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93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93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4권 - 18화
“원하신다면 언제고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위드의 말에 히덴 가르시아가 미안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거 고약한 성격이 또 카일러 준남작님을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입니다.”
“아닙니다. 가르시아 님께서 부탁을 하지 않으셔도 마땅히 제가 보여드려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야 밝히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히덴 가르시아를 대하는 위드의 모습에 그린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어쩌면 이런 점으로 인해서 자신들 역시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위드의 트랜트 아머로 인한 놀람이 가라앉고 다시 술자리가 소란스러워졌다.
“임마! 니가 뭘 했다고 큰 소리치고 그러는 거야!!”
루카의 외침에 가일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곧바로 대꾸했다.
“내 검에 죽어 나자빠진 몬스터의 수만 수백입니다! 내가 누구처럼 트랜트 아머까지 착용했다면 아마 내 검 아래 쓰러진 몬스터의 수가 족히 수천은 되었을 겁니다!”
그 소리에 루카가 눈을 부라렸다.
“뭐? 그러니까 니 말은 내가 트랜트 아머를 착용하고도 빌빌 거렸다는 거냐?”
루카의 말에 가일은 피식 웃으며 맞받아쳤다.
“내가 언제 그랬습니까? 뭐,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면 다음부터는 좀 더 열심히 싸우면 되는 것 아닙니까? 트랜트 아머를 착용했으면 최소한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많은 활약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젊은 영주님처럼 히드라의 목이라도 베서 크게 한 건을 보여주던가 해야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마지막에 가서는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가일의 모습에 루카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막 발작을 하려고 하는 순간.
“카일러 준남작.”
위드의 막사로 젊은 귀족 지휘관 한 명이 들어섰다.
“예.”
젊은 귀족은 위드의 막사에 모인 인물들이 서로 격식 없이 술과 음식을 먹고 떠드는 모습에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귀족이라는 자가 이리도 격이 없어서야…….”
중얼거림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못 들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알레이스 후작님께서 모이라고 하셨으니 지금 당장 막사로 오도록 하게!”
위드의 물음에 젊은 귀족은 더 이상 있기도 싫다는 듯 간단하게 말을 뱉어내고는 몸을 휙! 돌려 막사를 나가버렸다.
젊은 귀족이 나간 후, 가일이 재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기랄! 귀족이든, 평민이든 함께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여 승리했으면 같이 술을 마시며 즐길 수도 있는 거지! 지 혼자만 잘났나? 내 참 더러워서! 하여간, 귀족이란 작자들은 자기들만 잘나고 고귀한 줄 안다니까! 쳇!”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지만 술도 조금 먹은 상태였고, 젊은 귀족의 행동이 워낙에 눈살 찌푸려졌기에 가일은 자신도 모르게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가일의 말이 심하다고 느꼈는지 그린 형제가 말을 하려다가 히덴 가르시아가 막고, 루카까지 거들자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게 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틀리지는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네가 오랜만에 맞는 소리 한 번 하는구나.”
“왜 이럽니까. 프라디아 대륙 최고의 자유기사 가일! 언제나 정의로운 일에 앞장서며 올바른 일에만 주장을 펼칩니다!”
가일의 외침에 루카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주먹을 움켜쥐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곧바로 언제나처럼 가일과 루카의 투닥거림이 시작되었다.
“알레이스 후작님께 갖다 오겠습니다.”
위드는 가스파와 히덴 가르시아 등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피에나와 함께 알레이스 후작의 막사로 향했다.
“카일러 준남작도 저쪽으로 앉도록 하게.”
“예.”
위드는 알레이스 후작이 가리킨 말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실력보다는 작위, 그리고 이끌고 있는 병력의 숫자에 의해서 자리가 구성되어 있는 듯싶었다.
알레이스 후작의 막사 안엔 술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었다. 아직 빈자리가 눈에 보였지만 곧이어 채워질 것이고, 대부분 왕국군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지휘관급의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거 오랜만이네!”
반가워하는 듯하지만 말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날카로운 가시!
“오랜만입니다. 베케일 백작님.”
위드의 인사에 그 베케일 백작 곁에 있던 야쿠 백작이 코웃음을 쳤다.
“이거 대단하신 카일러 준남작께서 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군.”
야쿠 백작의 말에 위드는 살짝 얼굴을 굳히며 그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야쿠 백작님도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나야, 누가 영주전을 벌이자고 벼르고 있는데 그때까지는 잘 지내야지. 내가 몸이라도 아프면 영주전은 누가 대신 하겠나?”
야쿠 백작의 말에 페바난 남작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누가 야쿠 백작님께 영주전을 신청한단 말입니까?”
“아주 대단한 자가 있네. 가끔 그자를 생각하면 잠을 설칠 정도로 무서운 자지.”
야쿠 백작은 말을 하면서 위드에게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의 행동과 말에 둘 사이의 일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이들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 둘 빈자리가 채워졌고, 알레이스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앞에 채워진 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 왕국군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라네시 영지를 반드시 되찾을 거네! 몬스터가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결코 우리 왕국군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을 거네! 모두 잔을 들게! 페르만에 가호를!!”
모든 이들이 잔을 들고 일어나 높이 들었다.
“페르만에 가호를!!”
알레이스 후작이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키자 나머지 인원도 일제히 술을 마셨다.
“여기 모인 이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 똑똑히 느꼈을 것이네. 이렇게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내일부터는 결코 이런 자리가 없을 것이네. 아니, 술 자체를 금지시키도록 하겠네! 만약, 술을 입에 대는 자가 있다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 내리도록 하겠네!”
금주령 선포!
전쟁에 있어서 필요하지만, 때론 필요악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는 금주령이다.
알레이스 후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지휘관들은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지만 그와 처음으로 전쟁에 나서는 지휘관들은 알게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보였다.
하지만, 그들도 알레이스 후작의 위세에 아무런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레이스 후작은 그런 것을 알기에 더욱더 단호하게 말했다.
“전쟁에 있어서 군의 기강은 절대적으로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와도 같은 것!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후로 술을 조금이라도 입에 대는 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어김없이 즉결처분을 내릴 것이니 그리들 알고 있도록! 우리가 술을 마실 수 있을 때는 라네시 영지를 모두 되찾은 그날 저녁이 될 것이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하는 이들과 어쩔 수 없이 대답하는 이들로 나뉘어졌지만 알레이스 후작은 더 이상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총사령관인 자신이 내린 명령이다. 따르지 않으면 군법에 따라서 처리하면 그걸로 끝이다.
전쟁 중 한 군대를 이끄는 총사령관은 하늘과도 같은 존재. 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여기 모인 그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친분이 있는 자들끼리 어울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위드는 피에나와 함께 어색한 자리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피에나, 몸이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니까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돼, 알았지?”
그러나 이미 피에나의 양 볼은 탐스런 사과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응!”
귀엽게 웃으며, 대답하는 피에나의 모습은 그녀의 모습을 은근히 훔쳐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만약, 위드가 히드라의 목을 잘라내는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피에나가 타이먼 족만 아니었다면, 몇몇 귀족들은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어떻게든 수작을 부려봤을 것이다.
“위드, 이거.”
피에나가 잘 구워진 고기 조각을 위드의 입가로 가져다주었다. 보는 눈이 있어 마다할 만도 하지만 위드는 피에나에게 실망감을 주기 싫었고, 무엇보다도 이제 곁에 남은 이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기에 주저하지 않고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맛있네.”
위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 헤헤…….”
행복하게 웃는 피에나의 모습을 보니 위드는 자신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도 위드와 피에나는 보는 눈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서로에게 음식을 주고, 술잔을 부딪치며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사랑을 속삭였다.
“이거 전쟁을 나온 건지, 소풍을 나온 건지 모르겠군 그래.”
베케일 백작이 야쿠 백작과 함께 위드와 피에나 곁으로 다가오며 빈정거렸다.
“상황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위드의 반문에 베케일 백작보다도 야쿠 백작이 눈을 치켜뜨며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카일러 준남작! 그대는 위아래도 없는 건가!”
야쿠 백작의 호통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위드가 몸을 일으키자 피에나 역시도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서 자신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한 두 백작을 죽일 듯 노려봤다.
타이먼 족의 살기에 몇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특히, 정면으로 그 살기를 받아내야 하는 베케일 백작과 야쿠 백작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허! 지금 준남작 주제에 백작을 핍박하려고 하는 건가!!”
위드의 편보다는 자신들의 편이 훨씬 많다는 것과 누가 봐도 작위에서 이미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베케일 백작은 위드와 피에나에게 저번처럼 당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놈을 꺾어 놔야 한다!’
오히려, 기회라고 여겨지니 자신감이 더욱더 솟아났다.
“지난번에는 참고 넘어갔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고 넘어갈 수가 없군! 카일러 준남작은 도대체 작위가 왜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대에겐 알량한 검술 실력이 작위보다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위드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자신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이들의 모습에 상황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야 하나를 고민하는 사이 고맙게도 알레이스 후작이 끼어들었다.
“즐거운 자리에서 이게 무슨 짓들인가! 그만두도록 하게! 이런 식으로 지휘관들이 반목한다면 어찌 전투에서 승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알레이스 후작의 말에 베케일 백작은 억울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싸늘한 알레이스 후작의 얼굴은 더 이상의 소란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경고하고 있었다.
“알…… 겠습니다.”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베케일 백작과 야쿠 백작은 위드를 죽일 듯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사비에르 백작 무리로 스며들었다.
“총사령관님,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드의 말에 알레이스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붙잡아 두기에는 분위기가 결코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위드를 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고맙습니다.”
위드는 피에나와 함께 막사를 나왔다.
제법 따뜻해진 밤공기가 둘을 감싸 안았다.
“나쁜 인간들.”
피에나가 싸늘하게 중얼거리자 위드가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말없이 그저 가만히 안아주는 위드의 품이 피에나의 기분을 조금씩 달래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