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36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36화
036 화룡마편과 쌍귀선(1)
귀빈석의 중앙에는 외당 당주이자 마교의 5장로 중 하나인 잔결음살(殘缺陰殺) 청오문 장로가 앉아 있었고 그 주위에 5개 단의 단주와 연무관의 관장들이 앉아 있다.
귀빈석에 오른 귀룡일검은 그에게 지정된 자리에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반 형님, 먼저 오셨구려.”
청천귀접단주인 귀검마옹(鬼劍魔翁) 반성량은 귀룡일검을 보고 슬쩍 웃으며 힘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장 아우도 오느라 수고했네.”
장대암이 그의 옆에 앉자 반성량은 계속 입을 열었다.
“남의 잔치에 온 것 같아서 영 씁쓸하군.”
“반 형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들을 보게.”
장대암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흑천의 단주와 적천의 단주가 서로 마주 보고 그들의 단이 이길 것이라며 가벼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흑천에서는 쌍귀선 육문천, 적천에서는 화룡마편 공극소, 두 천재가 출전한다고 하더군. 올해도 적천이나 흑천의 잔치가 될 것 같으이.”
별호도 비슷하고 마음도 잘 맞아 오랜 시간을 친형제처럼 지내온 반성량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나직이 이야기하자 평소엔 무거운 장대암의 입이 근질거린다.
“이 무술대회는 청천의 축제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에 반성량은 고개를 돌려 장대암의 얼굴을 보았다. 환해 보이는 귀룡일검의 모습이었지만 덤덤한 얼굴로 다시 연무대를 보며 조용히 이야기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난 저 두 단주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봤으면 하네.”
그 말을 들은 장대암은 빙그레 웃는다. 반성량의 작은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는 귀접연무관에서도 두 사람의 기재가 출전한다.
마천태풍도 고명우와 아직 별호가 생기지 않았지만 장대암조차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무혼이다. 특히 무혼에게는 이 대회의 우승까지 기대하고 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장대암은 흐뭇하게 웃으며 5년 전 무혼의 집까지 따라가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지금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고 있었다.
드디어 무술대회가 시작되었다.
천마신교 외당, 흑천 암운단, 마천 멸혼단, 청천 귀접단, 적천 혈풍단, 자천 철월단. 6가지의 깃발이 주위에서 나부끼고 있는 가운데 대회장 안의 4개의 비무대 위에서는 저마다 자신의 무공실력을 화려하게 선보이며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공야 소협이 벌써 무술대회에 참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이제 4년 반밖에 되지 않았지?”
대회장 한쪽에는 흑야오화가 대회 참가자 명단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가운데는 울상이 된 능미류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몰라요. 내가 귀접연무관에 온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무혼이 벌써 청천귀접단에 오르다니…….”
시무룩한 얼굴이 된 능미류는 다음 차례로 잡혀 있는 무혼의 이름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이제 또 몇 년이 걸려야 외당에 갈 수 있을까?”
비무대 한쪽에 마련된 대기자의 장소에는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무혼과 마천태풍도의 모습이 보였다.
“공야 아우, 내 생각인데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자네가 될 것이 틀림없네.”
무혼은 자신에게 말을 하는 고명우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한 실력이 되지 못합니다, 고 형님.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습니다.”
“자네의 검을 겪으며 나도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어. 두고 보라고. 자네와 숱한 대련을 해본 내가 장담하건대, 자네가 우승할 것이고 나는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야. 하하!”
무혼은 그러한 고명우를 보며 자신의 마음도 자신감에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느긋하고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
무혼은 그가 의기소침해 있거나 서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시원한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만일 아이네스 소저와 몸이 바뀐 사람이 고 형님이었다면 그곳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곧 자신의 생각을 떨치고 혈랑검을 뽑아 검날에 손을 대어보았다.
‘잘 부탁한다.’
혈랑검은 대답을 하듯 무혼의 손에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무혼의 첫 상대는 마천의 검객이었다. 무혼은 포권을 한 뒤 검을 뽑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니 심판관이 깃발을 올렸다.
앞에 있는 상대를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검로가 떠오른다. 무혼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검로를 따라 매끄럽게 검을 휘둘렀다.
쇄앵!
무혼의 상대는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검을 겨우 한 번 휘둘러 봤을 뿐이다. 그리고 막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한 무혼의 검이었다.
그러나 무혼의 검이 검로를 차단하여 튕겨내고 그의 목에 드리워진 것이다.
“청천 9번 승!”
“와아!”
외당에 오를 것을 허락받은 자들은 결코 약하지가 않았다. 그런 실력자를 상대로 단 일 초에 제압하자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작은 환호성이 올랐다.
무혼이 상대에게 인사를 하고 비무대를 내려오니 고명우가 싱글벙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 말이 맞지?”
“고 형님의 비무도 끝났습니까?”
“이십 초를 넘기지 않고 이겼다네. 하하하!”
무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축하해 주는 고명우와 함께 다시 대기자의 장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는 동안 무혼이 세 번을 더 이기자 이제 본선 진출자인 8명만 남게 되었다.
“이건 조작이오!”
귀빈석에서 청천귀접단의 단주인 귀검마옹의 노호성이 터졌다.
“어찌 청천의 아이 둘 다 우승 후보와 겨루게 된단 말이오.”
무술대회에서 몇 년 만에 청천의 수련생이 본선에 올라왔다. 그것도 두 명이나 되자 귀검마옹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듯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귀빈석에 올랐다.
그런데 웃음이 가득하던 그의 얼굴이 대진표를 확인하자 엉망으로 찌푸려진 것이다.
“공정하게 정한 것입니다. 조작이라니요?”
“허어, 자네 눈은 장식으로 달린 겐가? 저 대진표 어딜 봐서 공정하다는 겐가?”
“반 형님, 고정하십시오.”
옆에서 귀룡일검이 반성량을 말리고 있었지만, 대회를 관리하고 있는 자는 귀검마옹의 몸에서 내뿜어지는 기세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뒤로 물러섰다.
서열도 서열이지만 별호에 귀(鬼) 자와 마(魔) 자가 함께 들어가는 자는 흔치 않다.
“대진표는 공정한 것이네. 그 대진표를 편성할 때 내가 옆에서 보고 있었어.”
귀검마옹이 뒤를 돌아보니 외당의 당주가 혀를 끌끌 차며 그를 보고 있다.
“자네는 그 성질 좀 죽이게. 그러다 사람 하나 잡겠네.”
직속 상관인 당주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귀검마옹은 그의 자리로 돌아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좌석의 손잡이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귀검마옹을 보며 장대암은 고개를 저으며 살며시 웃었다.
“공야 아우, 자네 상대는 화룡마편이지? 난 이번의 상대가 쌍귀선이야. 누군지 청천을 골탕 먹이려고 한 모양인데 어림없지. 하하!”
“고 형님이 이기실 겁니다.”
“글쎄 쌍귀선이 자네보다는 실력이 좀 못하지만 그래도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자야. 하지만 발악해서라도 이겨보려고 노력할 생각이야. 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하하하!”
무혼은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비무대에서 무공을 펼치는 쌍귀선을 본 그는 오랜 시간 자신과 대련을 해온 마천태풍도가 쌍귀선보다 아래라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고 형님, 아쉽습니다. 이번의 상대가 쌍귀선이나 화룡마편이 아니었다면 고 형님은 준준우승이셨을 겁니다.’
무혼은 고명우가 오르는 비무대를 눈여겨보았다. 자신에게 쌍귀선임을 알려준 이유도 그리고 발악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도 짐작하기 때문이다.
‘고 형님이 끌어내어 주시는 쌍귀선의 숨은 실력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무혼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겨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조금 전 마천태풍도는 혼신의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패했다. 이제 자신이 지게 되면 청천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공극소. 눈앞에 있는 화룡마편은 한때 마교에 널리 퍼진 두 천재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10년을 목표로 시작한 폐관수련을 12년 만에 끝내고 나타난 것이다.
몇 년 내에 서열 500위 안에 들어갈 것이 확실하고 곧 뇌천비룡대(雷天飛龍隊)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어찌 보면 쌍귀선과 화룡마편이 이 대회에 나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일 수 있었지만, 그들은 분명히 자격이 있었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무혼은 포권을 한 뒤 서서히 자신의 검을 뽑자 공극소도 그의 허리에 둘렀던 붉은 화룡편을 풀었다.
‘병장기의 움직임이 아무리 현란하고 예측할 수 없다 하여도 무(武)의 도(道)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젠 누구의 가르침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글귀를 떠올리며 무혼은 공극소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깃발이 오르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화룡편과 혈랑검은 거세게 부딪쳤다.
카-앙!
가죽으로 되었지만,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화룡편의 끝이 혈랑검을 넘어 무혼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철편보다도 더 강맹한 기운이군.’
무혼은 머리를 옆으로 숙인 후 왼쪽 발을 내디디고 허리를 굽히며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 오른팔을 길게 휘두르며 공극소의 다리를 노리자 화룡편은 방향을 바꿔 무혼의 검을 휘감고자 한다.
‘역시 다른 자들과는 달라. 검로에 대해서 거의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거야.’
다시 무혼이 검을 거두어들이고 몸을 세운 후 사방을 경계하며 앞으로 질주해 갔다.
그러자 화룡편이 바닥에서 1척의 높이로 날아오며 무혼의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타핫!”
검으로 사선을 그으며 몸을 띄워 속력을 높이자 공극소의 다리가 무혼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왼손으로 다리를 후려치며 왼발로 땅을 짚고 오른팔을 길게 뻗으니 공극소가 몸을 뒤로 날리며 제비돌기를 한다.
‘살기!’
자신을 노리는 살기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가 자세를 잡기 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공격권을 자신이 쥐게 된다.
캉!
뒤로 돌고 있는 공극소의 다리 밑으로 질주하며 달려온 화룡편이 혈랑검에 부딪치며 주인 손으로 되돌아갔고 간격을 좁힌 무혼이 착지하고 있는 공극소의 가슴을 향해 검을 질러가다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파파파파팟.
카캉!
무혼을 노리던 화룡편이 이제 아무도 없는 바닥에 다섯 개의 구멍을 만들었을 때 화룡마편은 자신의 등으로 질주하는 혈랑검을 느끼고 자세를 낮추며 몸을 돌려 화룡편의 손잡이 남는 부분으로 막는다.
‘화룡조, 검으로 막기에는 늦었다!’
무혼은 즉시 검을 거두어들이며 몸을 날려 공극소를 뛰어 넘어갔고 아래에서 올라온 공극소의 왼손이 구사하는 화룡조가 무혼의 배가 있던 허공을 헤집고 지나갔다.
‘이자는 누구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듯한데 나의 공격을 다 파악하고 있다.’
그의 왼손이 공격을 실패한 것을 느낀 공극소가 화룡편을 끌어당겨 무혼에게 쏘아 보내며 뒤로 걸음을 물리자 무혼도 화룡편의 머리를 튕겨내고 한걸음 물러섰다.
후우.
무혼과 공극소는 서로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며 숨을 가다듬었고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다.
무술대회를 출전해서 처음으로 비무다운 비무가 되자 즐거워지는 두 사람이었다.
깃발이 올라간 후 순식간에 벌어진 두 사람의 격전에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바라보며 웅성거리고 있다.
서로에 대한 탐색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강맹했고 본격적인 비무라고 하기엔 멈춰 선 둘의 모습이 너무 고요했기 때문이다.
“화룡마편과 비무하고 있는 자가 누구지?”
“청천 소속인 듯한데 처음 보는 인물인걸?”
공극소도 무혼도 수십 초를 나누는 격렬한 비무없이 본선에 왔기에 이번에 보인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다만 화룡마편 공극소는 그가 비무대에 오를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5초를 버티는 상대가 없었기에 그의 이름 높은 화룡편이 활약을 제대로 펼쳐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무혼의 비무에는 관심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무혼 역시 5초를 버티는 상대가 없었음에도 짧은 비무 시간으로 인해 그를 유심히 본 사람이 없었다.
“청천의 공야무혼? 예선 때는 저 사람을 본 기억이 없는데?”
“자네도 그런가? 나도 그런데?”
무혼은 앞의 상대를 다시 살펴보았다. 역시 마교가 낳은 천재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 대회에 출전할 때만 해도 두 천재와 겨루게 되었다는 생각에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실력을 끌어낼 실력자가 없어 실망했었다. 무혼은 진실된 화룡마편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드디어 화룡마편과 겨루게 되었고 이제 몇 초식을 나누며 겪어보자 그의 실력이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무혼의 온몸이 즐거움으로 떨려온다.
‘저 사람이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더 강한 자들이 모인 뇌천비룡대는 어느 정도의 실력자들이 모였을까?’
교주 직속의 마교 최강 무력부대를 머리에 떠올린 무혼은 빨리 생각을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