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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최강 군바리 14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14화

14화 투철한 군인 정신(3)

 

 

 

 

 

우리가 선택한 야영지는 적에게 발각되면 곤란하다.

당연한 얘기다.

이번 전투는 이곳 세계에 와서 처음 겪었던 것과 같은 개싸움이 아니다.

이른바 기습 매복 작전을 하겠다는 것 같다.

테일 산맥에서 제이든 영지와 레이놀드 영지로 통하는 길은 오직 한군데.

오래전,

그러니까 두 영지의 사이가 좋았을 때 힘을 합쳐서 만든 산길이다.

산길이라고는 해도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려도 넉넉할 넓이라서 탄탄대로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이렇게 잘 닦인 길이 있으니, 적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다른 길을 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물론, 당연히 놈들은 바보가 아닐 테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척후병을 운용할 것은 당연한 노릇.

그래서 정예에 속하는 1중대와 기사단이 매복 기습의 임무를 맡은 거다.

어설픈 신병을 끌고 왔다 가는 발각당할 위험성만 높아질 테니까.

문제는 척후병의 눈을 속여야 하는데, 너무나 정직하게 쉴 곳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버젓이 천막을 설치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름대로는 위장한다고 하지만, 나뭇가지 무더기가 사방에 널려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잖아?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시범을 보이는 수밖에 없겠다.

자식들……

내가 비록 헌병대에 있다가 공병대로 쫓겨났지만, 어쨌든 현역 제대한 몸이시란 말이다.

모든 훈련을 가장 빡 세게 받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헌병대다.

다른 병과의 모범이 되어야 하니까 사격이든 훈련이든 무조건 가장 잘해야 한다나?

문제가 많았던 군 생활이긴 해도 제대로 훈련받은 몸이다.

삽을 손에 쥐었다.

이곳은 철이 귀하다. 철로 만들어진 귀한 삽을 들고 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이번 작전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의미겠지?

원래 가지고 있던 창과 여분으로 하나의 창을 더 받았으며 활까지 지급 받았다.

화살도 무려 개인당 10발이나 받았으니, 레이놀드 영지의 사정을 생각하면 엄청난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콰득!

 

삽을 땅에 박아넣는 감촉이 아주 상큼하다.

경지에 이른 노가다 내공으로 삽이 푹푹 박힌다.

일단은 가슴 높이까지 파 내려가는 게 관건이다.

맞다!

나는 참호를 파는 중이다.

다른 병사도 나름 참호라는 걸 파고 있으나, 제대로 된 참호가 아니다. 그저 천막을 설치하기 위해서 바닥에 평탄화 작업을 해주는 정도라고나 할까?

저렇게 해놓고 나뭇가지로 천막을 덮는 수준이니 누가 봐도 어색하다.

어쩌면 평화가 길어서 야전 교본과 같은 규정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상태라면 발각당하기 싫어도 발각당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

적이 지나갈 산맥 사이의 길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안심하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척후병이 들어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듯 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요행을 바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만이 적을 속일 수 있는 법.

그래서 내가 시범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참호를 만들면서 삽질로 퍼낸 흙을 골고루 펴서 뿌리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퍽! 퍽! 푸욱!

 

멀리서 보았을 때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면 적의 주목을 받을 게 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다.

거기에 더해서 굳이 힘들게 참호를 파내는 이유가 따로 있다.

 

“거기! 자네!”

 

지금처럼 누군가 내게 관심 둘 것을 노리고 하는 짓이다.

 

***

 

“디올커 님, 너무 즉흥적인 것 아닙니까?”

 

“왜 또 시비야?”

 

검을 휘두르던 기사단장 디올커가 옆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영주 집무실에서 회의에 집중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영주의 앞에서는 무게감을 드러냈으나, 야영지에서의 그는 조금 가벼워 보였다.

 

“숫자가 너무 부족합니다. 거기에 우리는 기습이나 매복과 같은 야전 경험이 없습니다.”

 

“후우…… 글란트.”

 

“네! 디올커 님!”

 

볼멘소리 하던 글란트는 정색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디올커의 음성에 부동자세를 취했다.

평민 출신의 글란트를 기사의 위치에… 그것도 부단장의 위치에 앉힌 게 바로 디올커다.

고마운 마음도 있으나, 그래서 더 잔소리해 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부단장에 앉힌 이유가, 단순히 말을 잘 듣게 생겨서일 뿐인 건 아닐 터였으니까.

이번 기습 매복 작전은 글란트가 생각했을 때 너무나 안일하다. 무언가 준비하는 것 같기는 한데, 치밀하다거나 성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글란트는 디올커에게 작전을 물어보는 거다. 조금이라도 작전을 보완해서 성공률을 높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사단장인 디올커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성향이 짙다는 걸 알기에 확인해야만 했다.

부단장의 위치는 그런 거다. 기사단장을 확실하게 보좌하는 게 주 임무.

하지만 정색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디올커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표정일 때의 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으니까.

 

“우리 레이놀드 영지가 전쟁에 승리하려면 정면 승부로는 답이 없다는 것은 알 것이다.”

 

“물론입니다. 단장님!”

 

글란트가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물론 나직한 음성이었다. 이번 작전은 기습 매복이다. 앞쪽에 경계병을 세워두긴 했으나 위치를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오죽하면 갑옷도 입지 않았다. 수련광인 디올커조차 평소와 달리 자세를 가다듬는 정도의 수련만 하는 중이다.

검에는 잔뜩 재를 묻혀 빛이 반사되지 않게 처리한 상태로 말이다.

기사가 말을 타지 않는다는 것.

갑옷을 벗었다는 것.

자존심을 버렸다는 의미와 같다.

어떠한 각오로 이번 기습 작전에 임하는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디올커의 작전을 듣고 싶었다.

 

“적에게 들키지 않고 기습하여 공성 병기는 물론 병력에 대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적의 혼란을 틈타 신속하게 성으로 복귀하여 공성전에 대비한다. 그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

 

글란트가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도 원론적인 내용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오나 현재로선 적이 속아주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나도 안다. 그래서 고민하는 중이다. 당장 내일부턴 이곳 지형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디올커가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는 듯한 행동과 말이었으나, 글란트라고 해서 딱히 좋은 방법을 제시하긴 어려웠다.

전문적으로 용병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것은 기사단장인 디올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기사란 영주의 충직한 검이자 방패다.

튼튼한 갑옷과 날이 바짝 선 검으로 적의 목을 벨 수는 있다. 그러나 전략과 전술을 계획하는 좀 다른 문제다.

강력한 무력과 카리스마로 기사단과 병사를 이끌 수는 있으나 작전을 구사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적을 기만하고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작전을 구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전략가라는 인재가 필요했으나, 손바닥만한 시골 영지에 불과한 레이놀드에서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영주인 레이놀드 남작이 병법에 소질이 있었으면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레이놀드 영주에겐 그러한 소질이 없었다.

 

‘넉넉한 인품에 반한 것이긴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디올커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부하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확신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생각을 정리하려 습관적으로 검을 들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검에 푹 빠져서 고민마저 잊고 말았던 것이다.

 

“밤을 새워서라도 고민해 볼 테니, 글란트 너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곧장 내게 알려 주었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디올커 님!”

 

글란트가 군례를 취하고는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자신 못지 않게 디올커 역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얼굴을 보고 있어 봐야 서로에게 부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부담되는 상황에서 함께 있는 것보다는 야영지를 둘러보면서 고민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야영지를 둘러보면서 글란트는 더욱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현재의 상태로는 적의 눈을 속이기가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땅을 파고 들어가라고 하는 게 낫겠…….’

 

“……!”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걸어가던 글란트의 눈이 커졌다.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다른 병사보다는 약간 마른듯한 병사가 미친 듯이 삽질을 하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처럼 대충 땅을 고르는 게 아니라 무덤을 파듯이 깊게 파고 있다는 게 달랐다.

그래서 글란트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거리를 두고서 병사가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감쪽같구나!’

 

속으로 탄성을 발했다.

약간 마른듯한 체구의 병사는 거의 가슴어림까지 땅을 파고, 지급 받은 천막을 그 위에 덮었다. 그러고는 천막의 끝에 나뭇가지를 박아 지붕을 만들고 위에 흙과 풀을 마구 뿌리는 거였다.

다른 땅과 거의 비슷한 높이를 하고 있어 멀리서 본다면 발견하기가 어려울 듯싶었다.

거기에 더해 커다란 나무가 시야를 가려 주니 완벽한 은폐가 가능했다.

엉뚱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실제로 해내는 병사를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글란트는 마무리 위장 작업을 하는 병사에게 다가갔다.

 

“거기! 자네!”

 

나직하지만 묵직한 음성으로 부르자, 참호를 파던 병사가 고개를 들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이름이 뭔가!”

 

“1중대 소속 윌슨이라고 합니다.”

 

***

 

내게 다가온 누군가에게 대답하면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참호를 완벽하게 만들면 누군가는 관심을 두지 않을까 예상한 것이 들어맞은 거다.

나와 똑같은 군복을 입었으나 1중대의 병사는 확실히 아니다. 그동안 병사들의 얼굴을 익혀 두었으니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2중대 병사들까지 어느 정도 얼굴을 외워둔 상태다. 눈앞의 사람은 병사의 복장을 했으되 병사가 아닐 확률 100%다.

우리와 함께 싸우게 될 기사들 또한 갑옷을 입지 않고 병사로 위장한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직접 참호를 만드는 법을 시범으로 보여 줬으니 분명 다른 병사들의 휴식처 역시 이렇게 바뀌게 될 확률이 높다.

비록 힘들게 참호를 파야겠지만, 적에게 발각되어 허망하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레이놀드 기사단의 부단장인 ‘글란트’일세.”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평소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아부부터 치명타로 한 방 갈겨 주었다.

 

“험, 험…… 그런가? 자네의 야영지가 상당히 특이하군 그래.”

 

“기습작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적을 속이려면 이렇게 위장해 두는 것이 좋을 거로 판단해서 준비했습니다.”

 

“자네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인가?”

 

글란트가 놀랍다는 듯이 물어 오는 데 괜스레 어깨가 으쓱거린다.

스스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 한국에서 군 생활할 때 배운 거다.

아직도 군인 정신이라는 게 남아 있어서 대충하는 건 내가 찜찜해서 안 되겠더란 말이지.

그러나 말할 수 없는 종류의 얘기니……

 

“네, 그렇습니다.”

 

거의 입술만 달싹거리는 수준으로 대답했다.

다른 병사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나의 참호를 바라보고는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다.

개중에 눈치 빠른 병사들은 나와 글란트의 감탄한 모습을 보고는 인상을 쓴다. 자신들도 나와 똑같은 참호를 파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한 게 틀림없었다.

이거 칭찬도 받고 남들 뺑이 치는 거 구경도 하고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다.

 

“훌륭하군! 자네가 우리 기사단의 것도 똑같이 파주게. 이런 일에 서툴러서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윽!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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