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40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40화
040 강호 초출(2)
“가이오스트 대륙도 처음 듣소. 어디서 들은 이름이오?”
“잘 알고 지내는 지인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글쎄요. 그러한 나라는 들어본 적이 없구려.”
무혼이 실망한 얼굴로 앉아 있자 고명우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그 이상한 발음의 나라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그냥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찾아가 볼까 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흐음… 알게 되어 자네가 그곳에 갈 때 나도 같이 데려가 주게. 서역에 대해서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네.”
무혼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갈 수 있다면 그리하지요.’
물론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무혼은 다시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고 같은 탁자에 앉아 있는 3명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날 서안을 떠나 만리장성을 세운 황제의 묘인 진시황릉과 양귀비로 유명한 화청지를 지나 7일 뒤 산서지방의 평요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그다지 큰 마을은 아니군요.”
“무림맹의 주구(走狗 : 앞잡이)라 해도 무림맹이 흑도에게 큰 마을의 권리를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산서의 작은 마을인 평요에 들어간 일행이 객잔을 찾아가는 길에 무혼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피곤해 보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무혼은 저절로 눈살을 찌푸려진다.
‘무엇을 저리도 두려워하는 것일까?’
“우리는 저곳에서 머문다.”
강 조장의 말에 무혼이 고개를 돌리니 낡은 객잔이 하나 보였다. 하지만 휑한 거리 만큼 객잔도 허전한 느낌이 들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점소이는 무혼 일행을 보고 눈을 굴리며 복장을 훑어보고 있었다.
“묵을 방이 있는가? 우리 모두가 같이 묵었으면 하는데…….”
“열 분 모두 함께 들어갈 방은 없습니다. 제일 큰 방에 네 분이 머무실 수 있습니다.”
“그럼 3명이 묵는 방 두 개와 4명이 묵는 방 하나를 부탁하네.”
“식사는 어디서 하시겠습니까?”
“1층에서 하겠네. 소면과 만두를 주게.”
이제까지 거쳐 왔던 객잔과는 다르게 눈앞의 점소이는 힘이 없어 보였다.
방에 여장을 풀고 1층으로 내려온 무혼의 일행은 창문 밖으로 멀리 보이는 철겸방을 살폈다.
평요에 도착하기 전 강 조장이 설명해 준 말에 따르면 철겸방은 전대 방주가 있을 때만 해도 흑도의 긍지 있는 문파였으나 후임 방주인 그의 아들이 무림맹의 간세를 자처하면서 이 마을의 권리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20여 년이 지났다.
“저럴 수가 있는 겁니까?”
이원풍의 목소리에 모두 그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긴 창대를 자루로 가진 낫을 들고 다니는 자들이 몇 사람을 끌어내어 발길질을 하며 침을 뱉고 있었다.
“철겸방의 무리인데…….”
“하지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공이 없는 양민들입니다.”
“이런 썩어 빠진…….”
그때 음식을 가져온 점소이가 그 광경을 보더니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며칠에 한 번씩 보게 되는 모습입니다. 손님들께서는 못 본 척하십시오.”
“저걸 어찌 못…….”
“좋으신 분들인 듯해서 말씀드립니다. 몇 달 전에도 저런 모습을 참지 못하시고 병장기를 꺼낸 무림인들이 철겸방의 무사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저들이 법입니다. 저들에게 거슬리거나 이 마을에서 도망을 치다 잡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흑도 문파의 무리를 상대로 싸우시기보다는 못 본 척 조용히 가시는 것이 손님들을 위하는 길입니다.”
“무림맹이나 다른 문파에서는 저걸 가만 내버려두나?”
“아예 이곳으로 오지도 않습니다. 관부도 저들의 행패는 외면하고 있고요.”
무혼과 고명우 그리고 이원풍은 자신의 병장기를 쥐고 손을 떨고 있었으나, 옆에서 어깨를 살짝 잡는 다른 조원들을 뿌리치진 못했다.
점소이가 물러나자 객잔의 1층에는 자신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세 사람은 강 조장의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총단에서 무림맹의 주구들을 왜 처단하고자 하는지 알겠느냐?”
무혼이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풍귀흑각도 눈가를 살짝 떨고 있는 것이 분노를 삭이고 있는 듯했다.
그것을 본 무혼은 자신의 검에서 손을 떼었고 무혼의 어깨를 잡았던 손이 풀려갔다.
“대체 저들은 왜 저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입니까?”
“모른다. 다만 자신들의 말을 듣는 흑도의 문파를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흑도는 나쁜 자들이라는 것을 세뇌하고자 하는 무림맹의 술수라고 짐작하고 있다. 정사대전 이후 심해졌지.”
“제길.”
이원풍의 내뱉는 소리가 들렸으나 풍귀흑각은 낮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했다. 그에게는 눈앞의 3명의 기재들에게 많은 것을 자세히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금은 무림맹이 장악한 중원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림맹과 타협한 흑도의 문파들도 있다. 그러한 문파들은 총단도 이해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림맹에 꼬리를 흔들며 양민들을 괴롭히는 저런 주구들은 다르다. 저놈들은 자랑스러운 흑도가 아니라 쓰레기다. 명심해라.”
무혼은 연무관에서 배운 기억을 떠올렸다.
[흑도는 순수한 강함을 찾는 무인들의 길이다. 의협을 외치는 정파의 무공은 천축에서 건너온 달마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흑도의 무공 대부분은 중원에 뿌리를 두고 발전해 온 것이다. 무림맹의 놈들이나 백도의 놈들은 기껏해야 외래 문명을 가지고 협객이니 뭐니 떠들고 있는 것이다.]
무혼은 입술을 깨물었다. 순수한 강함을 추구하는 흑도 중에 잘못된 길을 걷는 자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백도의 기인이사라 불리는 자들 중 일부도 잘못된 길을 걷는 자가 있다고 했다. 다만 그들은 백도의 인물이기에 ‘무의 끝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행한다.
그러나 흑도의 인물이 오해를 받을 일을 한다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나쁘다’라고 몰아붙인다.
“저 무림맹의 주구들도 정사대전 때 우리의 등을 급습한 비열한 무림맹과 같은 자들이다. 정해진 날, 저들을 칠 때 손속에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입을 다물고 굳은 얼굴로 술잔을 들이켜는 강 조장의 모습을 보며 무혼도 같이 죽엽청을 들이켜자 모두들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3일 전 그들은 평요를 떠났다. 그러나 멀지 않은 산속에서 평요를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마음의 준비는 되었나?”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을 때 풍귀흑각이 주위에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자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살행을 해보지 않은 자는……?”
그러자 모든 조원들의 눈이 초출인 세 사람에게 집중이 되었다.
“7년 전 총단에 잠입한 백도의 간세들을 쫓는 과정에서 살행한 적이 있습니다.”
고명우가 입을 열자 이원풍은 고개를 저은 후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오늘이 첫 살행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풍귀흑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보며 말했다.
“마음에 둘 것 없다. 누구나 처음은 있는 것이니까. 육호, 네가 십호를 지원한다.”
그리고 다시 강 조장은 무혼에게 눈길을 돌렸다.
‘살행이라면 이미 경험이 있지만…….’
무혼은 잠시 대답하기 난감해졌다. 가이오스트 대륙에서 겪은 두 번의 살행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밝힐 수는 없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저지른 첫 살행에서 무감각한 신체의 감각 덕분에 별다른 충격을 받진 않았다. 아니면, 미라크네의 기사들과 납치범들의 시체들 속에서 했던 살행이라 그런지도 몰랐다.
그리고 두 번째의 살행 역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납치범들이 상대였다. 그때 역시 정신없는 상황 속에 충격은 받지 않았다.
‘나는 살인귀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하지만 무혼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검을 든 자로서 걸어가야 할 길 중에 하나를 걸은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검만을 수련해 온 자신에게 이런 고민은 어울리지 않았다. 무혼이 생각하기에 앞을 막는 자는 베고 자신이 믿고 있는 길을 걷는 것이 무인의 삶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뛰어넘지 못할 자를 만나는 날, 자신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문득 강 조장의 시선이 느껴지자 무혼은 조용히 말했다.
“저 역시 오늘이 처음이 될 듯합니다.”
“삼호, 네가 구호를 지원해라.”
그러자 한 명이 무혼에게 다가와 살짝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리고 팔호는 칠호를 따라가라.”
그 말에 고명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따라갈 사람을 보았고 칠호는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었다.
강 조장은 품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어 펼쳤다. 그 그림에는 평요와 철겸방이 그려져 있었으며 숫자가 있었다.
“모두 자신이 맡은 구역을 확인하라. 그곳에 있을 모든 철겸방의 무사를 척살하고 인시(寅時)가 되면 모두 이곳에 모인다.”
9명의 눈동자는 강 조장이 짚고 있는 곳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각자 목에 걸려 있는 두건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시작한다.”
무혼은 평요의 한 뒷골목을 달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허겁지겁 도망가는 철겸방의 무사는 자신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의 동료 두 명이 삼호의 도에 밀려 궁지로 몰리자 합격의 틈이 있음에도 홀로 도망을 간 것이다.
‘이 지역의 패자라는 긍지도 없는 자인가?’
삼호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무혼은 철겸방의 무사가 도망을 치자 뒤쫓기 시작했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를 앞지를 수 있었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난 철겸방의 무사다. 철겸방을 안다면 비켜라.”
그러나 무혼은 대답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갔다. 철겸방의 무사는 들고 있던 긴 자루의 낫을 휘두르며 무혼의 검에 맞섰다.
그러나 무혼의 검이 그의 낫을 반으로 동강을 내자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눈을 굴려 도망칠 곳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쓰레기다.’
강 조장의 말이 귀에 울리는 듯하자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고, 주저하는 기색을 찾을 수 없는 무혼의 검이 눈앞에서 눈알만 굴리고 있던 자의 목을 가르며 지나갔다.
툭,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는 머리를 보고 있는 무혼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나?”
뒤를 돌아보니 삼호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전 쓰레기를 베었을 뿐입니다. 살행을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무혼의 말에 삼호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쓰레기들이니 살행이라 생각지 않는 것이 좋다. 자, 가자. 아직 없애야 할 자들은 많을 것이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삼호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