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최강 군바리 61화
무료소설 이세계 최강 군바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세계 최강 군바리 61화
61화 머리는 장식이냐?(4)
바라는 답이 있는 것 같은데 괜히 말실수했다가는 군 생활이 꼬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자네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군.”
반데라스 자작이 빙긋 웃는다.
이봐요, 아저씨……
저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내 속마음 따윈 관심 없는 게 확실하다. 나의 반응 따윈 관심도 없어 보인다고 할까?
나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코너와 친구라는 이유로 나의 존재를 안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이유만은 아닌듯하다.
어차피 강경파에 속하는 휴스턴 백작에게 반발(?)한 탓에 온건파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이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속을 정해 버린 느낌이다.
“우리 제국의 전쟁사를 보면서 고민했다네. 너무 정직하게 싸워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좋게 말하면 정정당당 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해. 미련해도 한없이 미련한 전투를 반복해 왔어.”
“…….”
대답을 못 하겠다.
역사는 공부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몸의 원주인인 윌슨의 기억 속에서도 엘튼 제국의 전쟁사는 남아 있지 않다.
아예 그런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다.
일개 병사의 역사적 지식수준이라는 게 열악한 것이 당연한 세상이니까 말이다.
“기사의 제국이라는 불필요한 명예심으로 비효율적인 전투를 당연시하는 게 문제일세.”
“아…….”
이건 또 처음 듣는 얘기다.
일개 병사였던 시절에는 들 수 없었던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의문을 제기했을 때 휴스턴 백작의 반응이 그랬던 거였나 보다.
기습이나 야습을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되갚자는 얘기를 했으니……
“그래, 자네도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걸세. 병사 출신은 과연 이해가 빠르군.”
“…네.”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 아저씨 진짜 착각을 잘하는 아저씨다.
그냥 어이없어서 탄성을 흘린 것뿐인데 그걸 또 수긍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분위기를 보면 알겠지만, 이곳 뱅크스 요새는 휴스턴 백작을 비롯해 대부분이 강경파의 사람들일세. 지원하러 오는 존슨 자작이나 브린크스 남작 역시 강경파의 사람이지.”
“…….”
뭐라 할 말이 없다.
정당하게 싸우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아는 사람들만 우글거린다는 얘기네?
지원 온다는 놈들 또한 똑같은 놈들이라니, 이건 최악의 상황이나 마찬가지가 되겠다.
“이곳 뱅크스 요새에는 멍청한 놈들만 우글거리지. 안 그런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정색하고서 말했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답하면 엿 되는 거다.
사령관인 휴스턴 백작까지 싸잡아서 ‘멍청한 놈’이라고 욕을 하게 되는 셈이 된다.
일종의 질 나쁜 유도신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답하는 순간 엮인다.
이 아저씨, 은근슬쩍 낚시질이다.
“큽! 아직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모양이군. 레이놀드 영지라면 세상과 동떨어져서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 인사부터 했다.
지저분한 문제에 더 개입되고 싶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을 낭비했군. 좋아,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네는 오늘 새벽에 있었던 프레하 제국의 공격을 어찌 생각하는가?”
“우리에겐 안 된 얘기지만, 효율적인 작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교활한 적을 상대로는 우리도 교활해질 필요가 있어.”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교활한 적을 상대로 정직하게 싸운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상대보다 강하거나 혹은 상대보다 비열해야 한다.
어쨌거나 상대보다 더 지독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강하다는 건 상대적인 것.
직접 붙어 보면 상대의 강함은 쉽게 알게 된다. 강한 적과 정면으로 승부 하는 건 어리석다.
수많은 인간을 동원해서 펼치는 전쟁에서 정면으로 승부 하려면 상대보다 수가 많아야 한다.
비겁하고 비열한 짓은……
상대를 약화시킨다.
그럼으로써 전쟁에 이길 수 있다면, 비열한 짓은 어느새 ‘전략’ 혹은 ‘전술’이라 부른다.
왜?
이기는 놈이 장땡이니까.
“그래, 자네는 어떤 방법으로 프레하 제국군에게 이번 일을 되갚아줄 생각이었지?”
반데라스 자작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어 왔다.
응?
그건 생각 안 해 봤는데…
작전이라는 건 원래 지휘관들이 짜는……
윽!
나도 지휘관급 인물이었잖아?
“적이 행군해 오는 진격로에 함정을 파고 놈들의 공성 병기에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
“이유는?”
“아군이 방비할 시간을 벌고 적의 진격을 늦춰 심리적으로 초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훌륭하군. 그렇지 않나, 로버츠 남작?”
원론적인 얘기를 했을 뿐인데, 반데라스 자작이 놀라워한다.
그러고는 이제껏 침묵하던 로버츠 남작에게 시선을 던진다.
“요즘 젊은 사람 같지 않군요. 부사령관님.”
로버츠 남작이 회색빛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보통은 저 나이 땐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게 정상인데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슬쩍 고개를 숙였다.
이거 불안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분에 넘치도록 칭찬을 한다는 건, 무언가 내게 바라는 게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칭찬하는데 별다른 수고가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저… 그런데 왜 보자고 하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감정의 기복 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자네가 얘기했던 방법을 써먹어 볼 생각이야.”
“…….”
쓰바!
걱정했던 게 딱 들어맞았을 때의 느낌이 이렇게 더러울 줄이야.
내 생각이 괜찮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생각을 실행하는 것도 결국은 내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이미 눈치 챈 모양이군. 부사령관으로서 내리는 명령인 동시에 부탁일세.”
“알겠… 습니다.”
아 놔!
아예 확정적으로 얘기해 버리니 빠져나갈 구멍 따윈 존재하지 않잖아!
“삽은 얼마든지 가져가게.”
로버츠 남작이 선심 쓰듯 말을 덧붙인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저 아저씨가 딱 그 짝이다.
“자네의 역할이 중요하다네. 지원군이 공성에 사용할 여분의 기름과 장비를 가져올 예정인데, 지금 상황이라면 제때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일세.”
“알겠습니다.”
한쪽 주먹을 움켜쥐면서 대답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화끈하게 해주는게 낫다. 줄을 잘못 섰건 말건 이건 생존이 걸린 문제다.
살아남은 뒤에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법.
그래 미친 듯이 함정을 파주고 말겠다!
***
파악! 파박! 팍!
그래,
반데라스 자작의 천막에서 다짐했던 것처럼 미친 듯이 삽질하는 중이다.
작업을 위해서 갑옷은 벗어 둔 상태다.
진짜 골 때린다.
삽질하는 데 내공을 사용하게 될 줄이야!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조금 더 깊게 그리고 기다랗게 땅을 파는 중이다.
안에 뾰족하게 깎은 나무 말뚝도 박아 놓을 생각이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좀 더 디테일하게 작업을 했을 텐데, 현재로써는 원시적인 함정밖에는 설치할 수 없었다.
하루 동안 말을 몰고 나왔다. 말이 하루지 대략 6시간쯤 전력으로 말을 몬 것 같다.
벌써 석양이 지는 중이다.
첩보대로라면 프레하 제국군과 보병 행군 거리로 대략 하루에서 하루 반 정도 떨어져 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일단은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티오 녀석을 보내 적진을 살펴오라 명령해 두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으니 알아서 잘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동안에 함정을 만들어 두면 된다.
이런 조잡한 함정만으로는 2만이라는 대군을 어찌할 수 없다는 정도는 안다.
함정에 걸려들어도 티가 안 날 게 분명하다.
행군 속도를 늦추겠다는 건 말도 안 될 희망 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무식이 철철 흐르는 사령관과 거기에 환호하는 띨띨한 강경파 지휘관을 믿을 수 없다. 지금 상태라면 동반 자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작전 또한 기습이다.
대로가 좌우에 펼쳐진 야산은 레이놀드 병사들이 활동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출신 자체가 산적들이라 산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달리는 놈들이니까.
아마도 내일 새벽에나 녀석들이 도착할 것 같기는 하다. 녀석들을 근처에 배치해서 적의 혼란을 가중할 생각이다.
“서둘러라! 시간이 많지 않다!”
[예, 알겠습니다.]
기사 녀석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다시 삽질에 전념했다.
이번 삽질 작전에 동원된 병력은 우리 외엔 다 병사들이다. 말을 소지한 병력이 기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숫자를 데려오진 못했다.
말의 숫자만큼 병사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코너가 데려온 기사단이나 반데라스 자작의 기사단에서 말을 지원해 줬기에 그나마 이 정도의 병력이라도 데려올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작업은 새벽까지 진행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나머지는 병사들의 몫이다.
그리고 어스름하게 동이 터올 때쯤,
130명의 병사가 어둠을 헤치고 다가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단장님! 저희가 왔습니다.”
“그래, 와그너, 오느라 수고했다.”
나는 지친 얼굴로 인사하는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밤새도록 작업한 우리 못지 않게 녀석들도 밤새 강행군하느라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짐 마차에 프레하 제국군을 괴롭힐 물건까지 가져오느라 늦게 출발했을 터다.
녀석은 젝무어 백작의 영지 근처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산적 중의 하나다.
당시에는 부두목이었으나, 이제는 병사들을 책임지는 중대장의 신분이다.
이제는 와그너와 기습에 관한 얘기를 할 때다.
실제로 지형을 보지 않고서는 상세한 작전 계획을 세울 수 없었으니까.
“와그너!”
“네, 단장님!”
“나와 함께 여기에서 놈들을 공격하고 산을 이용해 안전하게 퇴각…….”
와그너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려던 나는 고개를 돌렸다.
멀리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티오가 돌아오는 모양이다. 녀석의 얘기를 듣고서 세부 계획을 다듬는 걸로 하지.”
하려던 얘기를 끊고 몸을 돌렸다.
사실 작전이랄 것도 없다.
뱅크스 요새의 전 병력을 합친 것보다도 월등히 많은 숫자의 적군을 상대로, 소수의 병력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으니까.
잠시 후,
티오 녀석이 미친 듯이 말을 몰고 오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급하게 말을 모는 것으로 보아 안 좋은 소식일 확률이 높다.
“워어!”
티오가 근처에 다가와 말고삐를 잡아당기면서 멈췄다.
“왜 이렇게 급하게 와?”
“헉, 헉! 죄송합니다. 단장님.”
녀석이 숨을 헐떡이면서 내려섰다.
말을 모는 녀석이 지칠 정도라면 상당히 무리했다는 의미다.
“무슨 일인데?”
거칠어진 호흡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놈들의 공성 병기가 엄청납니다. 트레뷔셰 여섯 대에 시즈 타워 네 대가 동원되었습니다. 이동 속도가 느린 것은 그 이유 때문입니다.”
녀석의 보고에 나는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트레뷔셰가 여섯 대나 된다면 엄청난 화력일 거다. 한 번에 여섯 개의 무지막지한 투석기 탄환이 날아온다는 얘기.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진다.
거기에 시즈 타워라니!
성벽과 높이를 맞추고 성벽 위에 기사 혹은 용맹한 병사를 쏟아 낼 때 사용하는 장비다.
접근하기 전에 파괴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게 뻔하다.
2만이나 되는 병력이라면 시즈 타워 내부의 사다리를 타고서 끊임없이 병력이 밀고 들어올 수도 있는 일.
“성문을 파괴하는 캣(Cat)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기사 병력이 적어도 300명은 넘습니다.”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2만 명의 제국군이 몰려온다고 할 때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좀 심각하다.
망할 놈의 휴스턴 백작!
뭐?
공성 병기까지 넉넉하게 준비한 저들을 상대로 투석기 탄환이 떨어질 때까지 버티다가 싸우겠다고?
강경파 인간들… 머리는 장식이냐?