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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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2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1권 - 12화
“그럼 넌 퇴학이다.”
“상관없어! 비켜!”
얼굴의 상처. 평민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다 생각하는 후스티에겐 더 이상 네드벨 아카데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위드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평민 학생은 아직까지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럴 수 없겠군.”
이대로 자신이 비킨다면 분명히 아무런 대응도 못하는 그는 후스티의 목검아래 죽을 것이다. 제아무리 목검이라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엔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켜! 너도 죽여 버리기 전에 비키란 말이야!”
악에 바친 듯 고함을 내지르는 후스티의 모습에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힌 그의 친구들이 급히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후스티! 저따위 평민 새끼 때문에 네가 어렵게 들어온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할 이유는 없잖아?”
“그래, 차라리 두고두고 복수를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후스티, 조금만 냉정해지자. 지금 섣부르게 놈을 죽였다가는 네 인생이 꼬일 수도 있어!”
필사적으로 자신을 진정시키는 친구들 때문인지 후스티는 어느 정도 화를 누그러트린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위드나 그의 뒤에 주저앉아 있는 평민 학생을 바라보는 그의 눈엔 붉은 살기가 잔뜩 깃들어 있었다.
“빌어먹을! 언젠가 네놈의 얼굴엔 더 큰 상처를 아니! 네놈의 팔이나 다리 하나쯤은 반드시 잘라 버릴 테니 기다려!”
평민 학생을 향해서 그렇게 증오에 가득 찬 말을 뱉어내고는 이어서 위드에게도 말했다.
“네놈도 언젠가 오늘의 일을 몇 배로 갚아줄 테니 똑똑히 기억해둬!”
그렇게 말을 마친 후스티와 그의 친구들은 서둘러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검술 수련장을 빠져 나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위드는 피식 웃었다.
“은혜도 모르는 것.”
위드는 이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민 학생을 일으켰다.
“난 위드. 네 이름은?”
위드의 물음에 그는 멍하니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티, 티스…….”
“티스, 오늘 일은 그냥 불의의 사고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뭐, 복수를 하겠다느니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카데미 내에서라면 그다지 큰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기죽…….”
“내가 귀족의 얼굴에 상처를 냈어. 난 죽을 거야. 예전에 내가 어렸을 적에도 그랬어. 하샤 아저씨가 귀족의 팔에 상처를 입혔더니 그대로 목이 잘려서…….”
공포에 질린 티스의 모습.
위드는 어째서 티스가 이리 오랫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그것만큼 오래 가는 기억은 없는 것이고, 그것만큼 충격적인 기억은 없는 법이다.
“나, 난… 죽기 싫어…… 난…… 죽기 싫어…….”
눈물을 흘리며 죽기 싫어 란 말만 반복하는 티스의 모습에 위드는 씁쓸하게 웃고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걱정하지 마. 티스, 넌 죽지 않아. 죽지 않아.”
Chapter 5 203호 드워프와 엘프
“위드!”
검술 수련장으로 들어서는 위드를 향해서 티스가 환한 웃음과 함께 양손을 번쩍! 들며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 모습에 위드는 슬쩍 웃고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니, 티스가 먼저 달려왔다는 편이 옳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꽤나 오래 기다렸는지 티스는 약간 불만스런 음성으로 말을 했고, 그런 그를 향해서 위드는 말도 하지 말라는 듯 대꾸했다.
“귀찮게 따라다니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혹시 에리카?”
“응.”
“…….”
너무나 간단한 대답에 티스는 입을 다문 채 그저 황당하다는 얼굴로 위드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법학부 최고의 미녀인 에리카를 그저 귀찮게 따라다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위드를 볼 때마다 티스는 그가 정말 남자가 맞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에리카는?”
티스는 혹시라도 에리카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검술 수련장 입구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위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숨에 그를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마법 수련을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갔어. 아예 마법 수련에 빠져 버려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드, 너 혹시…….”
아무리 생각해도 위드는 남자가 아니라 생각한 티스는 그 물음을 건네려다 이내 아니라는 듯 입을 다물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대충 소문과는 전혀 다르게 에리카가 일방적으로 위드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티스였기에 그저 한없이 부러울 뿐이었다.
티스가 위드와 함께 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후스티에게 혹시라도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하던 티스는 유일한 방패막인 위드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게다가 위드 역시 그런 그를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친분이 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반이 다른 두 사람이었기에 티스는 수업 시간에는 항상 같은 반인 후스티와 그 패거리들을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물론, 그들이 아직까지는 직접적으로 어떠한 위해도 가해오지 않고 있었지만 후스티의 왼쪽 뺨에 생긴 흉터와 그의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티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나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그럼 시작할까?”
위드의 말에 티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로 목검을 겨누며 마주 섰다. 위드의 실력이야 이미 알려진 대로 대단함을 자랑했지만 티스 역시도 꽤나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히려 입학 성적으로 따지면 위드는 검술과 체술에서 각각 127등과 98등이었지만 티스는 검술에서 54등, 체술에선 32등을 했을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검술이나 체술을 대결하면 매번 승부가 제대로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늘만큼은 정말로 승부를 내는 거다!”
티스의 말에 위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티스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떻게 하더라도 위드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위드는…… 어떤 사람일까?’
위드 카일러 준남작.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게 위드는 자신이 준남작이라는 것에 조금도 자랑스러워하거나, 작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들먹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평민인 자신과 같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 그 진실한 실력을 알 수 없는 검술과 체술은 나름대로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티스로서도 도저히 파악이 안 될 정도였다.
탁탁탁!
목검과 목검이 허공에서 무수히 부딪히고 두 사람의 몸이 엇갈리고, 포개지길 반복했다. 기본기로 따지면 위드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하지만, 티스 역시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허리를 베어 나가고, 가슴을 가르며, 배를 찌르고, 어깨를 내려치는 무수한 공격 속에서 위드는 여유롭게 목검을 휘둘러 모두 막아냈다.
간간히 이뤄지는 위드는 반격은 티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고,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목검을 휘두르고, 찌르고, 내지르며 수십 차례나 대결을 이어나갔다.
탁탁탁탁-!
“역시 카일러 준남작은 기본기가 대단하단 말이야.”
“티스라는 녀석도 대단하긴 마찬가지지.”
“하긴, 저 둘이 대련하는 모습을 보면 잘 짜인 한 편의 소드 댄싱(Sword Dancing) 같단 말이야.”
위드와 티스의 검술 대결이 벌어지자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수련을 잠시 멈추고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위드!”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위드와 티스의 검술 대결이 갑작스런 고함 소리에 멈춰지고 말았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은 막 검술 수련장으로 들어서는 라이너와 트레제였다.
“그렇게 크게 부를 필요는 없잖아.”
트레제의 타박에 라이너는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주목을 받아보겠냐? 넌 친구 하나 잘 뒀다고 생각해.”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다는 말이 절실히 생각하는 트레제였다.
라이너와 트레제가 다가오자 티스가 가볍게 인사를 했고, 두 사람 역시도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이미 위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친해진 세 사람이었기에 조금도 어색함은 없었다.
“봤어?”
다짜고짜 알 수 없는 물음을 건네는 라이너.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위드와 티스는 자연스럽게 트레제를 바라봤고, 그는 언제나처럼 라이너가 중간에 잘라먹은 말들을 자세히 해주었다.
“조금 전에 이번 체술 시험 대진표가 나왔어.”
“벌써 그렇게 됐나?”
위드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도 지나간다 생각했다. 네드벨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방학을 위한 체술 시험 대진표가 나왔다.
“티스, 너희 반에 베논이라는 녀석 있지?”
라이너의 물음에 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녀석 어때? 체술 좀 하는 것 같아?”
티스는 라이너의 물음에 그의 첫 번째 상대가 베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신중하게 그를 떠올리곤 대답했다.
“어느 정도는 했던 걸로 기억해.”
“어느 정도?”
“글쎄…….”
“티스, 너랑 비교하면 어때?”
“나?”
“응!”
티스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조금은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내가 지지는 않을 것 같아.”
“그래?”
환하게 웃는 라이너의 모습에 트레제가 혀를 차며 말했다.
“뭘 좋아하는 거냐? 냉정하게 말하지만 넌 절대로 티스의 상대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티스가 베논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이야.”
트레제의 말에 웃던 라이너의 얼굴이 다시금 침울해졌다. 그 모습에 티스는 뭐라고 한 마디 해주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베논이라면…… 라이너에겐 조금 힘들지도.’
하지만, 처음부터 기가 꺾일 말은 하지 않은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티스는 속으로만 생각할 뿐,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위드.”
트레제의 부름에 위드가 그를 바라봤다.
“응?”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위드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트레제가 다시 자세히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라이너의 입이 훨씬 빨랐다.
“테일!”
“……?”
라이너가 히죽 웃으며 다시 말했다.
“테일이라고! 위드, 네 첫 번째 상대가 바로 테일이라고!”
“테일?”
라이너의 말에 위드는 트레제를 바라봤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검술에 이어서 체술로도 놈을 확! 꺾어버려!”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라이너의 말에 트레제는 ‘너나 잘해라’라고 핀잔을 주려다 이내 그래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눈총만을 주었다.
‘테일이라…….’
위드는 테일과의 대결을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그저 우스운 우연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꼬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확실히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상대라는 걸 테일이 알면 꽤나 벼르고 있겠지?’
그런 테일의 모습을 상상하니 위드의 입가에 자연스런 웃음이 머금어졌다.
***
“위, 위드!”
위드가 검술 수련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자, 방 안을 서성거리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레인이 황급히 그를 불렸다.
“무슨 일이야?”
“옆방 드워프하고 엘프가…….”
무슨 일인가 싶었던 위드는 이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곤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또 203호 드워프와 엘프 일이야?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걱정할 필요 없잖아.”
말 그대로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입학식 날부터 시작해서 203호의 드워프와 엘프는 정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으르렁거렸다.
이미 유명해 질대로 유명해진 일이었기에 1학년생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웬만하면 방 배정을 바꿔 줄만도 하건만 아카데미 측에서는 규칙을 어길 수 없다며 딱! 잘라서, 두 종족의 일에서 손을 떼버린 지 오래였다.
땀 냄새가 베인 상의를 벗은 위드의 상체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흉터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레인으로서는 이미 몇 번이나 봐온 흉터들이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흉터가 보기 싫다기보다 그 흉터가 생기기까지의 과정에서 위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지를 생각하니 표출되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로 심각하다고!”
레인의 외침에 위드는 새 상의를 입고는 그를 돌아봤다.
“심각하다니? 그래봐야 어차피 서로 싸울 일은 없잖아?”
이미 저러다 진짜로 칼부림이라도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다툼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엘프와 드워프는 그래도 퇴학은 당하기 싫은지 적당한 선에서 서로 양보를 하며 물러나고는 했던 것이다.
“이번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이처럼 다급하게 말을 한 적이 없는 레인이었기에 위드는 오늘 만큼은 다른 때보다 약간 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봐야 하나?’
솔직히 엘프와 드워프 사이에 끼어들어서 무슨 이득을 보겠는가? 오히려 인간이라며 엘프나 드워프 모두 무시하기만 할 것이다.
“뭐, 서로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결국, 위드는 관심을 끊어버렸다.
“위드, 정말로 이대로 있을 생각이야?”
“내가 가봐야 두 사람을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예전에도 네가 한 번 두 사람을 말린 적이 있었잖아?”
“그거야…….”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적어도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고, 바로 옆방까지 사용하는 동기로써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을 마친 레인은 혼자서라도 가겠다는 듯 방문을 나섰다.
레인이 나간 방에 홀로 남은 위드는 꽤나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음…… 레인이 원래 저런 성격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