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20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20화
020 도둑 길드와 탈혼흑림(1)
몇 시간 뒤 미라크네의 수도 미라쉘든의 한 여관에서 밤을 지낸 무혼은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제 깨어나는 듯하던 이 여자의 영혼은 어떻게 된 거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법까지 구사하는 것을 보면 몸 안에 영혼이 있는 것은 확실한 듯한데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나도 몸 주인의 영혼이 깨어나질 않는 것이다.
한숨을 내쉬던 무혼은 방을 열고 나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엘라드와 함께 여관을 나왔다.
“특별히 정하신 곳은 없고 은신처가 필요하시다고요?”
지치지 않고 물어보는 엘라드를 보니 어제 전격 마법을 이용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한 사람을 튀긴 사람답지 않은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얼굴로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아.’
어젯밤의 그 모습을 떠올리면 무혼으로서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끄덕.
“은신처라… 같이 찾아보도록 하죠. 하아. 햇살도 따가운 것을 보니 조심하지 않으면 기미가 생길 것 같습니다.”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린 엘라드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꼬고 있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무혼은 그를 따라 길로 나왔다.
작은 샛길로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다니는데 자신의 뒤쪽에서 미행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엘라드의 손등을 살짝 친 뒤 몸을 돌리니 음산한 사내들이 고개를 돌라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하는 짓을 보니 교두들이 설명해 준 하오문도들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 생각이 틀리지 않는지 엘라드가 무혼에게 살짝 붙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도둑 길드 놈들입니다. 싸우기 편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해결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의 말에 무혼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라드는 골목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가니 허름하고 큰 건물의 뒤쪽에 공터가 하나 나왔고 그곳에서 길을 막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혼이 앞을 나서며 우산을 고쳐 쥐자 뒤쪽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나와 길을 막았다.
무혼과 엘라드를 둘러싸고 있는 자들이 어느새 20명 정도가 되었고 무혼이 앞을 노려보자 엘라드도 하프를 꺼내어 쥐고는 뒤쪽을 주시했다.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자들을 훑어보며 무혼은 우산에서 검을 뽑을 것인지 아닌지 가늠해 보았다.
‘굳이 뽑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우산으로 손을 써도 효과가 상당히 좋았어.’
우산의 능력에 꽤나 만족했던 무혼은 이대로 사용하고자 했다. 아무리 뒷골목이라고 하나 지금 무혼의 입장에서는 피를 흘리게 해서 경비대를 달려오게 하는 것은 곤란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무혼의 귀에 상대가 도둑 길드임을 알고서도 묻고 있는 엘라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도둑 길드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길드원들을 공격하고 도둑 길드에 들지도 않았으면서 강도질을 하다니 누구 허락을 받은 거냐?”
“강도질?”
무혼이 되묻자 그자는 곧바로 대답을 했다.
“네년들이 지방 귀족 하나를 공격해서 큰 부상을 입히고 가진 것을 모두 털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 말에 무혼이 엘라드를 보자 그는 생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제 수고료도 있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있어봤자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줄 듯해서 털었죠.”
고개를 살짝 흔들며 다시 앞을 보니 길드원들이 자신의 무기들을 꺼내고 있었고 그것을 보며 무혼은 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화로 풀기 힘든 상황이라고 느껴지자 다른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특별한 내기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들의 손놀림과 위치를 잡은 것을 보니 합격술에 능한 이류고수의 느낌이 들었다.
아이네스의 몸에 있는 내공이 자신의 내공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내공 운용을 신중히 해야 했다. 앞에 있는 자들만 처리하고 끝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오늘 계속 싸워야 한다면 많은 인원수가 계속 덤벼들 것을 생각해 힘을 아껴야 하는 것이다.
‘교두들이 말하길 이류고수라도 합격술이 좋으면 상승고수나 절정고수를 이길 때도 있다고 했었다.’
연무관에서 배운 것을 떠올리던 무혼은 자신의 앞에 합격진의 빈틈이 보이자 잠시 망설였다.
‘나를 유인하는 것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네스의 눈을 통해 봤을 때 이곳은 경공술도 없었고 합격진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듯했었고 저기 보이는 빈틈은 실제 빈틈일 가능성이 컸다. 그 생각이 들자 무혼은 방위를 잡고 그 틈을 향해 달려갔다.
생각보다 빠른 무혼의 모습에 목표가 된 사내는 숨을 들이켜며 몸을 돌렸다. 무혼의 우산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가자 다른 사내가 숏소드를 휘두르며 무혼에게 따라붙었다.
자신이 생각한 상황이 나오자 무혼은 슬쩍 웃으면서 자세를 낮추며 몸을 돌리고 그의 왼쪽 다리를 향해 우산으로 쓸어갔다.
생각지 못한 무혼의 모습에 놀란 사내는 무리하게 다리를 뒤틀고 숏소드로 내리면서 무혼의 검을 피하고자 했지만 무혼이 방향을 틀어 자신의 등을 찌르고 들어오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으악!”
‘중원에 비해 실력이 못하군.’
기사들의 움직임도 마교의 전사들에 비해 한수 아래였고 도둑 길드의 이자들도 설명을 들었던 하오문에 비해 실력이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능숙한 무혼의 검술 실력에 간신히 피한 사내는 주춤주춤 물러섰다.
‘약간의 내기만으로도 이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어.’
사이한 붉은 기류가 흩날리기 시작하는 무혼의 모습에 사내들은 점차 얼굴색이 변해가며 긴장했다. 어제 엉망이 되어 돌아온 동료들에게서 붉은 기류를 휘날릴 때 조심하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젠장, 모두 함께 공격해. 저년을 빨리 처치하자고.”
한 사내가 나서며 외치자 다시 눈빛들이 달라지며 무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저놈.’
방금 외친 사내를 주시하며 무혼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도둑 길드원들은 무혼을 에워싸고 빈틈을 노렸다.
한 명이 단도로 무혼의 다리를 노리고 미끄러져 오자 무혼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우산으로 내려쳤다.
“으악!”
가슴을 강하게 맞은 길드원은 연이은 무혼의 각법(脚法)에 튕겨 나갔고 그것을 보던 세 명의 길드원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피의 향기는 코끝에 아홉 번을 맴돈다. 혈향구회(血香九回)!’
그가 몸을 돌리며 손으로 부드러운 곡선의 궤적이 그리자 그 움직임에 따르는 우산이 뒤를 습격하던 자의 머리를 강타하고 왼쪽의 사내의 검을 튕긴 후 다시 오른쪽 길드원의 목을 쳤다. 그리고 되돌아가 왼쪽의 사내의 배를 찔러가니 세 명의 사내는 땅 위를 구르고서 경련을 일으키며 일어나지 못했다.
“무슨 저런 검술이 있단 말이냐?”
직선적인 기사들의 검술만 봐오던 길드원들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에 5명이 땅바닥을 구르며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붉은 기류를 날리는 무혼이 붉은 눈으로 계속 한 사내를 쳐다보자 사내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다.
‘저 여자 어둠의 신의 사제인가? 혹시 나를 어둠의 제물로 선택한 건 아닐까?’
무혼이 노려보고 있는 남자, 파비안은 조금 전에 입을 열었던 것을 후회했다.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갈 것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게 사실이 될 줄이야.’
그는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무혼을 공격하는 자들이 눈을 뒤집으며 한 명씩 땅에 쓰러지고 있었고 무혼이 공격을 받으면서도 붉은 눈을 그에게서 떼지 않자 그는 멍한 표정의 얼굴이 되어가며 점점 더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하지만 무혼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파비안이 정신을 차린 듯 머리를 흔들었을 때 무혼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제야 생각이 난 듯 파비안이 주위를 돌아보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훑어보았고 경악에 찬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무혼이 그의 목을 붙잡자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듯 몸을 비틀고 있다.
‘우아아아~’
고통과 공포에 가득 찬 파비안이 입을 크게 열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무혼에게 목이 잡힌 채 고개도 돌리지 못해 무혼의 얼굴을 보고 있는 파비안의 눈에 무혼의 눈이 점점 더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파비안은 이 여자가 소문으로만 들었던 어둠신의 여사제가 맞을 거라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으아아! 심장이 뽑혀 죽는다. 산채로 뜯어 먹힐 거야.’
그때 그를 구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있었다.
“네스 씨,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무혼이 뒤를 돌아보니 엘라드도 이미 그의 앞에 있는 자들을 다 쓰러뜨린 뒤였다. 하프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좀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풀어 파비안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네스 씨가 필요로 하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엘라드는 싱긋 웃으면서 파비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둑 길드의 위치를 알고 싶습니다. 길드 마스터도 만나고 싶고요.”
파비안은 잠시 망설였다. 도둑 길드의 위치를 발설했을 때 찾아올 후환이 걱정된 것이다. 하지만 계속 들려오는 엘라드의 말에 그 생각이 그의 머리에서 싹 지워졌다.
“당신이 말하기 싫다면 여기 물어볼 사람이 아주 많이 있으니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만?”
“무엇이라? 놓쳤다고?”
“대단한 실력을 갖춘 여자들이었습니다. 20여 명이 덤벼들었는데도 손가락 하나 대지를 못했습니다.”
왼쪽 얼굴이 부풀어 올라 퍼런 자국을 손으로 감싸고 있는 자가 길드 마스터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치료를 안 받았냐? 얼굴이 보기 안 좋다.”
“그게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아도 낫지를 않고 있어서…….”
길드 마스터 메레디스는 인상을 찌푸린다. 그들의 영역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자들을 놔두면 주위의 비슷한 업종의 길드 모두가 깔볼 것이 틀림없었고 그것은 이 도시에서 자신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찾아라. 그리고 이리로 끌고 와라. 내가 이 채찍으로…….”
메레디스가 이를 갈면서 채찍을 바닥에 한 번 휘두르자 길드원들은 움찔했다. 아무리 길드원들의 머리에서는 그자들일지라도 길드 마스터의 채찍은 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파비안을 끌고 갔습니다. 어쩌면 오늘 습격해 올지도 모릅니다.”
“훗. 제 발로 찾아온다면 더욱 좋지.”
메레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