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47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47화
47화 할 땐 확실하게(1)
부하들과 이동은 순조로웠다.
아직 시간이 넉넉하게 남은 이유도 있다.
제국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앞으로도 두 달 뒤에나 벌어질 일이다.
그럼에도 영지를 떠난 이유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영주도 그렇고 기사들도 우리에게 뭔가 일을 시키기 부담스러워하는 걸 계속 지켜만 보기가 찜찜했다.
영주와 가신들의 부담을 덜어 줄 겸해서 일찍 떠나온 길이다.
시에트 기사단이라…
다소 여성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이름이었지만, 어쨌든 기사단인 건 맞다.
증명서까지 떡 하니 발급받은 정식 기사단.
문제라면 열악한 장비다.
흉갑(가슴 갑옷)만 지급 받은 탓에 기사라는 느낌보다는 여전히 경기병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제대로 장비를 맞춰보겠다는 생각에 부하 녀석들을 슬쩍 떠본 것인데, 시안 녀석이 초를 쳤다.
그래도 말이야, 내가 명색이 기사단장인데 구라 치지 말라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당연히 삐졌다.
그렇게 ‘구라 사건’ 이후로 대화도 없이 이동하는 중이다.
침묵 속에서 얼마나 이동했을까?
스멀스멀 내가 모는 말 옆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저기… 존경하는 중대장… 아니, 존경하는 기사단장님!”
접근한 놈의 정체는 시안이었다.
뻔뻔스럽게도 능글맞은 얼굴로 아부를 늘어놓는다.
구라 치지 말라는 얘기에 짜증이 나서 금괴 네 개를 보여 줬더니 이러는 거다.
네 개의 금괴는 한국의 화폐단위로 따지면 대략 2억 원 정도 되려나?
그에 비해 갑옷의 가격은 대략 한국의 화폐단위로 1,000만 원 내외.
물론, 품질이 좋은 갑옷의 경우 네 개의 금괴를 몽땅 줘도 모자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아공간에 보관한 갑옷과 내게 종속된 크로노스 갑옷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양산형으로 제작된 갑옷은 8골드(대략 800만 원)에도 거래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런 갑옷은 품질을 신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적당한 수준에서 갑옷을 맞춘다면 네 개의 금괴로 부하 녀석들 전원의 갑옷을 맞춰 줄 수 있다.
나?
나야 당연하게도 크로노스 갑옷을 사용할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곤란하다.
원래 비밀 병기라는 건 최후의 순간에 써먹는 게 또 제 맛이잖아?
대신에 아공간의 갑옷 중에서 하나를 입을 생각이다.
원래는 부하 녀석들에게 아공간에 모셔둔 갑옷을 줄까…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다.
리치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갑옷이라, 명품이라는 건 확실하다. 크로노스 갑옷을 제작하기 전에 시험작으로 만든 것이니까.
착용자의 몸에 저절로 사이즈가 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체온 유지 마법까지 걸려 있다. 당연하게도 수리가 필요 없게 자체 복원 마법까지 걸려 있다.
복원 마법은 이 갑옷을 입은 상태에선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것은 크로노스 갑옷 역시 마찬가지다.
갑옷을 착용한 상태로 복원능력이 작동하면 상처와 갑옷이 융합할 위험이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아공간의 갑옷은 이 녀석들에겐 과분하다.
능력 이상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
갑옷의 숫자도 부족해서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는 것도 좀 그렇잖아?
“저기…… 단장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시안 녀석이 조심스럽게 날 부른다.
그럴싸하게 분위기 잡은 걸 단박에 망가뜨린 녀석.
밉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곁에 두는 건 신뢰할 만한 놈이기 때문이다.
“왜 자꾸 불러?”
화가 안 풀렸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을 받아 주었다.
“제이든 영지를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빈센트 님을 뵙고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냥… 지나간다.”
녀석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찜찜하니까.
“네? 어째서입니까? 이번에 만나지 못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냥 지나치시겠다는 겁니까?”
“시안! 단장님께서 그냥 지나치시겠다잖아! 왜 토를 달아?”
서운한 얼굴로 투덜거리는 시안을 말리고 나선 건 프레스카였다.
그러자 시안이 프레스카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얼굴을 구겼다.
“아니 왜? 빈센트 기사님과 우리가 어디 보통 사이냐?”
“그러니까 단장님께서 더 만나기가 지랄 같은 거라는 생각은 안 드냐?”
프레스카가 쓰게 입맛을 다시면서 톡 쏘아붙였다.
자식,
내가 왜 빈센트를 만나기 싫은지 눈치 챈 모양이다.
그런데 말을 해도 지랄 같다가 뭐냐? 지랄 같다가!
기사가 되었으면 조금은 고상한 말을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안에도 두 녀석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뭐가 지랄 같다는 건데?”
“빈센트 님은 평기사잖냐. 그런데 우리 단장님과 만나면 어떻게 되겠어?”
“아…….”
“아? ‘아아?’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우리가 좋아서 제국 전쟁에 참가하는 거냐? 단장님도 머리 복잡해 죽겠는데 옆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 인마!”
프레스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 생각을 정확하게 읽은 것처럼 말한다.
맞다.
녀석의 말처럼 빈센트를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
한때는 감히 똑바로 눈도 마주치지 못할 위치에 있던 최고 선임병이 빈센트였다. 당시의 나는 신병 막내에 불과했고 말이다.
위치가 뒤바뀐 지금 상황에서 마주한다면 상당히 난감할 것 같다.
빈센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 상황은 아무래도 껄끄럽다.
그래서 만남을 피하려는 것이다.
“프레스카 말이 맞다. 제이든 영지는 그냥 지나치고 ‘젝무어 백작령’으로 향한다. 거기에서 말과 갑옷을 장만한다.”
또다시 얘기가 나올까 봐서 아예 명령을 내렸다.
겸사겸사 ‘젝무어 백작령’에서의 일정까지 다 말해 주었다.
“어? 단장님, 전투마까지 바꿔 주시는 겁니까?”
시안이 눈을 크게 뜬다.
그럴 만도 한다.
갑옷에 이어 전투마까지 교체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둘 다 고가의 장비였으니까.
부하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불과하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녀석들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전투 능력은 일반적인 다른 기사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장비라도 좋은 걸 써야 그럭저럭 기사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야 꼬불쳐둔 금괴로 해결하면 간단한 일이니까.
돈을 쓰려고 챙겼지 악착같이 모으기만 하려고 챙긴 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가 탄 전투마는 너무 예민하다. 전장에 끌고 나가기엔 문제가 있어. 그럼 바꾸는 게 맞겠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 주었다.
감동한 얼굴로 쳐다보는 시안과 부하들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자식들!
이왕 쓰는 거 화끈하게 팍팍 쓰는 게 남자답지 않겠어?
나를 믿어 주는 만큼 믿음에 보답해 주면 녀석들도 나를 더 믿고 따를 테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금괴를 모조리 꿀꺽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야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법이다.
한국 속담에도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다.
충성심이라는 건 주둥이만 놀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뭐라도 손에 쥐여 줘야 부하 녀석들을 쉽게 부릴 수 있다.
나 이외의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
충성심의 유통기한은, 내 주머니가 풍족할수록 길어지고 강해지는 게 당연한 거다.
“단장님!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봐라!
시안 녀석의 눈빛이 대번에 변한다.
“구라 친다고 할 땐 언제고?”
“제가요?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럴 일도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농담입니다. 농담!”
정색하면서 고개를 흔드는 시안.
구라는 이 자식이 치고 있다.
하지만 녀석의 말이 농담이었다는 것엔 동의한다. 아니, 농담 반 진담 반이었을 거라고 보는 게 맞으려나?
녀석이 봤을 때, 나는 개털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됐어, 인마! 앞으로 잘해.”
“네! 단장님! 어이! 거기! 대열 똑바로 안 맞춰?”
뭐라고 한소리 할까 걱정되었는지, 시안이 딴청을 피우면서 슬슬 뒤로 빠진다.
“자! 저기 보이는 산 아래까지 달린다. 꼴찌 한 놈은 술 없다! 이럇!”
시안이 맨 뒤까지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말의 배를 걷어찼다.
“아악! 단장님! 치사 하십니다아!”
뒤에서 들리는 시안의 항의 따윈 가볍게 씹어 주고 말을 몰았다.
***
드디어 목표로 했던 젝무어 백작령의 모습이 보인다.
쉬엄쉬엄 이동하는 바람에 레이놀드 성을 떠나온 지 5일이나 지났다.
중간에 몬스터와 마주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수련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기산데 마나는 다룰 줄 알아야 정상 아니겠어?
하지만 부하들은 마나를 다룰 줄 몰랐다.
자세라도 그럴싸하게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굴리느라 조금 늦어진 거다.
분명 부하들의 몸에는 상당한 수준의 마나가 쌓인 듯한데, 그걸 쓸 줄 모르니 당황스럽다.
뭐 그렇다고 엄청난 양의 마나를 몸에 쌓은 것은 또 아니긴 하지만…
생각 같아선 내가 배운 진의심공을 가르쳐 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인전승(一人傳承)의 규율 때문에?
아니다.
어차피 살아가는 세상이 다른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렇다고 무공을 혼자만 간직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도 아니다.
내가 생각보다 통 큰 놈이다.
삼류 무공에 불과한 진의심공을 가르쳐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 가르칠 수만 있었다면 가르쳤을 거다.
문제는 이곳 세상의 무공 체계가 다르다는 데 있다.
일단 명칭부터도 기(氣)가 아니라 마나(Mana)라고 부를 정도니 말 다했다.
기경팔맥(奇經八脈)이니 혈도(穴道)니 하는 용어조차 없는 세상.
무공에 대한…
내공에 대한 기초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레이놀드 영지의 디올커 기사단장 또한 부단한 노력 끝에 마나를 깨우쳤다고 할 정도로 수련 방식에 문제가 있다.
어쨌든, 이런 녀석들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친다는 건 어림도 없다. 무림 세상에서도 원래 몸 주인이었던 녀석이 사부에게 2년을 넘게 기초만 배웠다는 걸 생각하면…
거기에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기억을 간직한 것뿐이다. 이런 내가 남에게 진의심공을 가르친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세상에 맞는 마나 수련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였다.
‘젝무어 백작령’을 목표로 삼은 건, 갑옷과 말을 장만하는 것 외에도 마나 수련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제국 전쟁이 벌어져 전장에 투입되면 믿을 수 있는 건 부하들밖에 없다.
지금 뿌리는 돈은 나의 생존을 위한 투자라고 보는 게 맞겠다.
속은 좀 쓰리지만, 충성하겠다는 놈들한테 인색하게 구는 것도 웃기잖아?
“우와아! 단장님! 레이놀드 성과는 규모부터가 다르지 않습니까?”
사색을 방해하는 방정맞은 음성이 들려왔다.
역시나 시안 녀석이다.
호들갑을 떨면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다.
다른 녀석들은 그나마 기사라는 자각이 있는지, 무게를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아니다.
지나치게 솔직하다.
아니 솔직하다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녀석이다.
뭐 그런 성격 때문에 내가 중대장이 되었을 때 인상을 벅벅 쓰면서 반대하고 나선 것이기도 하겠다.
“촌놈 티 내지 말고 얌전하게 굴어라, 시안.”
“물론입니다! 저기… 단장님.”
“말해.”
음충맞은 얼굴로 실실 쪼개는 시안 녀석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녀석의 얼굴만 봐도 대충 뭘 원하는지 알겠다.
금방에라도 침을 흘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이곳에 온 목적부터 해결하고 쉬는 것으로 하겠다. 가자!”
“예! 단장님!”
시안은 신이 난 얼굴로 대답했다.
이 녀석은 참 포지션이 묘하다.
부단장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부관이라고 하기에도 좀 이상하다.
자신이 기사라는 자각은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들 정도로 털털하다.
하긴…
종자조차 없는 우리 기사단부터가 이상한 구성이긴 하다.
나부터도 종자를 두는 게 귀찮다.
갑옷을 입고 벗는 게 귀찮아지겠지만, 그거야 서로 도우면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부하들만 괜찮다면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고 싶다.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괴짜 기사단.
나쁘지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