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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카일러 79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1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79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4권 - 4화

 

 

Chapter  2 탈출. 그리고……

 

 

“빨리! 빨리!”

“움직여요! 쉬지 말고 움직여요!!”

독촉하는 병사들의 얼굴엔 다급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의 음성에 이끌려 발걸음을 내딛는 영지민들의 얼굴에도 공포심과 걱정이 깔려 있었다.

후퇴를 결정한 위드의 뜻에 따라서 탈출로로 가장 먼저 밀어 넣은 이들은 영지민들이었다. 마로크를 비롯한 프레타 기사단원들이 영주인 위드부터 탈출을 해야 한다고 성화를 부렸지만 위드는 조금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험한 프레타 성에서 함께 생활하며 살아온 영지민들은 위드에게 있어선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힘이 없는 자들을 안전하게 먼저 보내고 자신이 뒤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위드의 생각이었다.

“먹을 음식과 최소한의 옷을 제외하곤 모두 버려요!”

중년 여인은 짊어지고 가기에 벅찰 정도로 커다란 보따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풀어보지 않아도 별의별 살림살이들이 꾸역꾸역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알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겁니다.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죽고 나면 다 소용없어요. 그리고 짐으로 인해서 늦어지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 만큼 늦어지잖아요. 다 살아야죠.”

병사의 말에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짐 속에서 먹을 식량과 최소한의 옷가지만을 제외하고 모두를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이곳저곳에서도 자신의 짐을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죄다 버리기 시작했다.

“하아…….”

병사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재산들을 버리는 영지민들의 모습에 깊은 한 숨만을 흘렸다.

“차라리 인간들의 전쟁이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을 텐데…….”

인간들의 침략 전쟁이라면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진 않을 것이다.

상대는 몬스터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산체로 잡아먹거나, 죽이는 몬스터다. 도망가는 것만이 살길이다.

“어서어서 움직여요!”

병사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쾅!

“아가씨!”

문을 박차고 들어선 월터의 얼굴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에리카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흔들렸다.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듯싶었는데 프레타 성이 몬스터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지 3일이나 흘러가고 있었기에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일러 준남작이 후퇴명령을 내렸습니다!”

“아…….”

또 다시 몬스터들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기에 에리카는 억지로 힘을 냈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죽었을 아버지와 프레타 성까지 오며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병사들과 기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아가씨.”

“우선 위드 아니, 카일러 준남작을 만나러 가죠.”

“알겠습니다.”

에리카와 월터가 위드를 만나기 위해서 방을 나서려고 하는 순간.

“피에나 선생님.”

“이제 선생님 아니야.”

피에나가 두 사람의 앞으로 다가왔다.

차갑게 느껴지는 눈빛과 몸에서 풍기는 강인한 기세, 옷에 잔뜩 물들어 있는 몬스터의 핏자국과 몸에 물들어 버린 피 냄새.

월터는 피에나의 기세에 짓눌렸지만 에리카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피에나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위드가 지켜주래.”

 

***

 

“어떻게든 저희가 시간을 끌도록 하겠습니다.”

위드는 자신의 앞에 선 세 사람을 바라보며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위드를 대신해서 마로크가 입을 열었다.

“부탁하겠네.”

“걱정 마십시오!”

피로에 찌든 모습들이었지만 각각 궁병대, 투척병대, 기병대를 책임지고 있는 각 병과의 대장들은 비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들은…… 방패다.

위드와 영지민들이 최대한 안전하게 탈출을 할 수 있도록 프레타 성에 남아서 몬스터들을 막아낼 방패다. 

하지만, 결국은 뚫릴 방패, 처참하게 무너질 방패, 몬스터에 의해서 짓이겨질 방패.

“미안합니다.”

어렵게 꺼낸 위드의 말에 대장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영주님과 같은 분을 모실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부디, 저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후로도 영지민들과 병사들을 훌륭하게 보살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들에게 영주님은 프라디아 대륙 최고의 영주님이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들 역시도 죽음이 두려울 것이다. 프레타 성을 탈출하는 이들을 따라서 함께 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남아야 한다. 아니, 남고자 한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

위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대장들도 이슬 맺힌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피로에 쩌 들고, 몬스터의 핏물에 더러워진 그들의 얼굴에 태양처럼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지키겠습니다. 망령이 되더라도 영주님께서 당당하게 돌아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프레타 성을 지키겠습니다. 꼭! 돌아오십시오. 반드시 돌아오십시오!”

대장들의 외침에 위드는 영주의 체면도 잊고 아이처럼 소리를 내서 엉엉 울었다. 

영주라 하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 

영주라는 커다란 짊을 지고 가기엔, 가까운 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엔 너무 어리다.

“영주님.”

마로크는 위드를 진정시켰고, 위드는 울음을 그쳤다.

“꼭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 기다려주세요. 다시는…… 다시는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강해져서 누구보다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영주님이라면 믿습니다!”

“부탁하네. 그리고 미안하네.”

마로크의 말에 대장들은 웃기만 했다.

더 이상은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마로크는 억지로 위드를 이끌었다. 

등을 돌리고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가는 위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석상처럼 서 있던 세 명의 대장들은 히쭉 웃었다.

“괜히 나섰나봐?”

궁병대 대장이 후회스럽다는 듯 말하자 투척병대 대장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기병대 대장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도 난 날 믿고 남겠다고 따라준 병사들이 고마워.”

“사실, 나는 궁병대 녀석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남는다는 생각 따위는 해보지도 못했을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지 뭐.”

그들은 잠시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때마침 붉은 노일이 서서히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도 붉은 노을빛에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인데 화끈하게 싸우자고!”

“어차피 죽기로 작정했는데 뭐가 걱정이야!”

“쩝! 그래도 명색이 기병대인데 이렇게 성벽에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니. 억울해서 눈을 감을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네.”

“하하하하핫!!”

“하하하하!!”

그들은 커다랗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

 

“…….”

지옥을 향해서 걸어가는 프레타 성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마치, 인형과도 같은 표정에 초점을 잃은 듯한 눈빛은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방금 위드 카일러 준남작을 비롯해서 프레타 성의 주축 전력들이 레켄 성을 향해서 탈출을 시작했습니다.”

남자의 곁으로 다가온 사내의 말.

“이제야 탈출인가?”

무미건조한 음성은 사내의 몸을 흠칫거리게 만들었다.

“오래 버텼군. 위드 카일러. 고작 스물 살도 되지 못한 어린 영주 치고는 꽤 대단했어. 칭찬을 해줄 만해.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사내는 곧바로 대답했다.

남자는 사내의 대답에 만족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회상에 잠겼다.

바질리스크 앞에서 당당하게 검을 휘두르던 모습과 히드라를 향해서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머리까지 하나 잘라내는 실력을 보인 위드 카일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영상이 되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남은 병력은?”

남자의 물음에 사내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궁병 180명, 투척병 175명, 기병 118명과 모든 병과의 예비병 500명이 성에 남아 최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병과의 병사들과 훈련에 집중하고 있어야 할 예비명이라……. 누가 봐도 방패막이로군.”

“그렇습니다.”

“인간이라면 모를까,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필요도 없는 병사들을 성에 남기다니…… 생각보다 냉정한 영주로군.”

남자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조금 다릅니다. 프레타 성에 남은 병사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하여 일부러 남았다고 합니다.”

남자가 피식 웃었다.

“눈물겹군. 그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성의 함락은 하루 정도는 더 늦추도록.”

“알겠습니다.”

남자는 잠시 붉은 노을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빙긋 웃었다.

“명색이 탈출인데 긴장감은 있어야겠지. 위드 카일러 준남작에게 선물을 보내주도록.”

“규모는 어느 정도면 되겠습니까?”

사내의 물음에 남자가 잠시 생각하다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알아서 하도록.”

가장 어정쩡한 명령이었지만 사내는 조금도 불만 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내가 서둘러 자리를 뜨자 남자는 잠시 프레타 성을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다음은 레켄 성이군.”

남자의 음성이 바람을 타고 흐르다 흩어졌다.

 

***

 

“빌어먹을! 빌어먹을!!”

퍽! 퍼억! 퍼억!

“루카!!”

가스파의 외침에 신경질적으로 모닝스타를 휘두르며 주변 나무를 파괴하던 루카는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우리가 이게 무슨 꼴이냐고! 이게…… 우리가 15년을 지켜온 결과냔 말이야!!”

“멍청아! 그러면! 프레타 성에 남아서 몬스터의 손에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정말로 그러고 싶다는 거야?”

“차라리 그게 낫겠다! 차라리 그게…….”

쫘악!

루카의 고개를 옆으로 돌아갔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너 하나 프레타 성에 남아서 몬스터와 싸우다 죽는다고 해서 기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화가 나지? 프레타 성에 희생양으로 남겨둔 병사들 때문에 화가 나지? 이렇게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나지? 15년을 지킨 프레타 성을 이렇게 빼앗겨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나지? 그런데, 넌 화가 나지? 영주님은 어떨 것 같나? 영주님은…… 그 누구보다 비참할 것이다. 영주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비참할 것이다. 너와 나는, 우리는 화가 날지 모르지만 영주님은…… 영주님은 그 누구보다 비참한 심정일 거다.”

“…….”

시크 모리슨의 말에 루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위드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작았다. 여렸다.

로크를 홀로 잡았을 적만 하더라도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하게 보였던 영주의 등이 지금은 너무나도 작고, 여리게만 보였다.

루카는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시크 모리슨은 나머지 프레타 기사단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15년간 지켰던 것은 프레타 성이 아니다. 우리가 15년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영주님이다. 허튼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영주님을 지켜야 한다. 프레타 성은 언제고 다시 되찾을 수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영주님의 힘이 되어야 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악을 쓰듯 외치는 프레타 기사단원들의 모습에 앞서서 걷던 이들이 무슨 소란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열의에 불타오르는 프레타 기사단원들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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