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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43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0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43화

043 땡추 도안(2)

 

 

 

 

 

‘백설비천검(白雪飛天劍).’

 

이미 중원에서 사라진 작은 백도 문파의 검법이다. 무혼이 자주 다니는 마교의 무고 중 하나인 혼세무고의 한 귀퉁이에서 찾아낸 것으로 일류 검법이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초식의 화려함과 극한지기를 바탕으로 한 검의 운용이 뛰어나 아이네스의 몸으로 펼치게 될 극한지기의 검술의 의미를 깨닫고자 수련한 검법이다.

 

‘마기를 갈무리하기 위해 상당 부분의 내력을 억누르고 펼친다 해도 이런 자들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군.’

 

무혼이 사령방의 무사들 사이로 거침없이 날아들어 화려한 동작을 선보이며 오른팔을 휘두르자 햇살에 반사되어 서늘한 빛을 사방에 뿌리는 혈랑검이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했고 무혼의 주위에서 흰 눈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대신 피보라가 일어났다.

 

“커헉!”

 

“끄아-.”

 

사정없는 손속에 무혼의 앞을 막아선 3명의 무사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을 뒹굴자 그들의 피를 뒤집어쓴 다른 자들이 경악한 얼굴을 하고 물러난다.

 

“고, 고수다.”

 

“보통의 표사들이 아니다.”

 

그러나 무혼이 혼자 깊숙이 뛰어들었기 때문인지 주위에서는 무혼의 목숨을 노리며 많은 병장기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무혼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과 긍지에 맞는 검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무혼이 생각하기에 무인으로서 당연히 걸어야 할 길 위에서 그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이네스는 아무런 생각을 못 하며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녀가 읽은 낭만적인 기사의 이야기에는 어디에도 이런 피가 흩날리는 내용은 있지 않았다.

 

게다가 무혼이 휘두른 검에 사람의 목이 피를 뿌리며 공중으로 날고 몸이 갈라져 내장을 쏟아내는 모습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조금 전에 무혼에게 그들을 도와주라고 부탁했을 때는 그저 무혼이 여성들을 구출하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했다. 아이네스는 은연중에 용감한 기사가 말을 달려 적들 사이를 호쾌하게 달리며 숙녀들을 구하고 다시 사라지는 모습을 머리에 떠올렸던 것이다. 결코, 이런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네스도 다른 마법사들처럼 인형을 세워두고 마법을 시전하며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연습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멀리 떨어진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굳이 가까이 다가가 마법에 의해 죽은 자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몸에 피가 튀지도 않는다. 그리고 블랙 블러디와 싸웠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아이네스는 목숨을 담보로 검을 휘두르며 싸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고 있었다.

 

사람이 한순간에 절단되어 목과 팔다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아이네스가 책을 읽으며 상상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조각나는 육체. 그리고 뒤따르는 피의 흩날림. 그리고 조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사람의 몸에서 쏟아지는 내장들.

 

그 모습을 보는 아이네스의 망각 속에 잠겼던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고 피와 죽음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느꼈던 5년 전 볼리에노 산에서의 충격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때와 다르다면 정신없는 상황에서 주위를 자세히 볼 경황이 없었다는 것이고 지금은 눈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정확히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몸이면 눈을 감았을 것이고 꿈에서 마음대로 깨어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깨어나면 된다.

 

하지만 둘 다 마음대로 하는 것이 불가능한 아이네스로서는 그저 귀접 9조와 사령방 무사들의 격전을 두 눈을 보고 귀로 생생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무혼의 눈을 통해 보는 이곳엔 검을 쥔 자의 숙명인 죽음이 주위에 만연했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피의 대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몸 근처를 지나는 수많은 검과 도 사이를 누비는 무혼은 신기하게도 무기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휘둘러지는 무혼의 검에 팔이 날아가고 목이 잘리는 사람들. 가끔 향하는 무혼의 눈길에 비춰진 귀접 9조의 다른 사람들도 무혼처럼 피를 온몸에 두르며 싸우고 있다.

 

도산검림. 중원인들이 가끔 사용하는 그 말의 무게와 진정한 의미를 아이네스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이게 죽음이 가득하다는 혈전의 모습이야.’

 

너무나도 공포스러워 어느새 기억의 저편에 감춰두었던 5년 전 산에서 잘렸던 기사의 팔과 피들. 아이네스는 어쩌면 스스로 그 기억을 봉인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한 자루의 검을 쥐고 죽음이 가득한 길을 가는 중원의 무사들과 비슷한 길을 걷는 미라크네의 기사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도 지금 무혼처럼 적들을 베든지 아니면 앞에 보이는 무사들처럼 피를 토하며 쓰러지게 되든지, 이런 피의 길을 걸을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네스가 알고 있는 마법사와 전혀 다른 삶이었다.

 

‘죽음을 등에 업은 사람들.’

 

최근 미라크네의 기사들에게 심술을 부렸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고 조금 전 무혼에게 이들을 구출해 달라며 고집을 피웠던 자신의 행동도 뉘우쳤다.

 

책에서 본 환상을 가지고 한 이야기가 이들에게는 목숨과 직결된 현실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눈앞의 모습은 끔찍했으나 자신이 무혼에게 오는 동안 계속 보게 될 테니까 이제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 아이네스 소저?

 

- 예? 예! 무혼 경.

 

- 괜찮으십니까?

 

눈앞에서는 자신을 노리는 병장기를 쳐내고 적을 한 명씩 격살하고 있어 정신없을 무혼이 자신을 걱정해 주자 아이네스의 마음은 고마움과 미안함 등이 엉켜 복잡해졌다.

 

- 괜찮아요. 그리고 무혼 경.

 

- 예.

 

- 미안해요.

 

- 무엇을 말입니까?

 

- 그냥… 미안해요.

 

무혼은 갑자기 사과하는 아이네스의 생각을 알 수 없었지만, 마음으로 전해오는 아이네스의 공포의 떨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 느껴지자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거세게 부딪친 무혼 일행과 사령방 무사들의 격전은 의외로 싱거웠다.

 

비록 내력을 마음껏 끌어올리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정파의 무공으로 싸우고 있지만, 마교에서도 높은 수준의 무공 실력을 지닌 귀접 9조의 무사들과 철겸방의 외당 무사들의 실력과 다를 바 없는 사령방 무사들의 싸움은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던 것이다.

 

살수를 쓰지 않던 승려에게는 겁없이 달려들던 사령방의 무사들이 그들을 거침없이 도륙하는 무혼의 일행에게는 기세가 꺾이고 있었다.

 

“뭐, 뭐야? 무슨 표사들의 무공 실력이 저렇게 강해?”

 

“제길, 누가 저놈들 좀 막아봐!”

 

숫자를 믿고 몰려든 수십 명의 사령방 무사들은 옆의 사람들의 목과 팔다리가 날아다니고 피를 토하며 바닥에 뻗자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무혼은 승려와 여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리자 무혼에게서도 멀어지고자 길을 열었다. 그 틈을 이용해 중년 여인들에게 다가선 무혼은 한 여인을 부축하며 승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스님, 이분들을 부축하고 피합시다.”

 

“소승은 불제자로서 여인을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왼손으로 다른 사령방 무사의 얼굴을 치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승려를 보고 무혼은 잠시 황당했다.

 

지금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승려라며 여인을 부축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 앞의 대머리 청년이 사제인가요?

 

-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사제와 같은 신분이죠. 그 종교의 사제는 머리를 모두 밀기에 대머리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 웅. 그 종교의 신이 대머리인가 보죠?

 

- 그, 그것은 아닙니다. 그저 사제들만 머리를 밀고 있을 뿐입니다.

 

- 이상한 풍습이군요.

 

아이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무혼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무혼의 내공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지 않는다 해도 지금의 실력으로 두 여인을 허리에 끼고 일행이 있는 곳까지 날아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빈손이 없어 검을 펼치지 못하기에 방어를 할 수 없어 부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려가 불제자임을 내세워 거절한 이상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 형님, 이분을 부축해 주십시오.”

 

무혼의 외침에 고명우가 도를 휘둘러 사령방의 무사들을 위협하며 달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씩 여인을 부축하고 뛰어오르자 그들의 모습을 보던 승려가 따라오며 뒤에서 오는 사령방 무사들의 공격을 막았다. 앞에서는 귀접 9조의 조원들이 길을 확보해 주었다.

 

“이쪽으로!”

 

“시주님들,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스님! 지금 불호를 외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러다가 예정에 없이 부처님을 가까이 뵙게 될 것입니다!”

 

답답하다는 듯 오호가 능청스럽게 이야기하자 그 승려도 웃었다.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 해도 부처님을 모시는 몸인데 어찌……. 헛!”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공격한 사령방 무사의 얼굴에 작렬한 주먹을 다시 거두어들이며 합장을 한다.

 

여인들과 승려가 구출되자 사령방의 무사들을 상대로 난전을 벌이던 무혼의 동료들은 그들을 거세게 밀어붙였고 사령방의 무사들은 그 기세에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했다.

 

강 조장은 그들이 물러나자 재빨리 말에 오르며 외쳤다.

 

“이곳을 피한다. 모두 달려라.”

 

그것을 본 사령방의 무사들은 다시 쫓아왔지만 귀접 9조를 따라잡지 못하고 말들이 피워 올리는 연기를 그저 바라보았다.

 

“제길, 저 자식들 뭐야?”

 

 

 

 

 

산음을 탈출한 무혼의 일행은 산속에 작은 공터를 발견하자 말을 멈추고 모두들 내렸다.

 

[내가 신호를 하면 언제라도 이들을 습격해서 살인멸구 할 준비를 하라.]

 

부하들에게 전음을 보낸 강 조장은 웃으면서 승려와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하, 시주님들을 만나서 다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두 여인 중 더 많은 나이를 가진 듯한 중년 여인은 인사를 했고 무혼을 보면서도 인사를 했다.

 

“그 무뢰배들을 헤치고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 모두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검을 쥔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였습니다.”

 

중년 미부의 말에 대답을 하고 나자 무혼은 행동이 어색해졌다. 강 조장의 말에 따르면 앞의 두 여인은 살인멸구를 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 이 가련한 여인들을 정말 죽일 거예요?

 

무혼이 들은 전음을 함께 들은 아이네스의 목소리가 머리에서 메아리치는 듯하다. 아마도 무혼도 꺼려지기에 그럴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곤란하군.’

 

- 어쩔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분들은 나쁜 사람들 같지도 않고 연약하게만 느껴지는데…….

 

무혼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정파의 기둥 중 하나인 소림의 승려와 함께 있는 여인들이 무림인들이라고 하지만 지금 자신들의 검을 피할 만한 실력도 기력도 보이지 않는다. 철겸방의 내당에서 부녀자들을 벤 동료들의 기분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소협, 무슨 고민이 있으신지요?”

 

앞에서 잔잔히 들려오는 중년 여인의 목소리에 무혼은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중년 여인이 앙칼진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검을 휘두른다면 무혼은 망설이지 않고 벨 수 있었을 것이다.

 

“하하, 아리따우신 여시주의 모습에 젊은 시주께서 부끄러운 모양입니다.”

 

아까부터 황당한 소리만 하기에 무혼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으나 이어지는 승려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같은 흑도의 길을 걸으시는 분들이신데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아미타불…….”

 

“하지만 이분들이 사용하신 무공들은 모두 정파의 것으로 보였는데요?”

 

귀접 9조의 사람들을 살펴보던 다른 여인이 망설이듯 입을 열자 승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여시주들께서도 이름을 숨기고 여행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시주들께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미타불…….”

 

그러자 여인들은 승려와 무혼 일행을 천천히 살폈다. 그러다가 무혼에게 인사를 했던 여인이 무혼의 허리에 매달린 검을 보더니 문득 놀란 얼굴로 무혼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무혼의 얼굴과 혈랑검을 계속 번갈아 가며 살펴보더니 결심한 듯 인사를 했다.

 

“저는 산동 중손세가의 중손수연이라 합니다. 제 뒤에 있는 사람은 동생인 중손수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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