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48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48화
48화 할 땐 확실하게(2)
“훗!”
괜한 웃음이 나온다.
나와 부하들이 전장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흘러나온 웃음이다.
어쩌다 보니 이곳 세상에서 깨어났고, 병사에서 기사단장까지 고속으로 승진했다.
한국과 무림에서의 우울했던 삶을 이곳에서 보상받는 셈인 건가?
젝무어 백작령에 다가가면서 새삼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레이놀드 영지를 벗어나는 건 한참 뒤의 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젝무어 백작령에 다가갈수록 감탄이 나온다.
천혜의 요새.
커다란 강이 있어서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지 못하면 영지에 발을 들일 수조차 없다.
다리만 가로막아도 일 차 저지선의 역할은 확실하다.
일차 저지선이 뚫려도 커다란 성이 하나 더 남는다. 어째서 젝무어 성이 엘튼 제국의 마지막 피신처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제국에서 변방에 위치함에도 무역이 활발한 것에는, 지금과 같은 탁월한 안전성이 가장 큰 플러스 요인이었을 것이다.
“멈추시오!”
다리를 지키는 두 명의 경비병이 창을 교차시키면서 묵직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레이놀드 영지의 ‘시에트 기사단’이오.”
나는 품속에서 증명서를 꺼내 새로 지급 받은 신분패와 함께 내밀었다.
“으음…….”
경비병이 증명서와 신분패를 받아 들고는 묘한 신음을 흘린다.
이유는 뻔하다.
분명 증명서에는 기사단이라고 적혀 있으나, 부하들과 나의 행색은 전혀 기사단처럼 보이지 않을 테니까.
“젝무어 백작령에 질 좋은 갑옷과 말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소.”
변명하듯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기사의 신분이라 강압적으로 지껄여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병사의 신분이었다.
상대를 존중해 준다기보다는 습관처럼 막말이 나오지 않는다고나 할까?
게다가 경비병의 눈에는 우리가 시골에서 막 올라온 촌뜨기로 보일 거다.
변명하듯 이유를 말한 것은 경비병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일부러 갑옷을 입고 오지 않았다는 그런…
근데 흉갑만 착용하고 있으니, 궁색한 변명이었다는 건 에러다.
“아! 갑옷을 구경하러 오셨군요? 실례했습니다.”
경비병이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증명서와 신분패를 돌려준다.
이거 실패다.
‘갑옷 구경’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구경만 하러 온 줄 아는 모양이다.
내가 더러워서라도 반드시 젝무어 백작령에서 갑옷과 말을 사고 만다!
“…수고하시오.”
떨떠름하게 대답하고는 다리를 건넜다.
그동안 신경 쓰지 못하고 살았는데, 우리는 누가 봐도 촌뜨기다.
다리를 건너고서 그러한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레이놀드 영지가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걸 이제야 확실하게 실감한다.
젝무어 백작령의 영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우리의 군복은 누더기다.
이런 꼴로 갑옷과 말을 사러 왔다고 경비병에게 말했으니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을까.
“시안!”
“네! 단장님!”
“이곳에서 제일 근사한 대장간을 알아 와라!”
“알겠습니다.”
화가 나서라도 부하들의 갑옷을 최고로 맞춰 입힐 테다.
“프레스카!”
“말씀하십시오! 단장님!”
“너는 기사복을 맞출만한 곳을 알아 와라! 나머지는 이곳에서 대기한다.”
[네!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크게 대답하는 것을 들은 뒤에 말에서 내렸다.
나도 가 볼 데가 있다.
“서점에 다녀올 테니, 사고 치지 말고 있어.”
부하들에게 한마디 더 하고서야 자리를 떴다.
초행길이라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 물어서 서점을 찾아가야만 했다.
조금 헤매고 걸은 뒤에야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서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
서점에 발을 들이자, 점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인사를 하려다가 만다.
이거 되게 기분 나쁘네.
누더기 군복을 입었다고 책도 안 사게 생겼다는 거야?
“마나 수련법에 관련된 책과 기사도 관련 책을 사러 왔습니다.”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내 녀석이 얼떨떨해 하다가 얼굴에 화색이 돌아서 대답하고는 안으로 훌쩍 들어간다.
진짜 옷차림부터 어떻게 해야지 기분 나빠서 안 되겠다.
누더기처럼 이리저리 기운 군복을 내려다보는 사이, 안에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손에는 두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두께 1 센티미터나 될까 말까 한 얇은 책자와 그보다 서너 배쯤은 두꺼운 책.
“여기 있습니다.”
“얼마죠?”
“1골드 3실버입니다.”
“…네?”
돈주머니를 꺼내다가 황당해서 눈을 껌벅거렸다.
책 두 권이 한국의 화폐 단위로 따지면 무려 130만 원이나 한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나?
“‘마나 수련서’가 1골드입니다. ‘기사의 탄생과 역사’는 3실버. 합쳐서 1골드 3실버입니다만?”
“네…….”
순순히 돈주머니에서 1골드 3실버를 꺼냈다.
사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후려친 가격이 아니라는 의미.
이곳 세상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걸 깜빡했다. 레이놀드 영지에 서점이 없었으니 책의 가격을 알 턱이 있나.
책은 비싼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한 공부가 되었다고 자위한다.
하긴…
마나 수련을 알려 주는 귀한 책이 1골드면 비싸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마나 수련서가 당연히 두꺼운 책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얇은 책이다.
호기심이 생겨 걸어가면서 마나 수련서를 펼쳤다.
첫 장에는 마나의 정의를 기술하고 있었다. 지지부진하게 설명이 줄줄 이어진다.
일단은 참았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겼다.
쓰바!
어째 페이지 때우려고 억지로 늘려 쓴 느낌이 드는 건 단순히 기분 탓이겠지?
<아랫배에 위치한 마나홀에 에너지를 축척하기 위해서는 마나홀부터 단련해야 한다.
편안한 자세로 몸을 만들고 아랫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호흡한다.
이때, 숨을 마시면서 아랫배를 부풀리고, 숨을 내쉴 때는 아랫배를 홀쭉하게…… >
“……!”
이거 단전호흡이잖아?
진의심공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사부에게 배웠던 호흡법이다.
물론 기억의 주인은 다르지만, 어쨌든 내 기억으로는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배웠던 호흡법이다.
무림에서는 그야말로 기초에 불과한 내용.
혹시나 싶어서 책장을 후루룩 넘겨 맨 뒷장을 보았다.
“…돌겠네.”
내용을 확인한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마지막까지 단전호흡을 설명하는 것으로 책 내용이 끝을 맺고 있다.
잡다한 부연 설명만 쓸데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단전호흡의 기초만을 겨우 설명해놓은 것에 불과한 주제에 말이다.
단전에 실질적으로 기(氣)를 쌓는 과정마저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티가 팍팍 난다.
이런 책이 1골드나 한다고?
꼭 사기당한 기분이다.
썩을!
체계적인 수련법을 서점에서 구하려고 했던 게 무리일 수도 있겠다.
할 수 없지…
아직 제국 전쟁의 소집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디올커 기사단장만 하더라도 변변한 수련법도 없이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던가!
단전호흡 정도는 나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어려운 내용이 없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무림의 수련을 응용하면 효과는 더욱 빠르게 나타날 거다.
부하들이 강해져야 그만큼 공을 세울 확률도 높아진다.
혹시 알아?
크게 공을 세워서 작위를 받아 그럴싸한 영지라도 하나 얻으면 팔자 피게 될지?
“히히힝!”
“프륵! 푸르륵!”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걷는데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딴 생각하면서 오다 보니 길을 잘못 들은 모양이다. 서점을 찾아갈 때는 볼 수 없었던 마(馬)시장이 나타난 것을 보면 말이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단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시에트 기사단이 타고 다니는 말들은 너무 예민하다. 비명이 난무하고 날붙이 병기가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당장 내가 타는 전투마만 해도 지난번 몬스터 토벌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오우거에게 돌진을 명령했는데, 똥오줌을 싸 갈기면서 명령을 거부했을 땐, 말을 목을 쳐버리고 싶었을 정도다.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훈련된 전투마가 시급한 시점.
호기심이 동한 나는 마시장에 다가갔다.
“톰슨! 꽉 잡아! 놈이 흥분하잖아! 진정시키라고!”
“그게 말이 쉽지!”
“어, 어? 줄을 놓치면 어쩌자는 거야!”
“위험해! 다들 밖으로 나가!”
비명처럼 커다란 목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그 소리가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당연한 노릇.
“오!”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흘렸다.
울타리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말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말보다 조금 더 큰 체구에 온몸의 근육이 무지하게 발달한 놈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털.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는 증거다.
전신을 뒤덮은 탄력적인 근육은 폭발적인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최고의 전투마가 될 수 있을 요소를 두루 갖춘 말이다.
다 좋은데…
“저거 말 맞아? 뭐 저렇게 생겼어?”
놈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흘러나온 감상이다.
많은 말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제껏 본 말 중에서 저렇게 생긴 놈은 처음이다.
말이라기보다는 맹수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말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푸륵! 푸르륵!”
“……!”
놈이 나를 노려보면서 콧김을 뿜어댄다.
놀랍게도 녀석의 얼굴과 눈에서 날 아니꼽게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의 표정을 공부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녀석에게서 기분 나빠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내가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말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살벌하게 나를 노려보는 녀석에게 욕심이 생겨난다.
나는 기사단장이다.
맨 앞에 서서 달려야 하는 만큼 타야 할 전투마도 뛰어나야 한다. 부하들이 타게 될 말들을 휘어잡지 못한다면 맨 앞에서 달려야 할 전투마로는 부적합하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더러운 성깔을 지닌 저 녀석은 제대로다.
“으으으…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석 달이 넘게 성질이 죽지 않잖아!”
“이봐들! 저놈 포기하는 게 낫지 않아?”
울타리 밖으로 몸을 피한 사내들이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튼튼한 건 좋은데 성질이 너무 사나워. 저런 걸 어떻게 길들여?”
“톰슨! 특이한 놈이잖아. 길들일 수만 있다면 부르는 게 값이라는 거 몰라?”
숨을 헐떡이던 사내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응? 특이한 놈?
뭔가 사연이 있는 말이라는 건가?
이거 또 호기심이 더 생겨난다.
그래서 사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켄타우로스 혼혈이면 뭐해? 저렇게 사나워서 어디다가 써먹어? 그냥 포기하자고 브랜든.”
톰슨이라는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켄타우로스?
혹시 반인반마(半人半馬)라는 이종족?
상체는 인간이면서 하체는 말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존재.
인간의 몸체에도 말의 몸체에도 심장이 있어서 쉽게 지치지 않는다던가?
이거 궁금해서 못 참겠다.
만약 저기 울타리 안에서 오연하게 서 있는 숫말이 진짜 켄타우로스의 혼혈마라면…
대박이다!
“저 말이 진짜 켄타우로스의 혼혈입니까?”
은근슬쩍 사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질문을 받은 브랜든이라는 사내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되물었다.
젠장!
여기서도 옷차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거냐?
“왜긴 왜겠습니까? 관심이 있으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대답과 함께 돈주머니를 슬쩍 열어서 보여 주었다.
그러자 브랜든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장사꾼 기질이 발동한 모양이다.
“하하하! 맞습니다. 저 녀석은 켄타우로스의 혼혈입니다. 그건 제가 확실하게 보증하겠습니다.”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나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튼튼한 말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켄타우로스의 혼혈이라기엔 조금 의심스러웠으니까.
“아시겠지만, 켄타우로스는 수컷의 특징을 따릅니다.”
“네.”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처음 듣는 얘기다.
어이! 아저씨 약 뿌리지 말고 본론으로 넘어가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