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4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42화
42화 밉상(1)
젠장!
어떤 인간이 리치는 사악한 존재라고 했던 거야?
더럽게 불쌍한 놈한테…
“미안하다고 했잖아.”
일단 사과하기는 했는데, 저 녀석 천 년을 넘게 살았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보다 말하는 스타일이 어리게 느껴진다.
뭐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도 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나이는 먹었지만,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생각하는 수준은 딱히 노인 티가 나지 않으니까.
무림 세계에서 그냥 나이만 먹었을 뿐이니까 당연한 얘긴가?
이런 분위기에서 리치 녀석한테 ‘몇 살이세요?’라고 물어 보는 것도 웃기지 않아?
한번 말을 놨으면 끝까지 가는 거다.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흠, 흠! 아무튼!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근데 힘들면 자살하면 간단하지 않았어?”
“자살은 계약 위반이다. 마계의 계약은 지독하지. 이제라도 네가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마계에서는 꼭 인큐버스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할 생각이야. 그러면…….”
“…….”
녀석이 들뜬 음성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안쓰러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얼마나 욕구불만에 시달렸으면 하고 많은 마족 중에 인큐버스로 태어나는 게 소원일까.
수다스럽다는 느낌이지만, 그 마음 다 이해된다.
나도 60년간 동굴 벽만 보고 살았던 경험이 있다. 혼자 지내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 안다.
특히나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적인 고자가 되던 순간의 끔찍한 기억은…
아!
더러운 기억이 떠올라버렸어.
“험, 험! 어째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네 맘 다 이해한다. 나도 겪어 봐서 알지.”
“겪기는 뭘 겪어 봤다는 거냐!”
겸염쩍어 하던 리치 녀석이 발끈한 음성으로 화를 낸다.
“나 환생했거든. 이전 세상에선 60년이나 갇혀서 혼자 살았다.”
“헛소리! 그걸 믿으라는 말이냐?”
“안 믿으면 어쩔 건데?”
“…….”
처음 만났을 때 녀석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지금의 이야기는 나와 지내는 녀석들에게 말할 수 없는 종류의 얘기다. 그러나 눈앞의 녀석이라면 상관없다.
어차피 믿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니까.
리치 녀석이 다른 놈한테 내가 미친놈이라고 소문낼 것도 아닌데 못할 얘기가 없잖아?
게다가 마계에 가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은데 말이다.
“진짜인 것 같군.”
“속일 이유가 없지.”
“지겨웠다. 처음 리치가 되었을 땐, 죽을 걱정 없이 마법 아이템을 만드는 것에 전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녀석이 자신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라면 끔찍할 정도로 수다스럽다는 거?
이해는 된다.
혼자 오래 지내면 가장 그리운 게 사람이다.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거, 그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이곳 세상에서 절실하게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해골과 대화하는 괴랄한 상황이긴 하지만, 나 역시도 녀석과 얘기하면서 즐겁다.
환생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상당히 즐겁다.
.
.
.
“……기가 막히지 않나?”
“네 말대로라면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겠는 걸?”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리치와 나는 친구처럼 얘기를 주고받는 상황이 되었다.
한동안 녀석의 얘기를 들어 주다 보니, 선물을 내밀기까지 한다.
누구한테 선물이라는 걸 받아본 기억이 없어서인지 약간은 당황스럽다.
“대단하지? 그렇지? 흐흐흐!”
“대단해! 정말 대단해. 그런데 이런 걸 나한테 주겠다는 거야?”
녀석이 내민 상자 안의 내용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붉은 구슬.
드래곤 하트라나 뭐라나?
구슬 겉면에 은은한 금빛의 금속이 둘러싸고 있다. 금속표면과 붉은 구슬에 이상하게 생긴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있어 보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굳이 어떤 기능이 있는지 다시 묻지 않아도 될 만큼 녀석이 자랑스레 떠벌렸다.
이렇게 생긴 게 갑옷이란다.
전혀 갑옷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공간 마법까지 추가되었고, 원하는 형태로 갑옷을 바꿀 수 있다니 대단한 물건이다.
저걸 내 것으로 만든다면 귀찮게 주렁주렁 물건을 매달고 다닐 필요가 없어질 거다.
한국에서 즐기던 게임처럼 인밴토리라는 게 생긴다는 건데…
아주 매력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껏 내가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이, 바로 붉은 구슬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리치 녀석이 주겠다는데도 덥석 받아들이는 게 꺼려지는 이유가 있다.
“많이 아플까?”
“드래곤 하트는 아주 귀한 거야.”
“말 돌리지 말고.”
“좋은 물건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녀석이 뼈다귀만 남은 손으로 턱뼈를 긁적인다.
“아프다는 얘기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몰라.”
“어째서?”
“아픔을 느낄 수 없는 몸이거든. 아마도 조금 아프기는 할 거야.”
“……미안.”
또 깜빡했다.
얘기하다 보면 녀석이나 인간이나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마계에서 다시 태어나면 가장 먼저 자위행위부터 하고 싶다는 녀석한테 아프냐는 감각을 물어봤으니…
나도 참 배려심이 부족한 놈인 것 같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받아!”
녀석이 상자를 내민다.
그런데 헤어져야 할 시간?
“어디 가?”
“말했잖아. 마계로 갈 거라고.”
“이렇게 갑자기?”
“네가 탑의 문을 열었을 때, 라이프 베슬이 부서졌거든.”
“라이프 베슬? 생명을 담았다는 그거?”
놀라서 물었다.
녀석과 대화하면서 들었던 얘기가 떠오른 것이다.
리치가 되려면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수정 구슬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하필이면 왜 수정이냐는 질문에,
다른 보석은 계약 위반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라이프 베슬이라는 게 깨지면 수정에 가두어 두었던 생명력이 시간의 흐름을 타게 된다는 것.
즉,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맞아. 벌써 이렇게 되는군.”
녀석이 왼손을 들면서 해탈한 듯한 음성으로 말한다.
스스슷……
들어 올린 녀석의 손가락뼈가 끝에서부터 가루가 되어 흘러내린다.
“내가 준 선물 잊지 말고 네 것으로 만들어. 다른 놈의 손에 가면 좋을 거 없으니까. 마지막에 괜찮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미련은 남지 않겠군.”
“이 봐… 이 봐!”
리치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두개골의 윤기가 사라지면서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린다.
인간은 아니었지만, 나름 말이 통했던 녀석인데…
잠깐!
지금 남 생각할 때가 아니긴 하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아직 새벽이 지나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부하 녀석들이 걱정하기 전에 돌아가야겠다.
그 전에… 구슬부터 내 것으로 하는 게 먼저겠지?
녀석이 남겨 둔 상자에 손을 넣어 구슬을 잡았다.
파짓! 파지직!
“끄아아아아! 리치 이 망할 자식아! 이, 이게 조금 아픈 거냐아아아!”
.
.
.
***
머리가 띵하다.
온몸이 불태워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대머리 해골 자식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모른다.
나름 녀석과 잘 통한다고 믿었다.
제법 친하게 지낼만한 놈이라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붉은 구슬이 내게 준 고통은 녀석에 대한 호의를 단박에 날려 버릴 만큼 엄청났다.
“허억, 헉… 허억…….”
쓰바!
실제로 불에 타 죽는다고 해도 이것보단 덜 고통스럽겠다.
하지만 고통이 사라진 지금은?
“자식, 고맙다.”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한 리치 녀석에게 흐릿하게 웃어 주었다.
전신에 힘이 솟구친다.
드래곤 하트의 힘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작은 단전에 억지로 거친 기운이 파고드는 바람에 고통을 느낀 거였다.
고통의 순간이 지난 지금, 내공이 대폭 증가했다.
드래곤 하트에 담긴 기운이 나의 단전에 힘을 나누어 준 까닭이다.
크로노스 아머(Cronus Armour).
리치 녀석이 알려 준 이름이다.
드래곤 하트의 주인이었던 레드 드래곤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였다고 한다.
원래 입고 있던 흉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군복을 풀어헤쳤다.
가슴 중앙에 콩알만한 붉은 보석이 박혀 있다.
드래곤 하트가 심장과 상성이 좋아서 가슴 부근에 자리 잡는 게 정상이라고 했던가?
리치 녀석의 말에 따르면 크로노스 아머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게 맞다.
나에게 거의 30년 수준에 해당하는 내공을 나눠 주었음에도 강렬한 기운이 느껴진다.
물론 나만 인지할 수 있는 거다.
리치 녀석이 크로노스 아머를 제작할 때, 마나의 기운이 외부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해두었다고 한다. 어째서 내게는 ‘크로노스 아머’의 기운이 느껴졌는지 녀석도 나도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고통에 빠졌을 때는 미친 듯이 녀석을 욕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마음이 확 바뀐다.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단전에 깃든 내공을 일깨웠다.
우우웅!
몸에 진동이 일어날 만큼 강한 힘.
크로노스 아머를 몸에 받아들이면서 고통의 대가로 얻은 내공.
이제 나의 단전에는 대략 40년 내공이 쌓여 있다.
무림 세상에서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내공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세상에서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이니까.
황궁에서 근위기사를 노려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는 얘기다.
조금 더 눈높이를 낮춰서 말하자면 현재의 레이놀드 기사단보다 몇 배나 규모가 큰 기사단에도 한 자리 꿰찰 수 있는 수준?
억지로 단전을 확장해서 내공을 키울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딱 여기까지다.
몸이 익숙해지고 단전이 조금 더 단련된다면 더 높은 경지에도 오를 수 있을 터다.
아차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크로노스 갑옷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걸 확인해야 할 때다.
단전의 내공을 돌려 가슴에 묻힌 붉은 보석에 불어넣었다.
츠즈즈즛!
옅은 붉은빛이 콩알만한 보석에서 흘러나왔다. 내공을 이어 가면서 전신 갑옷을 상상했다.
‘크로노스!’
주문을 외우듯이 속으로 갑옷의 이름을 불렀다.
촤르르륵!
“우웃!”
순식간에 온몸을 뒤덮는 금속의 갑옷.
머리에도 투구가 씌워진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이루어진 현상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손을 들었다.
손가락을 금속 조각이 감싸고 있음에도 움직임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건 마치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언맨 같잖아?
다시금 내공을 움직여 갑옷에 집중했다.
촤롹!
해체는 더욱 빠르다.
이거 정말 좋네?
“크로노스 변형!”
신이 나서 붉은 보석에 내공을 보내고, 소리 내어 명령을 내렸다.
촤륵!
붉은 보석에서 빛이 나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흉갑과 똑같은 형태의 갑옷이 입혀진다.
“워어…….”
감탄밖에 안 나온다.
완벽하게 테이블 위의 갑옷과 똑같은 모양의 흉갑이다.
다시 크로노스 갑옷을 붉은 보석의 형태로 바꾸고 흉갑을 착용했다.
남들 앞에서는 갑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해야 하니까.
젠장!
좋은 걸 얻었는데도 남의 눈이 무서워서 숨겨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흉갑을 입으면서 창밖을 본 나는 뜨악하고 말았다.
벌써 날이 어슴푸레 밝아 오려 한다.
부하 녀석들이 날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서둘러야겠다.
그래서 빠르게 밑으로 내려갔다.
밖으로 나가려면 내가 탑에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야 한다.
리치 녀석의 복구 마법으로 현재 탑과 지하 공간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다.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리치 녀석이 그렇다고 하니 믿는 수밖에.
타다다닥!
아래층으로 내려간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벽에 진열된 갑옷과 각종 병기.
누가 봐도 명품.
이걸 놔두고 가는 건 또 웃기잖아?
“크로노스 아공간!”
챙길 수 있을 때 팍팍 챙기는 게 또 예의다.
아공간이 활성화되자, 가상의 공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갑옷에 손을 대는 순간, 가상의 공간 안쪽에 갑옷이 진열되는 게 눈으로 보인다.
오호!
이건 진짜 신기하다.
그나저나 리치 자식…
돈이나 금 같은 건 없었던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