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2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22화
22화 삽질의 위력(2)
어이가 없다.
성을 의지해 싸워야 한다는 둥 영지민을 위해서 기사대전에 응해야 한다는 둥······
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지난번 기습 작전에서 적병을 상당히 많이 해치운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화공(火攻)을 사용해 적 병사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용병 따위로 숫자를 채운들 정예병만 하겠어?
그렇다면 놈들을 먼저 치는 게 낫지 않을까?
내일 공격하러 오겠다는 놈들을 기습하면 제대로 뒤통수칠 것 같은데 말이다.
너무 방어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 그게 답답해서 한마디 던진 거다.
물론 최대한 군기 든 척하면서 말이다.
근데···
왜 저렇게 어벙한 표정을 짓는 거지?
공격할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는 저 표정은 대체······
“오, 오! 신임 중대장!”
“예!”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곧바로 몸에 힘을 주고서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인간 내 이름을 모르는 게 확실하다. 그러니까 이름 대신에 자꾸 ‘신임 중대장’ 소리나 해대는 거겠지.
“좋은 생각이야. 다시 봤네, 신임 중대장!”
“하하하! 윌슨 신임 중대장이 우리의 고민을 말끔하게 지워 주는군요.”
레이놀드 영주가 호탕하게 웃는다.
오!
영주가 내 이름을 알아?
이거 조금 더 믿음이 간다.
내 직속상관인 기사단장도 모르는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 알아?
영주한테 잘 보이면 나한테도 기사 자리 하나 턱 내줄지?
물론 막내 생활을 하게 될 거라, 지금 당장은 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영주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극적인 타협을 보았기 때문인지 영주와 기사단장이 환하게 웃는다.
그런데 말이다.
이럴 거면 그냥 너네 둘이 얘기하면 안 되겠니?
다리가 아프단 말이다, 인간들아!
***
염병!
내가 영주와 기사단장이 시시덕거릴 때부터 알아봤다.
새로운 작전 계획을 짠다면서 시간을 죽이더니, 오후 늦게야 작전이 완성되었다.
현재는 야간 행군 중이다.
혹시나 있을 첩자 때문에 기사대전을 위해서 야간 훈련을 한다고 영지민에게 알렸다.
내공을 사용하기에 나는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병사들은 혀가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헉헉대며 따라오는 중이다.
“서둘러라!”
기사 중에 하나가 나와 병사들을 돌아보면서 나직하게 말한다.
망할!
제 놈들은 말을 타고 가니까 편하겠지.
오직 두 다리만으로 각종 병기를 주렁주렁 달고서 이동하는 병사들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를 거다.
짜증나서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래, 계급이 깡패다.
“힘들 내라. 얼마 남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서 나직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말해도 속도가 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길게 늘어진 행군 대열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병사라곤 몇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기사의 명령을 따르는 흉내라도 내려고 하는 짓이다.
기사라는 저 인간도 나름 뭔가 해보겠다고 나대는 건데 말을 씹으면 기분 나빠할 거다.
어차피 한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도 상관없는 일이니 대충 맞장구만 쳐주면 끝이다.
굳이 신경을 건드려서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까.
이해는 간다.
현재 레이놀드 성의 방어는 예전에 퇴역한 병사들을 은밀하게 불러 맡겨둔 상태.
이번 작전에 실패하면 뒤가 없는 상황이다.
기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기적인 자식들!
지들만 스트레스 받는 줄 아나···
속으로만 불만을 툴툴거리는 그때,
우리가 가는 방향에서 멀리 기사 대여섯 명이 말을 타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눈에 내공을 담으면 이렇게 밤에도 사물을 식별할 수가 있다는 말씀.
그들이 무얼 하고 왔는지 안다.
테일 산맥에 혹시나 매복이 있을까 척후병 역할을 한 것이다.
지난번 기습 작전에서 제이든 영지의 척후병이 했던 짓을 봤기에, 기사가 직접 척후병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고마운 노릇이다.
만약 기사들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더라면 병사들이 척후병의 임무를 수행했어야만 했을 테니까.
테일 산맥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제이든 영지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척후에 나섰던 기사들의 보고를 듣느라 행군을 잠시 멈췄다는 건 고마운 노릇이다. 조금이라도 지친 몸을 쉴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일.
“출발!”
“출발!”
.
.
.
하지만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낮은 음성으로 앞에서부터 전달되어 오는 출발명령에 다시금 행군이 시작되었으니까.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지난 기습전에서 우리가 밑으로 떨어뜨렸던 나무들이 파괴되어 흩어져 있었다.
불에 탄 공성 병기와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으나 병기류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지독한 자식들······
시신 수습보다는 병기를 챙겨 가는 게 더 중요했다는 얘기가 되겠다.
인명 경시 사상이 심하다는 얘기겠지.
병사쯤은 언제든 긁어모을 수 있으니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우리 영주는 그나마 괜찮은 인간이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화장이라도 치러줬으니까 말이다.
전투가 끝나고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면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괴로운 행군을 했을 터다.
참혹한 광경이지만, 어두운 새벽이라서 적나라한 모습을 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행군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기분이다.
아마도 제이든 영지가 가까워지면서 맨 앞에서 이동하는 기사들의 마음이 급해진 게 분명하다.
병사들이 버거워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낙오되는 이들은 없었다.
행군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 것은 테일 산맥의 끝자락 즈음에서였다. 아니 느려진 게 아니라 멈춘 거였다. 행군 대열이 길게 이어지는 바람에 느려졌다고 착각했을 뿐.
“병사들 위치로!”
“병사들 위치로!”
.
.
.
속삭이는 음성으로 전달되는 명령.
이제 삽을 들어야 할 시간이다.
***
어스름한 새벽이 물러나고 붉은 태양이 고개를 쳐드는 시각.
제이든 영지의 성 내부에서는 출정 준비가 한창이었다. 영주인 제이든 남작이 아침 일찍 레이놀드 영지로 떠날 것이라 선포했다. 그래서 병사들과 기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들!”
갑주를 차려입은 제이든 남작이 영주 집무실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나직하게 욕설을 흘렸다.
“고정하십시오. 영주님.”
“지금 고정하게 생겼소? 저런 멍청한 놈들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요. 게다가 레이놀드와 같은 촌구석 영지를 공격하는데 이틀을 더 허비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소.”
제이든 남작이 영주 집무실의 창문에서 눈을 떼고서 떨떠름한 음성으로 말했다.
“원래 좋은 일에는 마(魔)가 낀다고 하지 않습니까. 액땜했다고 생각하시고 노여움을 푸십시오. 영주께서 화를 내시면 기사들과 병사들이 주눅이 들어서 전투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후우··· 알겠소. 홀트 경.”
제이든 남작은 영지 전속 마법사인 벡티드 홀트의 조언에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겨우 2서클에 불과한 마법사라 전투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법사 벡티드의 가치는 상당하다.
마법사의 수가 워낙 적었고, 그나마도 자기네들끼리 뭉쳐 파벌을 구성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일종의 상징성.
마법사를 보유한 영지라는 타이틀이 중요하다.
영주의 역량을 평가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마법사의 유무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마법사 벡티드의 가치는 상당하다. 전투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순 없지만, 재정과 영지 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나 복잡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듣는 조언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할 만큼 명쾌한 해답을 주곤 한다.
그러니 남의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걸 떠나서, 곁에 두고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불같이 화가 치밀었으나, 벡티드의 차분한 음성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영주님, 레이놀드 영지를 얻으신다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부를 누릴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니 화가 나더라도 잠시 참으십시오. 저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소. 내가 흥분이 지나쳤음을 인정하오.”
제이든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광을 차지하면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진행할 수 있다. 부유한 영지를 만들면 제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부유해 지는 증거로 다른 영지보다 몇 배나 세금을 더 내게 될 터다.
‘그렇게만 된다면, 중앙에 진출하는 것도 헛된 꿈은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이든 남작이 가슴을 활짝 폈다.
제국의 중앙 귀족으로 진출해서 자신의 이름을 귀족들에게 각인시킬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영주님을 믿고 제이든 영지에 몸을 의탁한 제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벡티드가 우아한 동작으로 허리를 굽혔다.
“알겠소. 내 그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오. 앞으로도 계속 나를 보필해주길 바라오.”
“물론입니다. 저 역시 영주님이 아니라면 달리 발붙일 곳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알겠소. 그럼 이만 출정을 준비하도록 하겠소.”
“영주님의 뜻이 무사히 이루어지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제이든 남작은 다시 한 번 예를 갖추는 벡티드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나를 위해서다! 나를 위해서 저 멍청한 자식들을 보듬어 주는 거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는 속으로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었다.
레이놀드 성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쫓겨 돌아온 기사와 병사들.
이틀 전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올라 치솟는 분노를 참아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고 세뇌하듯 속으로 다짐한다.
엄청난 부(富)와 탄탄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참아야 할 때라고 자신을 달랬다.
마침내 영주 집무실에서 내려와 병사와 기사들이 정렬한 곳에 도착했을 때는 평온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종자가 끌고 온 말에 올라탄 제이든 남작은 기사와 병사의 앞에 말을 몰고 갔다.
적당한 위치에 선 제이든 남작이 아랫배에 힘을 주고 마나를 담아 크게 소리쳤다.
“모두 레이놀드 성을 잡아먹을 준비가 되었는가?”
[네, 영주님!]
기사와 병사들의 우렁찬 대답.
듬직한 함성에 제이든 남작의 기분이 진정으로 풀어졌다. 그래서 입가에 맺힌 미소에 진심이 더해졌다.
“용맹스러운 나의 기사들이여! 자랑스러운 나의 병사들이여! 지금은 고되게 걸어야겠지만, 오늘 밤 우리는 레이놀드 영지의 성에서 술과 음악을 즐길 것이다. 물론 계집은 마음대로 해도 좋다! 약탈을 허락한다. 마음껏 즐겨라!”
{와아아아!}
[영주님 만세!]
기사와 병사들이 미친 듯이 환호했다.
영지전이 벌어지면 약탈을 금하는 게 일반적이다. 점령한 영지민의 반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지민보다는 영지에 속한 부수적인 것이 목적인 제이든 남작은 약탈을 허락했다.
덕분에 기사와 병사의 사기를 급격하게 끌어올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를 따르라!”
[영주님께 영광을!]
기쁨이 묻어나는 함성과 함께 기사와 병사들이 줄지어 성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제이든 남작이 성문을 벗어나자, 기사단이 그의 뒤를 호위하듯 대열을 갖췄다.
대열을 갖추는 순간에 맞춰 투구에 붉은 깃털이 장식된 기사가 제이든 남작의 옆으로 말을 몰고 나왔다.
“영주님, 제가 보필하겠습니다.”
“마음대로.”
제이든 남작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의욕을 심어 주려고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한바탕 연설을 했으나, 딱히 기사들을 신뢰하진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덜떨어진 기사와 병사들을 놔두고, 혼자서 레이놀드 영지를 공략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더군다나 약간의 믿음을 주던 제임스 마커 기사단장이 죽은 상황이다.
부단장이었던 햄크스 베이론이 기사단장이 된 지금은 기사단이 더욱 미덥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대화는 단절되었고, 기사단장인 햄크스는 불편한 마음뿐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침묵 속에서 이동만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두 시간쯤 이동할 때였다.
제이든 남작이 말고삐를 당기면서 손바닥을 펴서 머리 위로 들었다.
“저, 정지! 정지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햄크스가 소리를 질렀다.
제이든 남작의 돌발 행동 때문이었다. 정지하려면 여유를 두고서 해야 하는 데 갑작스럽게 멈춘 탓이다.
이런 식으로 말을 갑자기 멈추면 뒤를 따르는 병사들이 혼란스러워질 터다.
하지만 사고를 친 제이든 남작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테일 산맥의 산길에서 기습을 당했다고 했는가?”
“네! 그렇습니다!”
불만을 억누르고 햄크스가 대답했다.
상대는 자신들의 주군.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실수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척후를 보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직접 정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순간적으로 울컥했으나, 햄크스는 순순히 명령을 받아들였다.
지난번 기습에 당한 이유가 척후로 보냈던 병사들이 설렁설렁 척후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하찮은 일에 기사들을 보낸다는 게 찜찜했으나,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멜트너! 핫셀! 케스터! 햅슨! 각각 조를 이뤄 척후 임무를 수행한다.”
햄크스가 손가락으로 일일이 지적하자, 네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 테일 산맥으로 향했다.
기사들이 척후 임무를 수행한다면 확실하게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 거로 믿었다.
테일 산맥으로 향하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햄크스는 제이든 남작의 눈치를 보았다.
“엇! 뭐냐!”
“적이다!”
그러나 부하들의 놀란 음성에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이, 이게!”
테일 산맥을 바라본 햄크스가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