 번 못하고 꼼짝없이 죽어야 하니 두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럴 만도 할 거요. 해서 말인데…… 이번 싸움 전에 선생은 잠시 소천문을 떠나는 게 어떻겠소?”
“문주님……!”
“당장 떠나라는 게 아니요. 어차피 사천왕과의 싸움에선 내가 이길 테니까. 하나 천마와의 싸움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소. 그 때문에 선생은 소천문을 떠나 있는 게 좋을 듯싶소. 물론 내가 천마도 꺾으면 그땐 다시 돌아오시오.”
그랬다.
나는 기필코 이번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하나 사천왕을 꺾고 나면 나는 인생을 걸고 다시 천마와 싸워야 한다.
그때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물론 꼭 이길 생각이지만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실망입니다.”
“응?”
“문주님……. 자고로 무림인의 기개보다, 선비의 기개가 더 곧고 단단한 법입니다.”
“…….”
“저는 비록 과거 시험에 낙방해 촌구석에서 아이들 천자문이나 가르치던 몰락한 선비지만……. 문주님을 만난 후 새 인생을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선생 양반…….”
“무엇보다 저는 소윤이의 선생이고 문주님의 친구입니다. 그런 제가 문파에 닥쳐올 위기가 두려워 떠날 수 있겠습니까?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못 합니다.”
순간…….
나는 글 선생의 두 눈에서 강인한 결의를 읽었다.
‘……저 양반도 정상이 아니야.’
역시 우리 소천문에 정상은 없다.
천마와 싸우겠다는 또라이 문주나, 그런 문주를 믿고 따르며 지지하는 문도들이나…….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글 선생이라…….
다들 나랑 살다 보니 겁대가리를 잃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겁대가리 상실한 인간들이랑만 인연을 맺은 건지…….
어쨌든 간에 골때리는 상황인 건 틀림없다.
“글 선생 양반…….”
“네, 문주님.”
“알고 보니 상남자였군.”
“…….”
“그런 의미에서 내달부턴 월봉을 올려주지.”
“……그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만.”
“싫소?”
“네?”
“싫냐고.”
“아, 아닙니다. 문주님.”
“…….”
“올려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
“하…… 하하.”
어색하게 웃는 글 선생을 보며 나는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그러자 그는 입꼬리를 쭉 말아 올렸는데, 저 목석같은 양반도 돈 좋아하는 거 보면 역시 돈은 언제나 진리요 최고가 아닐까?
* * *
글 선생과 한 식경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저잣거리로 나갔던 예린이와 소윤이가 돌아왔다.
나는 둘과 인사한 후 글 선생에게 소윤이를 맡겨 두고, 잠시 예린이와 한적한 곳에서 대화를 나눴다.
“예린아.”
“네 문주님.”
“너도 알겠지만, 나는 모레 마도사천왕이란 무시무시한 인간들과 싸운다. 지금까지도 수없이 싸워왔지만, 이번엔 차원이 달라.”
“네 문주님. 저도 들어서 알고 있어요.”
“글 선생에게 떠날 것을 권했더니 거절하더군. 너한테도 권해볼 생각이다. 잠시라도 소천문을 떠나는 게 어떠냐? 내가 싸움에서 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
나는 글 선생과 마찬가지로 예린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목숨은 소중한 것이고, 강호인도 아닌 예린이가 괜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 역시 예린이 또한 글 선생처럼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셔요? 저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소천문이 제집이고 저는 소천문의 일원인걸요.”
“처음 소천문에 들어올 때 너는 자그마한 반점 하나 차리는 게 꿈이라고 했었지.”
“그랬죠.”
“자그마한 반점이 아니라 큰 객잔을 차려줄 수도 있다. 그래도 안 떠나겠냐?”
“이젠 필요 없어요.”
“…….”
“이제 제 꿈은 문주님이 싸움에서 이기고 소천문이 승승장구하는 거예요. 물론 소윤이가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라는 것도……. 이제 우리는 식구잖아요.”
“…….”
전생의 나는 운이 없었다.
구걸로 연명하다 어린 나이에 마교에 납치당해 생지옥에서 살았고, 철이 들 무렵부터 살인을 일삼아야 했던 지지리도 박복한 인간.
하나 전생 후의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적어도 내겐 날 믿어주는 식구들이 생겼다.
“예린아.”
“네, 문주님.”
“그간 고생 많았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앞으로도 쭉 고생해라.”
“휴……!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길래 쫓아내는 줄 알았잖아요.”
“식구라며. 식구끼리 쫓아내서야 쓰나.”
“그렇죠. 식구끼리는……. 그러니까 다시는 떠나란 소리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오냐.”
확실히 우리 집은…… 입주 가정부도 정상이 아니라니까?
* * *
소윤이 손을 잡고 장안교 부근을 하릴없이 걸었다.
이 동네에 자리 잡은 지도 햇수로 3년…….
이젠 골목 어귀 어귀가 익숙해진 데다 쏘다니다 보면 정서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든다.
특히…… 오늘처럼 소윤이와 둘이 있을 때면 더더욱 그랬다.
“소윤아. 오늘따라 리원이가 안 보이네?”
“아! 리원이는 낙양 할아버지 집으로 놀러 간댔어. 다음 달이나 되어야 올걸?”
“그렇구나……. 소윤이 너는 가보고 싶은 곳 없고?”
“음……. 가보고 싶은 곳 많아! 동정호도 가보고 싶고, 리원이처럼 낙양도 가보고 싶고…… 또 할아버지랑 살았던 종남산 산장에도 가고 싶어요!”
“그럼 며칠 뒤에 아빠랑 산장에 다녀오고, 낙양도 놀러 가자. 동정호는 너무 머니까 다음에 가는 걸로.”
내 말에 소윤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색했다.
“우와! 아빠 진짜야?”
“물론이다.”
생각해보니 소윤이는 살면서 섬서성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동정호야 장거리니, 소윤이 데리고 가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동벽 선생의 산장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고, 낙양도 화산 넘고 숭산 넘으면 닿을 곳이라 무리 없이 갈 수 있을 터였다.
“이번에 장안을 나가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곳도 구경하고 재밌게 놀자.”
“와아……! 신난다! 진짜지? 아빠 거짓말 아니지?”
“아빠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냐?”
“아니! 우리 아빠는 거짓말 안 하지.”
“정확하다. 아빠는 태어나서 한 번도 거짓말을 안 해본 사람이거든.”
“헤헤- 거짓말!”
“흐흐.”
“헤헤헤!”
그렇게 한창 거닐고 있을 때…….
소담골 사람들이 나와 소윤이에게 아는 척을 해댔다.
“문주님. 며칠 안 보이시더니 어디 다녀오신 모양입니다? 소천문에 손님들이 잔뜩 모이는 것 같던데.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신 겁니까? 하하하!”
“소윤아! 정말 많이 컸구나?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땐 마냥 아기 같았는데. 이젠 어엿한 소녀가 됐어? 하하하! 문주님. 소윤이가 나날이 예뻐지니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문주님! 소윤이 데리고 산책하시나 보죠? 요즘 통 안 보이시더니…… 평소 소윤이 좀 잘 챙겨주시죠? 하하하!”
그럴 때마다 소윤이는 예의 바르게 허릴 숙여 인사했고, 나는 그저 그들에게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었다.
‘후…….’
오늘따라 묘한 감흥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좋은 집, 좋은 동네, 좋은 사람들…….
너무 좋아서…… 문득 좋은 것들이 사라져버릴까 하는 불안함이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소윤아.”
“응, 아빠?”
“아빠가 언제나 지켜줄게.”
그래서인지 나는 나도 모르게 소윤이에게 헛소리를 지껄였다.
다행히 두서없는 내 말에도 소윤이는 내 머릴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헤헤- 소윤이도 언제나 아빠를 지켜줄게!”
그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사천왕이든, 천마든.
결국 놈들은 내 손에 대가리 깨질 운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