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35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35화
35화 죽음의 대지(3)
이제껏 아껴두었던 단전의 내공을 끌어와 롱소드에 주입했다.
푸른빛이 번뜩이다가 롱소드에 스며들 듯 사라졌다.
“차압!”
이제껏 아껴두었던 기합성을 터트렸다.
진룡검법의 전반 오 초식을 융합한 뒤에야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여섯 번째 초식인 신룡지로(神龍之路).
지금처럼 적이 길을 막은 상황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초식이기도 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두 개의 타원을 그리면서 롱소드로 주변을 마구 난도질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아무렇게나 검을 휘두르는 거로 보일 터다.
그러나,
어쨌든 무공이다.
서걱! 츠각! 서거걱!
투캉! 빠각!
롱소드의 날카로운 검날에 걸리는 건 뭐가 되었건 썰려 나갔다.
간혹 전투 도끼로 대항하려는 오크 놈이 있었으나, 무의미하게 튕겨날 뿐이다.
“윌슨 중대장님을 도와라!”
“장창을 더 밀어! 중대장님이 들어올 수 있게 공간을 벌려! 영주님을 구할 사람은 중대장님뿐이다!”
그렇지!
병사들의 환호성에 기분이 좋아진다.
잠깐?
영주님을 구해?
대체 뭔 일이야…
“윌슨 중대장! 뒤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롱소드를 휘두르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네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서 오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겨우 네 명에 불과하지만, 마갑을 씌운 전투마에 탑승한 상태다. 포위당하지만 않으면 위기 상황에 빠지지는 않을 터다.
“믿겠습니다! 차아아앗!”
기사들에게 소리치고는 롱소드로 오크를 베어 가면서 전진했다.
마침내 병사들이 진을 친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뒤로 기병대 녀석들과 호위기사가 트롤을 맞이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위 기사의 뒤에는 어정쩡한 자세로 화려하게 장식된 롱소드를 쥔 영주.
열심히 무언가 중얼대는 듯한 마법사 벡티드.
염병!
어째서 경기병대원의 숫자가 부족한가 했다. 저런 걸 상대하느라 병력을 나눈 거였다.
정말 쉴 틈이 없다.
중요한 건 모처럼 영주의 눈도장을 찍는 기회라는 거?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아직은 견딜만한 듯 보이니까 말이다.
원래 주인공은 극적인 순간에 나타나야 하는 법이다. 극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그렇지만,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야 고마움도 커진다.
“스읍! 후우… 훕!”
일단 호흡부터 조절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오우거와 싸우고 난 뒤에 곧바로 이동하느라 내공이 적지 않게 소진되었다.
지금 기병대와 호위기사가 상대하는 트롤 또한 오크보다 상위의 존재다.
오우거보다 약하다고는 해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컨디션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싸우는 게 효율적이다.
진의심공으로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싸움을 지켜보았다. 여차하면 운기를 중단하고 달려갈 생각이다.
호기심도 생겼다.
레이놀드 영주의 곁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리는 마법사 벡티드에 대한 호기심 말이다.
마법이라는 게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마법사와 싸울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주문을 외우는 벡티드만 하더라도 제이든 영지의 마법사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기에 그의 능력이 궁금했다. 마법이라는 게 실전에서 과연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말이다.
한국에 살던 당시,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어마 무시한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
어쩌면 벡티드의 마법으로 상황이 종료될 수도 있겠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벡티드를 쳐다보는 그때,
드디어 주문이 끝나고 멕티드가 눈을 번쩍 떴다. 놀랍게도 벡티드의 손에서 빛이 난다.
잔뜩 굳은 얼굴로 트롤을 향해서 빛나는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제법 분위기와 폼이 그럴싸하다.
“매직 에로우(Magic Arrow)!”
빛나는 화살이 그의 두 손바닥 사이에서 형성되어 트롤에게 날아간다.
“크흡!”
워어!
하마터면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
분위기란 분위기는 잔뜩 잡더니 빛나는 화살은 트롤의 피부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그런 와중에 영주의 호위기사가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벡티드의 공격에, 그녀가 정신적인 타격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위험하다.
서둘러 내공 운용을 중단했다.
부족하긴 하지만 언제까지고 대자연의 기운만 받아들이고 있을 수 없었다.
받아들인 대자연의 기운을 단전에 수습하고서 곧장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타닷!
주변의 사물이 미끄러지듯 빠르게 뒤로 밀려난다.
목표는 티오 녀석이 올라탄 말의 엉덩이… 좀 이상한 생각이 들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파앙!
달려가던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힘껏 땅을 박찼다.
급격히 확대되는 말의 엉덩이!
발을 뻗어 말의 엉덩이를 밟고서 다시 한 번 뛰어올랐다.
“아앗!”
전투마가 휘청거렸는지 티오 녀석이 당혹성을 흘린다.
그러나 녀석을 돌아볼 때가 아니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트롤의 뒤통수.
거꾸로 쥔 롱소드의 폼멜(손잡이 끝에 붙은 장식)을 왼손바닥으로 받치고서 그대로 날아갔다.
퍼걱!
“큽!”
절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내공이 부족해 검기(劍氣)를 제대로 맺지 못한 탓이다.
트롤의 두개골을 쪼개고 들어가면서 생겨난 충격이, 팔을 타고 어깨에 전달되었다.
“구룩!”
난동을 피우던 트롤이 감전된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다가 힘없이 주저앉는다.
트롤이 주저앉으면서 나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숨을 헐떡이는 수호기사의 모습.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중대장님!”
“윌슨 중대장님!”
기쁨이 묻어나는 기병 녀석들의 음성.
제법 극적인 등장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어쩔 수 없이 지금 타이밍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어.쩔.수.없.이!
사실 극적인 타이밍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일부러 노린 건 아니다.
조금이라도 내공을 보충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한 방에 트롤의 두개골을 쪼갤 수 없었을 테니까.
“영주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잘난 척 하기보다는 지금 타이밍에선 주군의 안위를 묻는 게 우선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서 군례를 올린 채 앉았다. 롱소드의 검날이 레이놀드 영주에게 보이지 않도록 뒤로 감추는 건 기본 예의.
“덕분에 위기를 넘겼군. 수고했네. 윌슨 중대장.”
“주군을 지키는 건 병사의 당연한 도리일 뿐입니다. 이제 부하들을 도우러 가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앉은 자세에서 레이놀드 영주의 명령을 기다렸다.
굽힐 땐 확실하게 굽혀야 상대방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니까.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영주님!”
한 차례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토마스 녀석이 전투마에서 내려 말고삐를 건넨다.
“중대장님 제 말을 타십시오.”
녀석에게 말고삐를 받아 쥐고서 훌쩍 말 등에 올라탔다.
눈치 빠른 녀석.
“기병대! 전우를 구하러 간다! 출발!”
[출발!]
이거 어째 폼 좀 난다.
***
“영주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시에트가 숨이 턱까지 차오른 와중에도 레이놀드 영주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한 일도 없는 내가 다칠 일이 어디 있겠느냐.”
레이놀드는 자괴감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했다.
괜히 토벌전을 따라나섰다는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무력하다!
검술에 대한 재능 없이 태어난 게 오늘처럼 화가 나기는 처음이다.
스르릉!
화려하게 장식된 롱소드를 검집에 밀어 넣었다.
‘아직도 떨림이 멈추지 않아.’
롱소드의 손잡이에서 손을 뗀 레이놀드 남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트롤에게 위협 당하던 순간에 오크 마을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 사이에서 들려왔던 엄청난 함성.
기쁨이 묻어나는 환호성에, 자신도 모르게 병사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정도다. 잔뜩 지친 모습으로 병사들 사이를 걸어 나오는 병사의 모습에서 강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뒤에 자신을 구하러 나타났을 때,
‘트롤과 싸우던 병사들 역시…….’
레이놀드 남작이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때 들었던 것 역시 기병대원들의 환호성이었다. 기쁨과 안도감이 버무려진 절대적 신뢰감이 묻어나는 그런.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물은…
“여기 물입니다.”
호위 기사이자 그의 동생인 시에트 레이놀드가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영주님, 오크들을 처리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벡티드가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레이놀드 남작은 물이 든 가죽 주머니를 받아 들면서 벡티드에게 대답했다.
‘이들에게 난 짐인가? 걱정해야 할 대상인 것인가?’
씁쓸한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복잡한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는 그때,
<와아!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 윌슨 중대장님 만세!>
레이놀드 남작은 고막을 자극하는 함성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함성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말에 올라탄 윌슨이라는 병사가, 다른 병사들의 중앙에 서서 힘겨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 사이에는 기사들도 섞여 있다.
“으음…….”
레이놀드 남작이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영지민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자부하건만, 단 한 번도 저렇게 절대적인 신뢰가 묻어나는 함성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기사도 아닌 일개 병사에 불과한 인물이, 몬스터 토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주인은 바로 영주인 레이놀드 남작 본인인데 말이다.
“영주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걱정이 있으신 겁니까.”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마법사 벡티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홀트 경.”
레이놀드 남작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 봐라?’
벡티드는 속으로 비웃음을 던졌다.
질투의 감정을 담은 눈빛을 한 채로 레이놀드 남작이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함성을 지르는 병사들 사이에 그만하라는 듯 가볍게 손을 흔드는 인물.
‘윌슨이라고 했던가?’
벡디트는 조금 전에 바람처럼 나타나, 포악하게 날뛰는 트롤을 단박에 해치운 병사의 이름을 떠올렸다.
“영주님, 축하드립니다.”
“으응? 무얼 말입니까?”
윌슨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레이놀드 남작이 얼떨떨한 얼굴로 벡티드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뜬금없이 축하한다니 이상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벡티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영주님의 현명하신 판단으로 오크를 몰아내었으니, 앞으로 레이놀드 영지가 번창하는 일만 남았지 않습니까.”
“하, 하하! 그렇지요. 영지민들의 삶이 앞으로는 더욱 윤택해질 것입니다.”
언제 어두운 얼굴이었느냐는 듯 레이놀드 남작이 활짝 웃었다.
몬스터 토벌을 주장한 사람이 벡티드였다는 사실은,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듯한 모습이다.
“그렇습니다. 이게 다 영주님께서 영지민과 기사들, 그리고 병사들을 잘 이끄신 덕분입니다.”
“맞습니다. 다 제가 잘 이끈 덕입니다.”
레이놀드 남작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물론입니다. 영주님께서 판단하신 일이 모두에게 참된 기쁨을 줄 테지요.”
더욱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마법사 벡티드.
그의 손에서 희미하게 빛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기쁨에 겨워 웃음을 짓는 레이놀드 남작은 그러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옆에 주저앉은 시에트 레이놀드 역시 자신의 상처를 돌보느라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다.
“영주님, 저들에게 영주님께서 한 마디 격려해 준다면 더없는 기쁨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저들을 위로하지 않는다면 누가 저들을 위로하겠습니까.”
레이놀드 남작은 잇몸을 드러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와 같이 가시지요.”
그러자 다친 곳을 붕대로 감싼 시에트 레이놀드가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병사들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벡티드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쉬워도 너무 쉽군. 진작 이럴 걸 그랬어.”
영주의 뒤를 따라가면서 벡티드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