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77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77화
77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2)
“누, 누군가! 원하는 게 뭐지?”
입을 막은 손을 떼자, 반데라스 자작은 두려움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묻는다.
“누구겠나?”
살짝 내공을 조절해 음성을 바꾼 다음이다.
그나저나 이 인간 상황 파악이 빠르긴 하다.
내가 위협만 가하는 것을 보고는 프레하 제국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것을 보면 말이다. 프레하 제국의 암살자였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을 베었을 테니까.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에서도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혹시…….”
“누굴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맞을 거야. 대금이 부족해서 찾아왔다.”
“윌슨 단장은 100골드라고 했소.”
“그건 윌슨이 나한테 의뢰할 때 금액이지. 친구 사이에 반값만 받을 정도의 의리는 있거든. 하지만 이번 일은 당신이 부탁한 거잖아?”
반데라스 자작에게 내가 윌슨과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어필하면서 가격을 올렸다.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수고비는 받아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나한테 위협을 주지 않았더라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을 일이니까, 특별 수당이 붙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
“으음… 그래 좋아, 100골드를 더 주도록 하지.”
“천천히! 천천히 움직여. 내가 원래 좀 소심해서 말이야. 불안하면 목부터 따는 버릇이 있어.”
허리춤에 손을 내리는 반데라스 자작의 목에 마나 블레이드를 품은 단검을 바짝 붙였다.
이 인간도 나름 한가락 하는 몸이다.
경계하지 않는다면 반격을 허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소란을 눈치 채고 다른 놈들이 몰려오면 피곤해진다.
“신중한 친구군.”
“윌슨의 말로는 당신이 믿을 만한 인간이라고 하는데, 나는 영 믿음이 안 가거든.”
푸념하는 듯한 반데라스 자작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내 입으로 ‘윌슨’이라는 이름을 꺼내려니 조금 낯 뜨겁기는 하다. 하지만 이 인간한테 윌슨이라는 존재가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반대로 반데라스 자작을 위협하는 현재의 ‘나’는, 수틀리면 언제든 목을 따 버릴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시키는 거다.
뭐든 지나치면 좋을 게 없다.
윌슨으로 있을 때의 내가 아무런 뒷생각 없이 반데라스 자작에게 숙이고 들어가면,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확률이 높다.
가령 윌슨일 때의 ‘나’를 대놓고 죽이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따위의 일 말이다.
그렇다고 암살자로서 협박만 가했다가는, 이 인간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이 자리에서 죽이면 깔끔하지만, 그리되면 프레하 제국의 전쟁이 걱정된다. 이 인간만큼 기사와 병사를 잘 다루는 인간이 없으니까.
아직은…
아직은 처치할 때가 아니다.
“여기 100골드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퍽!
뭔가 부탁이 있는 것 같은데, 들어 줄 필요는 없다.
직거래는 상도덕 위반이니까.
뒷목을 쳤으나, 실제로는 혼혈을 제압해 기절시킨 거다.
침실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소리를 지르면 귀찮아지잖아?
기절에서 깨어나면 불알이 좀 움찔거릴 거다. 힘도 못 써 보고 제압 당한데다가 언제 또 내가 찾아올지 모를 테니.
그러니까, 인간아…
잔 대가리를 굴리려면 적당 선을 지켜 줘라. 그것도 예의다. 예의!
자식, 용돈은 고맙게 잘 쓰마.
***
다음 날,
보람차게 용돈(?)을 벌어 온 나는 부하들과 아침을 먹는 중이다.
곁에는 성공적으로 ‘참교육’을 이수(?)한 코너와 시안, 그리고 와그너가 함께 있었다.
어느새 코너 녀석이 끌고 온 자이언트 기사단은 시에트 기사단에 녹아들었다.
특별 교육(?)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일을 자율로 맡기는 시에트 기사단이 마음에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끌어야 할 조셉이 죽은데다가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코너가 나한테 묶인 몸이니 별수 없었을 거다.
으음…
그나저나 시에트 기사단원이 죽었으니, 충원할 필요는 있겠다.
문제는 적당한 인재가 없다는 점이다.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따지면 와그너를 기사로 만드는 게 좋다. 하지만 녀석처럼 병사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보병 지휘관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예전 레이놀드 영지에서의 나처럼 기사와 동급의 대우를 해주고는 있다.
에휴…
그래 지금은 기사단을 재정비하는 것보다 현재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만 생각하기도 벅찬 시점이다.
기사단의 충원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맞겠다.
정 안 되면 와그너를 제외하고 병사 중에서 선출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겠다.
기사를 키우는 건 어려우나, 병사를 모집하는 건 쉬우니까.
어느새 나 역시 인명경시(人命輕視) 사상에 물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몰라!
내 코가 석 자인 마당에 거기까지 신경 쓰진 말자.
그러면 내가 너무 나쁜 놈처럼 보이니까.
가뜩이나 요즘 들어서는 나 스스로가 악당처럼 느껴지는 중이기까지 하니…
생각해 보면 현재 주변에 있는 녀석들 치고 교육(?)을 받지 않은 놈들이 없다.
물론 자이언트 기사단원들은 예외로 치고 말이다.
이거 인간관계에 있어서 너무 각박한 거 아닌가?
젠장, 될 대로 되라지!
목숨이 간당거리는 판에 인간적인 거 따지다가 훅 가 버리는 거보다는 낫잖아.
“윌슨! 프레하 제국이 오늘도 공격해 올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수프를 떠먹다가 말고 의아해져서 물었다.
녀석의 말을 듣고서 장벽 너머의 프레하 제국군에게 시선을 돌리게 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놈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진영을 유지한 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중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프레하 제국은 놀러 온 게 아니라, 뱅크스 요새를 점령하고 엘튼 제국을 침공하러 온 거니까.
두 번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잠시 의기소침 해진 것뿐일 터.
사령관이 죽었다고 해도 금세 재정비해서 다시 공격을 시작해 올 게 분명하다. 우리 뱅크스 요새가 사령관이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더 단결력이 좋아진 것처럼 말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아니 내가 프레하 제국을 도와준 것일 수도 있다.
용맹성으로 승부 하던 적 사령관을 해치우는 바람에, 냉철하고 잔머리 잘 굴리는 인간으로 사령관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휴스턴 백작이 사망하고 반데라스 자작이 사령관 자릴 꿰찬 우리 뱅크스 요새처럼.
“저 자식들…….”
수프를 떠먹으면서 적진을 살피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멀리 있던 트레뷔셰가 흔들린다.
그렇다는 것은 트레뷔셰가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
단순히 위협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프레하 진영의 병사들이 야산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트레뷔셰를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려는 것인가?
탄환으로 무엇을 사용할지는 모른다. 뱅크스 요새에서 계속 쏘아댄 작은 돌덩이를 그물에 엮어 사용할 수도 있다. 어쩌면 회수해 간 시체들을 하나로 묶어서 날릴 수도 있을 테고.
비인간적인 행위지만, 전쟁이라는 게 애초에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이니…
<지휘관들은 집무실로 집결 바란다!>
아니나 다를까,
반데라스 자작의 마나를 담은 음성이 뱅크스 요새에 울려 퍼졌다.
에이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서둘러서 아침을 해치울 걸 그랬다.
“코너! 가자!”
“네, 윌슨.”
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너 또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미련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집에서 호화로운 식사만 하다가 군대 음식을 먹으려니 죽을 맛이었던 게 분명하다.
4,000명이나 되는 인원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니 단순 할 수밖에 없는 노릇.
나나 되니까 그래도 수프에 육포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와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멀건 수프만 먹었다는 걸 벌써 잊어버린 게 분명하다.
자식이 좀 더 굶어 봐야 음식 귀한 줄 알지…
“스승이라는 사람한테는 연락했고?”
뱅크스 요새의 중앙 성으로 이동하면서 녀석에게 물었다.
아버지인 모리스 공작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으나, 그게 지켜질 리가 없다는 건 나도 안다.
일부러 그렇게 시킨 거다.
녀석의 성격으로 봤을 때, 집에서도 어리광을 부렸을 확률이 높다.
차라리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모리스 공작에게 전하려는 꼼수라고 보면 되겠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네, 새벽에 연락했어요. 스승님께선 새벽에 연구를 많이 하시거든요.”
“뭐래?”
“알았다고만 하셨어요.”
“너도 참…….”
조금 기가 막혀서 말끝을 흐렸다.
제자가 목숨이 위태롭다는데 녀석의 반응을 보니, 시큰둥했던 모양이다.
그래,
내가 언제 남의 도움 받고 살았냐?
이 녀석 은근히 쓸모없다. 진짜…
약간이나마 바라던 일이 무산된 만큼, 얘기를 이어 갈 접점이 없어진다.
그저 입 꾹 다물고 사령관인 반데라스 자작의 명령에 응하는 수밖에.
새벽에는 누구한테 걸릴까 봐 조심했어야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걸어 올라간다.
집무실 문을 지키는 기사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충!”
“응? 그래, 어서 오게.”
간략하게 군례를 올리는 순간, 반데라스 자작이 눈에 약간의 이채를 발한다.
이전의 무신경한 반응과는 조금쯤 달라진 느낌이다. 새벽에 충격 요법을 사용한 보람이 느껴진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내게 다가설 필요는 있겠지.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다.
이걸 노리고 새벽에 반데라스 자작과 만났던 거다.
반데라스 자작의 시선이 자꾸 나에게 꽂히는 걸 느낀다.
그러나 일부러 못 본 척 외면한다.
왜?
새벽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인간이니까.
역시나 코너는 반데라스 자작의 곁에 앉는다. 지난번 휴스턴 백작의 곁에 앉았을 때와는 표정이 약간 다르다.
이제껏 친근하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어느새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바람에 불안감을 느끼는 게 틀림없다.
반데라스 자작은 지휘관들이 모일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와 수차례나 눈을 마주쳤다.
새벽에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마침내 뱅크스 요새의 지휘관급 인원이 모두 모였을 때에야 반데라스 자작이 헛기침으로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허험! 모두 프라하 제국의 움직임을 보았을 것이오.”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회의실에 모인 지휘관들이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를 포함해서 지휘관들은 사령관이라는 말 뒤에 일부러 ‘각하’라는 말을 붙였다.
작위는 안 되지만, 일종의 사령관 예우인 셈이다.
그리고 이번 전쟁이 끝나면 뱅크스 요새에서의 활약으로 봤을 때, 반데라스 자작의 작위가 높아질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는 한국의 속담이 생각나는 상황이긴 하다.
어쨌든 내 이름 역시 제국에 알려졌으니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니까 넘어가기로 한다.
“프레하 제국 놈들이 대형 투석기를 사용할 작정인 듯하오. 놈들이 대형 투석기로 무엇을 발사할지 모르겠으나, 뭐가 되었건 위협적이라는 사실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오.”
[…….]
지휘관들이 침음성을 흘린다.
하다못해 인간의 시신을 던져 온다고 해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시체가 부서지면서 아군 병사에게 참혹함을 심어 줄 수도 있으며, 직접 타격 당하면 피해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악취와 병원균이 퍼질 수도 있는 것도 문제다. 어쨌거나 트레뷔셰를 이용한 공격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프레하 제국군이 전술을 바꿔서 원거리 공격으로 돌아선다면 뱅크스 요새에 불리하다.
그렇다고 장벽을 비워 놓는다면, 놈들은 곧바로 이전에 벌였던 두 번의 전투처럼 금세 장벽을 넘을 터.
좁은 계단을 통해 이동해야 하는 아군이 선택할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방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소.”
지휘관들을 둘러보면서 묵직한 음성으로 말하는 반데라스 자작.
“…….”
저 인간 왜 나한테 시선을 맞추면서 저런 얘기를 하는 건데?
어째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