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15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5화
15화 결단이 필요한 때(1)
“흡, 흡!”
“후읍, 후우, 후우…….”
아무도 없는 숲이라 그런지 조심조심 내뱉는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기분이다.
거칠어진 숨소리 외에는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하는 훈련은, 척후병이 돌아가고 난 뒤의 상황을 가정하고서 움직이는 거다.
소리가 날 만한 병기들은 단단히 끈으로 고정하고서 이동하는 훈련이다.
지형을 숙지하는 훈련을 겸해서 일종의 예행연습을 하는 거다.
처음에는 버벅거렸는데 이틀 정도 지나자 병사들의 움직임이 좋아졌다.
목표 지점을 명확히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가 시간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체력도 상승해서 처음과 달리 호흡도 안정적인 편이다.
누구도 우리가 산속을 누비고 다닌다는 사실을 몰라야 하는 게 관건이다.
현재 나의 군복은 푸르죽죽하다.
일부러 풀물을 들여서 얼룩덜룩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의 군복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니 힌트랄 것도 없다. 지금처럼 나무와 풀이 무성한 곳에서 움직이려면, 풀물을 들여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물론 내가 먼저 한 짓이다.
센스 없는 기사들의 머리에서 나오기엔 고차원(?)적인 발상이니까.
은빛이 번쩍이는 걸 꺼려서 군복만 입고 이번 전투에 참가했다는 건 기특하다. 그러나 위장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건 조금 황당했다.
그래서 내가 시범 삼아 군복에 풀물을 들이자, 거부감을 일으키던 병사와 기사들이 지금은 다 따라서 풀물을 들였다.
처음엔 빈센트를 비롯한 나와 친한 병사들이 먼저 흉내 냈다. 그러다가 점점 따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들 풀과 비슷한 색으로 군복을 물들였는데, 혼자만 원래의 군복을 입고 있으면 적의 눈에 확 띌 테니까.
죽기 싫어서라도 따라서 군복에 풀물을 들이는 수밖에 없겠지.
자식들……
나름 최첨단 용병술이라는 걸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전투라는 건 우리는 적게 죽고 상대는 많이 죽어야 좋은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얍삽한 게 최고다.
스스슥! 스슥!
목표 지점에 도달했음에도 병사들은 침착하기만 하다.
병사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하고서 활시위를 거는 흉내를 내고 절벽 아래로 물건을 던지는 시늉을 해댔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다시금 원래의 야영지로 돌아왔다. 실전에서는 야영지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레이놀드 영지 방향으로 도주하게 될 터다.
우리를 태울 마차가 준비된 곳으로 말이다.
그러나 연습인 만큼 비슷한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 야영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몸을 쉬어줘야 하기도 했으니까.
병사들의 고개가 일제히 지나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멀리 높은 나무 위에서 빛이 반짝인다.
우리 측 병사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나무 위에 올라가 경계를 서는 중이다. 손에 쥔 거울로 지금처럼 신호를 보내면 안전하다는 의미다.
“헉, 헉…….”
잘 견뎠는데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숨이 차오른다.
이전에 비할 바 없이 체력이 좋아졌으나, 지금의 훈련은 좋아진 체력으로도 무리한 감이 있다.
마침내 야영지에 돌아왔을 때 쓰러지듯 자리에 철푸덕 앉았다.
야영지의 모습은 처음 도착했던 날과 딴판으로 변해 있다. 야영지라곤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첫날 기사들의 참호를 파준 걸 생각하면 아직도 기가 막히다. 설마 이 인용 참호 10개를 모조리 병사들한테 맡길 줄은 몰랐으니까.
다행히 먼저 참호를 완성한 병사들이 도와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밤샘 작업을 했었을 거다.
하긴 뭐……
한국에서 군 생활할 때는 하사 끗발에도 참호 같은 걸 파는 인간이 없기는 했다.
한국군의 체계로 따지면 기사들은 장교급.
그래, 병사들이 해주는 게 맞겠다.
기분은 좀 더럽지만 말이다.
어쨌든 야영지로 돌아오니 오전 훈련이 끝났다는 게 실감 난다.
요 며칠 가장 힘든 것은 큰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경계병이 발견하지 못한 척후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오죽하면 이동하거나 지금처럼 쉴 때에도 시선은 항상 제이든 영지 방향으로 고정하는 게 습관화되었다.
이번 작전은 두 번 다시 써먹을 수 없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이런 훈련을 두세 번이나 해가면서 토 나오도록 연습하는 중이다. 그런데 적에게 발각된다면 이제껏 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것만은 절대로 사양하고 싶다.
제이든 영지군의 이동은, 내일 오전 시간대로 예상하는 중이다. 아침에 제이든 영지에서 출발하면 느지막한 오후쯤에는 레이놀드 영지에 도착할 거리다.
곧바로 공격할지 하루를 쉬고 공격할지 그것은 제이든 남작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이곳을 지날 것이라는 점.
거기에 이동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게 확실하다. 커다란 공성 병기를 끌고 가야 하기에 속도가 빠를 수 없다고 했다.
“모두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라.”
나직한 음성이 귓가에 파고든다.
디올커라는 사람의 목소리다. 레이놀드 기사단장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강해 보인다.
물론 지금의 내 수준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벌써 이곳 세상에서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만족스럽다고 할 순 없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쓸 만한 몸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더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이제야 겨우 보통의 병사들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근력을 지니게 되었으니까.
내공 역시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쌀알만 하던 단전이 이제는 그래도 제법 커졌다. 내공을 사용해 실질적인 전투력을 발휘하기는 어렵긴 하다. 그래도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육체 피로나 상처가 빨리 아무는 정도의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거나 내공 역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오르면 조금은 속도가 붙겠지만, 아직 일정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급하다고 서둘렀다가는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 있으니 조급하게 내공을 수련해서도 안 된다.
그저 시간이 약이라 믿는 수밖에 없겠다.
스슷!
참호 안으로 스며들 듯 파고들어 눈만 빼꼼 내밀었다. 적의 척후병을 경계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경계하는 이유는 허무하게 발각당하지는 않겠다는 이유에서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과연 제이든 영지군이 척후병을 운용할까?
라는 것이다.
레이놀드 영지병으로 생활하면서 이곳의 군대가 체계적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군 시절 기억이 지나치게 체계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군대에선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행동이 이곳의 병사들을 깜짝 놀라곤 하니까 말이다.
“든든히 먹어 둬.”
옆에서 빈센트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벌써 점심 먹을 때다.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딱딱한 것들이 손에 잡힌다.
갈색빛이 감도는 전투 식량.
이곳 세상에서는 하드택(Hardtack)이라 부르는 음식이다.
말이 음식이지 솔직히 그냥 먹기에는 괴롭다. 잡곡을 가루 내어 물과 반죽해 구운 음식이다. 나의 군 생활 시절로 따지면 건빵 느낌이라고 보면 맞겠다.
입에 넣으면 입안이 온통 까끌거리게 된다. 침이 대번에 사라지고 전투 식량이 덩어리져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듯한 느낌.
진짜 죽지 못해서 먹는다는 게 바로 이런 맛을 두고 하는 걸 거다.
가죽 주머니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른 주머니에서 전에 사두었던 육포를 꺼냈다.
“여기…….”
한 장의 육포를 반으로 나누어 빈센트에게 내밀었다.
“자식, 고맙다.”
빈센트가 피식 웃으면서 육포를 받아 들고 내게 말린 과일을 건넨다.
역시 선임병이 다르긴 다르다는 걸 말린 과일 때문에 인정할 수 있었다.
강한 신맛 때문에 입에 침이 고여서 딱딱한 전투식량을 그럭저럭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투 식량만으로는 채우기 어려운 부분을 채워 준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계속 육체를 단련해야 하는 나에게 중요한 영양소 공급원이다.
무림의 세상에서 동굴 생활을 할 때 벽곡단으로 끼니를 때웠어도 몸에 무리가 없었던 이유가 있다.
각종 약재를 사용한 벽곡단은 섬유질이 풍부하고 각종 필수 영양소가 들어 있었다. 육포와 건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양소 말이다.
알고서 준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빈센트의 말린 과일은 무척이나 탁월한 선택이다.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포함하고 있어 불균형한 현재의 식사를 조화롭게 해준다.
“맛있지?”
“…네. 빈센트 님.”
물론 빈센트의 행동으로 봐서는 단순히 맛있어서 선택한 것처럼 보이긴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의 말처럼 맛있게 그리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이다.
마지막으로 육포 쪼가리를 입에 넣는 그때,
쉬익!
퍽!
화살 한 대가 전방의 나무에 꽂혔다.
“……!”
나와 빈센트가 눈을 크게 떴다.
화살이 날아온 곳은 나무 위에서 경계를 서는 아군 병사가 있는 방향. 화살이 날아온 이유를 알기에 바싹 긴장했다.
바로 적의 척후병이 등장했다는 의미다.
뾰로로롱! 뽀로롱!
산새 소리를 닮은 작은 휘파람소리.
빈센트가 휘파람을 불고는 참호에 몸을 묻었다. 나 역시 참호 깊숙이 몸을 숨겼다.
이제부턴 작은 소리도 내어서는 안 된다.
적에게 발각되는 순간, 이제껏 해 왔던 모든 일이 뻘짓으로 끝난다.
어쩌면 레이놀드 영지에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 줄 수도 있다. 병사의 절반 가까이 이곳에 파견 나왔고, 주 전력인 기사단 또한 함께다.
레이놀드 성의 전력은 1/3…… 아니, 어쩌면 1/4로 줄어든 상황.
가뜩이나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이번 작전에 실패한다면 레이놀드 영지의 미래는 암흑이 될 것이다.
답답한 침묵의 시간은 길게 이어졌다.
감히 고개를 들어 밖을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저 신경을 집중해 외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제길!
어느 정도만 내공이 받쳐 주었더라면 기를 퍼뜨려서 내가 먼저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현재의 수준에선 그저 청력을 예민하게 해 주는 게 고작.
스슷! 스스슷!
“……!”
풀을 스치고 누군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누군가 실수해서 발각당하기라도 할까 봐 긴장된다. 제발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겠다.
<웃기지 않아?>
<뭐가, 또?>
나직하게 소곤거리는 음성이 귀에 들려왔다.
레이놀드 병사들이 소리를 낼 리가 없으니 제이든 영지의 척후병일 게 틀림없다.
하긴… 저렇게 평온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멍청한 레이놀드의 병사는 없을 터다.
일부러 신병을 제외하고 지난번에 전투를 치렀던 인원들로만 꾸려서 온 이유이기도 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주어진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는 병사들이니까.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칠 순 없다.
상황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놈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다면 우리의 야영지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 느껴지긴 해도 말이다. 긴장 때문에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핥는 동안에도 척후병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대체 저놈들은 척후병의 임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군기가 빠진 건가?
<그렇잖아. 레이놀드 영지 따위가 뭘 할 수 있다고 굳이 귀찮게 척후병 노릇까지 하라는 거야? 용병 놈들까지 합치면 우리 쪽 병사가 걔들보다 다섯 배가 넘잖아.>
<인마, 까라면 까는 거지, 뭘 그렇게 말이 많아?>
툴툴거리는 놈과 그런 인간을 다독이는 놈.
대충 상황을 알 것 같다.
제이든 영지 소속의 병사가 생각하는 게 저렇다는 건, 레이놀드 영지를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말단 병사의 생각이 저런 식이라면 윗선은 더 이번 전쟁을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다가 돌아가자. 봐?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잖아?>
<으음…… 뭐 그렇긴 하네.>
나름 임무에 충실할 것처럼 말하던 척후병이 동조하면서 위기 상황은 끝나는 듯싶었다.
그러나,
<내가 말이야, 어제 제나란 년…… 아! 혹시 제나 알아? 그 외 ‘해뜨는 언덕’에서 술잔 나르는 애.>
<알지? 제법 귀엽게 생겼던 여자잖아.>
<흐흐흐… 맞아, 어제 내가 말이야. 고 년이랑 아주 오지게 놀았다는 거 아니겠어? 히야… 엉덩이가 얼마나 토실하던지…… >
놈들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담패설을 하기 시작했다.
망할 자식들!
딴 데 가서 놀면 안 되겠냐?
자꾸 상상하게 된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