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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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25화
025 블랙 블러디(2)
쿠쿠쿠쿵.
무혼의 주위에 흰빛이 어리는 투명한 막이 둘러싸고 그 막이 모든 마법을 막아내자 그 모습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자나르는 엘라드를 보며 외쳤다.
“우리의 다크 참 미스트를 파괴한 게 네 녀석이구나!”
엘라드는 싱긋 웃으면서 하프에 손을 올렸다. 그것을 본 자나르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꼈다.
‘저자가 가볍게 펼친 바리어에 우리의 마법이 모두 막혔다. 우리의 마법에는 흑마법의 기운도 담겨 있는데 저 바리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놈은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백마법사다.’
“막지 말고 모두 피해!”
엘라드의 손에 마나가 모이며 마나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마법사들과 기사들은 자나르의 외침을 기억하며 몸을 날렸다.
콰콰콰콰콰쾅!
삽시간에 날아온 10여 개의 마나탄이 그들 사이로 쏟아지며 폭발을 일으키자 그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으악! 백마나다.”
“신성마법이다!”
마나탄을 피하지 못하고 막은 자들은 마나탄에서 흘러나온 백마나와 몸을 보호해 주던 흑마나가 충돌하며 일으키는 폭발에 신체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대단하군. 언젠가는 꼭 한번 겨루어보고 싶다.’
엘라드가 펼치는 공격을 보며 무혼은 속에서 일어나는 호승심을 억눌러야 했다.
베르노는 자신의 부하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자 엘라드에게 눈을 돌리며 외쳤다.
“빌어먹을! 마법 사제이더냐?”
‘마법 사제?’
그러나 엘라드는 얼굴에 웃음만 띤 채 대답을 했다.
“마법 사제는 아닙니다. 당신들 같은 사람들을 싫어할 뿐이지요.”
그러면서 하프를 현란하게 뜯으며 거대한 크기의 마나탄을 형성시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베르노는 옅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으음. 제길, 아무리 나라도 저 크기의 마나탄이라면…….’
베르노의 실력은 마나탄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도 마나탄에 담긴 백마나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의 부하들에게 날아간 작은 마나탄에도 그들의 몸을 지켜주는 흑마나의 폭발을 불러올 정도의 백마나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생각했을 때 저 크기에 담긴 백마나라면 그는 뼈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쾅!
“뭐냐?”
엉뚱한 곳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나자 무혼과 엘라드, 그리고 습격자들은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난 곳을 본 엘라드는 중얼거리며 몸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미라크네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야. 조사라도 받으면 곤란한데?’
“모두 후퇴하라!”
평복을 입고 있었지만, 베르노가 보기에 모여드는 자들은 분명 기사들이었고 아래에서 손을 올리며 주문을 외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자들은 마법사가 분명했다. 확실한 판단이 들자 그는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도망칠 수 있을까?’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시간에 모여든 많은 기사들을 보며 베르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라크네 기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갈우드는 공주를 공격하는 자들의 실력이 심상치 않고 꽤 많은 인원에 마법사까지 있는 것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강한 힘을 가진 그들이 지금 공주를 잡기 위해서 위험한 공격도 마다치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만일 공주의 정체를 알고서 습격하는 것이라면 결론은 한 가지뿐이다.
“납치범들이 틀림없다. 전원 이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마라. 반항한다면 주살해도 좋다.”
갈우드 백작이 이끄는 추적대는 공주를 안전하게 데려가기 위해서 왕실에서 실력 좋은 자들을 골라 뽑아 편성했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유리한 추격대가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번에 끝장을 내주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도시의 한쪽 끝에서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고 마법이 날아다니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챙챙!
콰콰쾅!
그러나 연락을 받고 출동한 수도 경비기사단과 왕궁 기사단이 도착하면서 납치범들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어서는 곤란하겠군. 그런데 엘라드는 어디로 갔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엘라드가 보이지 않자 그를 찾는 것을 포기한 무혼은 틈을 보아 순간적으로 힘껏 내달았다.
그러자 무혼을 에워싸고 있던 기사는 놀란 눈으로 앞을 막고자 했지만 이미 무혼은 그를 지나쳤고 옆의 지붕으로 몸을 날리며 검을 다시 넣고 우산째로 휘둘렀다.
‘아이네스와 관련된 자들만 아니라면 그냥 베어버리는 건데.’
나중에 아이네스가 깨어나면 그녀가 괴로워할 것이 머리에 떠오르자 10여 년간 그녀를 지켜본 무혼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퍽!
무혼이 몸을 날린 지붕 위에 있다가 무혼을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사가 땅으로 추락하자 다른 자들이 그를 받아내고 무혼을 보았다.
그러나 무혼은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달렸다.
‘뭐, 바닥에 떨어져 죽는 것까지는 내가 신경 쓸 필요 없겠지. 그런데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하는 거야?’
그러자 납치범들을 잡고 있는 기사들을 뺀 나머지 기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 지붕으로 추격을 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 느린 달리기로 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최소한 이곳에서 날 따라잡을 자는 엘라드밖에 없었다.’
무혼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혈난보의 방위를 밟으며 더욱 빠르게 달리자 기사들은 당황했다. 공주의 빠르기는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젠장, 대체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리는 거지?”
그때 무혼의 앞을 막는 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천을 감은 롱소드로 무혼의 걸음을 막고 나선 것이다. 그에게서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나오기에 무혼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네스 공주님, 이만 궁으로 돌아가시옵소서. 9별궁 3조 조장 폴레노가 모시러 왔사옵니다. 저의 얼굴이 기억나시지요?”
긴장된 듯한 목소리로 앞을 막은 기사가 입을 열었다. 물론 무혼이 알고 있을 턱이 없다.
절레절레.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는 공주님의 느낌과 너무 다르다.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공주님의 모습을 한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아이네스를 항상 유심히 바라보는 폴레노는 확인을 하기 위해 무혼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공주를 떠올리던 폴레노의 눈이 점점 매서워지고 있었다.
위압적인 분위기를 보이며 검을 꽉 쥐고 한걸음 옮기자 그를 무시하지 못한 무혼은 자신도 한 걸음을 옮기며 자세를 취했다. 그것을 본 폴레노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너는 누구냐?”
“……?”
무혼이 의문스러운 눈길로 보자 폴레노는 계속 입을 열었다.
“넌 아이네스 공주님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네스 공주님의 몸속에 있는 것이지? 어둠의 마법이냐? 아니면 공주님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냐? 그렇다면 공주님은 어떻게 되셨지?”
폴레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공주님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 없을 때부터 아이네스의 버릇 하나마저 머릿속에 담아왔다. 그 기억은 지금 앞에 보이는 자는 절대로 공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아이네스 공주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네가 공주님이 아니라는 것을 내 긍지와 명예를 걸고 확신할 수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무혼은 놀라기보다 기분이 나빠졌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아이네스에 대해서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앞에 있는 이놈은 자기보다 더 아이네스를 안다고 말한다.
더 기분 나쁜 것은 자신이 아이네스의 애인이고 무혼이 아이네스를 뺏어갔다는 착각을 일으킬 느낌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저놈만은 꼭 때리고 싶다. 낭아무비!’
마음을 결정한 무혼이 폴레노의 미간에 강력한 일격을 먹여주리라 생각하며 우산을 휘둘렀다. 그러자 무혼의 내기를 머금고 붉은색을 일렁이는 우산은 주인의 뜻에 따라 쇄도해 갔다.
챙-.
그러나 무혼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폴레노의 롱소드가 무혼의 우산을 막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평민이 왕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귀족 출신보다 훨씬 실력이 좋아야만 가능하다.”
‘그게 무슨 헛소린데? 마교는 실력이 좋으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한다.’
속으로 대답하며 폴레노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으니 그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솔직히 대답해 주길 바란다. 그 몸은 공주님의 몸인가?”
간절히 대답을 원하는 그의 눈을 보고 있으니 대답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그 말을 들은 폴레노는 복잡한 눈빛을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럼 공주님의 영혼은 어떻게 된 것이지? 아니, 그것보다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없잖아. 어떻게 싸우지?’
하지만 그의 생각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뻑!
그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무혼의 우산이 궤적을 그리며 그의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주었고, 그는 서서히 앞으로 몸이 무너졌다.
“한 번만 더 아이네스에게 야릇한 눈빛을 보내면 그때는 아예 박살 날 줄 알아. 어디서 감히 그따위 눈빛으로 이 몸을 보는 거냐!”
이를 갈 듯 내뱉은 무혼은 내력을 싣지 않은 발로 폴레노를 한 번 더 걷어찬 후 몸을 날려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뒤쫓던 기사들은 골목을 샅샅이 조사하였으나 공주를 찾을 수 없었다.
잠시 후 갈우드가 4명의 평복 기사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놓쳤나?”
정신을 차린 폴레노와 다른 기사들은 그의 질책성 물음에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말이 되나? 기사가 몇 명이 동원되었는데 공주님을 제지하지 못하다니?”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고? 너희들의 검은 왜 있는 것이냐? 그 검으로…….”
순간 갈우드도 말문이 막혔다. 놓쳤다는 보고에 흥분해서 그가 깜빡 잊었는데 지금 죄인을 잡아 오는 게 아니었다. 그의 임무는 공주님을 고이 다시 모시고 왕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갈우드를 보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왠지 민망해졌다.
“설마 사랑스러운 아이네스를 검으로 상처낼 생각은 아니겠지요? 그랬다가는 뒷수습을 못 할 겁니다.”
“와…왕자님.”
갈우드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며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제노드가 날카로운 눈으로 갈우드를 노려보고 있다.
“아, 아니옵니다. 어찌 공주님의 몸에 감히…….”
“그 생각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아이네스의 검술 실력이 그토록 뛰어난가요? 그 아이는 검술 훈련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지금 아이네스 공주님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이네스 공주님이 아니옵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왕자와 기사단장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흠. 폴레노 경 맞죠?”
“그러하옵니다, 제노드 왕자. 저는 9별궁 3경비조장 폴레노이옵니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폴레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칫 실수하면 평민 출신인 그가 공주에게 흑심을 품은 듯한 뉘앙스를 풍길 수도 있다.
그는 정말 어렵게 왕실 기사의 자리까지 왔었다. 그렇기에 더욱 좌천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신경을 쓰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님을 막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제가 알고 있는 공주님이 절대로 아니옵고 스스로도 대답하길 공주님이 아니라 하였사옵니다. 다른 영혼이 공주님의 몸에 들어가 조종하고 있는 듯하였사옵니다.”
“공주가 아닌 것이 확실하오?”
“그렇사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사옵니다.”
“흠.”
제노드는 심각하게 생각을 했다. 제노드의 생각에는 공주의 몸에 있는 다른 영혼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한 술법이 왕궁 내에서 가능하다면 그 누구의 영혼도 바꿔치기가 가능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대신전에 물어봐야 할 것 같소. 내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대들은 공주를 계속 추적하시오. 절대 공주의 몸에 상처가 나서도 안 되오. 그리고 공주에 대한 소문이 이미 많이 퍼진 듯하니 3기사단장은 최대한 소문을 가라앉혀주기를 바라오. 또한, 공주를 마법사들이 포획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 보시오. 공주는 곧 찾을 수 있겠소?”
“다시 몸을 숨기셨사옵니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찾아내도록 하겠사옵니다.”
“좋소. 그리고 정체불명의 자들을 잡았다고 하던데?”
“옛. 저희도 도둑 길드에 공주님이 계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동하는 중에 만나서 잡을 수 있었사옵니다. 아이네스 공주님을 노리고 덤벼든 듯하옵니다.”
“정체를 알아내었소?”
“흑마나의 기운을 가진 자들이었사옵니다. 어둠의 동맹의 사주를 받는 자들인 듯하였사옵니다. 대부분을 척살하거나 잡아들였지만, 소수의 인원이 탈출한 듯하옵니다.”
“그자들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왕궁에 연락을 하고 잡은 자들을 감옥에 넣어 엄중히 감시하고 탈출한 자를 끝까지 추격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사옵니다.”
갈우드가 고개를 숙여서 대답하자 제노드는 자신을 따르는 3명의 기사와 함께 대신전이 있는 방향으로 말 머리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자의 영혼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