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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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49화
049 별을 쫓는 사람들(4)
라에뮤 3세가 머리를 짚고 한숨을 내쉴 때 중원에서도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었다.
제갈세가가 있는 태산의 동쪽으로 가면 고밀(高密)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 멀리 보이는 산의 깊은 곳에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지어진 집들이 보였다. 그 집의 작은 정자의 기둥에 기대어 하늘을 보는 소녀가 보였다.
“아…….”
별을 바라보는 검은색 눈동자에는 근심과 안타까움이 머물고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작은 한숨이 나왔다. 그녀가 별들 사이로 눈길을 돌리며 하늘을 더듬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아야, 왜 그러느냐? 너의 어미가 걱정되어서 그러느냐?”
“외할아버지.”
“네 어미는 이미 세가의 무사들과 만나 안전하게 오고 있다 하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조금 전에 마을에 나갔던 너의 외삼촌이 전서구로 보낸 편지를 가지고 도착했단다.”
“다행이네요. 어머니의 소식이 한동안 끊겨서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중손면인은 그의 외손녀인 예소소를 따뜻한 눈으로 보았다. 세가에서 요구하는 과도한 학습에도 싫은 내색을 한 번도 비추지 않고 모두 익힌 재능이 많은 아이다.
“하지만 아직 걱정이 남아 있습니다.”
“흐음, 너의 고운 얼굴을 상하게 하는 이유가 또 있느냐?”
“오늘 하늘을 보니 혈랑성과 풍광성이 만날 인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 말에 중손면인은 놀라는 눈빛으로 하늘을 본다. 그러나 그의 눈에 혈랑성과 풍광성이 보이되 그 사이에 이어진 그 무엇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부딪칠 것 같으냐?”
“둘 중 하나가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하나 풍광성의 주인이 지금…….”
“도제라 불리는 망나니지, 혈랑성의 주인이 그자를 잘 피해야 할 터인데.”
중손면인도 걱정스러운 듯 이야기하였으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늘을 잠시 지켜보던 그는 생각이 난 듯 예소소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네 어미가 혈랑성의 주인을 만난 모양이더구나.”
“예?”
놀란 눈을 하고 예소소는 몸을 돌려 중손세가의 가주인 그녀의 외할아버지를 쳐다본다.
“허허, 태상 가주께서도 공야세가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또 도움을 받았나 보더구나. 전서구가 가져온 편지에는 긴 내용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만, 네 어미를 구해준 무사가 공야세가의 자손이라고 했다.”
“그분이 어머니와 같이 오시나요?”
“아니다. 편지에는 승려와 같이 왔고 세가의 무사들과 만났을 때 승려는 돌아갔다고 쓰여 있었다. 그 이상 자세한 것은 나도 알 수가 없구나. 그래도 공야세가의 실종을 언제나 안타까워하시던 태상 가주께서 그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몹시도 기뻐하셨다.”
외할아버지의 웃음에 같이 살짝 웃던 예소소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그녀가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미 천기는 혼란 속에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천기의 중심에 자리한 혈랑성은 예소소에게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혈랑성이 중손세가와 사이가 각별했던 공야세가의 별임을 들었을 때 그녀는 묘한 흥분에 휩싸였었다.
“소아가 추성자의 능력이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구나. 오히려 추성자들보다 하늘의 흐름을 더 잘 보는 듯한데…….”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하늘의 뜻이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예소소의 가슴에는 그녀가 추성자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추성자라면 언제나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눈길을 끄는 혈랑성의 주인을 아쉬워하지만 않고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에 있었는지 알았다면 소녀가 직접 혈랑성의 주인을 찾아갔을 터인데.”
그 말에 중손면인은 고개를 저었다.
“공야세가와 우리와의 인연은 아주 오래되었다. 그 인연은 쉽사리 끊어질 것이 아니란다. 시간이 지나면 지상에 내려온 혈랑을 직접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야.”
“예…….”
“다만, 정사대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만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그를 도울 수 있도록 준비를 충분히 해야 할 것이다.”
예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천기를 읽는 능력을 알게 된 중손세가의 어른들은 그녀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았다.
이제 멀지 않은 두 번째 정사대전을 기다리며 조용히 은거하여 세를 부풀리고 있는 중손세가는 예소소가 말하는 많은 별들의 인연을 토대로 준비를 하며 강호로 나설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곧 대산에도 연락을 취해 공야세가가 건재함을 알리고 그들과 함께 빼앗긴 것을 되찾을 일만 남았구나.”
세가의 어른들이 원했고 그녀도 원했던 혈랑성의 주인을 돕기 위한 공부는 이제 누구도 가르칠 것이 없어 그녀 스스로 선택하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 혈랑성의 주인을 상상하며 지내왔기 때문일까? 그의 소식을 작게나마 듣게 된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곧 20번째 생일을 맞이할 그녀의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예소소가 있는 산동에서 서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감숙의 작은 마을에 한 중년인과 두 청년이 객잔의 2층에 앉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있다.
“처음 나서는 강호가 마음에 드느냐?”
“그렇습니다. 처음 나서는 협행에 할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협을 행한다는 것이 몹시 기쁩니다.”
그러자 중년인은 그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나중에 풍룡장을 이끌 재목들이니 초출은 나와 함께하는 것이 좋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허허, 감사해할 필요 없느니라. 그럼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 빨리 가보자꾸나.”
“예.”
중년인이 먼저 일어나 객잔을 나서니 두 청년이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 위를 걷고 있는 세 사람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휘아야, 무슨 일이냐?”
중년인은 손자가 앞에 갔다 오자 물어보았다.
“어떤 자들이 길에서 행패를 부리는 듯합니다.”
아직 얼굴이 앳된 청년이 그가 들은 말을 그의 할아버지에게 고하고 있다.
“쯧쯧, 어딜 가나 쓰레기들이 있구나.”
그들이 사람을 헤치고 앞으로 나서보니 쓰러진 한 노인과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은 세 명의 청년이 보였다.
“이 늙은이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반질반질한 얼굴에 값비싼 붉은 비단으로 몸을 감싼 사내가 한 늙은이를 걷어차며 입을 열었다.
“내가 감숙의 홍연공자(紅燕公子) 염위현이다. 네가 감히 나와 부딪치고 내 옷을 더럽히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홍연공자의 주위를 보니 2명의 비슷한 연배의 사내들이 웃으면서 보고 있다. 그들은 감숙의 한 귀퉁이에서 가문의 후광을 입고 위세당당하게 다니며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삼색공자들이었다.
원래는 각자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 옷을 즐겨 입어 삼색이라 하였으나 그들이 색을 많이 밝힌다는 소문이 돌면서 색을 밝히는 세 공자라 빗대어 삼색공자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삼색공자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삼색 공자들도 그 말의 숨은 뜻을 알기 때문이다.
“자네들이 삼색공자라 불리는 놈들인가?”
그 말에 홍연공자는 뒤로 돌아보았다. 허리에 도를 차고 질좋은 무복을 입은 중년인이 자신을 비딱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그의 집안의 세력을 무시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 그런데 네놈은 누구기에…….”
순간 홍연공자는 목에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게 그의 생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이이이,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홍연공자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자 남은 두 공자는 호통을 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비웃는 소리뿐이었다.
“감숙을 더럽히는 발정 난 쓰레기들이지.”
청류공자와 황음공자는 머리끝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분노했으나 홍연공자의 목을 날린 조금 전의 쾌도에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대체 당신은 누구기에 감숙 땅에서 이런단 말이오.”
황음공자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내어 그의 가족들을 모두 몰살시키리라고 생각하고 이를 갈며 물었다.
“본좌는 풍룡장의 주인이지.”
“풍룡장!”
그 말에 두 공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는 홍연공자가 죽었다는 것도 눈앞의 중년인에게 모욕을 받았다는 것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그렇다면 도제…….”
쐐앵-
다시 한번 빠른 바람의 소리가 들리자 황음공자는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너 같은 쓰레기가 함부로 입에 올릴 별호가 아니니라.”
“으으으.”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된 청류공자는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도제의 다른 별호는 참마도. 눈에 거슬리는 자가 흑도의 인물이라면 사정없이 베어버린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무림맹의 비호를 받는 주구들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모든 흑도의 인물들이 몸을 사린다고 했다.
“으아아아아!”
눈앞에서 두 친구가 힘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본 그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자 하였으나 등줄기에 불이 나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며 의식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도제는 시체가 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는 세 사람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그의 애병인 풍아도에 묻은 피를 보며 혀만 차고 있었다.
“이런 더러운 것들의 피가 묻다니… 쯧쯧.”
도제는 홍연공자에게 다가가 도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도집에 넣었다.
“봤느냐? 이런 쓰레기들은 양민들에게 피해만 준단다. 해서 이런 자들이 보인다면 바로 없애버려야 한다.”
뒤를 돌아보며 인자한 웃음을 짓자 그의 뒤에 있던 스무 살 남짓한 두 젊은이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잘 보았습니다.”
협행이라는 이름 하에 강호를 유람하고 있는 도제는 자신을 따라온 애지중지하는 어린 두 손자를 만족스럽다는 듯이 봤다.
태어날 때부터 그의 마음에 들어 그의 손으로 직접 벌모세수를 시키고 오랜 시간 많은 공을 들인 아이들이다. 먼 훗날 그의 뒤를 이어 풍룡장 최고의 고수들로 자라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협행에 데려와 흑도의 인물이라면 베어버려야 한다고 말을 하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척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무림맹의 척살대에게는 미안하게 된 것 같구나. 그들이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각난 마교도들의 시체를 수습해 가는 일뿐일 터이니 말이다.”
도제가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자는 경쟁적으로 입을 열어 도제가 좋아할 만한 말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하. 흑도 중 가장 지독하다는 마교 놈들이 할아버지의 도에 조각나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아무리 악독하고 흉폭한 놈들이라고 해도 할아버지의 도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하!”
두 손자의 아부하는 말에 도제는 기분이 좋은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휘아야, 혁아야. 원래 협을 아는 자들은 아부를 해서도 아부를 듣고 좋아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너희들의 말은 아부로 들리지 않아 기분이 좋구나. 허허허!”
“아부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두 손자는 도제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당금 무림에서 도제에게 사랑을 받는 그의 손자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후광인지 두 사람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듬뿍 느꼈던 것이다.
이미 그 달콤한 유혹 속에 살고 있는 그들로서는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아서 언제나 그들의 든든한 후광이 되어주길 바랐다.
도제는 문득 하늘을 보았다. 지금 쫓고 있는 것은 마교의 외당 조무래기들이다. 마교를 세상에서 지우고 싶었으나 신강에 웅크리고 있는 한 마교를 직접 손댈 수 없었다.
‘그놈들이 나온다면 내가 천기를 바꿀 것이다.’
그리고 옆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곳에는 그의 손자들이 웃으며 보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마교도들을 놓칠지도 모르니 어서 가자꾸나. 그리고 내가 그놈들을 척살할 때 그놈들이 사용하는 사술이나 암수를 주의 깊게 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며칠 전에 만난 개방도가 한 말대로라면 마교도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물론 무림맹의 척살대가 그들을 잡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교도들이라면 치를 떠는 도제로서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손아귀에 걸려든 마교도들을 하나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도제는 풍아도를 한 번 손으로 쓰다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은 무혼의 일행이 오고 있다는 평량 근처의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