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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26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32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26화

026 블랙 블러디(3)

 

 

 

 

 

기사들의 추격을 따돌린 무혼은 한 건물의 그림자에서 성벽을 보고 있었다. 저 성벽만 넘으면 이 도시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후, 저 성벽도 왕궁에서처럼 돌파해야 하나?”

 

우산을 고쳐 잡으면서 무혼이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5미터쯤 뒤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다. 뿌옇게 흐린 모습이 차츰 선명해지더니 무혼에게 다가갔다.

 

“네스 씨, 기다렸습니다.”

 

휙!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무혼이 몸을 돌리며 우산을 휘두르자 그는 물러나며 두 손을 살짝 들었다.

 

“엘라드?”

 

무혼은 또다시 뒤를 허용했다는 생각에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까지 아무도 자신의 뒤를 이렇게 쉽게 접근하지 못했었다.

 

‘겪게 될수록 놀라운 자다. 나를 부를 때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어.’

 

“그렇습니다. 무사히 탈출하셨군요. 저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미소를 지으며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엘라드는 앞장을 서서 거리 사이를 달리더니 어두운 골목의 끝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전에 이곳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기억하는 곳입니다.”

 

집안에는 추레한 남자가 있었고 엘라드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드가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그 사내에게 주자 그자는 침대를 옆으로 치우고 밑에 깔린 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통로?”

 

무혼은 그 통로를 보았다. 사람 한 명이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통로는 대충 파낸 듯 옆이 울퉁불퉁했으나 그 위에 무엇을 발랐는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엘라드를 따라 들어가니 입구는 다시 닫혔다.

 

“라이트!”

 

좁은 통로 안에 갑자기 환한 빛이 떠오르며 길이 잘 보이자 무혼은 마법이 편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을 엘라드의 뒤를 따라 걸어가니 막다른 벽이 나왔고 엘라드가 위쪽을 미니 천장이 들렸다. 올라간 곳은 저 멀리 미라크네의 수도 미라쉘든이 보이는 숲이었다.

 

 

 

 

 

“도둑 길드 마스터를 붙잡았습니다.”

 

갈우드는 앞에 잡혀 와 있는 메레디스를 쳐다보았다. 옆에서 그를 보기에 얼굴에 색이 변한 상태에서 입을 오물거리는 것이 투덜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분은 어디로 가셨나?”

 

갈우드의 질문에 메레디스는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분이 누구요?”

 

“도둑 길드에서 머물던 분.”

 

그러자 메레디스는 속으로 당황했다. 그가 잡혀온 이유는 단순히 대규모 싸움 때문에 기사들이 쫓아와 잡힌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에게 엄청난 공포를 준 사람을 묻고 있는 것이다.

 

“대답을 안 하면 네놈의 목을 베고 다른 자를 찾도록 하겠다.”

 

“동쪽으로 갔소.”

 

어차피 지킬 의리도 없던 사이라 길드 마스터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대체 도둑 길드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

 

“길드 마스터셨소.”

 

“길드 마스터?”

 

갈우드와 그의 뒤에 있던 기사들은 얼굴이 찌푸려졌다.

 

‘공주가 도둑 길드 마스터라니? 언제부터?’

 

“언제부터 도둑 길드 마스터셨나?”

 

“이틀 전부터입니다.”

 

갈우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래, 시내에서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메레디스를 다시 밖으로 내보낸 기사단장은 주위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왜 자꾸 놓치나?”

 

“공개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주님의 운신이 자유로운 데다 옆에 동행이 있다는 정보입니다.”

 

“동행?”

 

“그렇습니다. 여성으로 추측이 되나 정보에 의하면 자신 스스로 남성이라고 주장하는 자였습니다.”

 

“그자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흠. 그럼 이곳에서 동쪽으로 간다면?”

 

“말을 타고 약 5~6일이 걸리는 거리에 엘프의 숲이 있습니다. 그사이에 어디로 가실지 모르지만, 동쪽으로 간다면 거대한 엘프의 숲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일단 엘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갈우드는 생각에 잠겼다.

 

‘미라크네 왕국의 동쪽 경계선에 엘프의 숲이 있다. 그곳부터는 미라크네 왕국이 아닌데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것이지?’

 

어떤 나라도 엘프의 숲에는 경비병을 세우지 않는다. 엘프의 숲을 허가받지 않은 자들이 통과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엘프들이 나쁜 목적으로 침입할 리도 없으니 아예 경비병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지금 공주님이 달리는 속도로 봐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내내 그렇게 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말을 탈 것이고 며칠 내에 엘프의 숲에 당도하겠지. 후… 엘프의 숲이라……. 점점 수습하기 힘든 지경으로 발전하는군.’

 

한 나라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인 엘프의 숲에는 많은 엘프들이 살고 있다. 어둠의 동맹에서 다크 엘프들이 빛의 연합군을 괴롭히자 스스로 숲에서 나와 연합군을 도와 숙적인 다크 엘프와 싸워주고 있는 엘프들도 많았다.

 

엘프의 숲에 함부로 침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엘프들은 빛의 왕국의 요청에 호의적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빛의 왕국들도 엘프들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고 있다는 점도 있었다.

 

 

 

 

 

며칠 후 무혼은 엘라드와 함께 작은 숲을 말 타고 달리던 중 무더운 날씨에 말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멈추었다.

 

“네스 씨, 너무 더운 날씨입니다. 그늘에서 쉬지 않고 계속 달린다면 말들이 버티질 못할 것입니다.”

 

무혼이 보기에도 말이 몹시 지쳐 보였다.

 

‘그동안 서두른 데다 날씨도 더우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무혼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라드는 큰 나무의 그늘로 말을 몰았다. 무혼은 시원한 물에 세수를 하고 나무에 기대니 졸음이 몰려오자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 모습을 보던 엘라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필이면 엘프의 숲이라니. 내가 제일 가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인데. 엘프의 숲이 나에게 어떻게 반응할지가 걱정이네…….’

 

이제까지 많은 곳을 여행했던 엘라드였지만 엘프의 숲만은 절대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가 품고 있는 힘의 근원에 대해서 엘프의 숲을 지배하는 만년목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조차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쩝. 나도 다 되었군. 만년목 따위를 의식해야 할 정도가 되고 있으니. 그런데 내가 지금 잘하는 짓인가?’

 

엘라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무혼을 다시 보았다.

 

‘궁금해서 따라다니긴 하는데 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동쪽이면 신계로 가려고 달리는 것인가? 그건 아닌 듯한데…….’

 

 

 

 

 

‘다시 꿈속인가?’

 

무혼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두운 동굴 속에 바닥에는 커다랗고 동그란 원에 많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자신의 몸이 앉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까지와 다르게 몸에 활력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왠지 희미해 보이는 앞의 풍경이 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무혼이 그의 몸을 찾아왔지만 아이네스는 며칠째 밤과 낮의 구분이 힘들었다. 그저 졸리면 자고 일어나면 다시 운기를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희미한 독기로 가득 찬 동굴 속에서 큐어의 마법진을 그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아이네스는 자신이 가진 건량과 옆에 있는 물을 의지하며 마나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4클래스의 마나 고리를 형성하였지만,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5클래스의 마나 고리는 아직도 멀기만 했다.

 

‘어지러워… 내가 몇 번을 잤었지? 그리고 큐어의 마법진이 독기를 정화시키고 있을 텐데도 어지러운 이유가 뭘까? 동굴의 독기가 마법진의 능력을 넘어서지는 않을 텐데.’

 

그때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이네스는 어쩐지 그곳으로 가야 할 듯한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일어나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네… 하아, 편안하게 푹 쉬고 싶어.’

 

하지만 눈을 통해 자신이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무혼의 생각은 달랐다. 부자연스럽게 걷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지금 가고 있는 곳이 결코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일어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넌 지금 섭심술에 걸린 거야. 내 몸을 가지고 위험한 곳으로 몰아넣지 마!’

 

그러나 자신의 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점점 동굴의 어두운 곳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안 돼!”

 

무혼은 다시 고함을 치며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엘라드가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네스 씨, 무슨 일입니까?”

 

그를 바라보던 무혼은 잠시 고개를 저으며 우산을 쥐고 일어섰다.

 

“조심하세요!”

 

등 뒤에서 엘라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무혼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무슨 일이지?’

 

콰앙!

 

히히히힝!

 

몸을 날리는 무혼을 스치며 말들의 사이에 떨어져 폭발을 일으킨 마나 덩어리가 검은 연기를 쏟아내며 말의 발목을 휘감고 조여들자 말들이 공포에 울음소리를 냈다.

 

무혼은 검을 뽑으며 다가오는 연기를 베어나가자 무혼의 극한 검기에 검은 연기들이 얼어서 땅에 떨어졌다.

 

연기를 뿌리치고 나온 무혼이 옆을 보니 엘라드 역시 하프로 연기들을 쳐냈고 멀리 몸을 날리며 하프를 뜯자 마나탄이 검은 연기들과 부딪쳐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쾅!

 

‘정말 신기한 기술이야.’

 

엘라드를 확인한 무혼이 마나가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앞에 세 남자가 나타났다.

 

“응?”

 

얼굴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저들의 복장은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도둑 길드를 습격한 검은 복장의 사내들이었다.

 

“흐흐, 기다리고 있었다.”

 

“끈질기군.”

 

무혼이 한마디를 하자 제일 앞에 선 자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년들 때문에 내 부하들을 모두 잃었고 나의 자존심과 명예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그 답례로 오늘 네년을 끝장내어주겠다. 으하하합!”

 

그 말이 끝나자 세 명의 몸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그것을 보던 엘라드는 입을 열었다.

 

“블랙 블러디! 어둠의 고위 기사들과 고위 마법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법입니다. 스스로가 악마의 피로 채운 버서커가 되는 최후의 기술이죠. 저자들은 몇 시간 뒤에는 폐인이 되지만 그 몇 시간 동안은 누구보다도 강한 능력을 지닌 자가 됩니다. 조심하십시오.”

 

엘라드의 설명이 아니라도 그들의 불어나는 기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라면 이 육체로 상대하기 힘든 자들일지도 몰랐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 하지만 불명예스러운 것은 참을 수가 없지.”

 

눈까지 모두 까맣게 변해가는 그들을 보면서 무혼이 내력을 끌어올리고 있자 엘라드도 자신의 몸 주위에 기세를 퍼뜨렸다.

 

뒤에 있는 로브를 입은 자는 아직 검게 물들지 않았지만 검을 들고 있는 자들은 완전히 까맣게 물들자 검에 어두운 기운을 가득 품고 무혼과 엘라드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던 무혼은 자신의 검으로 부딪혀갔다.

 

콰앙.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무혼의 붉은 기운 외에도 검에서는 흰 기운이 함께 맴돌고 있었다.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구나. 신성검이라니.”

 

‘신성검?’

 

스멀스멀 맞닿은 무혼의 검으로 넘어오고자 하던 흑색의 기운이 흰빛에 흩어지고 있었다.

 

적의 위험한 기운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깨닫자 무혼은 자신이 올릴 수 있는 내력을 이용해서 혈난보로 방위를 잡고 자세를 틀면서 그자의 허리를 베어나갔다. 그러자 눈앞의 사내는 빠른 몸놀림으로 무혼의 검을 피하면서 그의 등을 찔러갔다.

 

“파이어 스피어!”

 

무혼이 그의 검을 간신히 피하면서 자세를 잡고자 할 때 화끈한 열기와 함께 옆에서 검은 불길이 무혼을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그때 무혼의 입이 열렸다.

 

“블링크!”

 

흰빛과 함께 무혼은 사라졌고 파이어 스피어는 땅을 길게 파헤치면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마법?”

 

무혼이 상대하던 검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뒤에서 닥쳐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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