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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8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1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8화

018 엘라드(2)

 

 

 

 

 

“저기 그런데 레이디의 이름은?”

 

여관의 1층에 있는 음식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식사를 시키고 서로 마주 앉게 되자 엘라드가 이름을 물었다.

 

무혼은 잠시 궁리를 하다 아이네스의 이름 중에 앞부분을 빼고 뒷부분만 말했다.

 

“…네스. 남자.”

 

무혼이 끝까지 남자임을 주장하자 엘라드는 황당해하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자신의 앞에 있는 맥주잔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던 무혼은 조금 전에 받은 담배를 꺼냈고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네스는 어디로 가십니까?”

 

무혼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밝은 불빛 아래에 드러난 엘라드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눈은 큰 편으로 맑고 웃음은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여장을 한다면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예쁜 여자에 가까운 얼굴이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몸에서는 알 수 없는 기운을 풍기고 있는데 그 위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솜씨를 겨루게 된다면 승패를 말하기가 어려웠다. 수준을 알 수 없는 실력자. 무혼이 엘라드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자의 눈에서 적의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실력자가 자신을 속여 잡기 위해서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냥 검을 뽑고 잡으려고 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한창을 생각하던 무혼은 담배 연기를 다시 내뿜으며 대답을 했다.

 

“없소.”

 

“없어요? 어딜 갈지 아직 결정을 안 한 건가요?”

 

무혼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라드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때 무혼은 자신을 유심히 보는 눈길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음울한 분위기의 사내가 검사로 보이는 두 명을 거느린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뺀질거리며 얍삽한 얼굴이 꼭 화도환과 비슷한 느낌을 주자 무혼은 담배 연기를 날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에도 저런 느낌을 주는 놈이 있긴 있군.’

 

 

 

 

 

지방에 자그마한 영지를 가지고 있는 에어폰 남작의 하나뿐인 아들인 레버에트는 수도에 올라올 때마다 여관을 돌아다니며 여자를 찾았다.

 

이미 그의 고향 근처에서는 자신에 대한 소문이 나서 취미 생활을 즐기기가 어려워지자 소문이 나지 않을 넓은 수도에서 취미를 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오호, 저런 미모의 서민 여자들이라니?’

 

주위의 사람들과 구분이 되는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의 두 여인이 그의 눈을 잡고 있었다.

 

한 명은 남자 옷에 회색의 로브를 걸치고 있지만, 자신이 보기엔 어설픈 남장의 여인이었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다른 여자는 승마복을 입고 우산을 무릎 위에 올려둔 여인이었다. 그가 보기에 무혼과 엘라드의 외모는 여관 안에서 단연 돋보였다. 원래 가이오스트의 서민 여자들은 햇빛 아래에서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피부가 거칠어지고 까맣게 탄다.

 

‘하얀 피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서민의 여자라… 후훗, 오늘은 재수가 좋은데?’

 

레버에트는 무혼과 엘라드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서서히 걸어가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매력적이라고 착각하는 미소를 띠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슬을 머금은 꽃 같은 여성이라는 표현이 레이디들보다 더 잘 어울리는 분을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부디 저에게 두 분을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가 좀더 효과적인 모습을 내고자 자신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여러 개의 보석 반지들을 살짝 흔들자 보석들의 반사광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훗! 서민인 너희들이 어디서 이런 시적인 표현을 들어봤겠냐? 게다가 보석빛이 황홀하지?’

 

속으로 웃으면서 그는 계속 그윽한 눈빛과 은근한 미소로 두 사람을 보았다.

 

무혼은 자신의 앞에 있는 술잔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 몸을 살짝 떨었다. 남자가 능글맞은 눈과 썩은 미소로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보자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 앉은 엘라드는 그를 자세히 훑어보더니 눈에 빛을 띠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는 옆에 선 사내에게 보이지 않도록 무혼에게 살짝 눈을 찡긋하더니 대신 대답을 했다.

 

“어머, 안 그래도 자리를 옮기고 싶었는데 매력적인 분이 나타나 주시다니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어디로 에스코트해 주실 생각이신가요?”

 

부르르르.

 

갑자기 가성을 내는 것인지 여성스러운 목소리에 콧소리까지 내며 말하는 걸 보니 영락없이 여자다. 아까부터 엘라드가 여성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던 무혼은 지금의 모습을 보고서 더욱 의심이 심해지고 있었다.

 

무혼이 그러한 엘라드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사이에 엘라드와 레버에트의 이야기가 끝났는지 엘라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무혼에게 가자고 눈짓을 하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뭘까?’

 

궁금해진 무혼이 그의 뒤를 따라서 주점을 나가니 밖에서 기다리던 레버에트가 앞장서서 걸으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한적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여기가 좋겠군요.”

 

갑자기 엘라드가 걸음을 멈추며 말을 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무혼은 그의 얼굴을 보았고 레버에트도 엘라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자신을 보면서 눈썹을 좁히고 있자 엘라드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좋은 데를 데려갈 것도 아니었잖아요?”

 

그러면서 로브 안에서 천천히 둥글고 작은 하프를 꺼냈다. 그것을 보던 레버에트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조금 전의 거부감이 생기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레이디께서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는 것이 있나요?

 

“여성 노략자, 레버에트 에어폰. 당신을 찾아 미라쉘든까지 온 보람이 있네요. 만나서 몹시 기쁩니다.”

 

엘라드는 계속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레버에트의 얼굴은 험악해졌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두 호위들은 검을 천천히 꺼내 들고 있었다.

 

“나를 아나?”

 

“잘 알죠.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여성의 적. 이렇게 유인해서 욕심을 채운 후 괴롭히며 살해한 여자들도 많죠? 당신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흐흐흐. 그래, 날 만나서 어쩔 생각이지? 그러고 보니 너 같은 년이 더 재미있을 수 있겠군.”

 

레버에트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으면서 말했다. 그는 서민의 여자를 귀족이 어찌한다고 큰 문제가 될 것도 아니고 감히 귀족에게 대드는 서민을 징계했다고 하면 끝낼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하고 있다.

 

옆에서 들으며 대충 상황이 파악된 무혼도 엘라드에게서 받은 우산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난 남자입니다. 늦게 알려줘서 미안합니다.”

 

그 말에 레버에트는 황당하다는 듯이 엘라드를 보았다. 그리고 그 말을 확인하려는 듯 무혼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무혼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

 

레버에트는 이가 갈리고 있었다.

 

“이것들이 날 놀리나? 네놈들 어디를 봐서 남자냐?”

 

특히 엘라드와는 다르게 여자의 옷을 입고 있는 무혼의 가슴과 목을 보니 여자가 분명한데 남자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놀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했다.

 

‘나를 알고서도 싸울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한가락 믿는 실력이 있다는 말인데, 흥분하게 만들려고 하는 건가?’

 

두 호위의 실력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나름대로 쌓아 올린 검술 실력이 있는데 이렇게 자신만만해하는 이 여자들의 정체를 빨리 파악하고자 했다.

 

‘저 여자는 메이스를 다루는 것인가? 그리고 이 여자는… 하프면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이지?’

 

오히려 단단해 보이는 우산을 들고 있는 무혼보다 엘라드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레버에트는 오른쪽에 있는 호위에게 무혼을 눈짓하고는 왼쪽의 호위와 함께 엘라드를 노리기 시작했다.

 

“쳐라!”

 

무혼은 앞의 사내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실전 검술인 듯한데… 겨우 이따위 짓에 사용하기 위해서 익힌 거냐?’

 

조금 전에 만난 뒷골목의 불량배들보다 더욱 못마땅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내를 보던 무혼은 우산을 휘두르며 찔러갔다. 그러자 사내가 검으로 자신의 우산을 튕겨내려는 것이 보였다.

 

‘느린 주제에 어딜?’

 

허리를 숙이고 몸을 돌리며 팔을 뻗자 무혼의 우산이 방향을 틀어 그의 어깨를 찔러갔다. 둔한 병기의 특성을 머리에 떠올리며 상대하던 사내는 경악한 얼굴을 하고 어깨를 뒤로 물렸다.

 

하지만 무혼의 우산이 다시 방향을 바꿔 오른쪽 다리를 치고 지나가자 피하지 못한 그는 이를 꽉 물었다.

 

퍽!

 

“크흑.”

 

사내는 다리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몸을 뒤로 빼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 하였지만 무혼이 더 빠르게 다가오며 다시 오른쪽 어깨를 찔러오자 검을 세워 막고자 했다.

 

그러나 검이 부딪치기 전에 무혼의 우산이 다시 한번 바깥쪽으로 원을 그리며 사내의 왼쪽 얼굴을 강타했다.

 

뻑.

 

“끄악!”

 

얼굴을 강하게 맞은 사내가 옆으로 튕겨 나갔지만 무혼이 몸을 반대로 돌리며 다시 오른쪽 어깨를 후려치자 몸이 살짝 떠올랐다.

 

무혼의 자세가 낮아지며 다시 우산이 휘둘러지자 그의 다리를 때렸고 그의 몸이 공중에서 돌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무혼이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자세로 두 손으로 우산을 잡고 내려치자 옆구리를 강하게 맞은 그자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설 줄을 몰랐다.

 

‘그럼 다음 놈은…….’

 

눈을 돌린 무혼은 신기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엘라드와 두 사내들과의 싸움은 시작되었지만, 무혼이 보기에는 엘라드 쪽이 유리해 보였다.

 

‘꼭, 륜을 다루는 것 같군. 그런데 저 인간은 튼튼한 물건만 가지고 다니는 것 같네?’

 

잠시 자신이 들고 있는 우산을 보니 손상된 곳이 없어 보였다. 사람의 무게와 칼의 날카로움을 버틸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무혼이 다시 눈길을 돌려 보니 엘라드가 하프를 오른손으로 잡고 그를 노리는 검을 쳐내며 가깝게 붙고 있었다. 그리고 검으로 공격하기 어려운 거리에 들어가자 하프를 휘둘러 상대들의 팔과 허리를 두들겨주었다.

 

“이 빌어먹을 년이?”

 

“난 남자입니다.”

 

미소를 띠며 잔잔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엘라드를 보며 얼굴을 찌푸린 레버에트가 롱소드를 사용하기 유리한 거리로 떨어졌다.

 

‘떨어져 주길 바랐지.’

 

원하는 결과에 미소를 지은 엘라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물러서며 하프를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그의 왼손이 하프의 현을 튕기며 그 위를 춤추듯 움직이기 시작하자 무혼은 그 손가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탄지공?’

 

교두 중에서 사용하는 자가 있어서 볼 수 있었던 탄지공이 엘라드의 손가락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다르다면 내공을 이용한 탄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주 작은 소리로 울리는 하프를 뜯고 있는 엘라드의 손가락에 푸르스름한 빛이 모여들더니 팅 소리와 함께 기탄이 날아갔다.

 

콰앙!

 

날아오는 기탄을 망토로 막은 레버에트는 두어 걸음을 물러섰다. 폭발이 그의 생각보다 컸다.

 

“하프로 마나탄을 날리다니?”

 

“3클래스의 바리어가 있는 망토라니 좋은 아티팩트로군요?”

 

“이런저런 일을 자주 겪게 되어서 말이지. 쳐라!”

 

그러면서 레버에트도 몸을 날리며 엘라드를 향해 검을 들이댔다.

 

탱!

 

무혼의 우산에 검이 막히자 레버에트는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비록 자신이 검기를 구사하는 고급검사가 아니었지만, 그의 실력과 들고 있는 날카로운 이 검이라면 우산 정도는 그냥 베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입을 열려고 하던 레버에트는 눈만 크게 떴다. 무혼이 내기를 끌어올리자 붉은 기류가 무혼의 몸 주위를 돌기 시작했고 우산에 희미하게 보이는 기운은 그가 몇 번 본 적이 있는 검기였다.

 

“우. 우산에 검기를? 당신, 정체가 뭐야?”

 

레버에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기를 일으킬 실력자라면 그와 두 호위가 함께 덤벼들어도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는 데다가 검기를 버틸 수 있는 우산은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 하프도 이 우산도 보통의 물건이 아니라면 이 여자들은 대체……?’

 

놀라고 있는 레버에트의 눈에 무혼과 싸웠던 사내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 소리만 가느다랗게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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