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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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44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2권 - 19화
에리카 역시도 위드를 발견하곤 살짝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왔다.
“어? 에리카잖아?”
라샤는 에리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위드를 바라봤다. 1학기만 하더라도 위드와 무성한 소문을 뿌렸던 에리카다. 현재는 그녀와 위드 사이에 있었던 대부분의 소문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몇몇 학생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피에나로 인해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에리카가 먼저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그렇네.”
위드가 마주 답했다.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럼, 난 이만.”
에리카가 먼저 위드를 지나치자 위드 역시도 잠시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내딛었다.
“에? 둘이 싸우기라도 한 거야? 어째 사이가 조금 이상하다?”
“시끄러.”
“위드 삐졌어?”
“바보 같은 소리.”
“푸힛! 위드 네가 이런 모습도 보이네? 이거 정말로 대단한 발견인걸! 혹시, 피에나도 알고 있어? 모르면 이거 알려줘야지! 히힛!”
“라샤, 제발 조용히 그냥 가자.”
“히잉! 위드는 벌써 내가 싫어진 거구나! 위드가 그 이상한 샤프란 엘프랑 어울리면서 차가움이 전염된 거야! 오늘부터는 샤프랑 어울리지 마! 알았지? 응?”
위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그의 팔에 매달리며 조금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라샤.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두 달 만에 만났는데…….’
두 달 만에 만난 위드. 이상하게도 에리카는 그에게 느꼈던 분한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이 허전했고, 걸음조차 걷기 힘들 정도로 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
***
제국력 1384년 8월 12일, 검술 시험 3일 전.
네드벨 아카데미 1학년 남자 기숙사 옥상.
“오늘도 잘 부탁해.”
위드의 말에 샤프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곁에서 구경꾼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후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위드! 오늘은 저 말라깽이를 완전히 꺾어버려! 다시는 저따위 오만한 표정으로 서 있지 못하도록 해버려!”
후바의 외침에 위드는 못 말린다는 듯 웃어넘기고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위드의 검이 달빛에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는 것만 같았다.
“…….”
위드의 검을 바라보는 샤프의 눈동자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페이실린을 뽑아 들었다.
위드의 검이 달빛에 반사되어 은은한 빛을 뿜어낸다면 페이실린은 달빛을 흡수하며 반짝였다. 서로 빛을 뿜어내지만 그 모양새는 약간 달랐다.
“차핫-!”
타다다다닥.
위드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화살처럼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검의 길이를 장점으로 삼은 공격을 펼쳤다.
쇄애애액-!
달빛을 위에서 아래로 가르는 듯한 위드의 검. 거기에 군더더기 없는 위드의 몸놀림은 한 편의 멋진 그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채앵!
달빛 아래 하얀 불꽃이 튀었다.
자신의 허리를 베어오는 위드의 검을 어렵지 않게 막은 샤프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튕기듯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위드의 가슴을 노리고 페이실린을 내질렀다.
170세르(cm)나 되는 검이다. 단순한 상식으로만 봐도 근접한 거리에서는 휘두르기가 여간 힘든 물건이 아니었다.
“하압!”
기합과 함께 위드는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손목을 둥그렇게 돌렸다.
차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가슴을 관통하려고 질주하던 페이실린이 의지와는 다르게 하늘로 치솟았다.
샤프는 그대로 페이실린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차앙!
또 다시 불꽃이 튀었다.
위드는 검의 충돌 이후 곧바로 뒤로 물러나는 샤프를 따라 곧바로 몸을 날리며 검을 일직선으로 내리그었다. 샤프가 아무리 빨리 물러났다고 하지만 위드 역시 곧장 그를 따라 몸을 날렸기에 휘두르는 검의 사정거리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슈아아악-!
막기 보다는 피하는 쪽을 택한 샤프는 몸을 비틀어 위드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는 그대로 위드의 왼쪽 어깨를 베어버릴 듯한 기세로 페이실린을 휘둘렀다.
위드는 당장이라도 어깨를 베어버릴 것만 같은 페이실린의 반짝이는 검날에 눈을 찌푸리고는 그대로 몸을 굴렸다.
찌익!
어깨 부근의 옷이 찢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깨를 베였을 정도로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이었음에도 구경을 하는 피에나나 후바, 이로라는 조금도 놀라는 모습이 아니었다.
바닥으로 몸을 굴린 위드는 튕기듯 일으키고는 검을 세웠다.
“후우, 후우…….”
짧은 호흡으로 벌어진 치열한 대결로 인해 위드는 잠시 숨을 고르며 강렬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목숨을 걸고 펼치는 싸움은 아니더라도 진검을 가지고 하는 대련인 까닭에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실수는 곧 치명적인 상처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련에 임하는 긴장감만은 실제 대결과 다르지 않았다.
페이실린을 늘어트리고 서 있던 샤프는 위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땅을 박차며 뛰어 올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샤프는 그대로 위드의 머리를 노리고 페이실린을 휘둘렀다.
채애앵!
“윽!”
호리호리한 샤프의 신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힘 앞에 위드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샤프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신 뒷걸음을 치며 위드는 샤프의 공격을 훌륭하게 방어를 해나갔지만 누가 봐도 실력의 차이는 뚜렷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승리는 샤프에게로 돌아갔다.
“하악, 하악…… 하악!”
주저앉아 격렬하게 숨을 몰아쉬는 위드의 곁으로 이로라가 다가왔다. 그녀는 두 손을 자신의 가슴 중앙에 모으며 눈을 감고 조용히 시를 읊듯 중얼거렸다.
“레이레디다 아로라이마 하나이스라다 아노이스마.”
중얼거림이 끝나자 이로라의 두 손인지, 그녀의 가슴 중앙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새하얀 빛이 일렁거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부신 금발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격렬하게 숨을 몰아쉬던 위드의 호흡은 점점 잠잠해졌고, 터질 것처럼 세차게 뛰던 심장도 평소처럼 차분함을 되찾았다.
“고마워, 이로라.”
위드의 인사에 이로라는 그저 빙긋 웃어주기만 했다.
이로라가 펼친 마법은 엘프만이 펼칠 수 있다는 몇 되지 않는 엘프 마법 중의 하나였다.
프라디아 대륙에 존재하는 마법들의 대부분이 공격마법인 반면에, 엘프들의 마법은 보조 마법과 회복 마법이 전부였다.
“오늘도 져버렸네.”
위드는 곁으로 다가온 피에나를 보며 말했다. 피에나는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방긋 웃어주었다.
“바람은 고요한 것 같지만 격렬하고, 물은 잔잔한 것 같지만 난폭하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지만 쉬지 않으며, 구름은 느린 것 같지만 눈을 떼면 어느새 사라진다.”
샤프는 페이실린을 검집에 넣으며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임을 위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후바는 달랐다.
“저 빌어먹을 말라깽이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위드는 후바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샤프가 한 말을 되새겨봤다.
‘바람은 고요한 것 같지만 격렬하고, 물은 잔잔한 것 같지만 난폭하다?’
이어서 샤프가 한 나머지 말도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만 위드는 그가 무슨 뜻을 전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기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힘을 내가 빌릴 수 있다.”
샤프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달빛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후바가 아니었다.
“말라깽이! 네놈이 아무리 그래봐야 말라깽이라서 하나도 멋있지 않으니까 괜한 고생 하지 마!”
샤프는 후바의 말에 그를 지그시 노려봤다.
“왜! 나랑 한 번 붙어 볼래?”
후바가 당장이라도 싸울 듯한 태세로 도끼를 꺼내들자 샤프는 한심하다는 듯, 더 이상은 네놈 따위와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크하하하하하!!”
샤프의 생각도 모르고 후바는 자신이 무서워 그가 피한다고 멋대로 생각하며 승리자처럼 커다란 기쁨의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위드와 피에나, 이로라는 희미한 웃음만을 머금었다.
“검 좀 보자.”
한껏 기쁨의 웃음을 터트리던 후바는 위드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위드는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었기에 순순히 검을 넘겨줬다.
자신의 키보다도 훨씬 긴 위드의 검을 들고 선 후바의 모습은 언뜻 우습게 보이기까지 했지만, 진지한 얼굴로 검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으음, 역시 오늘도 멀쩡하군.”
후바의 말에 샤프가 아무도 모르게 관심을 기울였다.
후바는 이어서 계속 말했다.
“어떻게 저 말라깽이가 갖고 있는 페이실린과 그렇게 격렬하게 충돌하고도 멀쩡할 수 있는 거지?”
후바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위드의 검을 살폈다. 길이에 비해 가벼운 무게와 최적의 균형감이 살아 있는 위드는 검은 드워프라고 하더라도 쉽게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검이었다.
위드의 검은 그가 진검을 잡을 수 있는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마로크에게 얻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위드는 다소 기형적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검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후에 마로크는 자신이 38살 때, 이 검을 우연찮게 얻었다고 했다. 워낙에 기이한 검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날카롭고, 단단해서 그 스스로도 사용을 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시기였다.
38살이라는 나이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검을 익히기에 그의 몸은 보통의 검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맞는 검의 경지에 이른 시기였기에 익숙한 검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검을 든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이었다.
비록 자신은 사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검을 아끼는 마음에 계속해서 보관하다 결국은 위드에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당시 마로크는 위드에게 검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을 했었다.
‘모든 것엔 주인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이 검을 얻은 것 역시 영주님께 전해주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인연이 없었다면 영주님과 저, 그리고 이 검은 서로 만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 검의 주인은 영주님입니다.’
검의 길이로 인해서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남들보다 어려운 수련을 해야만 했지만 위드는 결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검을 준 마로크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내가 알기에 말라깽이가 갖고 있는 페이실린은 절반 이상이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졌다. 보통 인간들이 명검이라 부르며 높은 가격에 사려고 하는 극소량만 포함된 오리하르콘 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절반 이상이 오리하르콘이라는 소리에 위드는 놀란 눈으로 샤프의 허리에 걸려 있는 페이실린을 바라봤다.
지금의 대륙에서 오리하르콘을 찾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찾더라도 그 양이 너무나 적었기에 무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의 미스릴에 오리하르콘을 섞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 되도 미스릴로 만든 무기를 손상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기에 프라디아 대륙에서 가장 비싼 무기는 당연히 오리하르콘이 섞인 물건들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카르타 제국의 한 공작은 미스릴로 만들어진 트랜트 아머보다도 높은 가격을 주고 오리하르콘이 섞인 검을 구입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페이실린과 벌써 수백 차례나 충돌을 하고도 검날 하나 상하지 않은 것을 보면…….”
“설마, 오리하르콘?”
위드가 묻자 후바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분명 이 검에는 오리하르콘이 섞이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샤프의 페이실린과 충돌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거지?”
후바 역시 그 점이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확실하게 말을 할 수 있지만 분명 네 검에는 오리하르콘이 섞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리하르콘과 비슷한 강도를 자랑하는 아다만티움 또한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만든 검일 리는 없고…….”
아닐 거라며 말끝을 흐렸지만 그 음성엔 후바답지 않게 자신감이 없었다.
‘설마…… 카르티탄움?’
위드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물어봐서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기에 물었다.
“후바, 설마 네가 말하는 금속이 카르티탄움은 아니겠지?”
그러자 후바는 물론이고, 샤프와 이로라까지도 놀란 얼굴로 위드를 바라봤다.
“위, 위드 네가 어떻게 카르티탄움을 알고 있는 거야?”
마치,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알아선 안 되는 건가?”
위드의 반문에 후바가 대답했다.
“카르티탄움은 아주 오래전 우리 드워프조차도 극소수만이 볼 수 있었던 귀한 금속이다. 인간들의 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의 시절에 존재했던 타이탄 족만이 구할 수 있었던 금속이 바로 카르티탄움이다. 많은 드워프들이 카르티탄움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결국은 그 누구도 카르티탄움을 구해서 돌아온 적은 없었지. 그러다 타이탄 족이 사라지면서 당연히 카르티탄움도 함께 사라졌다. 인간들은 타이탄 족의 존재 자체부터 의심을 했으니 당연히 카르티탄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인간은 거의 없을 텐데…… 위드,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아주 오래된 고서에서 읽은 적이 있거든.”
위드는 그렇게 대답을 하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굳이 후바에게 대마도사 칸의 이야기와 자신이 지닌 트랜트 아머가 카르티탄움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봐야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후바는 당장에 카르티탄움으로 만들어진 트랜트 아머를 보여 달라고 난리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거였군. 어쨌든 나도 본 적은 없지만 이 검이 카르티탄움으로 만들어 졌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아마도 카르티탄움은 아닐 거다.”
후바의 말에 위드는 트랜트 아머를 생각하며 유심히 자신의 검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틀린 것 같군.’
조금 아쉽지만 분명 검은 카르티탄움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페이실린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으니 위드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기에 충분했다.
후바에게서 검을 돌려받은 위드는 달빛 아래 빛을 뿜어내는 검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너도 이름이 갖고 싶니?”
번쩍.
마치, 그렇다는 듯 빛을 뿜는 검의 모습에 위드는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