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60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60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7권 - 10화
“문제는 그라다 왕국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라이드 백작?”
50대 후반의 라이드 백작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연금술사의 탑에서 자신들이 탈취한 땅 위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리란 사실을 말입니다.”
“으음…….”
“그야…….”
못마땅한 소리였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모두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다.
현재 연합군이 승승장구하고 있다지만 이 상태라면 근시일 내에 연금술사의 탑에 빼앗긴 땅을 모두 되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연합군과 각 나라의 귀족들이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전쟁이 끝난 후, 그라다 왕국의 땅을 어느 누가 차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냉정하고 잔인한 사실이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라다 왕국의 멸망은 그리 큰 감흥거리가 될 수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처럼 나라 역시 새롭게 세워졌다가 멸망하길 반복한다는 것. 이는 역사가 분명히 증명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라이드 백작이 천천히 대답했다.
“앞으로는 더욱더 연금술사의 탑에 망명 신청을 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들이 귀족이건, 평민이건, 이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니까…… 다른 나라의 귀족들이 연금술사의 탑에 충성을 맹세하기라도 한다…… 이 말이오?”
한 지휘관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라이드 백작이 확신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법 젊은 귀족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누가 미쳤다고 몬스터로 이뤄진 나라에 망명을 신청한단 말입니까?”
“라이드 백작, 내 생각도 그건 아닐 듯싶네.”
많은 이들이 그럴 리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라이드 백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모습 속에는 굳건한 자신감이 나타나 있었다.
“그렇겠군.”
침묵을 지키고 있던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인지, 조금도 동조할 수 없는 일에 동조를 나타내기 때문인지 부정하던 이들이 한꺼번에 입을 다물었다.
“분명 가능성 있는 일이군.”
“……!”
“……!”
라이드 백작과 같은 의견을 냈을 뿐인데 그 효과는 훨씬 대단했다. 마치, 이미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는 사람들처럼 부정하던 모든 지휘관들이 놀란 얼굴로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생의 기회라 할 수 있겠지.”
“총사령관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기회라 해도 그렇지 무엇 때문에 몬스터가 백성인 나라에 망명을 한단 말입니까?”
“연금술사의 탑에서 나라를 세운다면 분명 연금술사들의 위치가 가장 높을 것은 당연한 일! 하찮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살아간다니! 평민들이라면 몰라도 명예로운 귀족으로써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그런 자들은 귀족으로써의 자격 자체가 없는 이들입니다!”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은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던지듯 물었다.
“연금술사의 탑에서 세울 나라의 백성이 몬스터라고 누가 그러던가?”
“그야…….”
“작위도, 재산도, 영지도 없어 같은 귀족들은 물론이고 평민들에게까지 이렇다 할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귀족에게 명예나 긍지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
프라디아 대륙엔 엄청난 수의 귀족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모두가 작위를 가졌거나, 많은 재산과 영지를 가진 건 아니다. 오히려, 작위도, 재산도, 영지도 없는 귀족들이 더욱 많은 형편이다.
말 그대로 껍데기만 귀족인 이들이 넘쳤다.
지금 이 막사에 모인 지휘관들을 제외한 각 부대의 대장, 기사들을 따져보면 귀족 출신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은 이렇다 할 재산도, 작위도, 영지도 없다.
그런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 전쟁에 참여를 했겠는가?
대륙의 평화를 위해?
그런 이들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이 전쟁에 참여한 것은 어디까지나 공을 세워 허울뿐인 귀족을 탈피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귀족이라는 껍데기만 남은 이들이 다시 명예로운 귀족이 되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흔한 말로 몰락한 귀족가는 대단한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그 상태로 대물림이 될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연금술사의 탑에서 세운 나라는 기회의 땅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연금술사의 탑에서 나라를 세운다면 그건 인간의 나라다. 몬스터는 그들에게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부릴 수 있는 가축정도로밖에 변하지 않을 것이네. 귀족의 수가 타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곳으로 망명을 할 경우 작위를 받고, 영지를 받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내 생각엔 적어도 현재의 처지를 벗어나는 것보다는 수십 배 이상 높을 것 같군.”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의 말에 라이드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미처 이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뿐이었다.
“하, 하지만 그 틀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나라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또, 연금술사의 탑에서 나라를 세웠다 한들 과연 대륙 어느 곳에서 그 나라를 인정한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결국은 스스로 자멸하던, 아니면 우리 연합군의 손에 멸망을 당할 뿐입니다!”
여전히 회의적인 몇몇의 모습에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은 속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반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소를 띄고 있는 라이드 백작과 같은 이들에 대해서는 제법이라는 듯 관심을 나타냈다.
“나라의 틀이 잡히지 않았다면 잡으면 그뿐. 설마, 귀족들만이 나라의 틀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이곳에 계신 것입니까?”
라이드 백작의 조소어린 말투에 몇몇 이들이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이 아니었다면 결코 가만히 참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일일이 확인하며 라이드 백작이 말했다.
“나라라는 것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와 나라 간의 인정이 필요한 이유는 서로 교역을 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서로 교류하며, 조금이라도 더 풍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연금술사의 탑에서 세우게 될 나라가 결코 타국에 비해 약하거나, 여러모로 부족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연금술사들은 마법사들만큼이나 뛰어난 자들입니다. 대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들이 바로 연금술사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작정하고 나라를 세운 후, 발전시킨다면 과연 어느 나라가 그들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라이드 백작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연금술사들이 대륙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라이드 백작의 말대로 정말 그들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킨다면 과연 어떨까?
“그 전에 멸망시켜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지 한 중년의 귀족 남성이 버럭 외쳤다. 연금술사들에게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무서운 무기였다. 나라를 세우고 발전을 시켜나가면 흐르는 시간만큼 그들은 강력해질 것이다.
“그렇소!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멸망시키면 되는 것이오!”
“맞습니다! 제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대륙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버텨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라다 왕국을 점령한 그들입니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끊긴 지금 그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승리는 이쪽에 있습니다.”
라이드 백작도 그 부분에서는 인정했다. 연금술사의 탑이 점령한 땅들은 대부분 몬스터와 인간의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곳들이다. 물론, 모든 부분이 황폐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의 나라를 세우고 그것을 유지시키기엔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또,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게 되면 회복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언제고 식량과 물품들이 부족해 자멸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들을 돌아보면 연금술사의 탑에서 그 정도의 대비책은 마련해 놓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뿐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행시킨 연금술사의 탑이니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한 대책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라이드 백작이었다.
“그쯤이면 우리도 다 알아 들었네. 도대체 라이드 백작 자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이제는 됐다는 듯 아로니스 후작이 묻자, 라이드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저 앞으로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것만을 말씀드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라이드 백작의 말에 아로니스 후작을 비롯한 귀족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숨을 토해냈다. 실컷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말해놓고는 끝이라니. 최소한의 해결 방안이라도 내놓을 줄 알았던 그들로써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곧이어 귀족들은 서로의 생각을 말하며 해결책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떠오른 생각들 중 이렇다 할 만 한 것들은 거의 없었다.
위드는 한쪽에서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자신이 나서서 뭐라 할 이야기도 없었고, 그런다고 반겨줄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만으로도 걱정이 앞섰다.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
연금술사의 탑에서 자신들이 점령한 땅에 나라를 세운다면 프레타 영지를 되찾기란 정말로 어려울 것이다. 나라를 세우고, 세우지 않고의 차이는 컸다.
‘어떻게든 연금술사의 탑에서 나라를 세우기 이전에 프레타 영지를 되찾아야만 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위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제1군을 떠나야만 했다.
‘역시 말을 해야 해.’
위드는 결정을 내린 표정으로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을 바라봤다.
때 마침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도 위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위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얼굴이군.”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의 말에 쉴 새 없이 의견들을 교환하던 귀족들의 이목이 그와 위드에게로 쏠렸다. 위드는 그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입을 열었다.
“빠른 시일 내에 5군으로 가려고 합니다.”
“음!”
“버, 벌써 말이오?”
“수호 기사단은 어쩌고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인가?”
놀란 것은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이 아닌 주변의 귀족들이었다.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수호 기사단은 그라다 왕국 수도 점령시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도 일부가 아닌 기사단 전체에 해당하는 숫자라 했습니다. 그 말은 더 이상 제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과 같다 생각합니다.”
위드의 말대로 수호 기사단은 그라다 왕국 수도 최후의 날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끈질기게 버티던 그라다 왕국 수도 방위군이 무너져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수호 기사단의 활약 때문이었다.
아로니스 후작은 위드의 말에 반박하듯 대꾸했다.
“하지만!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이제 수호 기사단이 이곳으로 올 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졌다는 것이 되지도 않은가?”
라이드 백작도 동조했다.
“그러네. 카일러 준남작 자네가 떠나면 앞으로 나타날 수호 기사단을 누가 상대한단 말인가? 또, 자네는 어디까지나 수호 기사단을 상대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누구보다 더욱 이곳에 남아 그들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말 한 번 잘 했군!”
“하긴, 카일러 준남작이 떠나면 수호 기사단을 상대할 사람이 없어지니…….”
귀족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위드가 남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위드는 이미 떠날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