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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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55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3권 - 5화
잠을 잘 때조차 문밖에서 경계를 서는 강철의 기사단이었지만 신전에서 특히, 루시우스 신관이 직접 위드와 피에나를 안내할 때만큼은 두 사람을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 없었다.
보통 신전을 찾는 사람들은 광장에 머문다.
광장엔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네르미네르 신의 석상이 각기 다른 형태로 세워져 있다. 그리고 바닥은 네모반듯한 대리석이 깔려 있는데 신전을 찾는 이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이 광장에서 신을 경배하거나, 신관들의 축복과 신성 마법을 받는다.
그리고 광장에 세워져 있는 네르미네르 신의 석상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공간에서는 점-예언-을 치는 곳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광장에 머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루시우스 신관의 안내를 받아 광장을 지나 신전의 내부로 들어가는 위드와 피에나의 경우는 약간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설령, 제국의 황제라 하더라도 신의 뜻이 없다면 신전의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신전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황제라 할지라도 유일하게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황제가 신전과 신관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신의 저주인지, 우연의 산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적으로 신전과 신관을 모독한 황제들은 하나같이 그 말로가 비참했다고 한다.
그러한 전통이 세월을 더해가면서 점점 관습으로 굳어져 이제 신전은 황제의 권력으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치외법권의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루시우스 신관의 안내를 받아 위드와 피에나가 도착한 곳은 신전 내부에 마련된 귀빈실이었다.
‘어째서 저희가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입니까?’
‘신의 뜻입니다.’
처음 신전에 왔다가, 이곳 귀빈실로 안내되었을 때 위드가 물었던 질문에 루시우스 신관이 한 말이다.
신의 뜻? 무엇이 신의 뜻이란 말인가?
위드는 온갖 생각을 다해봤지만, 어느 것도 원하는 답이 될 수 없었다. 개 중 가장 그럴듯한 추측은 피에나가 원인이 아닐까? 하고 예상할 뿐이었다.
재밌는 일례로 아주 오래전 키에브 제국의 황제가 수도의 신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황제는 나름 칭송을 받고 있었으며, 실질적으로도 그러한 칭송을 받을 만큼 훌륭한 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신전을 방문한 황제는 내심 자신이라면 귀빈실로 안내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신관들은 황제를 귀빈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내심 허탈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황제는 신전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껄껄 웃으며 광장 한 쪽에서 신을 경배하며, 신관의 축복을 받았다. 그러던 와중에 신전에 한 거지가 들어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보잘것없는 거지가 신관들의 안내를 받으며 귀빈실로 들어간 것이다.
이에 황제는 자존심이 상했고, 그대로 신전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키에브 제국의 수도에 세워져 있던 신전은 황제의 명에 의해서 강제 철거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말렸지만 황제는 이미 신전을 철거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만인을 다스리는 황제인 자신이 한낱 거지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과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신전 따위는 수도에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신전은 강제로 철거되었고, 이듬해 황제는 원인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제국의 황제인 만큼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황제의 병은 전혀 낫지를 않았고, 결국 한해가 지나기도 전에 처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황제가 강제로 신전을 철거했기에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새로운 황제는 즉위와 동시에 허겁지겁 강제로 철거되었던 신전부터 다시 새롭게 지어야만 했다는 웃지 못 할 역사가 존재했다.
키에브 제국 황제의 이야기는 신전을 모독했던 수많은 제왕들 중 한 명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 이야기로 인해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자신이 신전의 귀빈실로 안내되지 않았다고 불평이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신전의 귀빈실로 안내되는 이들은 말 그대로 신의 선택을 받은 이들뿐이다. 그들을 부러워하되 시기해선 안 된다.
신전의 귀빈실로 안내되는 이들은 제국의 황제나 왕국의 왕이 될 수도 있으며, 보잘것없는 거지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론 악행을 저지른 악인이 될 수도 있었다.
“드십시오.”
루시우스 신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위드와 피에나에게 맑고 투명한 물이 담긴 잔을 내밀었다. 잔에 담김 물은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 물이 바로 신전을 방문한 이들 중 귀빈실로 안내된 이들만 마실 수 있는 축복의 물이었다.
“고맙습니다.”
피에나는 냉큼 축복의 물이 담김 잔을 들고 조금씩 홀짝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위드와 루시우스 신관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었다.
축복의 물은 약간 묘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첫맛은 달콤하다. 그런데 그 달콤함은 곧바로 자극적인 신맛으로 바뀐다. 신맛은 쓴맛으로 바뀌는데 그렇다고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의 쓴맛은 아니었다. 이어서 짠맛과 떫은맛을 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황홀할 정도의 달콤한 맛이 다시 한 번 느껴지며 그 달콤한 맛이 사라지면 입 안은 시원해지고, 머리는 맑아졌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축복의 물은 정말로 신비롭습니다.”
축복의 물을 한 모금 마신 위드가 푸른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시우스 신관 역시도 그의 손에 들린 축복의 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축복의 물은 신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당연히 저희로써는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지요.”
루시우스 신관의 말에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드는 축복의 물을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여러 가지 맛을 거친 이후에 입 안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야 말로 그가 축복의 물을 마시는 가장 좋아하는 이유였다.
“저기…….”
피에나가 조심스럽게 루시우스 신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뭐라고 말을 정확하기 하기 보다는 손에 들린 빈 잔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했다.
루시우스 신관은 피에나의 모습에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와도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빈 잔에 축복의 물을 가득 채워주었다.
“헤헤…….”
피에나는 더없이 행복한 웃음을 흘리며 잔에 가득 담긴 축복의 물을 다시금 홀짝이기 시작했다.
위드는 피에나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귀한 것인데.”
루시우스 신관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축복의 물은 신께서 선택하신 분께만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축복의 물을 저렇게 행복하게 마실 수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께서는 피에나 양의 모습을 바라고 저희에게 축복의 물을 건네주셨을 지도 모릅니다.”
루시우스 신관의 말에 위드는 가만히 피에나를 바라봤다.
‘하긴.’
누구라도 피에나의 모습을 보면 아까운 것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신도 다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신의 뜻이라고 하셨는데, 진실로 알고 싶습니다. 신께서는 저희 중 누굴 택하신 것입니까?”
“오해하고 계시군요. 이곳은 오로지 선택한 분들만 자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럼?”
“두 분 모두 신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
위드는 그제야 자신이 피에나 덕분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또 다른 의문이 밀려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제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특별한 것 없다는 것은 위드 님의 기준일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위드 님은 충분히 특별하신 분입니다. 이렇게 타이먼 족인 피에나 양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누구보다 특별하신 분입니다.”
웃으며 대답하는 루시우스 신관의 말에 위드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유와 과정이야 어쨌든 그의 말대로 피에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분명 특별하긴 했다.
“혹시 점을 볼 수 있겠습니까?”
위드의 물음에 루시우스 신관이 말했다.
“원하신다면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드 님의 미래가 보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보인다 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본다는 건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일입니다. 때론, 미래를 봄으로써 불행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루시우스 신관의 말에 위드는 잠시 고민을 했다.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 한다.
하지만, 루시우스 신관의 말대로 미래를 보는 것엔 커다란 책임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가볍게 생각하고 미래를 볼 순 없다. 이미 자신의 미래를 본 사람에겐 어떤 의미론 더 이상 미래가 없게 된다.
또, 꿈 역시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꿈이 아닐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위드는 결정을 내렸다.
“역시 보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위드의 결정에 루시우스 신관은 현명한 판단을 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를 보기보단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 말씀, 항상 가슴 속에 두고 되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루시우스 신관과 위드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후로 위드와 루시우스 신관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라곤 하지만, 주로 위드가 질문을 건네면, 루시우스 신관이 대답을 해주는 편이었다.
위드의 질문들은 대부분 신전과 신관들에 관한 궁금증들이었다. 신전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재 프라디아 대륙에 존재하는 신전과 신관들의 숫자, 평소 신전을 찾는 사람들이 신께 바라는 것과 신관들의 평소 생활 등 위드는 광범위하면서도 조금은 사적인 질문들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보통의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누구라도 얼굴 한 번 찌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루시우스 신관은 눈썹 한 번 일그러트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자세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대륙에서 가장 욕심 없는 사람들.’
루시우스 신관과 대화를 할 때마다 위드는 그렇게 느꼈다. 신전을 찾을 적마다 만나는 사람은 루시우스 신관이었지만 굳이 다른 신관들을 따로 만나보지 않아도 위드는 알 수 있었다.
또한, 프라디아 대륙에서 신관들의 위치는 무어라 규정지을 수가 없었다. 때론, 황제보다도 높은 위치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또 어떤 때는 거지나, 노예보다도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평등.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대하는 존재가 바로 신관이었다. 그렇기에 신관들 사이에도 상·하의 구분이 없다. 신관이면 모두 똑같은 신관이란 소리였다. 그럼에도 대륙의 수많이 신전들이 질서 있게 운영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번번이 신관님의 귀중한 시간을 저 혼자만 독차지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위드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신께서 선택하신 분과 이렇게 오랜 시간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제게도 커다란 축복입니다.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네르미네르 신의 축복이 항상 위드 님과 함께 하시길.”
마주 화답하는 루시우스 신관.
위드와 피에나는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귀빈실을 빠져 나왔다. 당연히 루시우스 신관은 두 사람을 배웅했다.
Chapter 3 성장과 몬스터 혈풍!
걱정이 많았습니다, 영주님.
……중략……
요즘은 이상할 정도로 몬스터들의 침입이 적어졌습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영주님께서 해놓고 가신 일들도 있고, 영지 내의 병사들이 철저하게 경계를 하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십시오. 영주님의 뜻에 따라 기사단을 창설하였습니다. 현재는 임시로 ‘프레타 기사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주님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정식 명칭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중략……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은 카르타 제국의 실세 중의 한 명입니다. 영주님께서 어떤 대접을 받고 계실지 예상은 갑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라고는…… 분하고 억울하시더라도 프레타 영지를 생각하셔서 참고 견뎌 반드시 영지로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 너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중략……
영주님께서 돌아오시는 그날까지 영지를 목숨 받쳐 지켜내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마로크 후트.
위드는 마로크가 직접 쓴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영지는 평안했고, 무엇보다도 기사단을 창설했다는 소식은 위드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클라우드 공작이 어떠한 대접을 하더라도 꾹 참고, 견뎌 반드시 영지로 돌아오라는 마로크의 말에 위드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도 이런 글을 써야 했을 마로크의 심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로크 아저씨…….”
위드는 편지를 잘 접어 품에 넣었다.
“편지에 뭐라고 적혀있어?”
피에나는 궁금한 얼굴로 위드를 올려봤다.
‘그러고 보니 피에나는 글을 모르는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위드는 피에나에게 편지의 내용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피에나는 프레타 영지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가장 기뻐했다. 프레타 영지가 안전해야 위드의 마음이 편안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피에나.”
“응?”
“글 배울까?”
“글?”
고개를 갸웃거리는 피에나의 모습에 위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대답했다.
“글을 배워놓아서 나쁠 건 없잖아.”
“위드가 가르쳐주는 거야?”
“그래야지.”
“그럼 배울래!”
위드와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피에나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럼 내일부터 조금씩 배워보자.”
“응!”
피에나는 위드의 품에 안겨 기분 좋게 얼굴을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