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9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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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95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4권 - 20화
“이거 우리 죽으러 가는 거 아냐?”
한 용병이 잔뜩 불만스런 얼굴로 말하자 그의 곁에서 걷던 동료 용병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아니, 우리가 뭐 대단하다고 이따위 작전을 우리한테 내린 거야?”
앞장서서 걷던 또 다른 용병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애초부터 남의 전쟁에 낀 것이 잘못이지 뭐.”
“빌어먹을! 언제고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시끄럽다! 용병이 계약을 했으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어떤 일이든 해야지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아!”
대장의 외침에 대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그 위험천만했던 프레타 성에서 겨우 탈출했다 싶었더니 또 다시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저 자신이 왜 용병이 되었을까? 하는 회의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 반면, 용병들과 함께 걷는 프레타 성의 병사들은 조금의 불만도 없는 얼굴로 묵묵히 걸어 나갔다. 어차피 생사를 함께 하던 동료들의 목숨을 담보로 지금까지 살았으니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 모습이 용병들을 더욱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지들만 의리 있는 척하는군! 씨팔.”
한 용병이 거칠게 욕설을 뱉어냈다.
용병들의 불만 소리를 들으며 오브라이언은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용병단이 여타의 용병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용맹하고, 단결력 있으며, 무엇보다도 어떠한 일이든 계약을 했다면 신용을 지킬 줄 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프레타 성의 일을 겪으면서 오브라이언이 알게 된 사실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자신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다른 어떤 용병단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사실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으로 용병단을 만들었다는 것이 후회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단장님.”
아일린의 부름에 오브라이언은 왜 부르냐는 듯 그녀를 돌아봤다.
벌써 20년 가까이 함께 일을 해온 그녀였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녀의 미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숙미까지 더해 더욱 아름다웠다.
“상황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고 하니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기 때문인지 아일린은 오브라이언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 변하면 굳이 곁에 둘 이유가 없지.”
“…….”
오브라이언의 마음은 떠났다.
아일린은 더 이상 오브라이언 용병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성격상 이번 계약 건이 끝나면 오브라이언 용병단을 해체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 용병 일을 해나갈 것이다.
“이루고 싶었던 꿈인데…… 이렇게 쉽게 버릴 수 있어?”
아일린의 말투가 투정처럼 변했다. 핏빛 마녀라 불리는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지만 이는 오브라이언과 몇몇 측근들만 아는 아일린의 진면목이기도 했다.
“버리는 것이 아니지. 그리고 억지로 꿈을 이룬다면 그 꿈은 언제고 금방 깨져버리고 말아. 나는 억지로 꿈을 이루고 싶지도, 그렇게 이뤄진 꿈이 깨어지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아. 그럴 바엔…… 영원히 꿈으로 내 환상으로 남는 것이 나아.”
“당신의 결정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바꿀 수 없겠지.”
아일린은 토라진 사람처럼 말을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는 여전히 불만을 터트리며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는 용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 역시도 그들에게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들의 불만 정도는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당신은 너무 강직해.’
20여 년을 봐왔지만 오브라이언은 변함이 없었다.
처음 자신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도, 용병단을 만들었을 때도, 용병단이 대륙에 이름을 떨치며 10대 용병단의 반열에 올랐을 때도.
오브라이언은 항상 한결같이 무덤덤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일린의 말에 오브라이언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 말에 아일린은 자신의 심장이 도려내지는 것만 같았다.
“너도 이젠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오브라이언의 말에 아일린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멍청이!”
고개를 홱! 돌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아일린과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브라이언.
그도 알고 있다. 당당하게 자신에게 청혼을 했던 때부터가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아일린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이후, 아일린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수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거절하며 지금까지 혼자 지내는 이유도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은 그녀를 받아줄 수가 없었다.
‘나는 전장에서 죽을 운명. 너까지 그렇게 할 순 없어.’
사랑.
표현하는 사랑.
감추는 사랑.
어떠한 사랑이든, 오브라이언과 아일린에게 사랑은…… 고독이자, 아픔일 뿐이었다.
“이건 정말로 무모한 작전입니다!!”
가일은 당장이라도 작전을 중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총사령관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작전은 그만두고 아예 이번 기회에 왕국군과도 이별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일반 병사들은 다 죽습니다!! 당장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한다니까요-!!”
“명령이야.”
가스파의 말에 가일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명령은 무슨 명령입니까! 지 부하들이라면 이따위 말도 안 되는 명령 내렸겠습니까? 그래도 알레이스 후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작자도 어쩔 수 없군요! 속까지 썩은 귀족입니다! 우리가 무슨 기사단도 아닌데 무슨 수로 후방을 공격하라는 겁니까!!”
가일의 외침에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프레타 병만으로 몬스터의 후방을 공격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영주님.”
커닝의 부름에 위드는 그를 바라봤다.
“돌아갈까요?”
“영주님.”
“돌아갈까요?”
“…….”
돌아가자고 하면 위드는 그대로 몸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명령불복종으로 인해서 왕국군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게 될까?
영웅시 되던 위드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무리한 작전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만 살겠다고 명령불복종으로 왕국군에서 제외되면 비난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세상인심이다.
백 번을 잘해 칭찬받더라도 한 번을 잘못하면 욕하는 것이 세상이고, 사람들은 백 번 잘 한 것 보다 한 번 못한 것을 기억하는 법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위드는 이번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몇 번이나 항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개 준남작이라는 작위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이유로 명령은 내려졌을 것이고, 위드는 분을 삭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터.
위드가 멈추자 자연스럽게 진군하던 병력 모두가 멈추었다.
“이번 명령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명령입니다. 원한다면 이대로 발길을 돌리겠습니다.”
위드의 말은 500명의 프레타 병에게 똑똑히 전해졌다.
몇몇 용병은 당장이라도 그러자고, 괜한 개죽음 당하기 싫으니 발걸음을 돌리자고 외치고 싶었다.
만약, 조용히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대장들의 말만 아니었다면.
“결정권은 모두에게 주도록 하겠습니다. 돌아가자면 돌아갈 것이고, 명령을 이행하자면 그럴 것입니다. 또,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말리지 않겠습니다. 무모한 작전이니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30분의 시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위드는 피에나와 함께 병사들과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로 걸어가 걸터앉았다.
“돌아가야 한다니까요!”
가일의 말에 루카가 시끄럽다고, 닥치라고 소리를 질렀다.
“영주님의 마음은 어떤지 생각도 안하냐!”
루카의 고함소리가 묘하게 잔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카일러 준남작님.”
피에나와 함께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위드에게로 히덴 가르시아와 에리카가 다가왔다.
언제 부터인지 에리카는 히덴 가르시아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가르시아 님.”
“참으로 곤란한 상황입니다.”
히덴 가르시아는 걱정스런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위드는 그저 희미하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떻게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지! 이럴 때는 정말이지 같은 귀족이라는 사실이 화가 나!”
에리카 역시도 화난 얼굴로 분통을 터트렸다.
위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령에 대한 불만은 이미 알레이스 후작의 막사에서 터트릴 만큼 터트렸다. 그리고 이런 작전을 생각하고, 알레이스 후작에게 강요하다시피 요청한 베케일 백작을 죽이고 싶은 심정까지 느낀 위드였다.
그래도 내려진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솔직히 많은 병사들과 용병들에게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그렇기에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이다.
“되도록이면 많은 병사들이 발걸음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위드의 말에 히덴 가르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랜트 아머를 소유한 기사들이나, 나름대로 자기 한 몸 지킬 줄 아는 이들이라면 모를까. 일반 병사들은 여기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가봐야 죽음뿐이다. 아무리 앞과 양옆에서 왕국군이 공격을 펼친다고 해봐야 뒤를 공격할 프레타 병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전투가 끝날 때까지 버텨야 하는 셈이다.
“가르시아 님과 에리카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위드의 말에 에리카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카일러 준남작님의 배려는 고맙지만 명색이 대륙에 여섯 명밖에 없다는 상급마법사입니다. 짐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히덴 가르시아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 일은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 니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고개를 홱! 돌리는 에리카의 모습에 위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가 예전 네드벨 아카데미에 있을 때처럼 밝아진 것은 좋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굳이 떠나지 않으려는 것은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오브라이언의 곁에서 몇몇 용병들이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브라이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그에게 항의하는 용병들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다.
“후우…….”
자신의 처지에 한숨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30분 후.
“스스로 최선의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하게 말을 하고 위드는 앞으로 걸었다. 그의 곁엔 언제나처럼 피에나가 있었고, 그 뒤로 루카, 가스파, 커닝, 가일을 비롯해서 히덴 가르시아와 그린 형제, 에리카와 월터 등이 따랐다.
그리고 오브라이언과 아일린을 비롯한 용병들이 위드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프레타 성 병사들은 여전히 묵묵히 걸음을 내딛었고, 용병들은 놀랍게도 30%정도만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죽을 자리로 왜 굳이 가겠다는 거야?”
“씨팔!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는 줄 알아!!”
“이러면 꼭 우리만 나쁜 놈들 같잖아. 젠장!”
몇몇 용병들은 사지를 향해서 걸어가는 동료들을 향해서 변명처럼 외쳤다. 그리고 나머지 용병들은 고개를 돌려 걸어가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회피했다.
걸어가는 오브라이언의 얼굴엔 희미한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아일린의 물음에 오브라이언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내 꼴이 우스워서.”
그 말을 듣는 아일린과 주변 용병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얼굴만 일그러트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