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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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75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3권 - 25화
싸움 시작 5분 후.
“하악, 하악…… 역시 미노타우로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일은 미노타우로스와 끈질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야! 너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도 못 죽이냐?”
루카의 무시.
“쟤 실력으로는 좀 어렵지. 오크한테 죽을 뻔한 놈인데 미노타우로스는 무리지! 킥킥!!”
커닝의 빈정거림.
“아무래도 도와야겠다. 저놈 저러다 죽겠다.”
고블린을 모두 죽이고 한가롭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가스파가 몸을 일으키자 그들의 행태를 낱낱이 느끼고 있던 가일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미노타우로스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그날, 가일은 미노타우로스를 잡고야 말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칭찬하지 않았다. 엉망진창으로 변한 가일의 모습을 보고 루카와 커닝은 오히려 비웃으며 놀려대기만 했다.
***
영주실엔 침묵만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위드가 입을 열었다.
“고생이 많았네.”
“……응.”
여인은 위드의 말에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혹시라도 지저분한 모습이 보일까, 그의 말대로 얼굴에서 고생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날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그게…….”
여인, 에리카 플로렌은 어쩌다 자신이 프레타 성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에리카는 르완 성을 빠져 나옴과 동시에 지르모우 성 쪽으로 방향을 잡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다 지르모우 영지 역시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급히 방향을 돌려 카르디아 산맥으로 향했다.
하지만, 카르디아 산맥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몬스터 땅 정도는 아니지만 산맥 자체에 영역을 만들어 놓고 사는 몬스터들로 우글거렸기에 차라리 몬스터의 공격을 받더라도 산맥을 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란 생각에 에리카 일행은 남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으로 오다 몬스터를 만나면 방향을 바꾸고, 바꾸고 하다 보니 그라다 왕국과 페르만 왕국의 국경을 지나 라네시 지방을 거쳐 프레타 지방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에리카를 호위하며 르완 성을 빠져 나온 이들 중 월터를 제외한 9명의 기사들과 50명의 병사들이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에리카의 험난했던 탈출 이야기에 위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바이저 플로렌 백작과 르완 성의 모든 병사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당분간은 쉬도록 해.”
위드의 말에 에리카가 말했다.
“고마워. 그런데…… 르완 성은 어떻게 됐어?”
떨리는 음성에서 위드는 그녀가 이미 르완 성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예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 생각대로야.”
위드의 간단한 말에 에리카는 희미하게 웃었다.
에리카의 웃음이 위드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녀의 상황이 왠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그렇구나…….”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에리카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플로렌 백작님은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우셨다고 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위드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에리카는 슬픈 눈으로 위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카가 위드에게 다가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에리카?”
“잠시만…… 잠시만 기댈 수 있게 해줘. 잠시만…….”
위드의 대답이 듣지도 않고 에리카는 아이처럼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에 위드는 가볍게 양팔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에리카는 지쳐 잠들었다.
***
제국력 1384년 11월 21일.
페르만 왕국 프레타 성.
“오늘 날씨 무지하게 좋다!”
프레타 성 가장 높은 성탑에서 사방을 경계하는 병사는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가끔씩 바람이 불적마다 뼈를 시리게 만드는 칼바람으로 인해서 옷을 두툼하게 입고 있어야 하지만 시기가 겨울임을 생각하면 날씨는 상당히 화창하다 할 수 있었다.
“요즘은 몬스터들의 공격도 없어서 살 맛 난다니까.”
함께 근무하는 동료의 말에 병사는 맞다는 듯 대답했다.
“요즘처럼만 평온하게 지냈으면 소원이 없겠어.”
“그러게 말이야.”
두 병사는 이후로 사소한 일들을 대화 주제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어제 엄청난 미인이 성으로 들어왔다면서?”
“아! 그 유명한 그라다의 명장 바이저 플로렌 백작의 하나뿐인 딸!”
“그래! 그 여자가 그렇게 이쁘다면서?”
“나도 어제 근무 교대 하고 가다가 프레타 기사단원들에게 구출되어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얼핏 봤는데, 캬하! 얼굴은 정말로 끝내주더만! 약간 고생을 해서 그런지 얼굴 상태가 그렇게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미모가 대단하더군!”
어제의 일을 떠올리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짓는 동료의 모습에 병사는 더욱더 궁금증이 증폭되어갔다.
“정말로 그렇게 이뻐?”
“내 생전에 그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이었지! 그런 여자랑 손만 잡아도, 아니! 말 한마디만 나눠도 영광일 것 같더군.”
“오오!”
에리카에 대한 칭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듣기론 영주님과 잘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
“자네도 들었군. 네드벨 아카데미 입학 동기라고 하더군.”
“그렇군. 영주님은 미인 복은 타고 났나봐?”
“그렇긴 하지. 피에나 양도 보통이 아닌데 플로렌 백작의 딸까지 알고. 부럽다! 부러워!”
“작년에도 아카데미 입학 동기라면서 두 명의 여자랑 같이 왔었잖아? 그때 그 여자들도 꽤 이뻤는데.”
“아! 그랬지! 이거 원, 아무리 영주님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하는데?”
“뭐?”
“같은 남자로써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혼자서 넷씩이나!”
동료의 불평에 병사가 피식 웃었다.
“영주님 성격을 몰라서 그래? 영주님이 4명이나 되는 미인들을 모두 차지할 것 같아?”
“그거야……. 나라면 그랬을 텐데! 하하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하하하하!!”
두 병사는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한 병사가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한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왜 그래?”
“저기 뭔가 오는 것 같지 않아?”
“저기?”
“그래.”
두 병사는 아주 멀리서 보이는 검은 그림자들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그림자가 점점 다가와 두 병사의 눈에 확대되듯 가득 들어찼다.
“저, 저게 뭐야?”
“저, 저런 몬스터는 본 적이 없는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그 크기가 무려 10미르(m)를 훌쩍! 넘어가는 거대한 크기의 뱀이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아홉 마리의 뱀이 하나로 묶여 있는 듯한 기형적인 모습!
“우, 우선 알려야지!”
“그래야지!”
두 병사는 서둘러 성탑에 설치되어 있는 종을 울리며, 붉은 깃발을 높게 내걸었다.
땡땡땡땡땡땡땡-!!
“하아아…….”
수련장 한쪽 구석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가일. 그런 그를 우연찮게 발견한 루카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갔다.
“야! 거기서 뭐하냐?”
“제기랄! 저 인간은 왜 또 오는 거야!”
가일은 루카의 모습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루카는 가일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씨익 웃었다.
“뭐해?”
“뭘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퉁명스런 가일의 대답에 루카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너, 에리카 양 생각하지?”
흠칫!
루카의 말에 가일은 눈에 띌 정도로 몸을 떨었다.
“누, 누가 에리카 양을 생각한다고 그러는 겁니까! 괜한 사람 잡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십시오!”
오랜 용병 생활로 눈치만큼은 기가 막힌 루카다. 순간적으로 흠칫 거리며 몸을 떨었던 것을 제외하고라도 떨리는 눈동자와 그 답지 않게 더듬거리는 말투에서 가일은 루카에게 딱! 걸렸다.
“임마, 너 괜한 생각하지 마라. 너 따위가 영주님에게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 하냐? 가슴 아픈 상처로만 남을 뿐이니 이쯤에서 깨끗하게 포기해라. 큭큭큭!”
가일이 발끈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그럽니까! 얼굴도 이정도면 충분하고, 나이도 아직 젊고, 검술 실력도 뛰어나고, 뭐, 대단하지는 않지만 돈도 좀 모아놨고…….”
말을 하다 말고 가일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루카가 걸려들었다는 듯 더욱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기랄!!’
가일이 고개를 돌리자 루카가 그의 어깨에 굵직한 팔뚝을 걸쳤다.
“야! 옛말에도 오르지 못할 지붕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그랬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깨끗하게 포기해라. 그게 남자다운 거다! 괜히 지저분하게 매달려봐야 네 꼴만 우스워진다.”
진심어린 루카의 충고였지만 가일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팔뚝을 걷어냈다.
“남자라면 죽이 되든, 빵이 되든 해볼 만큼 해봐야 하는 겁니다! 옛 음유시인들도 사랑은 먼저 점찍은 자가 임자라고 했고, 자빠트리면 끝이라고 했습니다!”
“자빠트려? 뭘?”
“그거야 나도 모르죠!”
빠각!
“이런 씨!!”
“야, 임마! 사랑이 무슨 통나무냐? 자빠트리면 끝나게? 그리고 임마! 음유시인들이 뭐 대단한 놈들이라고 그런 놈들 말을 믿고 그러냐? 너도 참 한심하다!”
루카가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자 가일은 자존심이 팍팍 상했다.
커닝과 가스파 앞에서 항상 무시당하는 루카였다.
사실, 어울리는 그들이 다 거기서 거기였지만. 어쨌든 그런 루카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자니 또 다시 가슴에서 불이 났다.
그런 가일의 모습을 보고 루카가 비웃듯 말했다.
“왜? 붙으려고?”
너 따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듯한 루카의 비웃음에 가일은 자신도 모르게 검자루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막 검을 뽑으려는 순간.
땡땡땡땡땡땡땡땡-!!
성 전체를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에 루카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몬스터다!”
짧게 외친 루카는 빠르게 내달려 수련장을 벗어났다. 그런 그의 행동에 가일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거 참, 알 수 없는 인간이라니까.”
말을 마친 가일도 루카의 뒤를 따라 수련장을 벗어났다.
“저, 저게 뭐야?”
“저런 몬스터는 본 적이 없는데…….”
“엄청 징그럽게도 생겼군!”
“으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다 돋는다!”
몬스터들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태세를 갖춘 병사들은 성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오크, 고블린, 고르곤, 트롤, 리저드맨, 미노타우로스, 오우거보다도 생전 처음 보는 징그러운 뱀 모습에 머리만 9개인 몬스터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병사들과 다르게 각 병과의 대장들은 넋을 잃은 듯 몬스터를 구경하는 병사들을 호통 치기에 바빴다.
“뭣들 하는 거냐! 각자 자리를 잡아!!”
“궁병대는 각 중대 별로 충분한 쿼럴을 확보했으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바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치도록 해라!!”
“방패병들은 각자 소드 실드로 성벽 위로 몬스터가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단단히 방비를 해!!”
“기병대는 충분한 수의 기름통을 미리미리 준비시켜 놓도록 서둘러 움직여라!!”
각 병과의 대장들의 외침에 병사들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전투 준비를 마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위드와 피에나가 프레타 기사단을 이끌고 성벽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곧바로 히덴 가르시아와 그린 형제를 비롯한 오브라이언과 아일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설마…….”
위드의 놀란 모습에 히덴 가르시아가 담담하지만,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히드라입니다.”
히덴 가르시아의 말에 모두가 히드라를 바라봤다.
쉬아아악! 쉬아아악! 쉬아아악!!
히드라의 9개의 머리가 각각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혀를 날름거렸는데 그럴 적마다 고막을 자극시키는 바람 소리가 났다.
“영주님!!”
로돌프가 급하게 위드를 불렀다. 그리고는 히드라가 다가오는 방향과 약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도 수많은 몬스터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리 중 유별나게 커다란 존재가 있었다.
히드라보다 약간 작은 크기에 도마뱀과 비슷한 머리모양, 머리 정중앙에 솟아나 있는 강렬한 붉은 색의 볏, 노란 비늘에 짧은 날개와 깃털 대신 가지런히 누워 있는 가시, 전체적인 몸길이에 비해서 상당히 짧은 두 다리.
모양새를 뭐라고 특정 지을 수 없을 정도로 괴상망측했다. 또, 희번덕거리는 노란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바질리스크…….”
히덴 가르시아의 떨리는 음성에 위드를 비롯한 모두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히드라와 바질리스크가 드디어 프레타 성에도 나타난 것이다.
(위드 카일러 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