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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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77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4권 - 2화
“우린…… 우린…… 모두 죽을 거야…….”
창병은 절망했다.
주르륵.
희망의 빛을 잃은 창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3일째 이어지는 몬스터들의 공격은 프레타 성의 병사들과 영지민들을 모두 지치게 만들었다.
그간 이어진 방어전으로 인해서 생겨난 사망자의 수만 1천 명이 넘은 상태였다. 하루만에 8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낸 그라다 왕국군과는 비교할 수치가 아니지만 본래부터 병사의 수가 적은 프레타 성으로써는 1천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뼈아픈 손실이자, 앞으로의 어두운 날을 암시하는 것과 같았다.
“모두 힘을 내라!!”
“물러서면 끝이야! 죽을힘을 내라!!”
“방패병!! 방패병!!”
각 병과 대장들의 찢어지는 외침에 병사들은 부지런히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갔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더러운 몬스터들 끝도 없어!”
“씨팔!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야!!”
“으아아아아-!!”
“빌어먹을! 빌어머그으으을!!”
병사들의 악에 바친 고함, 비명, 절규.
그리고, 그런 병사들을 비웃는 듯한 몬스터들의 괴성만이 하늘을 장악해나갔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병사들만큼이나 피로에 찌들고, 몬스터와 자신의 피로 몸을 더럽힌 용병은 뭔가를 강하게 갈망하는 얼굴로 오브라이언을 향해서 외쳤다.
오브라이언은 용병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강철 같은 체력을 자랑하던 오브라이언 역시, 부하 용병만큼이나 힘들고, 지쳐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힘들다면 더 힘들었고, 지쳐있다면 더욱 지쳐 있었다.
“계약은 유효하다.”
짤막한 오브라이언의 말에 용병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단장님!! 이대로는 모두 죽습니다!!”
피를 토하는 외침에도 오브라이언은 눈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자신의 뜻은 이미 전했고, 그 뜻은 꺾이지 않는다.
그런 오브라이언의 뜻을 어떻게든 꺾기 위해서 용병은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높였다.
“벌써 반이 죽었습니다! 단장님께서 힘겹게 일으켜 세운 용병단입니다! 겨우 단 3일간의 전투로 반이나 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단 말입니다! 이대로 계속해서 프레타 성에 남아 있다가는 모두 죽습니다! 더 이상 오브라이언 용병단은 대륙에 존재할 수 없게 된단 말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까? 이대로 모두 죽길 원하는 것입니까!!”
600명을 넘어간 사망자 수!
총원 1200명에 이르는 오브라이언 용병단에겐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이미 반이 넘는 사망자로 인해서 오브라이언 용병단은 더 이상 대륙 10대 용병단 안에 들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여기서라도 물러나야 한다. 당장!
최대한 살아남은 단원들을 이끌고 물러나 다시 재기를 해야 한다. 마침, 시기상으로도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대륙 10대 용병단들이 몬스터 혈풍으로 인해서 의뢰를 맡은 상황이었기에 그들 역시도 자신들과 같은 힘든 전투를 하게 된다면 커다란 피해를 입을 터, 같은 조건이라 생각하면 다시 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룬.”
오브라이언이 용병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예!”
룬의 얼굴, 그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던 오브라이언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용병단의 용병들과 병사들이 한데 뒤엉켜 몬스터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성벽 위였다.
이젠 성벽 위에 올라선 몬스터의 수만 해도 눈을 세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 만큼 프레타 성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우리는 용병이다. 계약을 한 용병.”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용을 저버린 용병은 더 이상 용병이 아니다.”
말을 마친 오브라이언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허리부근에 있는 작지 않은 상처가 룬의 눈에 확대되듯 들어왔다. 3일 전,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바질리스크를 상대로 싸우다 얻은 상처였다.
독성분까지 몸에 퍼져 상처 부근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응급처지를 해서 겨우 독성분을 제거했을 뿐,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없어 주변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결국 막지 못했다.
“기억해라. 용병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이 아닌 신용이다. 용병으로 남길 원한다면 목숨보다 신용을 중시해라. 그게…… 용병이다.”
“…….”
그렇게 말을 남긴 오브라이언은 또 다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성벽을 향해 걸었다. 걸어가는 뒷모습은 너무나도 당당했고, 믿음직스러웠다. 그의 검엔 몬스터들의 핏물이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더덕더덕 달라붙어 있었다.
“부단장님…….”
오브라이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룬이 한쪽에서 체력을 회복하던 아일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그녀가 한 발 빨랐다.
“시끄러. 단장이 결정한 일이야.”
입을 열적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날씨보다도 차디찬 아일린의 음성에 룬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룬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본 그녀는 가녀린 몸을 이끌며 다시 붉은 입술을 열었다.
“우린 단장을 따라가기만 하면 돼.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해. 그가 틀린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가 올바른 결정으로 만들어 주면 돼.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핏빛 마녀라 불리는 아일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음성이 다른 때처럼 차갑거나, 냉혹하지 않았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기만 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브라이언의 뒤를 따라 달리는 아일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룬은 지저분하게 몬스터와 동료들의 피로 떡이 진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었다.
“염병! 결국 여기서 다 죽자는 말이군.”
크게 심호흡을 하고 룬은 들고 있는 것조차도 힘들었던 자신의 거대한 투 핸드 소드를 단단히 움켜쥐고 오브라이언과 아일린이 달려간 방향으로 몸을 이끌었다.
“결국, 용병은 용병으로 남아야 한다는 거로군. 단장이라고 하여간 개폼이란 개폼은 다 잡는다니까! 그래! 까짓것 어디 끝까지 가보자! 염병!!”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가는 제3대 대장 룬의 얼굴 어두운 그림자 속에 떠오른 미소는 작은 불빛처럼 반짝거렸다.
한편.
“이대로는 모두 죽기만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습니다!”
“빨리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무슨 말씀이라도 좀 해보십시오!!”
“가르시아 님!!”
“…….”
수십 명의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인 히덴 가르시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두 눈을 감고 있었고, 그런 그를 향해서 마법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을 뱉어내고 있었다.
시끄럽게 떠들던 마법사들은 한 마법사의 제지로 입을 다물었다. 떠들던 마법사들을 잠재운 그는 히덴 가르시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르시아 님의 행동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길드장이 무엇입니까? 한 단체를 바른 길로 이끌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는 위치입니다. 가르시아 님께서 이렇게 침묵만 지킨다고 해서 상황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감고 있던 히덴 가르시아의 얼굴 표정이 살짝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눈과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마법사의 눈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조금은 거칠어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옳은 결정은 지금 당장! 프레타 성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미 프레타 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가르시아 님께서는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답게 남은 마법사들을 이끌어 프레타 성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창백한 얼굴의 40대 후반의 마법사.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 있었고, 그건 히덴 가르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나 고갈!
전투 상황에서 마법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끝나지 않은 전투 상황에서 마법사가 마나 고갈이라면 이는 한 가지밖에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
병사들이나, 용병들과 다르게 마법사는 단순히 잠깐 휴식을 취한다고 마나가 회복되지 않는다.
특히, 마나의 소모가 크면 클수록 회복 속도 또한 엄청나게 느리다. 마나 고갈의 증상이 올 때는 장기간 휴식을 취하며, 명상을 통한 마나 회복 밖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간 휴식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마음 놓고 안정적인 명상을 할 틈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사들의 활약은 줄어들었고, 실질적으로 현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의 수는 전체 마법사들의 20퍼센트도 안됐다.
아예 처음부터 장기전을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틀 이상을 넘어본 적이 없는 몬스터들의 공격이었고, 무엇보다도 첫날 히드라와 바질리스크를 상대로 엄청난 양의 마법을 사용하다보니 마나의 고갈이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변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3일째 이어진 전투에서 마법사들의 희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변하자 살아남은 마법사들은 불안감에 떨기 시작했고, 결국은 히덴 가르시아를 찾은 것이다.
“슈비츠! 자네가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게! 자네도 알지 않는가? 이대로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대륙 마법사 길드의 존망이 달려 있어!!”
히덴 가르시아가 꿈쩍도 하지 않자 마법사는 곁에 있는 슈비츠 그린을 다그치듯 말했다. 하지만, 그를 다그친다고 뾰족한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슈비츠 그린은 히덴 가르시아에게 간곡한 부탁의 어조로 말을 건넸다.
“가르시아 님.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프레타 성을 빠져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질 것입니다. 탈출로를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싸운 것만 하더라도 저희가 할 일은 다 한 것입니다. 이제는 물러나야 합니다. 어차피 마나 고갈로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사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지금이라면 카일러 준남작도 저희를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슈비츠 그린의 말에 마법사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법사 길드와 위드 카일러 준남작과 무슨 관계가 있던가? 관계라고 해봐야 마법 주문을 거래한 것뿐이다. 그것도 마법사 길드가 고마워해야 할 정도로 좋은 조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프레타 성을 향해서 싸워주는 용병들처럼 많은 액수의 돈을 받은 적도 없었으니 마법사들로써는 순전히 손해 보는 행동을 한 것이다.
원망?
위드 카일러 준남작이 자신들을 원망한다면 그는 사람도 아니라고 비난하고 욕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지금까지 프레타 성을 위해서 싸우고, 지켜준 것만 하더라도 위드 카일러 준남작은 마법사들에게 일일이 고맙다고 절을 해도 모자랐다.
“나는…….”
열리지 않는 녹슨 철문처럼 굳게 닫혀 있던 히덴 가르시아의 눈과 입이 열렸다.
“떠나지 않네.”
“가르시아 님!!”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는 것입니까!!”
“이유가 무엇인지 속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주십시오!!”
마법사들의 쏟아지는 말을 묵묵히 듣던 히덴 가르시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약간의 휴식과 명상을 통해서 어느 정도 마나를 회복하긴 했지만 어차피 한 번 정도 고서클의 마법을 사용하면 바닥을 보일 마나량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히덴 가르시아는 만족했다.
“자네들은 남은 마법사들을 이끌고 지금 당장 프레타 성을 빠져나가도록 하게. 슈비츠의 말대로 마나가 고갈된 마법사는 전투에 있어서 아이보다도 못한 존재. 서둘러 프레타 성을 떠나도록 하게.”
“가르시아 님!!”
슈비츠 그린의 외침에 히덴 가르시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모를 마법사는 아무도 없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히덴 가르시아의 뜻을 돌릴 수 없다는 것에 마법사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