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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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22화
022 도둑 길드와 탈혼흑림(3)
절벽을 건너 천마화산에서 멀어지던 아이네스가 숲을 빠져나오자 길이 하나 보였고 그 길 끝에 마을이 있었다.
길을 따라 걸어 마을에 도착한 아이네스는 객잔이 보였다.
‘피곤한데 좀 쉴까?’
객잔의 안보다 객잔 옆에 있는 야외 탁자가 마음에 든 아이네스가 자리를 골라 앉으니 뒤에서 무혼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무혼, 네가 우리 마을에는 무슨 일이지?”
아이네스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어제 아이네스를 화나게 만들었던 화도환이 얼굴을 굳힌 채 쳐다보고 있었다. 그를 본 아이네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저 자식이?’
도둑 길드에서 잠이 든 무혼은 눈앞에 화도환이 보이자 화가 먼저 났다. 실력도 되지 않으면서 자신만 보이면 시비를 걸면서 무기를 꺼내지 않고 회피하는 녀석이었다.
‘어, 그런데 여긴 어디지?’
무혼은 이 마을이 낯선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화도환 쪽으로 몸을 돌린 자신의 몸이 마법을 구사할 때 취하는 기이한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꿈인가?’
무혼은 오랜 시간 동안 아이네스의 꿈을 꾸며 경험했던 것처럼 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자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헷갈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마을의 풍경과 느껴지지 않는 감각,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몸.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화도환까지.
‘개꿈이군. 왜 하필이면 화도환 저놈이 나오는 꿈을 꾸는 거지?’
무혼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아이네스는 캐스팅을 마쳤다.
“아이스 볼!”
그리고 아이네스는 당황했다. 분명히 아이스 볼의 캐스팅을 했고 시동어도 아이스 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손에 뜬 것은 흰색의 파이어 볼이었다.
‘흰색의 파이어 볼? 이런 것도 있었나?’
어제 받은 이상한 느낌에 고민하던 차에 마을에서 무혼이 보이자 말을 걸었던 화도환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알고 있는 무혼은 검사였다. 화도환이 무혼을 처음 봤을 때부터 오직 검을 수련하는 모습만 봤고 귀접연무관에 가기 전까지도 그는 무혼이 검술 외 다른 것을 수련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혼의 손에서 양강의 기운이 모이더니 하얀색의 이글거리는 구가 불쑥 튀어나오자 의외의 모습에 놀란 것이다.
둘이 서로 노려보고 있는 것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아이네스의 손에서 나온 양강의 기운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오, 놀라운걸? 강기는 아닌 듯한데 양강의 기운을 저렇게 모을 수가 있다니?”
“새로운 무공인가?”
‘화이트 파이어 볼…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게다가 아이스 볼의 마나 배치로 생성된 파이어 볼이라니,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 몸속에 있는 마나가 뜨겁기 때문일까?’
“너… 너 술법을 익혔냐?”
파이어 볼에 대해 고민하던 아이네스는 화도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이걸 저 녀석에게 줄 생각이었지? 어디 혼나봐라.’
아이네스는 그를 향해서 흰색의 파이어 볼을 던졌다.
그러자 화도환은 파이어 볼을 살짝 피했고 다시 무혼을 노려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옆에서 빛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뭐… 뭐야? 우아아악.”
콰콰콰쾅.
“벽력탄이다!”
무림인들이 경멸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벽력탄의 폭발음이 들리자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앗! 저 녀석 고급 무사였지? 내가 미쳤나 봐.’
폭발을 보며 미소를 짓던 아이네스의 머리에 이곳의 무인들이 대부분 고급 기술을 구사하는 무사들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저 녀석 성질도 좋지 않던데 피해야겠어.’
주위에 몸을 피하는 사람들 속에 끼여 아이네스는 열심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휙~ 데굴데굴.
연기 속에서 검게 그을린 화도환이 몸을 뒹굴며 튀어나왔고 아이네스가 있는 자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아이네스가 몸을 피한 뒤라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격을 준비했던 화도환이 허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어? 이 자식이 어디 갔지? 야 이 개자식아-. 나와라. 나를 이 꼴로 만들고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화도환의 눈에 이미 멀리서 도망치고 있는 아이네스가 보였다.
“저 자식을. 크악-.”
아이네스의 파이어 볼이 폭발하면서 불과 함께 밀려든 마나의 충격으로 속이 진탕이 되어 있던 화도환은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이 친구, 무슨 일인가?”
“무혼 그 자식이 우리 마을에 왔어.”
폭발음을 듣고 달려왔던 강천패는 화도환을 부축하다 무혼이라는 이름을 듣고 눈매가 매서워졌다.
“뭐? 그놈 지금 어디 있나?”
“저쪽으로 갔네.”
화도환이 가리킨 방향을 보던 강천패는 그를 부축하여 객잔으로 들어가 방을 얻었다.
“일단 자네 내상이 심한 듯하니 운기부터 하도록 하게. 운기가 끝나면 친구들을 모아 함께 그놈의 뒤를 쫓도록 하자고.”
객잔의 방에서 화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있던 무혼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꿈이라지만… 내가 마법을 사용한다고? 설마 공주의 영혼이 내 몸에 있는 것인가?’
10여 년간 마법을 구경하고 이론도 이해하고 있지만, 마법 구사가 되지 않던 자신이 꿈에서 갑자기 능숙하게 마법을 펼치자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공주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수도경비대의 기사와 싸웠을 때, 마법이 구사되지 않았던가? 공주는 아직 이 몸에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을 바꿔 자신이 마법에 대해서 구경을 많이 해서 희한한 꿈을 꾸는 것이리라. 문득 무혼은 실제로 중원에서 마법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자신만 하더라도 가이오스트에서 가장 상대하기 싫은 상대가 마법사와 사제들이 아닌가? 또한, 저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1대 1 대결에서는 모르겠지만 정사대전 같은 큰 싸움에서는 상당히 유용할 것 같았다.
무혼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네스는 성질에 못 이겨 섣불리 아이스 볼(?)을 사용한 것을 후회했다.
‘참 나, 여기 사람들은 무술 실력이 대단하던데 이건 기사 앞에서 나 마법사니 죽여보시오, 라고 하는 것과 같잖아? 여기 와서 자꾸 실수하고 있는 것 같아. 하아~ 이 정도면 더 이상 쫓아오지 않겠지? 이 길을 따라간다면 다른 마을이 나올까?’
마을 밖으로 나와 길 위에서 가슴을 잡고 숨을 몰아쉬며 가만히 생각했다.
‘아, 그리고 보니 오늘 쉬지도 못하고 돌아다니고만 있네. 너무 피곤해. 아아, 앨리의 손길이 그리워. 따뜻한 물에 앨리의 마사지를 받으며 씻고서 내 침대에서 편히 눕고 싶어.’
길가의 바위에 앉아 쉬던 그녀는 하늘을 보며 속으로 혼자서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 작은 산을 하나 넘고 있는 그녀의 등 뒤에서 외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혼이다. 저 자식 저기 있어.”
뒤를 돌아보니 화도환과 다른 놈들이 뒤를 쫓아오고 있다.
‘하, 저 자식 남자 맞아? 무슨 남자가 쪼잔하게 아이스 볼 한 대 맞았다고 여기까지 쫓아오는 거야? 저 숲으로 피하는 게 좋겠어.’
다시 달리기 시작한 아이네스를 통해서 보고 있던 무혼은 갑갑함을 느끼고 있다. 혈난보로 달린다면 쫓아오고 있는 녀석들쯤은 순식간에 따돌릴 수 있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지. 몸만 자유롭게 움직여도 저놈들을 다 패대기를 칠 텐데.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런 느린 달리기로 도망을 치니 갑갑하군. 에잇, 움직여라. 혈난보!’
구결을 떠올리고 의지를 싣자 무혼의 몸은 갑자기 혈난보의 방위를 밟으면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네스는 헤이스트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자신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놀랐다.
‘기사들의 달리기가 빠르다고는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 빠른 것 같은데? 이 몸의 주인이 깨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이네스는 캐스팅을 하기 시작하며 숲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그만 달려도 되는데. 아, 걸음이 멈췄다. 그럼 숲의 경계로. 인비지빌리티!”
그러자 아이네스의 몸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다른 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네스는 천천히 걸어서 숲에서 나와 꽤 떨어진 초원 위에 있는 바위로 다가가서 앉았다.
‘이제 멍청이들이 숲으로 뛰어들기를 기다려야 하네. 그런데 저 녀석 세수도 안 하고 사나? 얼굴에 검댕이를 묻히고 그냥 다니다니?“
아이네스를 쫓고 있는 자들의 앞에는 검게 그을린 화도환이 눈에 독을 품은 채 달리고 있었다. 그는 무혼이 숲으로 도망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무혼! 4년 전의 복수를 해주마!”
화도환의 절규에 다른 7명의 눈에도 갑자기 살기가 흉흉하게 띄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아이네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혼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많구나? 그러고 보니 4년 전의 그 녀석들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밥맛없는 인간들인 것은 변함없어. 어찌 보면 저놈들 때문에 내가 그때 고통에 휩싸인 거야.’
화도환의 고함을 들은 아이네스는 저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랐다. 20번째 생일날 객잔에서 무혼과 시비가 붙었던 녀석들, 저들 때문에 무혼이 산에 뛰어 올라갔다가 그 이상한 풀뿌리는 먹고 같이 고통에 시달렸었다.
바위에 앉아서 그들이 숲으로 뛰어든 것을 본 아이네스는 다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들을 따돌릴 때 사용하는 방법이 저 멍청이들에게도 잘 먹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들은 시야가 가리는 숲에서는 기척을 숨겨도 귀신같이 찾아내지만, 평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스토레무 경의 가르침이었다.
저들은 숲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다닐 것이다. 자신은 그동안 다른 마을의 객잔에서 조용히 쉬고 있으면 될 터였다.
‘피곤해. 3클래스의 마나를 모은 지 몇 시간이 되지 않는데 3번이나 3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했네. 노숙도 하기 귀찮고 이 길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다음날.
“헉헉헉.”
‘되게 재수가 없네? 하여튼 이 몸으로 옮기고부터는 되는 일이 없어.’
길을 따라 하루를 걸었지만 아무런 마을도 나오지 않았고 결국 노숙으로 밤을 보낸 뒤 계속 길을 걸어가는데 뒤를 쫓고 있는 자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어제 자신을 쫓아오던 그자들이 틀림없었다.
“뭐 저런 인간들이 있어?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도 쫓아오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해 주는 기사도 없는데 고급 기사급의 실력을 지닌 그들과 싸운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잘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숲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아-. 달링 무혼~ 깨어나서 나를 저놈들로부터 지켜주세요~’
그러면서 팔을 슬쩍 긁었다.
‘내가 말하고도 닭살이네. 야이, 멍청아! 좀 빨리 깨어나서 저놈들 좀 어찌해 봐. 너에게는 식후거리잖아? 왜 빨리 깨어나지 않는 거야?’
숲으로 뛰어들면서 아이네스는 무혼에게 불평을 쏟아낸 뒤 마나를 모아 캐스팅을 시작했고 한동안 읊조린 후 시동어를 외쳤다.
“인비지빌리티!”
자신의 몸이 투명해진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리니 그들이 거의 숲에 다가오고 있었다.
‘길이 너무 좁아서 빠져나가지 못하겠어. 다른 길이 어디에 있지?’
숲을 둘러보니 반대쪽에 빠져나갈 곳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곳도 외길이었다. 아이네스는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라 산 위로 걸어 올라갔다.
‘또 중원이긴 한데… 그런데 여긴 또 어디야?’
무혼은 왜 자꾸 본 적 없는 곳이 꿈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어제의 꿈과 지금의 꿈이 혹시 진짜 현실인가?’
“인비지빌리티.”
갑자기 자신의 팔이 보이지 않았고 자신의 몸이 뒤를 돌아보자 화도환과 그 친구들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자고. 그놈 무슨 일인지 몰라도 지금 무공을 사용 못 하는 게 틀림없네.”
“술법을 잘못 익히면 그럴 수도 있다고 들었네. 이 기회에 그놈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좋겠네.”
언덕 위에서 그들의 말을 들은 무혼은 기가 막혔다. 4년 전 그때 이후 자신 앞에서 감히 무기를 뽑지 못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온 것이다.
‘이것들을 그냥…….’
하지만 몸은 무혼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산 위로 계속 길을 걷고 있었다.
한동안 쉬지 않고 올라가는 데 무혼의 눈에 팻말 하나가 들어왔다. 그 팻말을 본 무혼은 소리를 질렀다.
‘이, 이런 젠장! 더 이상 가면 안 돼! 마교의 위험지역을 경고하는 팻말이란 말이야. 여기가 그 유명한 탈혼흑림(奪魂黑林)이야.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해.’
총단의 넓은 지역에는 접근을 금하는 금지가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마교의 비밀이 있는 지역이라 금지가 된 곳이었고 하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금지가 된 곳인데 지금 자신의 몸이 다가가는 곳은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꿈이야, 현실이야? 현실이라면 어느 녀석이 내 몸을 차지한 거야? 야, 멈춰-. 더 이상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