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188화
무료소설 위드 카일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188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8권 - 13화
제국력 1391년 11월 21일.
페르만 왕국 레켄 전선.
치가 떨릴 정도로 사나운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대지는 흉터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과 몬스터의 시체는 마구잡이로 뒤섞여 분류하기조차 꺼려지게 만들었고, 그 사이사이 차갑게 얼어붙은 땅위로 고여 있는 핏물들은 서서히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황폐한 전장터를 바람이 휘감았다. 1년 중 가장 추운 11월의 겨울바람이라 그런지 시체 사이사이를 뒤적거리고 다니는 병사들은 저마다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으으으…….”
“씨팔! 하필이면 이런 날씨에 걸릴게 뭐람!”
“떠들 시간이 어딨어! 그렇게 떠들 시간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라고!”
동료의 타박에 양팔로 몸을 감싸 안고 투덜거리던 이들이 머쓱해진 표정으로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시체 사이사이를 뒤적거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병기 수거. 요 근래 들어 전쟁이 치열해짐으로써 화살 하나조차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투가 끝나고 나면 매번 병사들이 차례로 병기를 수거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제국 전쟁 때문에 괜한 고생이라니까!”
“누가 아니래!”
“불 피워놓고 피로를 풀고 있을 놈들은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는 듯, 한 병사가 끝없이 늘어진 막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부러워 할 것 없잖아? 어차피 다음 전투가 끝나면 저기 있을 녀석들 중 일부가 우리처럼 이 짓을 해야 할 텐데.”
“하긴.”
생각해보면 전혀 부러워할 것 없는 일이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병사는 이내 다시 바쁘게 손을 놀렸다. 그러다 형체가 잔뜩 짓이겨진 몬스터에 깔려 죽은 병사의 손에 쥐어진 롱소드를 발견하곤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하필이면…….”
롱소드를 빼내려면 잔인하게 짓이겨진 몬스터의 시체를 치워야만 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그였다. 몬스터의 시체를 치우고 병사의 손에 꼭! 쥐어져 있는 롱소드를 빼낸 그는 문득, 죽은 병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미친놈의 세상…….”
이제 20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청년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죽어 있었다. 피어보지도 못한 청년의 삶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그의 시체보다도 그가 쥐고 있던 검을 수거해야만 하는 자신이, 이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휘이이이잉-.
차가운 겨울바람은 병사들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코노 왕국의 지원군은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것입니까?”
답답하다는 듯 한 지휘관이 총사령관인 니드먼 후작을 향해서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니드먼 후작도 할 수 없었다.
“확실한 소식이 없네.”
“벌써 11월입니다! 반년이 지나도록 지원군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코노 왕국만큼은 유일하게 전쟁이 없는 곳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지원군 따윈 없었던 것 아닙니까?”
페르만 왕국 출신의 지휘관들은 저마다 불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불만을 토로하는 그들의 음성은 거칠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니드먼 후작을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코노 왕국의 지원군에 대한 이야기는 4월에 나왔었다. 지금은 11월이다. 그 기간 동안 두 차례나 이뤄진 페르만 왕국 지원군과 다르게 코노 왕국의 지원군은 그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으며, 이렇다 할 말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 불만이 높아진 이유는 제국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영지 수복 전투가 더욱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의 수도 월등하게 많아졌음은 물론이고, 세 달 전부터는 심심찮게 인간의 군대, 즉 바이텐 제국군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현 연합군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제국 전쟁이 벌어지기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던 몬스터들의 기습과 게릴라전이었다.
처음에는 오크나 고블린처럼 소형 몬스터들만이 기습을 펼치거나, 어딘가 숨어 있다 나타나 연합군을 당황시켰지만 그들만으로는 큰 피해를 줄 순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습과 게릴라전을 펼치는 몬스터들의 종류가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30마리의 오우거와 60마리의 트롤이 기습을 했을 때는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만 했었다. 거기에 비행 몬스터들까지도 기습과 게릴라전을 펼쳐오니 이제는 이 전쟁이 과연 지능이 없는 몬스터들과의 전쟁인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전투를 할수록 그 피해가 커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더 이상은 페르만 왕국에서도 병력을 지원해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믿을 곳이라고는 코노 왕국뿐이었다.
그런 코노 왕국의 지원군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으니 연합군 지휘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를 치를수록 병력에 대한 압박감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페르만 왕국 출신 지휘관들의 불만이 커질수록 코노 왕국 출신 지휘관들은 위축되어 고개만을 숙이고 있었다. 분명,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곳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싸우고 있었기에 칭찬을 해줘도 부족할 판이었다.
하지만, 코노 왕국이 자국이다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뭔가 소식이 있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도록 하지.”
니드먼 후작이라고 별다른 수가 있는게 아니었기에 그는 이렇게 밖에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불만을 터트리던 지휘관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이 자리에서 불만을 터트린다고 일이 해결되기는 커녕, 되려 지휘부 사이에 갈등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노 왕국 지원군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자 니드먼 후작이 한쪽에서 바쁘게 병력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프라비오 백작을 향해 물었다.
“아직 멀었나?”
바쁘게 뭔가를 적고, 계산해나가던 프라비오 백작은 거의 다 끝났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를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병력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 병력으로 얼마나 많은 영지를 수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코노 왕국의 지원군이 합류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애써 잠잠해진 일을 다시 꺼내는 것이 프라비오 백작으로서도 내키지 않는지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대꾸하며 니드먼 후작은 서류를 바라봤다.
보병 : 49,523명 [중장보병 : 21,410명]
궁병, 투척병 : 29,012명.
방패병 : 42,863명.
창병 : 34,457명.
마법병단 : 149명.
기사단 : 8,416명 [트랜트 아머 소유자 : 1,036명]
총 병력 : 164,420명.
“16만이라…….”
많다면 많은 병력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전투 상황으로 봤을 때, 결코 안심할 정도로 넉넉한 병력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법병단의 수가 너무나도 적었다.
마법병단은 더 이상 어떠한 방법으로도 페르만 왕국 내에서 추가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막말로 일반 병사들과 같은 경우는 최악의 경우 일반 백성들을 강제로 징집할 수 있는 왕국비상령을 동원해서라도 인원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르다. 그러다보니 마법사의 수는 절대적으로 중요시 여겨야 할 인적 재원이다. 그 점을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마법병단의 수가 줄어든 이유는 다름 아닌 수시로 기습을 행한 비행 몬스터들 때문이다.
연합군에 최강의 비행 생물체인 드래곤 두 마리가 버티고 있다고 하지만, 갑작스런 기습으로 넓은 지역을 공격하는 비행 몬스터의 습격을 모두 막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은, 마법병단이 나서야만 했고 그 결과 마법사들의 희생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마법사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란 형편입니다.”
프라비오 백작 역시도 니드먼 후작과 같은 생각이었다. 한 명의 마법사는 100명의 병사보다도 절실한 존재다. 그러한 인적 재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앞으로의 전투가 더더욱 힘들어진다는 전망과도 같았다.
“궁병과 투척병의 수도 타 병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또한, 전투 병기의 수도 전투를 치룰 적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말은 몬스터들이 다른 병사들보다도 궁병과 투척병을 노린다는 소리였다. 그러다보니 전투 병기 역시도 몬스터들에 의해서 파괴되는 숫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지능 없는 몬스터와의 전쟁이 아닙니다!”
놀라울 정도로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변화한 상태다. 마치, 강력한 체력과 믿기지 않는 회복능력을 지닌 저능의 병사와 싸우는 느낌이었다.
“카일러 공작님.”
니드먼 후작의 부름에 위드가 시선을 주었다.
벌써 반년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니드먼 후작의 입에서 나오는 ‘카일러 공작님’이라는 호칭은 어색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공작님께서 다음 전투에서 선봉에 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니드먼 후작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전 전투에서도 위드가 불사조 기사단을 이끌고 선봉에 섰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시 선봉에 서야 하는 것이다. 공작의 지위를 지니고 있으니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고, 그런다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불만을 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위드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만큼 위드 스스로도 전쟁이 힘들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은, 다른 기사단과 병사들이 선봉에 서는 것보다 자신이 불사조 기사단을 이끌고 선봉에 설 때, 그 효과가 훨씬 뛰어남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두 차례 정도만 전투를 치르면 레켄 영지를 완벽하게 수복할 수 있으니 우리 모두 힘을 내도록 합시다.”
니드먼 후작의 말에 지휘관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 가슴속에 무겁게 내려앉은 중압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휘부 회의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가던 위드는 때아니게 낮게 크렁거리는 렉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렉턴의 곁에 작은 체구의 가녀린 존재, 피에나가 서 있었다.
밝게 떠오른 트윈문이 비춰주는 피에나의 모습은 마치 이야기 속에서 나올 법한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자이언트 타이거인 렉턴이 그녀의 곁에 얌전히 누워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피에나.”
위드의 음성에 렉턴의 갈기를 차분하게 쓰다듬던 피에나가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위드!”
위드의 모습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피에나.
“추운데 여기서 뭐하는 거야?”
곁으로 다가간 위드는 살며시 그녀를 안아주었다. 인간이 아닌 타이먼 족이기에 피에나에게 이 정도의 추위는 크게 신경 쓸 만한 것이 아니다.
“아- 따뜻해.”
행복한 미소를 떠올리며 위드의 품으로 파고드는 피에나. 그녀의 그러한 행동에 위드는 빙긋 웃으며 더욱더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뭐하고 있었던 거야?”
위드의 물음에 피에나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렉턴이랑 이야기 하고 있었어.”
“무슨 이야기?”
“무슨 이야기냐면…….”
크어어엉.
비밀이라는 듯, 렉턴이 낮게 울며 피에나의 말을 끊었다.
“비밀인 거야?”
“응? 그런 거 아니야.”
피에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부인했다.
“렉턴이 돌아가고 싶데.”
“돌아가고 싶다니?”
“더 이상 여기 있기 싫대.”
피에나의 말에 위드가 렉턴을 바라봤다. 렉턴은 커다란 눈동자로 위드를 응시하며 낮게 크렁거렸다.
“이런 싸움이 싫은 건가?”
위드의 중얼거림에 렉턴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만 했다. 그리고는 어둠에 가려진 먼 곳을 응시하기만 했다.
“음…… 렉턴은 왕이니까 다른 동료들을 지켜줘야 해.”
피에나가 렉턴을 대신하듯 그렇게 말했다. 위드는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렉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 때문인지 몰라도 어둠속을 응시하고 있는 렉턴의 눈동자에 걱정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거구나.”
위드는 렉턴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에나처럼 렉턴과 이야기를 나누지도,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 받을 순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느껴졌다.
“피에나.”
“응?”
“렉턴에게 돌아가라고 하자.”
피에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면 여기는?”
렉턴의 마음을 잘 알지만 피에나의 입장에서는 이곳이 더 중요했다. 렉턴의 능력을 잘 아는 그녀로써는 쉽게 그를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전쟁이 어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렉턴이 없다면 그 상황은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녀로써는 렉턴의 마음을 알면서도 섣부르게 돌아가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는 어차피 인간들이 책임져야 하는 곳이야. 이곳이 그렇듯, 렉턴도 자신의 종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잖아?”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