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69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69화
69화 작위를 약속받다.(1)
뿌우우우! 뿌우우우!
앙부아즈 백작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심장을 울리는 듯 하던 북소리가 멈추고 나팔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사다리를 타고서 장벽을 기어오르던 병사들이 꼬물거리면서 내려온다.
장벽 위에서 난전을 벌이던 기사들 역시 힘겹게 퇴로를 확보하면서 시즈 타워를 통해 퇴각했다.
다만 파괴된 시즈 타워를 이용해 장벽에 올라선 기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필사적으로 싸워댔다.
“빌어먹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큰 것을 위해서는 때론 작은 손해를 감수할 줄도 알아야지.”
앓는 소리를 하는 앙부아즈 백작에게 잉젤거 백작이 차분한 음성으로 위로해 주었다.
“알아! 아는 데 속이 뒤집어지는 게 문제야.”
앙부아즈 백작은 장벽 위에서 부하 기사들이 엘튼 제국의 기사들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뿌드득 갈았다.
“조금만 참아. 투석기 탄환을 회수하면 놈들을 마음껏 괴롭힐 수 있을 거야. 푸아 자작!”
“네, 잉젤거 백작 각하. 물리 방어 마법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오.”
잉젤거 자작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은 이래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듣는다. 투석기 탄환을 회수하려면 적의 화살 공격을 방어할 수단이 필요하다.
한차례 고개를 숙이고서 물러나는 푸아 자작을 바라보면서 잉젤거 백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으으으… 망할 자식들!”
그러는 사이, 앙부아즈 백작이 다시금 앓는 소리를 냈다. 잉젤거 백작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앙부아즈 백작이 앓는 소리를 냈는지 알 것 같았다. 썰물처럼 빠지는 부하들에게 적들이 화살을 날려왔기 때문이다.
“참아! 철저하게 되갚아 줄 테니까.”
잉젤거 백작은 분노에 몸을 떠는 앙부아즈 백작을 달랬다.
하지만 그의 눈에도 역시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항복 따윈 받아 주지 않겠다.”
“권하지도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초토화해버릴 작정이니까.”
씹어 뱉듯이 말하는 앙부아즈 백작의 말을 받으면서 잉젤거 백작이 눈을 부릅떴다.
병사들이 후퇴하면서 드러난 처참한 상황에 기가 막혔다. 최후에나 사용할 방법인 사다리 전술을 실시한 탓에 어느 정도 희생은 각오한 바가 있다.
그러나 해도 해도 이건 너무하다.
장벽과 장벽 아래가 아군 병사의 시체와 시뻘건 피로 범벅이다.
‘이게 다 대형 투석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야.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질 거다.’
“엘튼 제국 놈들… 갈아 버릴 테다.”
처참한 광경을 눈으로 확인한 잉젤거 백작은 두 주먹을 꽈악 움켜쥔 채로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침내 아군 병사와 기사들이 모두 진영 안으로 들어왔을 때,
“저, 저런 개 같은 경우가… 뱅상! 이젠 어쩌면 좋으냐!”
앙부아즈 백작은 기가 막혀서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병사들이 퇴각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뱅크스 요새 안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가 장벽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투석기 탄환을 흡수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힌 상황에 그는 머릿속이 텅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화살! 놈에게 화살을 쏘아라!”
잉젤거 백작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당황스럽기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푸아 자작에게서 아공간 물품을 사용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마나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저놈은 무어란 말인가!
마치 산책을 하듯이 유유히 걸어 다니면서 게눈 감추듯이 투석기 탄환을 회수해 가고 있다.
슈슈슈슉! 슈슈슉!
갑작스러운 명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잉젤거 백작의 명령에 프레하 제국의 병사들이 화살을 쏘아 날렸다.
땅바닥에 그늘이 질만큼 빼곡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날아가는 화살.
단 한 명을 상대로 쏘았다고 하기에는 지나쳐도 한바탕 지나친 숫자의 화살이다.
“빌어먹을!”
잉젤거 백작과 앙부아즈 백작이 동시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욕설을 터트렸다.
최소 천여 발 이상의 화살이 날아갔다.
양심이 있다면 쓰러져 주는 게 예의다.
하지만 투석기 탄환을 흡수해 가는 기사는 화살을 맞아가면서도 꿋꿋하게 움직인다.
그렇다는 것은 마법적인 처리를 거쳤거나 혹은 명장(名匠)이 만든 최고급 갑옷을 입었다는 얘기.
허접한 실력을 지닌 기사가 고가의 갑옷을 입을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고위 귀족가의 자식이라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렇듯 대담하게 홀로 요새 밖으로 나와 돌아다닌다는 것은 실력에 자신 있다는 의미다.
“푸아 자작! 이게 어찌 된 일이요? 아공간 마법이 걸린 물품을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소!”
잉젤거 백작은 분통 터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짜증을 담아 소리쳤다.
“그, 그게… 아무래도 대현자급 마법사가 만든 물건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푸아 자작이 자신 없는 음성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말하면서도 본인 스스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현자급 마법사는 대부분 드래곤과 같은 차원이 다른 존재가 심심풀이로 인간계에 유희를 즐길 때나 등장해 왔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드래곤이 저렇듯 뛰어난 성능을 지닌 아공간 마법이 걸린 물품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
푸아 자작도 저런 성능을 발휘하는 아공간 마법 물품을 만들려면 엄청난 공을 들여야 가능하다.
그런데 멀리서 꼬물꼬물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가 이동할 때마다 투석기 탄환이 후루룩 사라진다.
고작 아공간 마법이 걸린 물품을 저렇게나 비효율적으로 만들 이유가 있던가?
마나 소모가 무시무시할 게 분명함에도, 아무렇지 않게 투석기 탄환을 챙기는 엘튼 제국의 기사가 괴기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뱅상! 푸아 자작과 잡담이나 할 셈인가! 대책을 세워야 할 거 아냐! 이제 어쩔 건가!”
앙부아즈 백작이 분통을 터트렸다.
조금 전에 잉젤거 백작에게 ‘천재’라고 말했던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다음이었다.
“대기… 하는 것으로 하지.”
“망할!”
자신감이 사라진 잉젤거 백작의 말에 앙부아즈 백작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 와중에도 화살은 투석기 탄환을 수거 하는 기사를 향해서 계속 발사되었다.
화살을 쏘라고 명령한 탓에 뱅크스 요새에서도 화살이 날아와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 나가야 했다.
***
투다당! 타당탕! 타당!
“자식들이 귀찮게…….”
마치 진동 안마 의자에 앉은 기분이다.
화살이 날아와 계속 갑옷을 두들긴다.
다른 곳은 다 괜찮은데, 투구에 맞을 때마다 귀가 울린다.
자식들이 ‘적당히’라는 게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기분 좋은 사실은,
확실히 명품 갑옷은 달라도 화끈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무지막지하게 날아드는 화살에도 그저 약간의 흠집만 생길 뿐이다. 일반적인 갑옷이었다면 구멍이 났을 거다.
화살이 갑옷을 뚫지 못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이곳 세상에서 바꾸었다.
생각보다 갑옷의 두께가 두껍지는 않다. 토너먼트 경기에 사용한다는 무식하게 육중한 갑옷은 예외로 치고 말이다.
이게 다 리치 녀석이 만든 명품 갑옷 때문에 여유를 부리면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다.
투다당! 타당!
“으윽!”
이번엔 좀 정통으로 맞았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
하지만 일단은 움직인다.
바닥에 떨어진 투석기 탄환을 회수하는 일을 그만둘 순 없는 노릇이다.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혐오스러운 돌덩이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게 적의 손에 넘어가면 무지막지한 흉기가 될 터다.
프레하 제국 놈들이 탄환을 회수하려고 퇴각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투석기 탄환이 현재 뱅크스 요새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는 것 말이다.
여기저기 흩어진 제국군 병사와 기사의 시체들.
아군의 피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병이 많이 죽었으나, 그럼에도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2만이라는 적군의 숫자는 이런 정도의 피해쯤 티도 안 나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래서 투석기 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도 시즈 타워는 세대나 있다.
이번에 공성전을 벌이면서 침투했던 프레하 제국의 기사는, 정예 기사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제야 겨우 소드 익스퍼트 하급인 부하들과 비등하게 싸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으으으…….”
구역질 난다.
투석기에 흥건하게 피가 묻어 있는 게 영……
투다당! 타당!
“포기를 모르네, 징그러운 자식들!”
마지막으로 장벽의 문 앞에서 투석기 탄환을 챙기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화살이 날아온다.
<야, 이! 개자식아! 다 가져가냐아!>
“……?”
투석기 탄환을 챙기는데, 프레하 제국군 진영에서 짜증이 가득 담긴 음성이 들린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다.
그럼 남기냐?
<널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각오해라!>
마지막 투석기를 챙길 때까지 떠들어 대던 놈이 이젠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먹을 들어 장벽의 문을 두들겼다.
쾅, 쾅, 쾅!
끼이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듣기 싫은 소음을 일으킨다.
오랫동안 닫혀 있기만 하던 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단장님!”
시안이 다른 부하들과 함께 문을 열고서 나를 반긴다.
역시나 다른 기사들한테는 환영받지 못하는 건가?
“피해는?”
“스티븐과 제스가 죽었습니다.”
시안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두 녀석은 최근에 기사로 받아들인 녀석들이다. 그런 만큼 마나를 수련한 기간도 짧다.
굳이 비교하자면……
보병 대장인 와그너와 비슷한 수준?
정규 기사와 버거운 싸움을 벌이다 죽었을 게 분명하다.
“…와그너.”
“예, 단장님. 브런트를 비롯한 8명이 사망했습니다.”
지친 얼굴로 보고를 올리는 시안과 와그너.
그와 더불어 침통한 분위기까지 내게 전해진다.
같이 싸우던 동료를 떠나보낸다는 건 괴로운 일.
나는 녀석들의 어깨에 한쪽 손을 각기 얹었다. 괴롭지만 침울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직도 프레하 제국의 병력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남았다. 놈들이 물러나거나 전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
“녀석들의 복수는 열 배로 갚아주는 거다. 할 수 있겠지?”
“닝길! 두말하면 입 아픕니다. 단장님. 퉤에!”
“물론입니다.”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투지를 드러내는 두 녀석.
분을 못 이겨 욕을 하는 시안과 굳은 얼굴로 짧게 대답하는 와그너.
녀석들이 울분을 참고 있는 게 어깨를 잡은 나의 손을 통해 전해진다.
“윌슨?”
“결코, 놈들을 한 놈도 놓치지…….”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지만, 일단은 무시다.
우울해 하는 부하 녀석들의 투지를 다시 일깨우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윌슨!”
“않을…….”
“윌스은!”
“후우… 왜?”
끈질기게 나를 부르는 코너 녀석 때문에 분위기 잡기는 글렀다.
“사령관님께서 보자고 하셔.”
“사령관? 아…….”
녀석의 말에 순간 얼떨떨해 했다가, 사령관이라는 게 반데라스 자작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시 상황이었기에 휴스턴 백작의 자리를 반데라스 자작이 그대로 넘겨받은 게 틀림없다.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는 일이니까.
“나중에 얘기하지.”
“알겠습니다. 단장님.”
시안과 와그너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주고는 코너에게 다가갔다.
뱅크스 요새의 최고 명령권자가 부르는데 가줘야지.
“넌 참 더럽게 눈치 없다.”
씁쓸한 얼굴로 코너 녀석에게 한 마디 던질 수밖에 없었다.
말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걸 못 참고 보채는 건지……
“내가 실수한 거야?”
“…됐다.”
녀석이 묻는 말에 차마 대답기가 뭐했다.
표정이 장난 아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마치 십 년 정도는 폭삭 나이를 먹어 버린 듯한 얼굴이라고 할까?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은 탓에 충격을 받은 걸 수도 있겠다. 뭐라 한마디 하면 금방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윌슨… 전쟁이라는 게 이렇게 지독한 건 줄은 몰랐어.”
“그럼 장난일 줄 알았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 기사단과 기사단이 근사하게 맞붙고… 뭐 그런…….”
침울한 얼굴로 띄엄띄엄 말을 늘이는 코너.
나는 녀석의 말을 더 들어 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허리춤의 검을 뽑아 녀석의 목에 드리웠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윌슨!”
목에 헤로드 소드를 겨누자, 녀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검기를 사용한 탓에 핏물이 묻어 있지는 않았지만, 검 자체에 피비린내가 짙게 배어 있다.
겁에 질린 녀석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을 껌벅거린다.
“여기서 살짝만 힘을 줘도 넌 죽어.”
“이, 이러지 마, 윌슨! 우, 우린 친구잖아.”
“알아! 그러니까 이러는 거다. 전쟁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 인간이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하는 곳이 바로 여기야. 정신 똑바로 차려.”
“아, 알았어.”
녀석이 바짝 얼어서 대답하는 걸 들은 뒤에야 나는 헤로드 소드를 거두었다.
“너무하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너무하다고?”
“그, 그래!”
코너 녀석이 헤로드 소드가 닿았던 목을 쓰다듬으면서 볼멘소리했다.
“너와 반데라스 자작은 나한테 그런 짓을 시킨 거다. 동료를 죽이라고.”
“…….”
“이제 반데라스 자작을 만나러 가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은 해봤어?”
아무 말도 못 하는 녀석에게 약간의 짜증을 담아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는데?”
“너 머리 좋다며? 이거 완전 돌대가리네…….”
기가 막혀서 한숨과 함께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