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8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8화
8화 노가다의 진수를 보여 주마(2)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이제껏 핀잔을 주던 빈센트가 흙벽에 곡괭이를 찍기는커녕 하마터면 자신의 발을 찍을 뻔했다.
“큽!”
머쓱해 하는 빈센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참는다고 참았는데 딱 걸렸다.
홀로 지냈던 시간이 길어선지 조금만 재미있는 상황이 되어도 참기가 어렵다.
웃지 않은 척하기에도 늦었다. 빈센트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으니까.
“꼬맹이, 웃어? 어디 네가 해봐! 못하면 완전군장으로 성을 열 바퀴 돌아야 할 거다.”
얼굴이 벌게진 빈센트가 눈을 부라리고는 곡괭이를 내민다.
어지간히 창피했던 모양이다.
“네! 빈센트 님!”
언제 웃었느냐는듯 정색하면서 곡괭이를 받아 들었다.
“해봐!”
빈센트가 한쪽 입술을 비죽거리며 자리를 피해 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하게 보이는 웃음이다. 자신의 힘으로도 안 되는 걸 내가 무슨 재주로 하겠느냐는 뜻일 게 분명하다.
이들이 봤을 땐 부실한 몸 상태인 내가, 빈센트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낼 거라고 믿지 않을 거다.
자식들……
몸은 후져도 공사장에서 무려 3년이나 막노동을 해왔던 나다.
무식하게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내가 증명해 줘야 정신들 차리겠지?
왼손으로 자루의 끝 부분을 쥐고서 오른손은 곡괭이의 목 부분을 잡았다.
여기까지는 빈센트와 똑같은 자세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다리를 벌린 채 곡괭이를 쥔 두 팔을 뒤로 뻗었다. 살짝 무릎을 굽혔다가 튕기듯 다리를 폈다.
등 뒤로 넘어가 있던 곡괭이가 크게 원을 그리면서 나의 머리 위에까지 떠올랐다.
지금이다!
곡괭이의 목을 잡았던 오른손을 밀듯이 내리눌렀다. 곡괭이 자루를 쓰다듬듯 누르면서 오른손으로 자루에 끝까지 힘을 전달한다. 마침내 자루의 끝을 잡은 왼손 앞에 오른손이 포개지는 순간,
퍼억!
곡괭이의 날이 2/3나 틀어박혔다.
“…….”
키득거리던 병사들의 웃음이 멈췄다.
곡괭이의 자루를 쥐고서 위로 들어 올렸다. 곡괭이 자체에 설계된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서 날이 박힌 곳이 무너져 내린다.
후두두둑!
다시 오른손으로 곡괭이의 목을 움켜쥐고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퍼억!
후두두둑!
삽질에 사용하는 근육과는 다른 부위의 근육이 움직인다.
두 노동의 공통점은 전신 근육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허리와 다리의 근육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삽질은 팔의 근육을 주로 사용하고, 곡괭이질은 어깨와 등 근육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반복적으로 곡괭이질을 하면서 일종의 박자가 생겨났다.
통쾌하다!
곡괭이질을 하면서 통쾌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동굴에 갇혀 백 년 내공을 쌓는 동안에는 마음껏 힘을 쓸 수 없었다.
조금 심하게 움직였다 하면 흙먼지 때문에 숨이 막혔으니까.
신선한 바깥 공기를 마시면서 힘을 쓴다는 게 기분 좋다. 곡괭이가 박히면서 단단한 흙을 부술 때마다 스트레스가 깎여나가는 느낌이다.
“윌슨! 그만!”
“아! 넵!”
귀에 파고드는 빈센트의 음성에 곡괭이질을 멈췄다.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말았던 것 같다. 한 가지에 쉽게 빠져드는 이런 습관도 고쳐야 할 듯싶다.
혼자 지내면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주변에 무관심해지는 버릇이 든 것 같다.
전투 상황에서도 이러면 곤란해질 테니까 말이다. 지난번 전투를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
이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생활해야 한다는 걸 잊으면 곤란하겠다.
“대단한데? 다시 봤다, 윌슨.”
곡괭이를 내려놓는 내게 빈센트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나 어쩐지 찜찜해 하는 듯한 기색이 숨겨져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못한 일을 내가 너무나 쉽게 해내서 인 것 같았다.
“아닙니다. 단순한 요령일 뿐입니다.”
“요령?”
빈센트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어 왔다.
나는 반대편에서 휴식을 취하는 영지민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들도 요령으로 일하시는 겁니다. 우리보다 작업 속도가 빠른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으음…….”
빈센트가 눈살을 찡그리고 영지민이 일하는 곳을 쳐다보았다.
작업량의 차이가 나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어이없어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읽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젊고 튼튼한 병사들의 작업량보다, 힘겹게 움직이는 비실비실한 영지민들의 작업량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 말이다.
젊은이들은 농작 일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이 대신 노역을 나온 듯 보였다. 그럼에도 작업량이 차이를 보이니 창피한 생각이 들었을 거다.
“그럼 아까 삽질한 것도 요령이었나?”
“네! 힘으로 하는 거였다면 빈센트 님을 당해 낼 수가 없었을 겁니다.”
은근슬쩍 빈센트를 띄워 주었다.
힘으로는 당신을 상대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겨 대는 거다.
잘난 척하는 놈치고 군 생활 잘하는 놈 본 적이 없다. 잘난 척하는 건 말년 병장 고유의 영역이다. 나는 이곳 세상에서는 한국의 이등병 신세나 마찬가지.
고참에게 잘 보이는 것만이 안락한 군 생활을 약속받을 수 있는 법이다.
빈센트의 한쪽 입술이 다시금 말려 올라가는 걸 보니 의도가 먹혀든 것 같다.
“자식! 좋아 그 요령이라는 걸 애들한테 가르쳐 줘라.”
“네, 빈센트 님!”
“자! 윌슨이 하는 걸 보았으니까 알 것이다. 모두 잘 보고 배우도록.”
[예!]
지친 얼굴로 늘어져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워어!
이거 오랜만에 조교 노릇하게 생겼다.
좀 웃기긴 하다.
이런 고전적인 군대에서 곡괭이질 조교라니……
뭐, 상관없다.
병사들의 눈빛이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
***
나는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벌써 이곳 세상에서 보낸 시간이 오 일이다.
그동안 윌슨의 기억을 찬찬히 되짚었고, 들려오는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상황이 심각하게 꼬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차라리 탈영해 버릴까?
멋지게 군대에 말뚝 박자고 다짐했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내가 살던 한국과는 다르다.
주민등록과 같은 시스템이 없어서 멀리 도망가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윌슨의 기억을 뒤져 보고서야 알았다.
오히려 주민등록과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기에,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에겐 범죄자 취급부터 하는 세상이란다.
범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영주 혹은 귀족과 같이 이름 난 사람의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말단의 병사인 내가, 그런 대단한 사람들에게 추천서나 보증서 따위를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다른 방법으로는 용병 길드와 같은 조직에 등록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약해 빠진 몸으로 용병이 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군역이 남아 있다.
용병 길드에 소속되려면 일단 멀리 떠나야 가능한 얘기다.
떠나기 위해서 새로운 신분이 필요한데, 새로운 신분을 얻으려면 멀리 떠나야 한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머리가 아프다.
어째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냐면,
현재 내가 소속된 레이놀드 영지와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제이든영지 사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던 적들은, 제이든 영지에서 보낸 용병들이라고 한다.
제이든 영지는 이곳에서 대략 하루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레이놀드 영지와 달리 상업이 발달해 자금이 탄탄한 곳이라던가?
아무튼,
돈 있는 인간이 레이놀드 영지를 노린다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몸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라서 더 걱정이다.
하긴······
이제 겨우 오 일이 지났을 뿐이다.
그동안 나름 몸을 만든다고 죽도록 몸을 혹사했으나 성과를 내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먹는 것도 부실해서 몸을 만드는데 더욱 어려움을 느끼는 중이다.
어렵게 얻은 지금의 자유가, 죽음이라는 놈에게 잡아먹힐까 걱정되었으니까.
솔직히 조금 어이없다.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이제야 해자를 파고, 병력을 보충하겠다는 게 말이다.
급한 마음은 알겠는데 너무 늦은 거 아닐까?
만약 내가 영주였더라면 차라리 함정을 파고 공성전 준비에 더 신경을 썼을 거다.
가령······
현재의 병력을 배불리 먹인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이왕이면 고기도 좀 듬뿍 지급하면 좀 좋아?
어떻게 오 일이나 매번 시커먼 빵 쪼가리만 먹이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군화를 신었다.
아!
이 착용감 괴랄한 군화도 바꿔야 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윌슨! 왜 아직도 꾸물거려? 나가기 싫어?”
“아닙니다!”
이크!
멍 때리느라 시간을 너무 끌었나 보다.
멋지게 살아보자고 다짐해놓고 마음 약해지지 말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사고 쳤을 땐 무조건 군기 든 척하는 게 밉보이지 않는 지름길이다.
“됐어, 긴장 풀어! 자식이 뭔 말을 못하겠네.”
빈센트가 툴툴거리면서 나의 어깨를 두들겼다.
말과 달리 그의 입가에 웃음기가 흐른다. 군기 든 척하는 게 마음에 든다는 의미가 분명하다.
“너는 오늘 나와 같이······.”
“워어! 이 녀석은 오늘 나와 함께 나가기로 했습니다.”
빈센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거무튀튀한 피부를 지닌 리올트 선임병이다. 지난번 무기고에 동행했을 때, 같이 밖에 나가자는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뭐? 안 돼!”
“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빈센트가 정색하자 리올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넌 인마, 술만 마셨다 하면 사고 치잖아!”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겁니까? 신병 때 얘기잖습니까. 거 최고 선임병이 같이 다니면 신병이 잘도 즐겁게 놀겠습니다. 안 그래 윌슨?”
“아, 아닙니다!”
은근슬쩍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리올트.
그러나 당할 내가 아니다.
질문을 받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뗐다.
사실, 빈센트와 같이 있는 거나 리올트와 같이 있는 거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니까.
“거 봐! 너랑 가기 싫다고 하잖아!”
“아니? 얘기가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인마! 너 나랑 다니는 게 싫어?”
“싫지 않습니다!”
젠장!
이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어보는 것보다 더 악랄하다.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건지······
“보십쇼! 저랑 나가는 게 싫지 않다고 하잖습니까.”
“그럼 싫다고 하겠냐? 넌 거울 안 보냐? 그 얼굴로 물어보면 아무도 싫다고 못해 인마!”
“무슨 말을 그렇··· 야! 이 새끼들아! 누가 고개 끄덕이래? 죽고 싶어?”
다른 병사들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리올트가 콧김을 뿜어 댔다.
어째 두 사람의 말싸움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면,
1중대가 외박 나가는 날이다.
일요일에는 1중대와 2중대가 번갈아가면서 성 밖으로 외출을 나간다.
소중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몸을 정상인(?)으로 바꾸기 위해 재정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외박.
확실히 단전을 형성하고 나서부터 부쩍 몸이 가뿐해지는 걸 느끼는 중이다. 비록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순도 높은 내공을 쌓으려면 육류나 익혀서 조리한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는 건 안다. 하지만 현재의 몸을 건강체질로 바꾸는 게 먼저다.
다행스럽게도 눈을 뜨자마자 얻은 보너스로 자금은 넉넉한 상태라는 위안이 된다.
우선은 질 좋은 육포를 왕창 사야겠고, 이 착용감 더러운 군화도 바꿔야 한다. 생각보다 준비할 게 꽤 많다.
“사고 안 칩니다!”
“정말이지?”
“아, 속고만 살았습니까? 이 녀석한테 약속한 게 있지 말입니다!”
오늘의 외출 계획을 잡는 동안에도 빈센트와 리올트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중이다.
대체 언제 말싸움이 끝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