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176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176화
#176화
“어서들 오시구려……!”
무당파에 도착한 진소천 일행을 먼저 반긴 사람은 석가장 가주 석대방이었다.
이후 청문도장을 포함한 화산파 인물들 또한 진소천 일행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윽고 무당파 장문인 허원 역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장안에서 예까지 짧은 거리가 아닌데…… 왕림해주셔서 감사하오.”
그러자 진소천은 포권으로 답을 대신했고, 생전 주영천과 막역했던 동벽 선생이 허원에게 물었다.
“장문인. 주 선배의 혼백은……?”
“조사전으로 모셨습니다.”
그 말에 동벽 선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사전이면…… 역대 무당파 장문인들을 모시는 사당 아니오? 주 선배는 장문인이 아니었는데, 그리 해도 괜찮소?”
“비록 주 사숙께선 장문인 신분이 아니셨지만…… 본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시니, 장로 회의 끝에 조사전에 모시기로 최종결정했소.”
“하면…… 시신은 어디에 안치하셨는지요?”
“본산입니다.”
“장문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소.”
“감사하오.”
동벽 선생을 본 순간 허원을 비롯한 많은 조문객들은 의외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시진은 과거 천하제일의 명의로 이름을 날렸으나, 어느 순간 은거에 들어간 터라 종적조차 알 길이 없었던 까닭이다.
게다가 동벽 선생과 마찬가지로 종적을 감추었던 독선 최일경마저 금일 진소천과 함께 무당산을 찾았으니, 중인들로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들은 일체의 질문을 삼가고 주영천의 명복을 비는 데 심력을 쏟았다.
“장문인…….”
그때 굳게 다물어져 있던 진소천의 입이 열렸다.
“말씀하시오. 문주.”
“우선 주 영감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조사전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그리하시오. 진후야. 진 문주와 손님들을 조사전으로 안내해드리거라.”
허원의 말에 진후 도장이 직접 진소천 일행을 안내했고, 이윽고 조사전에 당도한 그들은 주영천의 영전 앞에 향을 태우고 지전을 불살랐다.
하나 어쩐 일인지 진소천은 하릴없이 주영천의 영전 앞에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그의 심정을 짐작한 일행들과 진후는 아무 말 없이 그런 진소천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주 영감님……. 부디 선계에서는 영면하시오.”
잠시 후…….
주영천의 혼백을 향해 진소천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진후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진소천이 말을 이었다.
“진후 도장.”
“말하시오. 문주.”
“주 영감님 영전에 술을 올릴 수 있소?”
“애석하게도 이곳은 조사전이니, 누구도 술을 올릴 수 없소. 알다시피 본파는 도가 문파라.”
“하면 무덤가에 술 한 잔 뿌리는 건 괜찮소?”
“물론이오. 사숙조의 시신은 무당산 중턱 양지바른 명당에 안치했으니 그곳에서라면 술 한 잔쯤 상관없소.”
“안내해주겠소?”
“기꺼이 그러겠소. 아마 사숙조도 진 문주가 술을 올리면 기뻐하실 겁니다.”
“그럴 테죠.”
“…….”
“그 영감님은…… 술에 환장한 사람이었으니까.”
이내 슬그머니 올라가는 진소천의 입꼬리를 보고…….
그제야 동벽 선생은 한시름 놓았다.
‘후후……. 소윤 애비가 기력을 찾은 모양이군.’
* * *
“조부님!”
“……!”
“……!”
무겁게 가라앉은 검황의 눈꺼풀은 더 이상 뜨이지 않았다.
어느덧 그의 숨소리마저 멎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독고준과 가솔들은 식어가는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부님……! 어찌 이대로 가실 수 있단 말입니까!!”
독고준의 비통한 절규가 원종산을 가득 메웠다.
“조부님……!!!”
단 한 번도 자신의 조부가 천하제일인임을 의심해 본 적 없는 독고준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나?
위지혼과 삼일이나 대결을 펼쳤던 검황은 결코 밀리지 않는 싸움을 했고, 어떤 치명상도 입지 않은 채였다.
심지어 죽기 직전 위지혼과 술잔까지 기울였던 조부였기에…….
독고준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위지혼을 향해 격노를 분출했다.
“교주! 대체…… 당신은 무슨 사특한 짓으로 조부님을 해한 것인가? 조부님은 당신에게…… 네놈에게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한데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리 허망하게 돌아가신단 말이냐?”
그러자 가솔들이 그런 독고준을 만류하려 했다.
그것은 검황이 죽기 전 손자와 가솔들에게 각별한 유언을 남긴 까닭이었다.
-「나는 위지혼과의 정당한 승부에서 무공으로 패배하였고, 무림인다운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원통할 것 없다. 너희는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 그릇된 복수의 칼날을 품지 말고 오직 강호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살거라.」
비록 분한 심정은 같았으나…….
평생 독고세가와 백도무림을 이끌어 온 검황의 유언을 순간의 분노 때문에 무시할 순 없었다.
“말하라! 천마, 네놈은 대체 조부님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고준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에게 조부는 비단 핏줄이기 전에, 같은 강호인으로서 같은 검수로서 정신적 지주이자 삶의 지향점이요 인생의 목표였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게 어떤가?”
그러나…….
독고준의 격한 반응에도 정작 위지혼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어투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독고준이라 했던가……. 강호에서 백도구봉이라 불린다는 소리는 진작 들었네.”
그러자 독고준은 더욱 울분에 가득 차 말했다.
“닥쳐라! 나는 네놈과 시답잖은 사담을 나누고 싶지 않다!!”
“사담이 아닐세…….”
“……!”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번의 출수로 자네와 독고세가의 가솔들을 모조리 도륙할 수 있네.”
“무, 무어라?”
“자네는 그런 참혹한 결과를 원하는가?”
일순…….
독고준은 형언할 수 없는 짙은 살기(殺氣)와 무형의 압박을 느꼈다.
“나는 오랜 시간 심마에 시달렸네. 해서 본래였다면 불문곡직하고 자네와 가솔들을 모조리 죽였을 것이네만…… 자네 조부와의 대결을 통해 나는 그 심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당신…….”
“결과적으로 나는 검황 선배에게 빚을 졌네. 그 때문에 자비를 베푸는 걸세. 손자 된 입장에서 조부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왜 모르겠냐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자네는 내 적수가 될 수 없네. 솔직히 단 일격에 나는 자네를 한 줌 고혼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일세. 그래도 무의미한 복수를 위해 목숨을 던지겠는가?”
위지혼의 물음에 독고준은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탈력감이 그의 전신을 옥죄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검황 선배가 그런 결말을 원치 않을 듯하군……. 자네는 조부의 유언을 받들게. 무림맹주를 만나 조부의 뜻을 전해야 하지 않나?”
그제야 독고준은 정신을 차리고 깨달았다.
지금의 자신은 절대 복수할 수 없음을…….
또한 자신에겐 맡은 바 책무가 있고 역할이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
“교주……. 내 오늘을 잊지 않을 것이오.”
지금은…….
무엇보다 검황의 유지를 받들 때였다.
“원하는 바네. 결코 오늘을 잊지 말게 독고 소협.”
“…….”
“나 위지혼이…… 대 천마신교의 교주가 진정한 무신이 되었음을. 더 이상 천하에 적수가 없음을. 결코 잊지 말고 만천하에 공표하란 말일세.”
그랬다.
조부조차도 죽기 전, 분명 천마가 당대의 강호에서는 더 이상 적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 하지 않았나.
하나 독고준은 그를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하기 싫었다.
‘적어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교주…….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소.”
독고준은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를 잠시 뒤로 하고,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때…….
“독고 소협…….”
조부의 시신을 들고 하산하려는 독고준의 뒷모습을 향해 위지혼이 입을 열었다.
“무림맹주와 사도맹주를 만나거든 꼭 전해주게.”
그러자 독고준이 게슴츠레한 눈빛을 띠며 물었다.
“무엇을 말이오?”
“조만간 내 친히 그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말이네.”
“그게 무슨…….”
“나는 검황 선배와 약속했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의미 없는 학살을 지양할 걸세.”
“…….”
“하나, 그렇다고 평생 품었던 청운을 버릴 수야 있겠나? 해서 나는 앞으로 흑-백을 막론한 모든 강호의 대종사들에게 도전할 걸세.”
순간 독고준의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말인즉슨 위지혼은 지금부터 무림 전체의 고수들과 대결을 펼치겠단 패기로운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신…….”
“물론……. 주영천 선배와 검황 선배가 내게 패배한 이상, 내 상대가 또 있겠냐마는…… 이러한 방법이 아니면 나는 다시금 손에 수없이 많은 이들의 피를 묻혀야 하네. 자네 또한 그런 결과는 원치 않을 걸세. 하니 어쩌겠나? 나는 한 달 후 무림맹주를 시작으로 모든 중원의 고수에게 도전할 테니, 소협이 미리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게.”
“전달하겠소.”
“아……. 끝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겠네. 검황 선배의 장례를 잘 부탁하네.”
독고준은 원통한 심정을 억누르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 * *
주영천의 무덤가에 술을 뿌린 후에야 진소천은 비로소 웃음을 머금을 수 있었다.
무당산에 오르기까지 시종일관 침울해하던 그였지만…….
그사이 심란한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했고, 주영천의 영전 앞에서 조문을 하고 생전 술을 즐기던 그의 봉분에 술까지 뿌리고 나니, 무거웠던 심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진소천은 ‘좋은 친구’였던 주영천과의 짧은 작별을 마쳤다.
또한 주영천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무당파에 모인 모든 중인들 역시 짤막한 조문을 통해 마음으로 애도할 뿐 결코 오래 신음하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로서 그들에게 각자의 역할이 남은 까닭이었다.
“다시 한번 주 사숙을 위해 본파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저녁 무렵 조문객들을 옥허궁으로 불러들인 허원이 포권지례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무림맹주 남궁학이 고갤 저으며 말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장문인. 주 선배는 백도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분이었소. 응당 후배로서 와야 하지 않겠소?”
이윽고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대개 대화는 주영천과 천마의 대결에 관한 것이었고, 또 향후 천마신교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대화가 반 시진쯤 오고 갔을 때, 잠자코 있던 진소천의 입이 열렸다.
“맹주님들……. 그리고 여기 모이신 많은 선배님들. 감히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만.”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진소천에게 쏠렸고, 허원은 고갤 끄덕이며 말했다.
“진 문주……. 무슨 말이든 허심탄회하게 하시오.”
그러자 진소천이 대뜸 좌석에서 일어나 말문을 뗐다.
“저는 얼마 전 사천에서 주 영감님과 마교도를 토벌한 적 있습니다. 그때 적마왕을 생포하고 철응 선생을 죽인 것을 다들 아실 겁니다.”
좌중의 인물들은 모두 수긍했고, 진소천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주 영감님은 제게 마교도 사냥꾼을 자처하셨지요.”
그러자 허원이 끼어들었다.
“맞소. 주 사숙은 점진적으로 마교의 고수들을 하나둘씩 제거할 목적으로 하산하셨소.”
“장문인.”
“진 문주…….”
“저는…… 누군가가 반드시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인 말이오?”
“마교주가 강호를 사냥하기 시작했다면…… 강호 역시 마교를 사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 작금의 상황에 누가 나서려 하겠소?”
“제가 나서겠습니다.”
“……!”
“주 영감님이 했던 마교도 사냥. 제가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순간 장내에 무겁고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