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62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62화
62화 이건 또 무슨 일이야……(1)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아니,
승산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답이 없다.
작정하고 공성을 준비한 프레하 제국군을 상대로 미적지근한 대응은 위험하다.
생존 자체가 위협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장거리 행군을 하면서 거대한 공성 병기인 트레뷔셰를 여섯 대나 가져왔을 줄이야.
기껏해야 한두 대 정도라고 예상했었는데 정말이지 의외다. 뱅크스 요새가 주 공략 관문이 아님에도 이렇게 준비했을 정도면, 다른 두 곳의 관문을 공략하려고 얼마나 준비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썩을!
알 게 뭐야?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다른 관문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와그너!”
“네, 단장님!”
나의 부름에 잔뜩 굳은 얼굴로 대답하는 와그너.
티오의 얘기를 듣고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탓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반데라스 영지병과 함정 설치를 마무리하고, 너희는 저쪽에서 양쪽으로 병력을 나누어 기습을 가한다. 기습 요령은 알고 있겠지?”
나는 함정이 설치된 곳보다 한참 앞쪽을 가리켰다.
“물론입니다.”
“기습이 끝나면 곧바로 산길을 이용해 뱅크스 요새로 퇴각한다.”
“알겠습니다.”
와그너가 굳은 얼굴로 대답한다.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을 보니, 안심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평소에도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생존(生存).
죽으면 다 소용없다.
살아남아서 화살 한 발이라도 더 쏴주는 게 도움이 되니까.
“시에트 기사단!”
[예! 단장님.]
“전원 갑옷을 착용한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순간, 기사들이 서로 갑옷 입는 것을 도와주며 빠르게 무장을 갖춰나갔다.
리치가 만들어 준(사실은 그냥 가져온) 갑옷은 손만 대도 입을 수 있다.
터더턱! 철컥!
처음에야 부하들이 신기해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푸륵! 푸르륵!”
“칼립, 수고 좀 해 줘야겠다.”
나는 칼립의 볼을 툭툭 치면서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 녀석이다.
이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었을 터다. 이 녀석을 타게 된 뒤로 기마술은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알아서 움직이니까, 말 다루는 기술이 필요치 않게 되어 버렸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서 훌쩍 몸을 뛰어 안장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갑옷을 입고서 무장한 기사단원들.
작업을 나온 탓에 마갑을 씌우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속도가 생명인 상황이니까 말이다.
“티오의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네! 단장님!]
“상황이 바뀌었으니 우리도 방법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
부하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모험이 필요한 때다.
프레하 제국이 끌고 오는 트레뷔셰를 파괴하지 못한다면 이번 전쟁은 패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숫자에서도 한참이나 밀리는 상황에서 대형 투석기가 융단 폭격을 해댄다면 아군의 사기는 최악이 될 터.
아니,
단순히 사기가 꺾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뱅크스 요새의 장벽과 함께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야 할 사령관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하필 나서야 할 사람이 내가 되었다는 건 좀 피곤한 일이기는 하다.
아무튼!
공성 병기를 무력화해놓지 못한다면 끝장이다. 프레하 제국군이 도착하는 순간, 뱅크스 요새의 운명이 결정될 테니까.
뱅크스 요새를 지원하러 오는 귀족들이 도착할 시간을 벌어 준다?
사치스러운 생각에 불과하다.
“모두 준비되었나!”
[충!]
나의 음성에서 무엇인가 감지했는지, 부하들이 대답 대신에 군례를 올린다.
“좋다! 자러 가자!”
[……?]
녀석들이 나의 명령에 멍한 얼굴을 했다.
“바보냐? 기습은 밤에 하는 거다!”
헛웃음을 흘려주고는 말고삐를 가볍게 흔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밤샘 작업으로 해롱거리는 주제에 무슨 힘으로 싸우겠다는 거야?
“쯧!”
혀를 차면서 산으로 이동했다.
***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
나는 갑옷조차 벗어 둔 채로 이동하는 중이다.
스슥! 스스슷!
기사복에 재를 잔뜩 묻혀 어둠과 동화시킨 상태다.
뱅크스 요새에 전달된 정보는 잘못되었다. 프레하 제국군의 이동은 생각보다 훨씬 느렸다.
거대한 트레뷔셰를 완성 상태로 옮기느라 이동 속도가 빠를 수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의 이동 거리가 짧다.
그렇다는 것은 뱅크스 요새로 지원한다는 귀족들이 늦게 도착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프레하 제국군이 도착하는 시기를 3일 뒤로 잡았지만, 이렇게 되면 하루를 더 보태야 할 것이다.
트레뷔셰를 파괴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래서 혼자 프레하 제국군이 야영하는 곳에 침투한 것이다.
하지만,
“…….”
내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확인만 한 셈이다.
크기가 엄청나다.
뱅크스 요새에서 불타오르던 아군의 트레뷔셰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막상 파괴하려고 생각하니……
프레하 제국의 기습조가 어째서 부수지 않고 불을 지르는 방법을 사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몸통 굵기보다 몇 배나 되는 기둥들로 트레뷔셰가 구성되어 있다.
이런 걸 검으로 벨 생각을 한 나의 멍청한 머리에 찬사를 보내 주고 싶다.
게다가 단단하기 짝이 없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검으로 벤다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
내공이 늘어난 지금이라 해도 말이다.
이런 걸 단번에 베려면 검강을 사용할 정도의 고수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아니……
너무 수준을 높게 잡았나?
어쨌든 지금의 나로선 트레뷔셰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
이러면 힘들게 여기까지 침투한 게 뻘짓이 되는 셈이다.
썩을!
어떻게 해야 트레뷔셰를 부술 수 있지?
힘들게 잠입에 성공하고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잠입에 성공한다면 트레뷔셰를 파괴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공간?
그래, 아공간이라면 혹시 가능할 수도 있겠다.
‘크로노스 아공간!’
속으로 명령어를 외웠다.
그리고 트레뷔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트레뷔셰가 아공간에 들어가길 바란 내가 나쁜 놈이다.
엄청난 트레뷔셰를 집어넣기엔 크로노스의 아공간은 높이가 낮았다.
물건의 축소 기능 따위를 기대했는데, 그건 안 되는 모양이었다.
“……!”
답답한 와중에도 나는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트레뷔셰 주변을 경계하는 병사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계병들의 움직임에 절도가 느껴진다.
뱅크스 요새의 병사들도 이들처럼 경계를 섰다면 트레뷔셰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지키지 못했으면 그걸로 끝이다.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트레뷔셰를 망가뜨릴지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이대로 시간만 죽였다가는 뱅크스 요새에 무지막지한 돌덩이 세례를 퍼붓게 될 터다.
“……!”
잠깐……
돌덩이?
이거, 굳이 트레뷔셰를 파괴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다.
적중률을 높이려고 규격화한 투석기 탄환을 없애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엔 야산들뿐.
다리엔 산맥이라 부르는 이곳은 부드러운 흙으로 뒤덮인 지형이다.
변변한 바위조차 없는 이곳에서 깎아 놓은 돌덩이를 잃는다면?
이거 괜찮은 생각 같다.
경계병이 지나치기를 기다려 이동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할 것을 그랬다.
2만의 대군이 이동하는 것 답게 수많은 보급 마차가 열을 지어 서 있다.
그리고 보급 마차를 지키는 경계병들.
마찬가지로 병사들이 사방을 경계하며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는다.
녀석이 필요한 시간이다.
지켜보고 있을 녀석에게 트레뷔셰 위에서 숲을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히히히힝!>
나의 손짓에 반응해 녀석이 울부짖는 소리가 산속에서 아련하게 들려온다.
두두두두두!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
칼립이다.
녀석의 안장 위에는 금빛의 갑옷이 앉혀져 있다.
말 그대로 갑옷일 뿐이다.
“저게 뭐야? 기사?”
“혼자서 뭐하는 짓이지?”
“금빛 갑옷? 우리 기사가 아닌 것 같은데?”
“엘튼 제국의 기사인가? 혼자 왔어? 미친놈 아니야? 어쩌지? 알려야 하나?”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칼립이 갑옷을 얹고서 달려 내려오는 모습에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걸 바라고 한 짓이다.
원래는 탈출할 때 녀석을 부르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찍 부른 것이다.
병사들이 동요하는 게 느껴진다.
적이라고 소리치려니 고작 한 명이 출현한 것이라 찜찜할 게 분명하다.
“아차차! 뭐하는 거야? 일단 알려!”
“그걸 왜 나한테 그래? 네가 가서 얘기해.”
“저러다 엘튼 제국 기사 놈이 도망가면 나만 왕창 깨지잖아!”
“내가 깨지는 건 괜찮고?”
병사들이 서로 보고를 미루면서 투닥거린다.
그래!
지금이 기회다!
***
나름 호화로운 대형 천막에서 잠을 자던 ‘알랭 드 앙부아즈’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뿐인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놈이…….’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잠에서 깬 것이다.
가뜩이나 불면증 때문에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든 탓에 짜증이 치밀었다.
이건 대놓고 전력질주 하는 말발굽 소리였다.
뒤이어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성질대로라면 욕설을 늘어놓고 싶지만, 일단은 점잖게 말했다.
작전 참모관 ‘뱅상 드 잉젤거’ 백작이 품위를 지키라며 잔소리해대는 걸 견디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약간의 짜증이 섞이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천막 밖에서 들리는 병사의 대답에 앙부아즈 백작은 간이침대에서 내려왔다.
잠에서 깨는 바람에 다시금 불면증이 도졌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고 걸어가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잠을 설친 짜증을 달래기 위해 차를 잔에 따랐다. 끓여 놓은 지 오래되어 차는 식을 대로 식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향긋한 향기를 풍기면서 그의 기분을 달래 주었다.
펄럭!
“사령관 각하!”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앙부아즈 백작은 찻잔을 입에 대면서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헉, 헉… 큰일 났습니다.”
“병력에 손실이 있었나?”
“후욱, 헉! 그, 그건 아닙니다.”
“난 또… 일단 숨부터 가라앉히게.”
찻물을 한 모금 마신 앙부아즈 백작은, 급하게 달려와 숨을 몰아쉬는 병사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명령을 내린 그는 차갑게 식은 차의 향을 음미하면서 병사의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병사의 호흡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앙부아즈 백작이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뭐가 큰일이라는 것인가?”
“투석기에 사용할 탄환이 몽땅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병사의 보고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레뷔셰에 사용하는 바위는 제국에서 석공들이 130킬로그램에 맞추어 공들여 깎은 것이다.
가져온 탄환은 모두 120개.
무게만 해도 15톤이 넘어간다.
적진에서 탄환을 구하는 건 비현실적이기에 일곱 대의 마차를 동원해 제국에서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런데 그 많은 탄환이 사라져?
말도 안 될 일이었다.
고위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히 제가 어떻게 사령관 각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투석기 탄환을 실은 마차가 텅 비었습니다. 아울러 일부 군량도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
병사의 말과 표정에서 한 점의 거짓도 묻어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믿을 수 없지만, 병사의 보고가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앙부아즈 백작의 손에 쥔 찻잔이 날아갔다.
파캉!
“커헉!”
“야, 이! 멍청한 개자식아! 그걸 왜 이제 말해!”
천막이 펄럭일 정도로 고함을 내지른 그가 기절한 병사를 내버려 두고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