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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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43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2권 - 18화
방 안에는 노인을 포함해서 정확하게 7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어떤가?”
노인의 물음에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실험은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도 훌륭한 것들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년 사내의 대답에 노인의 노안에 흐뭇한 미소가 물결처럼 번져 나갔다. 이어서 노인은 좌측에 앉아 있는 50대 중년인을 바라봤다.
“실험에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자네가 알아서 잘 준비해주도록 하게.”
“걱정 마십시오. 몬스터나 사람이나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중년인의 대답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텐 님.”
30대 중반 남성의 음성에 노인이 그를 바라봤다.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솔직히 말씀드려 이번 일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로제! 그게 무슨 말인가?”
“이르다니? 지금까지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는데 이르다니!”
노인보다도 주변의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발을 했다. 그러나 로제는 조금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태세로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일도 솔직히 불완전하지 않습니까? 그런 불완전한 일을 함부로 벌였다가는…….”
“완벽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니지. 그리고 내가 듣기로 이번 일에 사용되는 것들은 대부분 완성도가 높은 것들로 알고 있는데?”
노인은 로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에 사용될 것들은 거의 80퍼센트에 가까운 완성품들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제의 말은 그저 괜한 우려일 뿐입니다.”
40대 초반의 남자, 제브리가 자신 있게 말했다.
로제는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바이텐 님, 하지만 안전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습니다. 솔직히 다른 곳도 아니고 그곳은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곳입니다. 자칫 일이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이대로 계획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다른 곳을…….”
로제의 말이 길어지자 노인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계획을 세웠으면 그대로 따라야지. 설령, 그것이 잘못된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그 계획에 맞춰 모든 것을 준비했으면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난 생각하네. 게다가 하나하나 따지자면 세상에 완벽한 일이란 없네.”
그 말에 반박을 하고 싶은 듯 로제는 입을 열려고 했지만 노인은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어주고 싶지 않은 듯 시선을 돌려버렸다.
“로제의 의견도 있고 하니 되도록 실수가 없도록 다시 한 번 준비를 철저하게 하도록.”
“알겠습니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카르무 리엔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잘못된 계획이라면 당연히 그만둬야지 어째서!’
로제는 노인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짓을 하더라도 막을 수 없음을 알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최고의 권력자다.
연금술사들에게 있어서는 하늘과 같은 존재.
연금술사의 탑을 책임지고 있는 존재.
노인의 이름은 베논 바이텐이다.
***
네드벨 아카데미의 시간은 바람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누구도 인지할 수 없을 속도로 그렇게 흘러갔다.
8월.
벌써 겨울방학을 한 달 앞에 두고 있을 정도로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위드를 포함한 네드벨 아카데미의 1학년들은 2학년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끝난 체술 시험에서 위드는 어렵지 않게 합격 점수를 받았고, 체술에 있어서 그렇게도 약한 모습을 보였던 라이너 역시도 2학년으로 오를 수 있는 합격 점수를 받아 한껏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8월 15일에는 검술 시험이 검술학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술 시험에서 합격 점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검술 시험에서 합격 점수를 얻지 못하면 2학년으로 진급을 할 수 없었기에 검술학부 학생들은 남는 모든 시간을 검술 수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막바지 수련에 한창이었다.
“하앗-!”
터억!
기합과 함께 자신의 앞에 세워져 있는 연습용 나무 인형을 목검으로 내려치는 트레제. 그의 얼굴엔 땀방울이 가득했고, 상의는 흘러내린 땀으로 인해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차앗-!”
턱! 턱! 턱!
연속적으로 나무 인형의 머리, 어깨, 허리를 가격하는 트레제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빨랐다. 방금의 일격으로만 따져보면 그는 2학년으로 오를 실력이 충분했다.
“아이고! 힘들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트레제는 죽는 시늉을 하며 철퍼덕 주저앉는 라이너의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찼다.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엄살이냐?”
주저앉은 라이너가 무슨 소리냐는 듯 대꾸했다.
“엄살이라니! 벌써 2시간이나 지났다고! 너는 내 꼴이 보이지 않냐? 내 모습을 봐라. 이 모습을 보고도 너는 내가 엄살이나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을 하면서도 가쁘게 뿜어내는 호흡과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 땀에 잔뜩 젖은 상의를 걸친 라이너의 모습은 확실히 엄살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검술 수련장에서 기합을 내지르며 쉬지 않고 목검을 휘두르는 다른 학생들의 모습도 라이너와 다르지 않았다.
“트레제! 이거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
라이너의 불만 가득한 음성에 트레제는 또 무슨 불만이 있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저 녀석 말이야! 누군 이렇게까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죽어라 수련하는데 누군 저렇게 태평스럽게 쉬고 있으니! 도대체 저 녀석하고 나하고 뭐가 달라서 이런 차별을 겪어야 하는 건지!”
라이너가 가리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위드였다. 그는 현재 피에나와 함께 검술 수련장의 한쪽 구석에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트레제는 위드와 피에나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라이너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너랑 위드는 다른 점이 너무 많지.”
“많다고? 도대체 뭐가!”
“내가 그걸 꼭 일일이 설명해야 하냐? 우선, 너는 작위도 없잖아? 위드만큼 검술, 체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작위가 없으니 영지도 없고, 키, 몸무게, 얼굴 생김새 모든 것이 다르잖아? 더 말할까?”
“…….”
라이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에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위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피에나와 함께 검술을 수련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만 이뤄지는 수련이었다.
피에나가 검사는 아니었지만, 체술 실력이 익스퍼트 상급에 이르는 만큼 그녀와의 수련은 위드에게 있어서 정말로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배우는 것들을 피에나와의 대련을 통해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깨우치고 있었으니 사실, 그는 1학기 때보다 수련 시간은 줄었을지 몰라도 그 능률은 1학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이젠 싸늘하다.”
“추워?”
피에나의 물음에 위드는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프라디아 대륙은 7월부터 겨울이 시작된다.
7월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추위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8월이다. 7월은 시원하고, 8월은 싸늘해진다. 그리고 9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추위가 밀려온다. 11월이 되면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지고, 12월은 점차 그 추위가 풀리지만 춥기는 마찬가지다. 여름의 시작인 1월이 되면 7월처럼 시원해지고, 2월이 되면 더위를 느끼게 된다.
위드는 싸늘하게 느껴지는 날씨에 겨울이면 혹독한 추위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영주라고는 하지만 몬스터들이 침입을 할 때마다 위드는 성 안쪽에서 머물지 않았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는 매번 계절을 가리지 않고, 병사들과 몬스터들의 싸움을 지켜봤고, 힘이 될 수 있을 때부터는 함께 싸워왔다.
손발이 얼어가는 추위를 이겨내며 몬스터와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의 겨울은 위드에게 있어서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위드는 문득, 몸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피에나가 자신의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이제 따뜻하지?”
피에나의 물음에 위드는 그녀의 머릿결을 쓸어주며 너무 따뜻하다며 대답했다.
“위드으으으으!!”
위드의 이름을 길게 늘여 부르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라샤 뿐이었다. 그녀는 검술 수련으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달려와 위드를 껴안았다.
놀라운 점은 그런 라샤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피에나가 아무런 말 한마디, 눈초리 한 번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라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라샤, 떨어져.”
“싫어! 싫어! 난 위드가 좋단 말이야!”
고개를 저으며 더욱더 힘껏 껴안는 라샤의 모습에 오히려 피에나가 살짝 떨어졌다. 그녀의 몸에서 풍겨지는 땀 냄새와 후끈한 열기 때문이었다.
“라샤, 떨어져. 땀 냄새 난다고.”
위드의 말에 라샤는 몸을 떨어트리며 입을 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쳇! 고작 땀 냄새 조금 난다고 나의 사랑을 외면하다니! 위드는 바보야!”
말을 마친 라샤는 피에나를 바라보고는 씨익 웃었다.
“피에나아아아아!!”
라샤가 이름을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었지만 피에나는 재빠르게 몸을 피해버렸다.
“히잉! 피에나는 내가 싫어? 나는 피에나가 너무너무 좋은데! 피에나! 어서 이리와! 내가 꼬옥! 안아줄게!”
라샤가 다시 달려들었지만 피에나는 결코 잡히지 않았다.
결국, 라샤는 지쳐서 포기했고, 피에나는 그녀를 피해 위드의 곁에 조용히 앉았다.
“위드는 수련 안 해?”
라샤의 물음에 위드는 괜찮다는 듯 대답 대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라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위드는 최고의 선생님인 피에나가 곁에 있으니까 굳이 연습용 나무 인형을 상대로 수련을 할 필요가 없겠지.”
라샤는 치사하다는 듯 위드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위드가 피에나를 상대로 수련한다는 것은 몇몇만 아는 비밀이었고, 라샤는 그 몇몇 중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라샤 역시 위드처럼 수련을 하고 싶다고 피에나에게 부탁과 협박, 애원 등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봤지만 결국 피에나의 허락을 받아낼 수 없었다.
“벌써 8월이라니…… 시간 정말로 빠르다.”
라샤는 푸른 하늘을 올려봤다.
위드와 피에나 역시도 라샤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번 년도의 네드벨 아카데미의 2학기는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소란스럽게 시작됐다. 그 중심은 당연히 위드와 피에나, 에리카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소란스럽던 소문들도 잠잠해졌지만 남학생과 여학생들 사이에서 불길처럼 일어난 피에나 열풍은 아직까지도 식을 줄을 몰랐다.
“피에나 선생님!”
검술 수련장 입구에서 체술 선생님인 콜만이 피에나를 불렀다.
“회의가 있으니 지금 즉시 학장실로 오십시오!”
콜만의 말이 끝나자 피에나는 작게 싫은 소리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사실, 그녀가 이제는 완전히 적응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의 같은 것에서 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을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나 가야 돼.”
피에나는 가기 싫은 얼굴로 그렇게 위드에게 말했다.
“응.”
위드가 잘 갔다 오라는 듯 말하자 피에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려 검술 수련장 입구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녀의 모습에 검술 수련을 하던 일부 학생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피에나는 그런 학생들의 말을 그저 흘리듯 받아들으며 묵묵히 검술 수련장을 나갔다. 그제야 학생들은 아쉽다는 듯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검술 수련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위드가 몸을 일으키자 라샤가 덩달아 일어났다.
“수련하려고?”
라샤가 웃으며 묻자 위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위드가 검술 수련장 입구를 향해 걷자 라샤가 재빨리 옆으로 따라 붙었다.
“어디 가는 건데?”
“기숙사.”
“기숙사? 왜? 혼자서 뭐하려고? 뭐, 위드가 원한다면 내가 함께 가 줄 수도 있어. 하지만, 피에나와 나 사이를 확실하게 정리해야…….”
“라샤! 제발 그런 말은 자제해줘. 남들이 듣고 오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라샤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남들이 오해를 하던, 방해를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만 떳떳하면 되는 건데. 그런데 기숙사는 왜 가는 건데? 설마, 벌써 자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다시 말하지만 위드가 원하면 난 같은 침대에서…….”
위드는 쫑알쫑알 대며 부끄럽지도 않은 듯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라샤의 모습에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발걸음에 속도를 높였다.
라샤의 엉뚱한 소리를 들으며 기숙사를 향해 걷던 위드의 눈에 정면에서 마주 걸어오는 에리카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